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아테네로 돌아오며 숙소를 아테네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으로 예약했다. 지난번 산토리니에서 밤늦게 아테네에서 도착했을 때, 아테네 여행의 중심이 되는 그 거리는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불이 꺼져있어 맘놓고 돌아다니기에 위험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중심가로 가려면 조금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지만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레스토랑이나 가게들이 있어서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가게들과는 다른 재미가 있다. 짧은 기간이라도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살짝 들여다보고싶은 여행자라면 반드시 숙소가 관광지 주변에 있을 필요는 없다. 게다가 중심가에 비해 같은 가격이라도 숙소의 질도 높았다.
다음날도 아테네는 쨍한 하늘이 눈부실 정도로 맑았다. 지중해 연안이 대부분 그렇듯이 봄부터 이미 무척 덥고 건조한 날들이 계속된다. 6월 초였지만 아테네의 한낮 기온은 벌써 30도를 훨씬 넘어가고 있었다. 더운 날씨지만 아테네에 머무르는 짧은 기간동안 그 유명한 아크로폴리스는 봐야겠기에 일찍부터 숙소를 나섰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초입에 고대 그리스의 대극장이 있다. 관객들의 좌석과 무대 일부만을 고쳐서 아직도 오페라나 클래식 연주회가 열린다. 내가 방문한 이 날도 대규모 오페라 공연을 앞두고 무대장치를 설치하는데 분주했다. 밤에 이곳에서 보는 공연은 정말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시기가 맞아 그런 기회가 있다면 꼭 보고싶다.
아크로폴리스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는 벌써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언덕 정상에 올라서니 아테네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도시 가운데에 우뚝 솟은 이 언덕에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에게 바치는 신전을 짓고 도시의 중심으로 삼은 것은 당연한 듯하다. 개인적으로 높은 건물들이 삐죽하게 솟아있지 않은 유럽의 이런 도시 풍경이 좋다.
드디어 파르테논 신전 앞에 섰다. 역시 아크로폴리스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이라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기원전 5세기에 건설된 이 신전은 도리스식 양식의 걸작이라고 한다. 건축 양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지금은 기둥과 지붕의 일부만 남아있음에도 확실히 거대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특히나 유명한 부분은 상부 외벽을 둘러싸고 있는 부조작품이다. 이 부조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을 묘사한 것인데 진품은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흩어져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일본이나 프랑스등과 문화재 반환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데 강대국에 의한 문화재 찬탈은 정말 후안무치한 일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런 문화재를 돌려주는 것에 대해서 법으로 막고 있어서 실제로 반환하더라도 장기임대 형식을 띈다고 한다.
복원을 시작한지 수십년 이상 되었을텐데 아직도 건물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복원하고 있다. 유럽을 몇 달 여행하면서 많은 곳에서 유물이나 유적을 복원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느리고 지루한 작업일텐데 사람들의 손으로 꼼꼼하게 작업하고 있었다. 어떤 부분이 현재 기술로 복원이 불가능하다면 가능한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아예 복원하지 않고 보전한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무척 시원했다. 멀리 제우스 신전이 보였다.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지만 아테네에서 최고의 신은 아테나일뿐인가보다. 제우스 신전이 무척 초라하게 보인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또하나의 걸작인 건축물 에레크테이온이다. 특히나 기둥을 대신하고 있는 6개의 처녀상 조각이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여기서는 멀리서 볼 수 밖에 없었지만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는 이 처녀상에 대한 전시실을 따로 두고 있을 정도였다.
나로서는 건축학적 가치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건축물 구조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모양이긴 하다.
언덕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아직 복구를 마치지 못한 작은 규모의 극장이 하나 더 있었다. 완벽하게 복구된 모습보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이런 모습이 왠지 더 마음에 와닿았다.
극장의 VIP석인가보다.
고대의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국가의 중심이자 외침으로부터 성벽의 역할도 했었던 아크로폴리스
6월초였지만 아테네의 날씨는 무척 더웠다. 게다가 그늘이라고는 없는 아크로폴리스를 오르락내리락 했더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듯한 나무밑 벤치에서 음료수를 들이키며 한참을 쉬었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2007년 다시 건설되었는데 멀리서 본 건물 모양도 멋지지만 고대 유적위에 유적을 파손하지 않고 만든 생각이 기막혔다. 어떤 부분은 바닥을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서 유적을 돌아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한 수많은 유적들을 전시하고 있지만 단순히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시각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관람객들이 지겹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박물관 최고의 유물은 파르테논 신전과 관련된 유물들이다. 박물관의 가장 위, 마지막 전시실에 실제 신전의 크기와 동일한 공간에서 전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전 상판 4면은 작게 축소하여 원래 모습을 보여줬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나 그리스 신화에 관심있는 여행자라면 박물관을 돌아보는데 무척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날에는 그리스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갔었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의 유물들은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지만 그리스 전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이 곳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특히 해저에서 발굴된, 우리에게도 유명한 조각상들이 매우 많다. 분명 사진을 제법 찍었던 것 같은데 관리를 잘못해서 지워져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다.
아테네에서는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처음에는 산토리니에서 이집트로 가기위해 잠시 들렀던 것으로, 이번에는 이집트에서 돌아와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 2박 3일을 머물렀을 뿐이다. 아테네뿐만 아니라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여러 도시에는 고대 그리스의 유적들이 산재해 있고 볼 거리들도 많다고 하니 신화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여행자라면 다른 곳보다 그리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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