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에서 로마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물론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때로는 아테네에서 이탈리아 바리에 가는 페리를 이용한 후, 육로로 가는 여행자들도 있다. 하지만 느리게 간다고 해서 반드시 저렴하다는 보장은 없다. 유럽은 저가 항공사들이 많고 우리나라의 저가항공과는 다르게 확실히 저가이기 때문에 날짜만 잘 맞추면 100유로 정도에 서유럽의 대부분을 갈 수 있다. 나도 아테네에서 로마로 가는 표를 저가항공사 이지젯에서 저렴하게 예매한 덕에 편안하게 로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로마의 날씨는 아테네보다는 선선했다. 오후 늦게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으로 근처 중국집에서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여행은 다음날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참고로 여행중 한국음식이 먹고 싶지만 찾을 수 없을 때는 조금 아쉽더라도 중국음식으로 대신할 수 있다. 전세계에 흩어져서 살아가는 엄청난 수의 중국 사람들 덕에 대부분의 도시에서 중국 음식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튿날 여행은 산탄젤로 성에서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겉모습만 둘러본 후에 로마에서 시간이 남는다면 다시 오기로 했다. 산탄젤로 성에서 나와 걷다보니 유명한 트레비 분수가 나왔다.
로마는 천년 이상 정치적, 종교적 세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볼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 볼 것들이 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왠만한 것들은 걸어다니며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걷다보면 저녁 무렵에는 파김치가 되기 쉽상이다. 자신의 체력에 맞게 쉬어가며 다니는게 오히려 더 많이 보고, 제대로 볼 수 있는 방법이다.
고둥을 불기 위해 빵빵하게 부풀은 트리톤의 볼이 사실적이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더욱 유명해져버린 이 분수는 분수라기보다는 거대한 건축물 혹은 조각 작품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이 분수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전세계에서 찾은 관광객들로 밤낮없이 붐비는데 다들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있다가 소매치기 당하기 쉽기 때문에 소매치기가 많기로 유명한 로마에서도 특히나 조심해야 할 곳이다. 트리톤들이 끄는 마차에 올라선 넵튠의 당당한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트레비 분수에서 조금만 걷다보면 스페인 광장이 나온다. 이 곳도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유명해진 곳이다. 사실 이 곳은 그리 유명할 것도 없다. 물론 베르니니가 만들었다는 분수가 있긴 하지만 로마에 산재해 있는 베르니니의 다른 걸작들에 비해서는 초라하게 느껴진다. 스페인 광장으로 이름 붙여진 이유도 17세기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기 때문이라니... 다만 이 주변에는 명품숍이 즐비해 있기 때문에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 곳을 방문할 때는 무척 조심해야 한다.
스페인 광장의 계단 꼭대기에 위치한 교회
전에 왔을 때는 보수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는데...
다른 유명한 교회에 비해 소박한 꾸밈과 작은 규모가 마음에 든다.
베르니니가 만든 스페인 광장의 분수
수많은 사람들이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되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유럽에서는 개를 데리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인기있는 개들이 리트리버 종이었다.
이 녀석들은 온순하고 착해서 같이 다니기도 쉽고 큰 덩치지만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귀여움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 광장에서 사람들을 헤치고 명품숍을 지나 판테온으로 나왔다. 로마에서 가장 독특한 건물인 판테온은 예전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하지 않을 때는 신전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모양 자체가 특이해서 뒷쪽은 둥근 원통형 건물에 앞쪽은 전형적인 신전의 입구 모습을 하고 있으며 원통형 건물의 지붕은 거대한 돔으로 돔 가운데에는 구멍이 뚫려있다.
신전으로 만들어진 이 건물이 파괴되지 않고 남은 것은 성당으로 용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내부에는 이탈리아의 유명인들 라파엘로와 같은 예술가와 이탈리아의 왕들의 무덤이 있다. 이 곳 역시 무척이나 유명한 곳이라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성당과 무덤을 겸하고 있는 판테온의 내부
판테온 내부의 거대한 돔 천장에는 구멍이 뚫려있다. 지금은 건축기술의 발달로 이보다 더 큰 돔들이 많지만 판테온이 지어질 당시의 기술로는 획기적이었다고 한다. 돔을 만든 방법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들도 많은데, 동전을 섞은 흙을 쌓고 그 위에 돔을 만든 후에 사람들에게 흙을 파내고 동전을 갖게 했다고도 한다.
라파엘로의 무덤 앞에는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을 찍기도 힘들었다.
판테온에서 조금 걸어나오면 나보나 광장이 나온다. 나보나 광장은 길쭉한 모양인데 그 이유가 고대 로마시절에는 전차 경기장으로 사용된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광장 주변으로는 많은 까페들이 있고, 거리의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그린 그림을 팔고 있다.
나보나 광장이 더욱 유명해진 이유는 베르니니가 만든 분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보나 광장은 밤에 더욱 운치있는데 며칠 후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다가 복잡한 로마의 골목길 탓에 우연히 나보나 광장을 지나게 되었다. 물론 어두워서 분수의 조각상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진 않지만 훨씬 분위기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오늘 돌아다닌 곳곳에서 베르니니의 분수나 조각상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실제 로마는 베르니니의 도시라고 할 만큼 베르니니가 설계하고 만든 건축물, 분수, 조각들이 수없이 많다. 사실 베르니니는 조각가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워낙 다재다능한 능력을 지녔기에 조각가로서보다 교황의 명에 의해 로마 곳곳에 건축물들을 만들고 도시를 설계했다고 한다. 베르니니의 조각가로서의 명성은 보르게세 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몇몇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작품들은 그가 20대에 조각한 것으로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올만큼 생생하다. 미켈란젤로의 조각보다 나에게는 보르게세 미술관에 전시된 베르니니의 조각들이 더욱 마음 깊이 남아 있다.
하루종일 걷고나서 숙소로 돌아가다 다리 위에서 본 테베레 강, 멀리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 보인다.
로마는 두 번째 방문이었고 오늘 갔던 곳들도 이전에 가봤던 곳이었지만 다시 와도 로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유럽을 여행하려면 로마는 가장 나중에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로마를 먼저 보게되면 다른 곳들이 시시해진다는 말이다. 물론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유럽의 역사나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이 말에 찬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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