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알바이신으로 향했다. 알바이신 지구는 알람브라 궁전이 지어지기 전부터 무어인의 궁전이 있었던 곳이었으며 이슬람과 안달루시아의 문화가 어우러진 중심지역이었으나 이슬람 세력이 패하여 물러간 뒤에는 남은 이슬람인들의 주거지역으로 쇠락한 곳이다.


알바이신 지구는 강을 사이에 두고 알람브라 궁전의 북쪽 맞은 편 언덕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밤에 보는 야경이 무척 아름답다고 했지만 가는 곳마다 매번 야경을 챙겨볼 수도 없는 일이고, 밤에 돌아다니는 것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라 아침 일찍 이곳을 찾게 되었다.


좁은 구시가 도로를 돌고 돌아서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서 골목을 걸어 조그만 광장으로 나오니 시원하게 뚫린 맞은 편으로 알람브라 궁전이 보였다. 아침이라 조용하고 고즈넉했으며 아직 햇볕이 뜨겁지 않았고 선선한 바람마저 불었다. 광장 담벼락에 걸터앉아 오후에 갈 알람브라 궁전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알람브라 궁전 건너편으로는 높은 산들이 보였다. 아마도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산들이 아닐까 싶었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은 3000미터가 넘는다고 하는데 겨울철에는 스키를 타러 오는 관광객들도 많다고 한다.


볼 것은 많고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나오면 나머지 여정을 생략하더라도 시간을 충분히 갖고 즐기는 것이 오히려 나중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여행에서 남는 것은 결국 추억이다. 좋은 곳에서는 시간을 들여 바람과 공기와 냄새까지도 기억에 남을 수 있게 머릿속에 꼼꼼하게 새길 필요가 있다.


좁은 골목을 따라 가다보면 조그만 광장이 나오고 다시 골목을 따라 걷다보면 광장이 나왔다. 언덕 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광장에서는 그라나다 시내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정확하게 어떤 것이 이슬람 풍이며, 안달루시아 풍인지 구별할 수는 없지만 이 곳의 집들이 다른 스페인 지방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특히 위의 사진에 보이는 집은 후에 고쳐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독특한 모양이라 기억에 남는다.




알바이신 지구를 밤에 다녀온 여행기를 보면 불빛도 휘황하고 레스토랑이나 기념품점도 많았는데 이른 시간이라 몇몇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조용했다.


골목골목을 돌아 언덕을 천천히 내려왔다. 알바이신 지구와 도심을 연결하는 길에는 예전 통행자들이 지나다녔을 성문이 남아 있었다. 꽤 뜨거워진 햇볕도 피하고 지친 다리도 쉴겸, 근처에 있는 찻집에서 오랜만에 차이를 마셨다. 불과 4개월 전에 터키에서 차이를 마셨었는데 무척이나 오래전 일로 기억됐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다보면 몇 개월, 몇 년이 지나도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기억되었는데 여행을 하면 매일 다른 하루를 살게 되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은 일도 아주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일상 생활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알람브라 궁전은 더운 오후 일정인데다 넓기 때문에 분명히 체력이 많이 소모될 것 같았기 때문에 가기 전에 큰맘먹고 레스토랑에서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하몽을 곁들인 샐러드


오징어? 꼴뚜기? 튀김(이름은 잊어버렸다)


생선과 감자요리


밤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이른 아침 알바이신은 조용하고 평화로와서 무척 마음에 들었다. 딱히 방향을 정하지 않아도 발길 가는대로 걸어도 좋고, 탁트인 전망을 보면서 사색에 잠길 수 있어서 좋았다. 역사적인 곳이어서가 아니라 그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게 더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알람브라보다 알바이신에서 보낸 반나절이 더 좋았던게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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