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돌아다닌 로도스의 구시가는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집과 상점, 골목들 위주였다면 오늘은 로도스의 역사와 관련된 곳들을 중심으로 가보기로 했다.


로도스 성 내부에서 성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입구


기사 단장의 궁전이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기사의 길은 당시 기사들의 주거지 혹은 사무실이 있던 곳이다. 중세의 서유럽의 귀족 자제들 중에 첫째는 가문의 작위와 영지를 이어받지만 그 아래로는 받을 재산이나 영지가 없기 때문에 기사로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 기사들은 국가별로 무리지어 공관을 두고 있었으며 기사마다 시종이나 마부들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기사들의 수보다 몇 배나 많은 사람들이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종교적인 신념이나 기사로서의 영광과 상관없이 주인을 따라 머나먼 곳까지 올 수 밖에 없었을 시종이나 마부들이 얼마나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했을지 불현듯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자갈로 덮여있는 기사의 길. 양쪽으로 기사들의 공관이 있는데 건물벽마다 그 기사들을 나타내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로도스 성 안에 있는 오래된 길들은 대부분 자갈들이 박혀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마차들이, 사람들이 다녔는지 돌들의 윗부분이 닳고 닳아서 평평해져 있었다.



기사의 거리에서 본 양쪽 눈의 색깔이 다른 고양이


눈동자의 색이 달라서인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정작 고양이는 귀찮은 표정이다.

저 귀찮은 듯한 표정을 보니 괜히 사진 찍은게 미안해졌다.


천장의 벽돌과 흙이 일부 무너져 나무로 만든 바닥이 드러나있지만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다.



기사의 거리에서 나와 걷다보니 바다쪽을 지키는 망루가 있는 성벽까지 도착했다.




성벽 안쪽에서 바다쪽을 감시하도록 나 있는 구멍에 머리를 넣고 바라보자 환상적인 색깔의 바다가 바로 앞에 보였다.


거대한 크루즈 앞쪽으로 몇 척의 조그만 요트가 떠 있고, 누군가는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척의 거대한 크루즈와 페리가 정박하고 수많은 요트들이 다니는 항구의 바다가 이렇게 환상적인 물빛을 가질 수 있다니. 그 뒤로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유명한 해변에서도 이렇게 환상적인 바다색은 볼 수 없었다. 이집트의 후루가다나 멕시코의 카리브해에 가서야 다시 볼 수 있었던 그런 바다였다.





멀리 로도스의 거상이 있었다는 옛날 항구이자 지금은 요트 선착장이 보인다.


예전  로도스의 거상이 있었던 곳으로 가는 중에 뜻밖의 재밌는 녀석을 만났다. 이녀석은 너무 어려서인지 사람을 겁낼 줄 모르고 가까이와서 애교를 부렸다. 물론 목적은 먹을 수 있는 뭔가를 달라는 것이겠지만. 비교적 마른 몸이 안타깝기도했고,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애교 때문에 숙소에서 점심으로 만들어온 샌드위치를 꺼내 햄을 잘라 먹였다. 햄을 다 빼서 먹였는데도 조르는 통에 샌드위치를 갈라서 더 먹을게 없음을 보여준 후에야 돌려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차츰차츰 고양이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로도스의 거상이 있었다는 장소에 도착했다. 거상의 두 발이 위치했다는 곳에 지금은 양쪽에 암사슴과 숫사슴의 동상이 서 있다. 요트가 드나드는 선착장이라 물고기가 살지 않을 것 같은데 낚시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여행자에게는 역사적인 장소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낚시터로 더 의미있는 것 같다.




물결이 햇빛에 반사되어 격자무늬로 빛났다. 항구의 바닷물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맑았다.



이날 숙소에서 나올때는 성안에 있는 기사의 거리와 기사 단장의 궁전, 박물관들을 돌아보는게 오늘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바다에 접한 성벽에서 바다를 보고는 나머지 일정은 내일로 미루고 바다만 실컷 바라보다 왔다. 어렸을 때부터 바닷가에 살면서 바다를 봐 왔기에 산보다는 바다를 훨씬 좋아하긴 하지만 이 곳에서 이런 바다를 보게 된 것은 너무도 좋았다. 여행을 하면서 여러 곳의 좋은 바다를 많이 봤지만 내 최고의 바다는 로도스에 있다.


쓰고보니 온통 고양이와 바다 이야기뿐이다. 사실 기사의 거리니, 기사의 공관이니...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훌륭한 예술품이나 역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순간순간 오감을 통해 전해지던 느낌만 기억에 남았다. 나에겐 뜨거운 태양, 짙푸른 하늘과 바다, 향긋한 바다내음과 파도소리가 버무려져서 로도스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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