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의 순례길을 마치고 바로 바르셀로나로 돌아갈까 하다가 여기까지 온 김에 원래 걸어서 도착하려 했던 레온까지 가보기로 했다. 전날까지 걷다가 작은 마을에서 중단했던터라 숙소에서 교통편을 물어 버스를 타고 팔렌시아까지 가서 기차로 갈아타고 레온에 도착했다.


열흘동안 부르고스, 로그로뇨같은 큰 도시를 지나긴 했지만 단지 스쳐지나거나 잠만 자고 떠났기 때문에 큰 도시 레온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 열흘동안 길 위에서는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인사하고 도와주고 지냈던터라 같이 여행하던 일행과 헤어져 갑자기 혼자 남게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갑자기 기분이 울쩍하고 쓸쓸해졌다.


느지막한 오후에 도착한 레온에서 비교적 저렴한 호텔을 찾아 들어갔다. 어차피 내일 레온 시내를 구경하고 떠날 것이니 있는 이틀 동안은 편안하게 쉬다가자는 생각이었다.


이튿날 아침일찍 레온 시내구경을 시작했다. 처음 간 곳은 건축가 가우디의 초기 건축물인 '까사 데 보티네스'였다. 지금은 은행으로 쓰이는 작은 성 혹은 저택처럼 생긴 이 건물은 우리가 흔히 봐왔던 가우디의 특성이 크게 드러나 있진 않았다.




다음으로는 스페인 성당중에서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답기로 '3대 성당'에 든다는 레온 대성당이었다. 스페인의 성당은 지금까지 거쳐 온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 독일의 성당과는 내외관이 모두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다. 건축지식이 없어서 정확히 무엇이다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광장에 있는 커피숍에서 '까페 콘 레체'와 '메디아 루나'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했다.


성당 내부가 십자가 모양인 것은 다른 나라의 성당과 비슷하지만 스페인의 성당은 내부에 무척 화려하게 장식된 조그만 성당이 하나 더 있다. 그리고, 성당 내부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곳 뒤로 통로가 나 있는 것도 달랐다.



레온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과연 아름답고 멋졌다. 성당의 윗부분이 모두 스테인드 글라스로 되어 있었고 마침 스테인드 글라스로 비쳐드는 아침햇살로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다만, 어두운 성당내부와 밝게 비치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제대로 찍기에는 내 사진기술도, 구형 똑딱이 카메라도 모두 심하게 부족했다.






성당 내부 아케이드에는 성인들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었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도시마다 수호성인으로 삼고있는 성인들이 있고, 그 도시와 관련된 수많은 성인들이 있다. 카톨릭이나 유럽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성인들을 다 알 수 없을텐데 그마저도 없는 나에게 그저 '성인'일뿐이다.


중세시대 도시들은 저마다 도시의 수호성인을 모시기 위해 안달이나 있었고, 특히 유명한 성인을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하기 위해 성인의 성물이나 신체의 일부를 사들였다고 한다. 베네치아가 성인 '마르코'를 수호성인으로 하게 된 이야기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성인 '야곱'을 수호성인으로 하게 된 이야기는 전설처럼 되어버렸다.



성당을 둘러보고 나와서 뒤로 돌아가니 장보러 나온듯한 할머니가 나무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걸터앉기에는 쉽지 않았을 난간에서 다리를 흔들며 쉬는 모습이 마치 소녀의 행동 같았다. 할머니가 간직한 천진함이 보는 사람을 즐겁게 했다.




스페인의 태양은 날이 갈 수록 점점 더 뜨거워졌다. 가장 더운 한낮에는 '시에스타'라는 낮잠을 자는 풍습이 있을 정도인 스페인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라 점심시간 이후에는 길에도 다니는 사람들이 부쩍 줄어들었다. 나도 시에스타에 동참하여 낮잠을 자고 해가 기울무렵 내일 떠날 바르셀로나행 기차표를 사기 위해 역으로 나갔다. 그런데, 표가 매진되었다고 했다. 더욱 당황하게 만든 것은 그 다음날도 표가 없다고 했다. 


이베리아 반도의 북부를 가로지르는 먼 길이긴 하지만 레온과 바르셀로나라는 큰 도시 사이에 다니는 기차가 몇 대 안되는데다 표가 매진된 상황이 적지않게 당황스러웠다. 머뭇거리다가는 그 뒤의 표도 매진될지 모른다는 조급함에 부랴부랴 표를 샀다. 그리고는 강제로 쉬게 된 이틀동안 뭘 해야할지 고민스러워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기차가 없다면 버스를 알아보고 그래도 안된다면 다른 도시를 거쳐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은 어렵다. 가끔 괜찮은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난 그때, 그리고 지금도 여행자로서 어설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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