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2일) 푸에르토 몬트와 푸에르노 바라스 가까이에 있는 칼부코 화산이 폭발했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정확하게 이 지역을 여행했던 기억을 블로그에 남기는 날 그런 천재지변이 발생했다니 기분이 더욱 언짢았다. 아름다웠던 이 지역에서 큰 인명사고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구글맵에서 칼부코 산을 검색해보니 이 산에 대한 간략 정보중에 최근 분화한 날짜가 이미 2015년 4월 22일로 업데이트 되어있다.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데이터를 다루는 구글의 능력은 이제 무섭게 느껴진다.)


칠레는 국토 전체가 환태평양 조산에 속해있기 때문 대부분의 산들이 화산이다. 칼부코 산과 가까이에 있는 오소르노뿐만 아니라 푸콘지역의 비야리카 등이 모두 분화한지 얼마되지 않은 화산들이다. 지진 활동도 활발해서 몇 년전에는 큰 지진피해를 입기도 했다.




푸에르토 몬트에서 감동의 어시장을 다녀온 다음날, 독일 이민자들이 세운 조용하고 작은 도시이며, 푸에르토 몬트에서 승합차 버스를 타고 한시간 내에 도착하는 푸에르토 바라스로 갔다. 도시 전체가 유럽풍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나 호수 주변은 이곳이 알프스의 호숫가인지 사진만 보고 판단하기 어려울만큼 유럽과 닮아있었다.


근처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목조 성당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2000km나 올라와서인지 날씨는 훨씬 따뜻했지만 어제까지는 여기도 잔뜩 흐리고 쌀쌀했었는데 오늘은 완전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날씨였다. 오랜만에 따뜻한 햇살을 받으니 기분까지 좋아지는 듯했다.


시내에 인접하지 않은 한적한 호숫가로 가려면 여기서 버스를 타고 꽤 가야한다. 

아쉽게도 그 마을 이름은 잊어버렸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호수는 생각보다 훨씬 커서 수평선이 보일 정도였다. 호숫가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여러가지 장식구조물들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하늘에 점점 구름이 끼어가는게 조금 불안했다.

어떻게 찍었는지 수평이 엉망이다.


호수안쪽으로 나무로 만든 훌륭한 전망대가 있었다.


구름때문에 뚜렷하진 않지만 호수 건너편으로 봉우리의 절반정도가 눈으로 뒤덮인 산이 보였다.

이번 칼부코 화산 폭발 때문에 구글맵에서 찾아보니 해발 2600미터가 넘는 오소르노 산이었다.

사진으로 본 경치가 훌륭해서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구름이 꼈다 해가 나길 반복하는 중에 호숫가에 있는 멋진 건물을 발견했다. 크지는 않았지만 외장이 나무로 되어있는 이 멋진 건물은 공연장이었다. 건물 앞에는 그해의 주요 공연 프로그램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오페라나 클래식 공연부터 연극이나 현대무용까지 다양한 공연이 계획되어 있었다. 


칠레의 한 작은 도시(근처의 큰 도시인 푸에르토 몬트조차 20만이 넘지 않는)에 있는 공연장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진행되고 있는게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주민들의 상당수가 독일 이민자들이라 경제적인 생활수준이 높을 것이라고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안에서 보고 상상하는 세계의 모습과 실제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이런 소소한 경우에서도 나타난다.



호숫물은 맑고 깨끗했다.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길텐데 당시에는 막 봄이 시작된 시점이라 친구들과 물장난하는 현지의 10대 청소년들을 제외하고는 감히 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청소년들은 활기에 넘친다. 별다를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깔깔대고 몸을 움직여댄다. 보고 있으면 에너지가 느껴지고 나도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여섯명의 남녀 청소년들이 호숫가에 앉아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다가 한 친구를 물에 빠뜨렸다. 그리고는 결국 모두 물에 흠뻑 젖은채 다시 깔깔거리며 호숫가 저편으로 걸어갔다.


어렸을 때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르게 모든 것이 신나고 재미있다. 나이가 드는 것은 아무렇지 않지만, 세상에서 재미난 것들이 줄어드는 것이 아쉽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명목으로 어렸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이런 감정들을 너무 빨리 거두게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살아가는 재미는 안정된 직장과 높은 연봉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따뜻했더라면 뛰어들고 싶을만큼 맑은 물빛이었다.


정원이 단정하게 정돈된 깔끔한 집들이 호숫가에 늘어서 있다.





먹을 것을 바라는지 한동안 따라왔던 강아지. 

미안하게도 떼어놓기 위해 레스토랑의 정문으로 들어갔다 옆문으로 몰래 나오는 꼼수를 부려야했다.




한동안 호숫가를 배회하다보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출출해졌다. 하지만 날씨가 점점 맑아오는터라 그냥 떠나기는 아쉬워 뭔가 간단한 요깃거리를 할 수 있는 까페를 찾았다. 그러다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현지인들이 찾을 것 같은 까페를 찾았다.


카운터에는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앉아계셨고, 직접 만든듯한 커다란 케이크들이 몇 가지 놓여있었다. 케이크는 종류도 네다섯가지 밖에 없고 모양도 투박했지만 정말 맛있어보여서 두 가지를 골라서 시켰다.(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모양에 신경쓴 음식은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 모양에 신경쓰지 않고 한입 크게 베어 물고 싶은 그런 음식에 군침이 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시킨 이 케이크는 명품이었다. 크기도 큼직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인데 맛은 지금까지 먹어 본 케이크 중에서 확실하게 으뜸이었다. 제빵기술이 있다면 여행을 중단하고 한수 배우고 싶을  것 같았다.


이 케이크 하나만으로 푸에르토 바라스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여행은 잘 짜여진 스케줄 대로, 계획했던 것을 모두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정작 묘미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지만 불운한 것은, 다시 맛보기 힘든 이 케이크 때문에 그 후로는 케이크를 먹을 때마다 이전만큼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까페하고는 궁합이 잘 맞는지 케이크를 먹고, 차를 마시는 동안 날씨가 다시 맑아졌다. 카페에 앉아서 호수 건너편 오소르노 산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떠나기에 앞서 까페 내부 사진을 찍었다. 놀랍게 훌륭한 케이크가 별다를 것 없는 소박한 까페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상에는 경험해봐야 면목을 알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여행이 더욱 즐거워진다.



푸에르토 바라스는 살아보고 싶은 곳이다. 훌륭한 경치를 보러 다시 오고 싶은 곳이 있는가하면 이 곳에서는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되는 곳이 있다. 지금까지는 태국 치앙마이, 그리스 로도스, 푸에르토 나탈레스 등이 그랬었다. 여기에 푸에르토 바라스의 이 마을도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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