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번 여행중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이 몇가지 있었다.

이집트 홍해에서 스쿠바 다이빙 배우기, 남미 파타고니아에서 트래킹하기,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보기 등등.

그 중 한가지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를 여러편 보면서, 무엇 때문에 이 길에 전세계의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라는 말은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스페인어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특정한 루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은 프랑스의 '생 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해서 스페인의 북서쪽의 도시 '산티아고'까지 약 800km의 거리를 말한다.

(이 길에서 만난 프랑스인 할아버지는 프랑스 남부 자신의 집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까지 600km도 더 남은 시점에

 이미 40여일째 800km 넘게 걷는 중이라고 하셨다.)

이 길이 유명하게 된 것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성 야고보의 무덤과 그와 연관된 전설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스페인의 '레콩키스타' 운동, 교황이 산티아고를 성지로 지정(목적이 무엇이었건 간에)하게 된 것, 유명한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 자신이 산티아고 순레길을 걸었던 경험을 담은 책 '순례자' 등등 많은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길에 대해서는 다녀오신 많은 분들의 책이나 블로그에서 상세한 설명을 해두셨기 때문에 '맛'만 본 내가 어설프게

설명을 하기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스페인에 도착한 시점은 유럽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이 약 한달정도 남았을 때였다.(우리나라 국민들은 EU국가

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으나 90일의 체류일을 넘길 수 없다. 그 이상 체류하기 위해서는 일단 EU국가가 아닌 나라

출국 후 재입국해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데만 한달이 넘게 걸리는데 남은 시간을 모두 이 길에 투자하려니 스페인에는 볼거리가

너무도 많았고, EU국가가 아닌 나라로 출국 후 재입국하자니 비용과 시간이 아까웠다. 게다가 남미라는 미지의 대륙

의 유혹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맛'만 보았지만, 순례길을 마친 후에도 그 맛에 중독되었고 언젠가는 다시 맛을 

보리라는 생각을 여행내내 하게 되었다.


위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순례길은 어디에서 시작해도 상관이 없다. 순례한 거리가 도보로 100km 이상이거나 

말이나 자전거를 이용하여 200km가 넘었다는 증거가 있으면 산티아고에 있는 순례자 사무실에서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실제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내가 순례길을 시작한 지점은 프랑스에서 시작한 순례자들이 피레네산맥을 넘은 후 만나는 첫번째 큰 도시인

팜플로나이다. 팜플로나는 헤밍웨이가 오랫동안 머물며 소설을 썼던 곳이며, 그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 오른다'에서

산 페르민 축제가 등장하여 유명해진 곳이다.

산 페르민 축제는 골목길에 소들을 풀어놓고 그 앞을 사람들이 뛰어가는 것으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TV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진은 팜플로나 시청사이며 여기서 산 페르민 축제가 시작된다고 한다.]


순례길에서 숙박은 알베르게에서 하는데, 수백년이 넘은 알베르게에서부터 현대적인 시설의 대규모 알베르게,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알베르게까지 다양하다.

알베르게에서는 크레덴시알(순례자용 여권)도 발급 받을 수 있다. 순례자는 이 크레덴시알에 묵었던 알베르게의

도장을 찍음으로써 이곳을 지나왔다는 증거를 남긴다.

[첫번째 숙소였던 팜플로나의 알베르게. 순레길을 시작하던 날 새벽.]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음으로써 순례자는 여행으로는 볼 수 없는 스페인의 모습을 속속들이 보고 느낄 수 있다.

순례길 800km에는 스페인의 산과 숲, 들판, 도시, 조그마한 마을까지 포함한다. 여기서 스페인의 자연을 보고, 사람들

을 만나고, 순례자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받으며 한달이 넘는 시간을 걷게 되는 것이다.


스페인의 여름은 혹독하다. 여름에 스페인을 방문했던 여행자라면 작열하는 태양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알게될 것이다. 내가 순례길을 걸었을 때, 한낮의 온도는 대개 35도를 넘었다. 기온도 기온이지만 내리쬐는 햇볕은

일찌기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오전 6시쯤 걷기 시작하고, 12시나 늦어도 오후 2시전에 걸음을 멈춘다. 

하룻동안 좀 더 먼길을 가려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한낮에는 나무 그늘이나 건물 그늘에 누워 낮잠을 자거나 쉰다.

나는 처음 이틀동안 40km를 조금 넘게 걸은 후, 자신감이 붙은터라 사흘째 오후 2시까지 32km를 걸었다가 그 뒤로

내내 후회해야했고, 자신감이 아니라 만용이었음을 깨달았다.

썬블록을 발랐지만 어깨와 다리는 벌겋게 되어 따끔거리고, 발바닥은 불에 덴듯 후끈거렸다. 그 뒤에 발바닥과 뒤꿈

 500원짜리 동전보다 큰 물집이 잡혔다.


[의사였던 순례자가 치료해준 덕분에 계속 걸을 수 있었다.]


순례길을 함께 걷는 순례자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허물이 없었다. 웃으며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도와준다.

유럽이나 영어권 국가를 여행할 때 가끔 느끼게 되는 동양인을 무시하는 태도, 불친절함이 거의 없다. 게다가 순례길

을 걸으며 만난 스페인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쾌활했다.

아침일찍 산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다음 마을까지 태워줄테니 자꾸 타라고 하던 일, 길을 가르쳐준 자동차 운전자가

안심이 안되었던지 지켜보고 있다가 잘못가고 있던 나를 따라와서 가르쳐주던 일, 정겹게 인사를 건네주는 많은 

사람들...


그 길에서 만난 한국인 순례자들도 무척 기억에 남는다. 특히나 내가 머물고 있던 숙소까지 찾아와서 물집을 치료해줄

의사를 소개시켜준 이석기씨는 순례길을 생각하면 매번 생각나는 고마운 사람이다. 그 뒤로 연락을 못했지만...


나에게 순례길 이미지는 내내 추수가 끝난 황금색 밀밭과 수없이 많은 해바라기, 이제 겨우 여물기 시작한 포도가 

너무 아쉬웠던 포도밭으로 기억되어 있다.

짧은 시간밖에 경험하지 못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보면 무엇을 얻거나, 버리거나 하기 위한 목적조차도 희미

해지고, 단지 걷는다는 단순한 일을 통해 나 자신도 단순해져 간다는걸 느끼게 되더라. 거창한 깨달음을 얻기에는 내

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나는 그 느낌이 정말 즐거웠다.

반드시 다시 한번 찾고싶은, 끝내지 못한 숙제로 아쉬움이 가득한 곳이다.



1년 가까운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여행지에 대한 글을 남기려고 한다.

여러 여행지에 대한 감상을 한번에 적어내기는 어렵기 때문에 여행지 1곳씩 쓰게 되겠지만, 글을 올리는 순서가 

좋았던 순서는 아니다.


엘찰튼(El chalten, 아르헨티나)

남미여행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행자라면 파타고니(Patagonia)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파타고니아 지방은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남부지방에 거쳐 수많은 빙하와 아름다운 산과 호수, 거친 바람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파타고니아 여행의 중심도시로는 아르헨티나의 바릴로체, 엘찰튼, 우수아이아와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 푸에르토 

나탈레스 등이 있다.


이 글에서 설명할 엘찰튼은 아름다운 산봉우리를 볼 수 있는 당일 트레킹 코스가 많다. 그중에서도 잘 알려진 코스는

세로 또레(Cerro Torre)를 볼 수 있는 라구나 또레(Laguna Torre) 코스와 세로 피츠로이(Cerro Fitz Roy) 봉우리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라구나 데 로스 트레스(Launa de los Tres)코스이다.

피츠로이 코스가 조금 더 험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캠핑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도착 후, 숙소를 잡고 바로 세로 

또레 코스를 트레킹하고 다음날 피츠로이 코스를 트레킹하는게 일반적이다.

캠핑을 하면서 아침에 피츠로이의 일출을 보고 세로 또레로 가는 경우도 많지만 9월의 엘찰튼은 나같은 캠핑초보

캠핑하기에는 너무 추웠다.


버스로 엘찰튼 가는 길, 정면에서 왼쪽이 또레, 오른쪽이 피츠로이 봉우리이다.

이 두 봉우리는 모두 3000m대로 거친 바위 봉우리이다. 특히, 피츠로이는 암벽등반가들에게 꽤 유명하다고 한다.

엘찰튼에 도착하면 먼저 마을 입구에 있는 공원관리소에서 레인저로부터 주의사항을 듣고나서 다시 버스를 타고

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1. 라구나 또레 트레킹

내가 엘찰튼을 찾았을 때는 이제 막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던 9월 중순이었기 때문에 여름에도 그리 따뜻하지 않은 

파타고니아 지방은 꽤 춥고 흐린 날이 많았지만, 이 날은 운 좋게도 며칠만에 날씨가 매우 좋았다. 

[Cerro Torre로 가는 트레킹 코스에서 마을을 막 벗어난 언덕에서 본 풍경]


[Laguna Torre에 도착해서 보이는 Cerro Torre]

2,3시간 정도 꾸준히 걸어가면 위의 사진처럼 호수 건너편으로 Cerro Torre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우 맑은 날씨였음에도 봉우리에는 구름이 꾸준히 생기고 있어서 완전히 깨끗한 봉우리를 볼 수는 없었지만,

이 정도라도 무척 운이 좋았던 것이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시기였기 때문에 아직 호수에는 두꺼운 얼음 덩어리들이 떠있고, 바람도 차가웠다.


2. 라구나 데 로스 뜨레스 트레킹

마을 윗쪽으로 트레킹을 시작한지 얼마안되서 만날 수 있는 경치이다. 

엘찰튼에서 트레킹을 하면서 찍은 멋진 봉우리 사진들 보다 이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보고 있으면 깨끗하고 차가운 바람이 가슴 깊숙하게 들어오며 말할 수 없이 상쾌했던 당시 기분이 떠오른다.


위 사진은 피츠로이로 가는 트레킹 코스에서 만나는 중간 전망대이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나 엘 깔라파떼에서 당일 트레킹을 하게 되면 여기에서 돌아가야 한다.


이 숲을 지나고나서 피츠로이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마지막 1시간 가파른 산을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무릎 이상으로 빠지는 눈과 공원을 순찰하는 레인저의 걱정 반, 만류 반 섞인 이야기로 포기해야 했다.

먼저 올라가던 서양 여행자들도 모두 내려왔다.

아쉽게도 라구나 데 로스 트레스까지 가지 못했지만 여기까지 가면서 봤던 경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돌아오는 길에 봤던 Laguna Capri, 너무나 맑고 깨끗했다.] 



[눈은 쌓여서 빙하가 되고, 빙하는 내려오면서 산을 깎아 깊은 골짜기를 만든다.]


겨울(6~8월)은 당연히 그렇지만 9월도 파타고니아에서 트레킹을 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였다.

   그것은 얼마후,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뼈져리게 경험할 수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에 자세히 적어보겠다.


※ 엘찰튼은 조그만 마을이지만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 오는 여행자를 대상으로하는 숙소나 레스토랑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9월은 그들에게 비수기이기 때문에 문닫은 곳이 상당히 많고, 작은 수퍼마켓에도 물건이 많이 부족하므로

   비수기에 여행할 경우에는 미리 장을 보고 엘찰튼으로 가는게 좋을것 같다.


엘찰튼에서의 트래킹은 멋진 봉우리와 맑고 깨끗한 호수, 운좋게 맑았던 날씨가 어우러져 나에게 너무나 좋은 기억으

로 남아있다.

게다가 트레킹 코스는 토레스 델 파이네에 비해 훨씬 수월하고 짧기 때문에 체력에 자신이 없는 여행자라도 파타고니

아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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