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 프라방의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왁자지껄한 동남아 여느 관광도시의 밤거리와는 달리 해가 지면 조용하고 새카맣게 어두워진다. 그 어둠이 두려움이나 불안함을 가져오는게 아니라 평화로움과 느긋함이 느껴진다. 밤을 즐기는 여행자라면 루앙 프라방은 심심하고 따분한 곳일 수도 있겠다 싶다.

어제 루앙 프라방 시내의 사원과 동네 구경을 하고 오늘은 미리 여행사에 예약해둔 빡우동굴과 꽝시폭포 투어를 가기로 했다.

빡우동굴은 루앙 프라방에서 롱테일보트라는 길쭉한 배를 타고 한두시간쯤 가면 나오는데 절벽에 생긴 석회암 동굴에 사람들이 수천개의 불상을 가져다 놓았다. 수천개의 불상이라 어마어마하고 거대한 장관을 기대하면 안된다. 소박하고 불심이 깊은 개개인이 가져다 놓은 가지각색의 조그마한 불상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엄청난 돈과 국민의 혈세를 들여 권력자들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규모의 사원이나 불상보다 이 곳 빡우동굴의 불상들의 모습이 더 부처님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좁고 길쭉한 모양의 롱테일보트


나란히 앉으면 딱 두 명이 앉을 수 있다. 이 보트들도 조금씩 크기가 다른데 사진의 왼쪽 보트는 크기도 더 크고 무엇보다 좌석이 버스에서 떼어 온 듯한 편안한 좌석으로 되어 있다. 기왕이면 저런 배를 타고 싶었으나 내가 탄 배는 그냥 딱딱한 나무걸상이 전부였다.


대부분의 보트는 키잡이가 맨 뒤에 있는데 이 보트는 맨 앞에서 운전하도록 되어 있다. 건기와 우기에 따라 수량의 차이가 많이 나서 강의 암초를 잘 보고 피해야 하기 때문인가 싶다. 내가 루앙프라방을 여행하던 시기는 건기에서 우기로 넘어가는 때여서 그런지 강의 중간중간에 암초나 바위가 많아서 그 곳을 잘 아는 사공이 아니라면 다니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가는 도중에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배 안으로 비가 막 들이친다. 일상생활에서라면 짜증이 났을 일인데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여행중에 비 좀 맞는다고 별로 문제될 게 있을까.


보트를 타고 빡우동굴을 가는 도중에 잠깐 조그만 마을에 내려주는데 이 마을은 여행자들에게 '라오라오'라는 라오스 전통술과 여자들이 베틀로 짠 직물을 팔고 있었다. 직물은 거들떠보지 않고 '라오라오'에 관심을 보이니 조그만 잔에 마셔보라고 준다. 라오라오는 우리나라 전통소주처럼 쌀로 만든 술이고 도수도 40도 정도했다. 맥주도 좋아하지만 여행중 자주 마시다보니 이 독주가 끌려서 조그만 병으로 샀다.





드디어 빡우동굴에 도착했다. 절벽 아랫부분에 갑자기 뻥뚤린 듯한 동굴이 특이하다.





장엄하고 거대한 수천개의 불상을 기대했다면 에게? 싶을 수도 있지만 수백년을 거쳐서 불교 신자들이 하나하나 가져다 놓은 것이니 더 의미는 곳이 아닐까.




여러 대의 보트들이 라오스 불자들과 여행자들을 싣고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한다. 여기서 옆으로 난 사잇길을 돌아가면 동굴 하나가 더 있다. 커다란 나무문에는 부처님의 모습이 새겨져있었던 듯한데 얼마나 오래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희미한 형태만 남아있다.


빡우동굴에서 돌아온 후에 여행사 사무소에 차려놓은 간단한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차를 타고 꽝시폭포로 향했다. 꽝시폭포는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공원인데 입구에서부터 곰 보호소를 지나 산림욕하는 기분으로 걷다보면 옥빛 물이 ㅂ이기 시작한다.




성미 급한 사람들은 벌써 이곳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물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마치 터키의 파묵칼레와 같은 지형이 나온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파묵칼레도 예전에는 이렇게 물이 흘렀을텐데 지금은 수원이 바닥나서 거의 말라버렸다.




꽝시폭포로 오르는 도중, 중간중간에 물놀이를 할만한 곳이 있으면 으레 사람들이 들어차있다. 그 중에는 나무 위에서 줄을 잡고 물로 뛰어내리거나 작은 폭포 위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제는 뛰어내리는 즐거움보다 옆에서 보는 즐거움이 더 커져버린 나이인지 선뜻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친구인 듯한 이십대 초반의 우리나라 여행자 3명은 다른 어느 나라 여행자들보다 열심히 그 곳을 즐기고 있었다. 그 사진을 제대로 남겨두지 못한 것이 아쉽다.


꽝시폭포를 보고 나면 다시 차를 타고 라오스 마을에 들른다. 물론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기념품을 팔기 위한 곳이다. 주로 실로 만든 손목에 감는 팔찌를 만들어 파는 곳이었는데 이 기념품들 보다는 아이들 표정이 더 호감이 갔다. 매일 여러차례 여행자들이 왔다 갈테니 심드렁할만도 하지만 아이들은 놀던대로 뛰어놀고 하던대로 즐거운 표정이다. 여행자들 중에 이탈리아에서 여행 온 처자 한 명은 하루종일 다닌 투어로 피곤할텐데 맨발로 아이들과 신나게 공놀이를 하고 놀고 있었다. 아이들과 놀아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즐기고 있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멋진 모습이었다.





라오스에서의 일정도 오늘로써 거의 끝났다. 내일 저녁에는 훼이사이를 거쳐 태국 치앙마이까지 24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라오스를 떠나려니 아쉬움이 커졌다. 이렇게 좋을 줄 알았더라면 일정에 무리가 있더라도 빡세나 시판돈에도 갔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을 마치고나서 여행중에 받은 느낌에서 시각이 차지하는 부분이 생각보다 적다는걸 깨달았다. 후각, 청각, 미각, 촉각 등 모든 감각이 어우러져 그 곳에서의 느낌이 결정되었다. 가끔 일생생활 중에 여행의 기억이 되살아 날때는 시각보다는 다른 감각에 의해서였다. 가보지 않으면 좋은줄 모른다는 말도, TV나 잡지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돈과 시간을 들여서 여행을 가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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