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에서 로도스로 갈 때 탓던 배는 내가 여행 중에서 탓던 어떤 배보다 크고 훌륭했다. 크루즈 여행을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의 에게해를 운행하는 이 블루스타 페리보다 나은 페리를 타기도 어려울 것 같다. 크루즈선 못지않은 크기에 수많은 차와 승객들을 싣고 에게해에 흩어져있는 그리스의 섬 이곳저곳을 다닌다. 다만, 그리스의 페리라도 다 같은 크기와 안락함을 주진 않는다.


아쉽게도 이 크고 훌륭한 페리를 찍은 사진이 없다. 페리 안의 까페에서 찍은 사진 한장 뿐이다.

코스와 로도스는 가깝기 때문에 비싼 좌석을 예매할 필요가 없다. 가장 저렴한 좌석을 끊고는 페리 안에 있는 여러 개의 까페 중에서 적당히 좋은 자리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다보면 어느 새 도착한다. 


로도스에 도착해보니 항구가 크고 그에 걸맞는 커다란 배들이 여러 척 정박해 있었다. 항구를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가야했는데 친절한 그리스 청년의 도움으로 겨우 버스를 타고 시내에 들어왔다.


로도스 시내는 여느 유럽의 다른 도시와 다를 것이 없다. 기럭지가 훌륭한 남녀들이 저마다 멋들어진 썬글라스를 끼고 다닌다. 이 때는 그리스와 스페인의 재정위기로 국제 사회가 시끄러운 시기였는데 여기는 그런 영향이 전혀 없는 듯 보였다. 사실 내가 그리스를 방문한 곳 중에서 아테네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국가의 재정위기가 국민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실제로는 이 곳에선 그다지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도스에서 예약한 숙소는 인터넷에서 캡쳐해서 스마트폰에 저장한 지도로는 찾기가 어려웠다. 한참 시내를 헤매고 다니녔다. 어찌어찌 물어물어 찾고보니 시내 한복판에서 조금 벗어난(다행스럽게도) 곳에 있는 깔끔하고 깨끗한 곳이었다. 더구나 생각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했고 방에는 부엌이 따로 갖춰진 콘도형 숙소였다. 6월부터는 로도스 관광의 성수기라 내가 묵었던 5월 가격에서 몇 배는 더 비싸진다. 내가 절대 지불할 수 없는 비용임에도 2,3주의 차이로 이런 행운이 가능했다.


로도스의 거상이 서 있었다는 로도스의 구항. 신항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한참 가야한다.


로도스에 오긴 했지만 로도스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책에서 본 것밖에 없었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뒤 성요한기사단의 본거지였으며, 여기서 오스만 투르크의 침입을 막았던 기독교 세력의 최전선이었던 곳으로 알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한 이틀 정도 둘러보고 산토리니나 크레타 섬으로 가는 페리를 탈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앞서 훌륭한 숙소를 싼 가격에 잡을 수 있었던게 비수기여서 그랬던 것처럼, 비수기였기 때문에 페리가 자주 다니지 않는 것이었다. 가장 빨리 출발하는 페리가 5일 후에나 온다고 했다. 


난감하고 당황스러웠다. 계획도 없는데 5일이나 이 곳에서 뭘해야 할지. 도리가 없으니 차츰 생각해보기로 하고 일단 구시가로 향했다. 포기가 빠른 성격이 어런 점에서는 꽤나 도움이 된다. 안되는건 안되는거니까 고민해봐야 의미가 없다.



오래전 마차가 드나들었을 성채의 입구는 구시가와 신시가를 연결하는 도로가 되어 차들이 다니고 있다.








성요한기사단의 성채는 생각보다 훨씬 컸고, 그 성채 안에는 중세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그 유적에서 현대의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로도스 후에도 중세의 성채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들은 종종 있었다. 이탈리아의 아시시, 스페인의 똘레도 같은 곳들은 구시가의 대부분이 관광지거나 관광지와 관련된 기념품점, 레스토랑, 숙박업소 등인데 반해서 이 곳은 수백년 동안 그냥 살아오고 있는 듯했다.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더구나 에게해의 바다는 놀랍도록 깨끗하고 맑았다. 어쩌면 페리가 없어서 억지로 있어야 하는 5일이 나에게는 행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로도스는 나에게 행운의 장소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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