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의 마지막 여정은 바하리야 사막 투어였다. 카이로에서 5시간쯤 버스를 타고 조그만 마을에서 내리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투어를 할 수 있다. 이 투어는 여행중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 투어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서 그 때의 이집트 가이드와 결혼한 한국인 여자분과 가이드였던 그 남편분이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가이드를 직접하지는 않고 관리를 주로 하시지만 한국인 여행자에게 잊지못할 라면과 카레등을 만들어주신다.
카이로 버스터미널을 출발하기 직전 버스 내부. 이 날은 카이로에서 바하리야로 가는 사람이 적어서 충분히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버스는 한번 휴게소에서 쉬는데 이 휴게소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었다. 뜨거운 모래 사막 한가운데 있는 휴게소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찍은 사진이 없어서 아쉽다.
바하리야에 도착해서 투어를 운영하는 부부의 집 거실에서 쉬다가 끓여주는 라면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오후에 사륜구동 SUV차를 타고 출발했다. 바하리야 사막은 이집트의 국립공원인 듯한데 정확한 명칭을 잘 모르겠다. 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한참 가다보면 사막이 검은색 돌로 덮여 있어서 '흑사막'이라고 불리는 곳에 도착한다.
이 곳에 있는 돌들은 철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검은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돌 두개를 서로 부딪혀보면 금속이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이렇게 잘 정돈된 길을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길이 없는 사막을 가로질러 다닌다. 모래 언덕을 차로 넘을 때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바하리야에는 사진처럼 지금은 제대로 물이 안나오는 버려진 듯한 곳도 있고, 맑은 물이 샘처럼 솟는 곳, 뜨거운 온천물이 나오는 곳 등 오아시스가 많았다. 그리고 이 물들로 농작물을 키우거나 가축을 키우고 있었다. 오아시스 주변이어서 그랬는지 이 뜨겁고 거친 모래사막에 새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눈에 띄진 않지만 사막에도 다양하고 많은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백사막'이었다. 흰 눈이 쌓인 듯하지만 눈이 아니라 흰 석회석이다. 어째서 여기 석회 성분들이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사막도 참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저녁을 먹고 텐트 안에서 야영을 했다.
석회암 언덕 위로 달이 떠오르고 있다.
바하리야에서 꼭 하고 싶었던 일은 불빛이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별을 보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빛공해로 제대로 별이 보이지 않는 곳이 많지만 사방이 어두운 사막에서 최고의 별무리를 만날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잔뜩하고 있었다. 하지만 왠걸, 이 날은 달빛이 최고로 밝은 보름달이었고 빛이 없는 사막에서는 주위가 어스름하게 보일정도로 달빛이 밝았다. 최고의 별무리를 보는 것은 아쉽게 다음으로 미뤄야했지만 최고로 밝은 달은 볼 수 있었다.
바하리야에서 사막여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다녀온 여행자들의 후기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녁시간에 사막여우를 볼 수 있을까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어느새 사막여우가 주위에 다가와 있었다. 사람들이 만든 음식냄새를 맡고 찾아온 듯싶었다.
이날 후회하는 것은 사막여우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닭고기를 던져준 것이었다. 야생동물에게는 먹이를 줘선 안되는데 아무 생각없이 던져주고는 나중에 후회했다. 이들이 더 건강하게 오랫동안 살아남으려면 인간의 손에 길들여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음식냄새를 맡고 주위를 둘러싼 사막여우들을 보니 이미 어느 정도 길들여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극도로 예민한 동물답게 절대로 사람 근처에 오거나 하진 않았다.
사진을 좀 남겨놓고 싶었는데 하도 예민한 동물이라 근처에 오거나 밝은 곳으로 나오지 않았다. 내 똑딱이 카메라로는 죄다 흔들린 사진밖에 찍을 수 없었는데 그나마 한두장 건질 수 있었다.
한창 저녁을 먹고 있는데 투어를 운영하는 이집트인 남편분이 가이드에게 전화를 했다. 가이드말은 작은 모래폭풍이 올거라고 했다. 부랴부랴 저녁을 먹고 치우고 나자 멀리서 거대한 뭔가가 다가오는게 달빛에 보였다. 급히 텐트에 들어갔지만 미세한 모래 입자들이 텐트틈으로 수없이 밀려들었다. 입을 다물고 있어도 입안에 모래가 씹히고 콧속으로도 모래가 들어갔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지경이었다. 텐트를 작은 석회암 언덕 아래에 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텐트안은 덥고 모래에 숨이 막히고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이렇게 비몽사몽 몇 시간을 보내고 나자 어느새 바람이 그치고 주위가 조용해졌다. 슬그머니 텐트밖으로 머리를 내밀어보니 달이 제법 지평선으로 기울어 달빛이 희미해지고 그틈으로 수많은 별들이 나와 있었다. 기대한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볼만했다. 갑갑한 텐트에서 나와 침낭만 깔고 석회암 바위 위에 누워서 별들을 봤다. 주위는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절대적인 고요함만 가득했다. 신기한 기분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직은 뜨겁지 않은 태양이 막 떠올랐고 주위는 사막여우의 발자국으로 가득했다. 녀석들은 모래폭풍이 지나간 후에도 먹이를 찾아 한참을 돌아다녔나보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바하리야에서 가장 유명한 버섯바위와 암 바위를 보는 것으로 둘째날을 시작했다. 모양이 제법 흡사하긴 한데 괴레메에서 희안하게 생긴 거대한 바위들을 많이 봐서인지 좀 시큰둥했다.
앞니가 갈라진 이집트인 가이드. 꽤나 쾌활하고 맡은 일도 열심히 하지만 가이드 중에 여자친구와 통화는 좀 줄이게나.
근처의 고운 모래언덕에서 샌드보딩을 했다. 모래가 너무 고와서 발이 푹푹 빠지기 때문에 별로 높지 않은 언덕인데도 오르기가 무척 힘들었다. 한 두어번 타면 힘들어서 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높지 않기 때문에 타는 재미도 썩 좋진 않았다. 다만 처음 본 고운 모래 사막이 신기할 다름이다. 샌드보딩이라면 몇 달 뒤에 경험한 페루 이까사막에서의 샌드보딩이 훌륭했었다.
모래 언덕에서 내려다본 바하이야 사막
오아시스 주변에서는 이렇게 식물들도 잘 자란다. 사막치고는 물이 꽤 풍부한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갔었던 소금호수. 이때는 바다가 융기해서 만들어졌을 소금호수가 아주 신기했었다. 그 뒤로 여행하다보니 세계에는 소금호수가 드물지 않게 있더라...
바하리야 투어를 마치고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서 온몸에 묻은 모래를 깨끗하게 씻어내면 여행자에게 라면보다 먹기 힘든 카레를 커다란 국수 그릇에 가득 담아주신다. 라면과 카레만으로도 바하리야에 찾아 온 보람이 있었다.
돌아가는 버스는 무척, 그때까지 여행했던 어떤 버스보다 힘들었다. 첫째로는 올때는 비었던 버스가 이집트인들로 가득가득 찼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도착할 때까지 5시간 동안 한순간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엉덩이에 내 좌석의 반을 내준채 더 내어주지 않기 위해 도착하는 순간까지 침범하는 엉덩이를 어깨로 밀어내야한다. 마지막으로 버스의 에어콘은 많은 사람들로 전혀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운좋게 버스 좌석에 앉을 수 있다면 반드시 창가쪽에 앉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덜 시끄럽고 덜 엉덩이를 들이미는 쪽으로...
카이로에 도착하니 온 몸의 힘이 빠졌다. 게다가 일행 두 명을 터미널에 내려주고 숙소로 가기로 했던 택시기사는 그 요금은 여기까지니 숙소까지는 돈을 더 내야한다고 우겼다. 갑자기 화가 치솟아 택시기사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사람들이 간섭하기 시작했다. 손짓발짓으로 설명하니 다들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기사는 창피한건지 화가 난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숙소까지 데려다줬다.
이집트 여행은 피곤하다. 선조가 남긴 최고의 유적들과 볼거리가 많은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여행자들을 속여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려는 사람들이 여행자들을 피곤하게 한다. 분명 매력적인 곳이지만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만한 곳이다.
여행을 마친 지금까지 후루가다를 제외하고는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행 당시에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기억나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는가하면, 어떤 곳은 여행중에는 좋았지만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도 있다. 나에게 이집트는 후자에 가깝다. 하루를 카이로에서 쉰 뒤에 아테네로 돌아갔다.
* 카이로에서 먹었던 최고의 음식은 'EL ABD'의 샤베트와 거기서 파는 빵들이었다. 이집트 음식을 별로 색다를 것도 맛있는 것도 없었지만 이것들은 다른 곳에서 흔히 먹기 힘들만큼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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