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루앙 프라방에서 태국 제2의 도시인 치앙마이로 가는 길은 언뜻 지도에서만 봐도 그리 녹녹한 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는 방법은 크게 2가지로 배를 이용하는 방법과 차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비행기도 있었던 것 같지만 배낭여행자에게는 배부른 소리라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배는 동남아 최대의 강이자, 세계에서 12번째로 긴 강이라는 메콩강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간 다음에 태국쪽 국경을 건너 다시 차로 치앙마이로 가는 방법이었는데 정보가 정확한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만 2,3일이 걸리고 강의 상류다보니 앞에서 이야기한 강의 암초 등으로 무척 위험하다는 말이 있었다. 다음으로는 차를 타고 태국 훼이사이를 통해서 치앙마이로 가는 방법인데 루앙 프라방에서 오후에 출발하면 태국에서 오후에 도착한다고 했다. 가는 동안에는 배가 편할지 모르겠지만 힘든건 짧고 굵게 끝내자는 생각으로 그나마 24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차로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출발시간은 오후 해가 저물 무렵이므로 낮시간에는 마지막 루앙 프라방 구경에 나섰다.


루앙 프라방의 옛왕궁이자 국립 박물관



어느새 해가 기울고 여행사에서 에약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앞의 빡우동굴과 꽝시폭포 투어를 예약한 여행사로 일하는 젊은이가 무척 싹싹한데다 최신 승합차 사진을 보여주며 이 버스로 갈 것이니 편안하고 안전하게 갈 수 있다고 장담했었다. 하지만 여행사 승합차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그냥... 루앙 프라방의 시외버스 터미널이었다. 큰 차이는 아니더라도 웃돈을 주고 여행사를 통해 예약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생각하며 헛웃음을 짓고마는 정도지만 당시에는 무척 화가 났었다. 화가 난 이유는 얼마의 돈이 아깝다는 생각보다 라오스 사람에 대한 나 혼자 가졌던 신뢰가 깨졌다는 것이 컸다. 그 동안 만났던 라오스 사람들은 무뚝뚝하긴 해도 가격이나 약속을 어기는 일도 없었고, 인사(싸바이디)와 고마움(꼽짜이)에 대한 표현을 빠뜨리지 않는 속 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그렇다하더라도 모두가 그럴리는 없는거다. 그 친구는 잔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라오스에서는 조금 드문 타입이었을뿐이다. 모두가 친절할리도, 모두가 약삭빠를리도 없다. 어디선가 조금 불쾌한 일을 당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그 사람들에 대한 인상을 다 바꿀 필요는 없다. 그날 만났던 누군가가 그런 사람일뿐이니까.


하여튼, 라오스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서 새벽에 태국 국경 건너편에 여행자들을 내려준다. 출국 관리소가 문을 열기 전에 멍한 머리로 까끌한 입속에 다시 활동할 에너지를 채워넣어야 했다.


달디단 연유와 같이 주는 동남아식 커피


푸짐하고 저렴한 샌드위치


버스에서 내린 여행자들이 출입국 사무소가 문을 열 시간을 기다리며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다.


라오스쪽 출입국 사무소


자전거로 동남아를 여행하는 아저씨들이 먼저 강을 건넜다.



강 건너편은 태국 훼이사이


태국 출입국사무소를 통해 입국하고 나면 그 라오스 여행사와 연계된 태국 여행사에서 준비한 뚝뚝이나 썽태우를 타고 어디론가 가게된다.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면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자세히 설명해주지도 않았고 바로 출발하는 줄 알고 있었기에 어디로 가는지 무척 궁금했다. 도착한 곳은 치앙마이로 가는 버스가 준비되기 전에 한두시간 대기할 호텔급 숙소였는데 정원이 무척 잘 꾸며져 있었고, 자연 친화적인 약간은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아마도 이 호텔에서 치앙마이로 가는 사람들과 같이 출발하느라 대기시킨게 아닌가 싶다.

정원에 아직 덜 익은 망고가 탐스럽게 달려있다.



잘 꾸며진 정원 산책길




훼이사이를 출발한 버스는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렸다.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를 여행하면서 이렇게 도로 상태가 좋은 길을 달려본 기억이 없기에 인도차이나 반도의 국가들 중에서 태국의 경제 상황이 월등하게 낫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치앙마이로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여기서 재미난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한참을 봐야했는데 알고보니 캐슈넛이라는 견과류였다. 그동안 맥주 안주로 먹어봤음에도 최종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라 열매 상태의 캐슈넛은 처음이었다. 노랗고 빨간 동그란 버섯모양의 열매 꼭지에 캐슈넛이 달려 있었다. 이 꼭지를 따서 말리고 가공해서 우리가 먹는 캐슈넛이 되는 모양이었다. 호두나 땅콩처럼 열매 안쪽에 딱딱한 껍질에 쌓인 모양을 생각했는데 이렇게 귀여운, 팬시 상품처럼 생겼을 줄은 몰랐다. 이 휴게소 부근은 캐슈넛으로 유명한 곳인지 곳곳에서 캐슈넛을 말리고 있었고 광고판에는 캐슈넛을 선전하고 있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노랗고 빨간 부분은 캐슈애플이라고 하는데 그 부분도 식용으로 사용되는 것 같고, 특이하게도 씨가 열매 안쪽에 있는게 아니라 밖으로 노출된 채 열매 밑으로 자란다고 한다.


오후 시간이 한참 지나서 저녁이 되어갈 무렵에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치앙마이는 수백년 전에 세워진 정사각형 모양의 성곽 내부에 있는 구도심과 그 성곽 외부의 도시로 나뉜다. 버스는 성곽 외부의 게스트하우스들이 밀집된 곳에서 여행자들을 내려줬다. 그런데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문의하니 오늘 하루밖에 방이 없다고 한다. 그 먼 길을 달려와 피곤해 죽을 지경인데 다시 내일부터 묵을 방을 찾아야하게 되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열심히 방을 찾아서 구도심으로 들어가서 가까스로 방을 구하고 골목길에 있는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피곤해서 입맛이 없을만도 하지만 이 태국 북부지방의 음식들은 내 입맛에 너무 잘 들어맞았다. 저렴한 음식을 갖가지 시켜놓고 먹다보면 어느새 기분도 좋아지고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여행이 즐거우려면 체력도 필요하고 못 본 것에 대한 호기심, 현지인이나 다른 여행자들과 쉽게 친해지는 친밀한 성격도 필요하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가리지 않는 식성이다.


동남아의 푸슬푸슬하고 길쭉한 밥맛이 입맛에 맞지 않는 여행자라 스팀 라이스말고 스티키 라이스를 달라고 하면 위 사진처럼 찹쌀로 지은 밥을 준다. 이 밥은 찰기가 있어 쫄깃하고 씹으면 단맛이 있어 스팀 라이스보다 훨씬 먹기가 편하다.


매콤한 고춧가루가 들어있는 소스에 직화로 구운 바베큐가 정말 맛있었다. 나중에 여러 곳에서 팔고 있는 걸 보니 태국 북부지방의 대표적인 음식인가 싶다. 위의 것은 아니지만 태어나서 최고 맛있었던 바베큐가 치앙마이 시장에서 사먹었던 바베큐였다.


힘든 여정이지만 무사히 동남아에서의 마지막 여행지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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