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에는 설날이 세 번이라고 한다. 태양력을 기준으로 해가 바뀌는 1월 1일과 불교에서 정하는 설날, 그리고 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시작되는 날(쏭끄란)이다. 처음에 이 쏭끄란은 건기 동안에 불상에 쌓인 먼지를 제거하고 서로가 건기를 무사히 지난 것을 기념하며 물을 부어주는 정화의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타이를 여행하기 전에도 쏭끄란이라는 물 축제가 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이 쏭끄란이 이렇게 큰 의미가 있었는지, 그리고 이들이 이렇게나 성대하게 이 축제를 즐기는 줄은 여기서 겪어보고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았던 뜻밖의 축제가 너무도 즐거웠다.


무엇보다도 라오스에서 아이들이 갑자기 어깨에 물을 부어주고는 수줍게 웃던 이유가, 어제 사원에서 승려들이 준비하던 행사가,  무엇이었는지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침부터 거하게 먹고 시작했다. 흡사 갈비탕 맛이 나는 고기가 잔뜩 들어간 탕에 커다란 생선 한마리와 타이를 여행하며 반해버린 쏨땀까지... 이렇게 먹고 싶은 타이 음식을 잔뜩 시켜도 몇 천원 되지 않는 가격이라 자꾸 과식하게 되는게  유일한 문제였다.


시원한 얼음에 채운 생과일주스조차도 천원 안팎이었는데 이때는 동남아 물가에 길들여져서 이 주스가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훌륭한 타이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과일주스로 디저트까지 마신 후에 어제 다 들르지 못한 사원 구경에 나섰다.





성미급한 꼬마들은 집앞에서 이미 축제를 시작했다.


치앙마이 성곽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에는 성미급한 어른들이 뛰어들었다.




도심 외곽의 사원 구경을 마치고 다시 도심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 무작정 들어간 치앙마이 대학교 미술관.


축제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물총이나 자그만 양동이를 들고 지나가고 있다. 가게 앞에서는 아예 호스를 끌어다 놓고 지나가는 차에 물을 뿌린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인줄 알았다. 썽태우를 타고 숙소가 있는 구도심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물벼락이 쏟아졌다. 하루종일 다닌 여파로 풀어져 있던 몸에 차가운 물을 맞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타이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지나가는 차에 물을 뿌린다. 더군다나 유리창도 문도 없이 뚫린 썽태우는 아주 좋은 표적이 되어서 심지어는 쫓아오면서 물을 뿌려댔다. 가만히 앉아서 비무장인 상태라 아무런 응사도 하지못한채 몸은 이미 완전히 젖어버렸다.



성곽이 있는 구도심에 들어와보니 이곳은 이미 난리가 났다. 내가 생각했던 쏭끄란이 아니었다. 훨씬 더 격렬하고 열정적이고 유머러스한... 남녀노소가 모두 즐기는, 그야말로 축제였다. 이렇게 한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물총싸움을 하면서 몇 날을 즐기는 이런 축제가 또 있을까?


상점들은 앞에 커다란 물통을 가져다 놓고 사람들이 공짜로 물총에 물을 담을 수 있게 해줬고 사람들은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로 물을 쏘아대며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즐기다보니 한해 중에서 가장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기간이라고 했지만 정작 내가 있던 동안에는 사고가 발생하는걸 한번도 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 물놀이에만 집중했으며 밤이 되면 물놀이를 중지하고 술을 마시거나 낮동안 노느라 지친 몸을 쉬었다. 





전 세계의 물총 종류는 다 모여있는 듯하다. 이렇게나 다양한 물총이 있는 줄 미쳐 몰랐다.








구도심 밖으로 픽업트럭에 물을 가득 채운 드럼통을 싣고 천천히 지나가면 길에 늘어선 사람들은 그 차에 물을 쏘아대는데 이 날 최고의 인기인은 군인복장을 제대로 차려입고 물총을 진지한 표정으로 쏘던 사람이었다. 가장 집중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물총 세례를 받고는 장렬히 전사했다. 온 도시가 물에 흠뻑 젖었고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표정이었다.


나는 이 날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이나 하자고 나갔다가 하루종일 물세례를 받았다. 내일은 나도 물총을 사서 복수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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