메이리쉐산은 높은 만큼이나 크기도 커서 며칠 머무는 것으로는 극히 일부분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 중에서도 잘 알려진 몇몇 곳을 둘러보는 것조차 많은 시간과 체력을 필요로 한다. 메이리쉐산에서 잘 알려진 곳은 위뻥마을을 중심으로 갈 수 있는 신후(神湖), 신푸(神瀑), 빙후(氷湖)가 있고, 밍융마을에서 갈 수 있는 메이리쉐산에서 가장 큰 빙하인 밍융빙촨(明永氷川)이 있다. 처음에는 밍융빙촨에도 가보고 싶었지만 위뻥과 밍융사이에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서 하루를 소비해야 했기에 포기했다. 먼 훗날 넉넉한 시간을 들여 다시 오게 될 때를 위해 남겨두었다.(사실 위뻥에서 계획한 2박 3일로는 신후, 신푸, 빙후조차도 다 돌기 힘들어서 나는 빙후와 신푸에 가보기로 했다.)


샹그릴라도 그랬지만 이곳은 산이 높고 골이 깊다보니 일교차가 무척이나 심했다. 새벽에 일어나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국수 한그릇을 뱃속으로 넘기고 빙후로 출발했다. 사실 출발하는데 꽤 긴 시간이 걸렸는데 그 이유는 중국처자들이 화장하고 차림새를 꾸미는 것을 기다려야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와서도 화장을 해야하는지 이해가 되지않지만 이들 나이에는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한가보다. 아는 분 말마따나 이해는 되지 않더라도 존중은 해야하니까 기다려야했다. (남미에서 9월말에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할 때는 10월말의 이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악조건이었다. 추위와 바람이 극심했고 산장에는 미지근한 물조차 나오지 않아서 4박 5일동안 세수도 하기 싫었다. 중국처자들이 화장에 신경을 쓰는 것은 10월말의 이곳은 비교적 안락하다는 증거다.)


밍밍한 육수에 푹 퍼진 면발이 정말 맛이 없다. 중국사람들도 잘 먹지 않는걸로 봐서는 원래 이런 맛은 아닌가보다. 그래도 하루종일 움직이려면 그릇을 비울 수 있어야 한다.


백탑 주위에서 소원을 비는 통을 돌리는 듯이 흐르는 시냇물을 이용해 자동으로 통이 돌아가게 되어 있다.


누군가 방금 차라도 끓였는지 모닥불이 채 꺼지지 않고 남아있다.

메이리쉐산을 찾아오는 여행자들이 늘어나면서 휴게소를 만들거나 등산로를 정비하는 공사가 곳곳에 벌어지고 있었다. 그 인부들이 쉬다 간 자리인 것 같다.


소나무겨우살이처럼 보이는 식물들이 늘어져있다.



빙후로 가는 초중반 트레킹 길은 오르막과 평지가 적당히 섞여 있어서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쭉뻗은 침엽수림을 통과할 때는 상쾌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빙후로 다가갈수록 하늘에 구름이 끼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때는 숲사이로 햇빛도 비춰서 날씨가 좋을거라 생각했었다.



빙후로 가는 마지막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분명히 심한 오르막은 아니었지만 비를 맞으며 물렁해진 흙길을 밟고 올라가자니 고산지대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꽤 힘들었다. 밑에서는 한시도 쉬지않고 재잘거리던 처자들도 오르막에서는 말소리도 내지 않는다.




바위산 옆으로 난 길을 힘들게 올라 드디어 고갯마루에 서니 아래로 빙후가 보였다. 보이긴 보이는데 덩그러니 자그만 호수 하나만 있으니 뭔가 썰렁한 느낌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구름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산봉우리가 보였더라면 감탄이 나올만큼 아름다운 경치였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보이지 않으니 빙후 하나만으로는 딱히 아무런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느라 들인 공이 있으니 손이라도 담궈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내려갔다.


높은 곳에서 찍어서 그렇지 아주 작은건 아니다. 커다란 연못정도 될 것 같다.



호숫가 거무스름한 것들은 모두 소원을 빌며 쌓은 조그만 돌탑이다.




호숫가에 내려와도 아쉬움은 가시질 않았다. 분명 물색도 보기 드물게 푸른 옥빛이지만 그와 어우러지는 풍경이 없으니 아쉬웠다. 옥색 물빛이야 위룽쉐산의 인공미 넘치는 백수하에서도 실컷 보지 않았는가.



구름으로 가려진 바위절벽 위로 눈쌓인 봉우리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면 옥빛 호수와 설경이 어우러져 감탄할만한 경치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티벳인들은 이 호수를 돌면서 소원을 빈다고 해서 나도 호수를 돌며 마음속으로 앞으로의 일들과 생각들을 정리했다. 그러고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아무리 경치를 보며 멍 때리는 일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빗속에서 젖은 바위에 앉아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오늘의 빙후가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 늦어서야 온 처자들은 이제야 셀피를 찍고 경치에 감탄하고 신이 났다. 올라올때는 기진맥진하던 사람들이 사진찍고 놀때는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기는지 전혀 피곤해보이지 않는다.


비를 맞고 서 있자니 몸도 추워져서 먼저 내려가기로 했다. 이들은 한참 더 여기서 시간을 보내려 할테니 내려가자고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잘 되었다 싶었다. 이제 내 페이스대로 산길을 걷고,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생긴 것이다. 멀리 있는 일행에게 먼저 간다고 손짓발짓을 해도 좀처럼 이쪽을 보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이 깊은 골짜기에서는 전파가 닿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일행에게 알리지 못하고 먼저 발길을 돌렸다.


(개인적으로 빙후의 경치는 나쁜 날씨를 고려하더라도 그다지 훌륭한 것 같지 않다. 빙후까지 오는 길에 펼쳐진 풍경은 볼만하지만 신폭과 빙후를 비교하라면 신폭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위뻥으로 내려가다보니 날씨가 좋아지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졌던 봉우리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위뻥마을 입구에서 야크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야크가 다른 소보다 덩치가 크거나 그런건 아니지만 뿔이 커서 우리나라 한우처럼 순해보이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더니 방향을 돌려 다른쪽으로 갔다. 이녀석은 나에게 별 관심도 없었는데 괜히 혼자 겁을 낸 것같아 머쓱해졌다.


방목하는 돼지가 마을을 돌아다니다 말똥을 줏어먹고 있었다. 중국돼지가 맛이 좋은건 똥돼지라서 그런가?


숙소에 도착해서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1층 식당으로 갔다. 아기를 안은 주인할머니와 아기엄마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둘이 살갑게 이야기하는 것이 엄마와 딸 혹은 시어머니와 며느린줄 알았다. 할머니에게 점심을 먹을 수 있냐고 손짓발짓으로 물어보니 할머니는 아기엄마를 가리키며 뭐라고 한참 이야기했다. 아기엄마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할머니는 자꾸 아기엄마의 등을 떠밀었다. 따라 가보니 아기엄마는 다른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아기는 내가 봐줄테니 니가 손님을 데려가서 돈을 벌라는 것이었다. 졸지에 천덕꾸러기 손님이 되어버렸지만 뭔가 이들 사이에 유대관계를 엿본듯해서 재밌는 경험이었다.




점심을 먹고 숙소 벤치에 앉아 경치를 보고 있으려니 하늘이 점차 맑아오고 있었다. 이미 20킬로미터 가까이 걸었지만 돌아올때 혼자 걸었던 시간이 좋아서 더 걷고 싶어졌다. 다리에 아직 힘도 남아 있고 해가 지려면 시간도 있는데 이렇게 앉아있으려니 좀이 쑤셔왔다. 한참 후에 돌아온 일행에게 하위뻥 마을에 마실간다고 이야기하고 길을 나섰다.


저 아래 보이는 마을이 하위뻥이다. 고도차는 300미터쯤이지만 두 마을 사이에 난 계곡을 건너야 하므로 그리 만만한 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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