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는 우리에게는 낯선 도시이지만 칠레의 수도이자 인구 500만명이 훨씬 넘는 거대도시이다. 500년전 스페인의 정복자 발디비아에 의해 도시로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아직도 스페인풍의 건물이나 성당이 많이 남아있지만 오래되고 낡기만한 도시는 아니다. 상업지구에는 남미에서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칠레의 위상을 보여주는 현대화된 높은 빌딩들이 즐비하다.
칠레도 다른 남미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오랜 독립전쟁을 치뤄야했으며, 독립 후에도 주변 국가들과 여러 번 전쟁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페루, 볼리비아와 전쟁에서 승리하여 볼리비아를 내륙으로 몰아내고 현재 칠레 북부의 (거대한 구리광산이 포함된) 넓은 땅을 차지한 것이다.
그 뒤, 칠레가 현대국가로 자리잡은 과정은 우리와 매우 흡사하다. 선거에 의해 대통령이 된 살바도르 아옌데가 해외 대기업에 넘어간 국부유출을 막고 이를 국민들에게 분배하며 지지를 얻었으나, 미국의 방해와 기득권층 반발, 친미 군인들에 의한 쿠데타로 마지막까지 대항했지만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쿠데타에 성공한 피노체트는 비록 친미정책으로 인해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정권유지를 위한 인권탄압과 가혹한 정치를 폈다.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3000명 이상이 죽고, 10만명 이상이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한다. 이후 오랜 민주화운동에 의해 1989년 총선거를 하게 되고 피노체트 군부독재정권이 물러났으며, 현재는 남미에서는 가장 정치적으로 안정된 국가로 자리하게 되었다.(위키백과 참조)
경제발전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민주주의가 먼저인가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지금껏 논의되고 있는 문제이다. 개인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개인의 인권이 우선적으로 지켜져야하며, 민주주의 이념보다 우선한 성과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대단한 성과를 낸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위법과 탈법, 비인권적인 수단으로 이뤄낸 성과라면 우리는 그를 위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스페인 정복자 발디비아의 동상
500년 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정복자의 동상이 수도의 중심광장에 서 있는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땅에 살았던 원주민이라는 생각보다 유럽인 혹은 그 후손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아르마스 광장의 국립역사박물관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 메트로폴리탄 성당
산티아고의 중심지 아르마스 광장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있었다. 제복을 입은 많은 수의 군인과 경찰들까지 나와 있었는데 분위기가 시위나 소요는 아닌 것 같았다. 혹시나 좋은 구경거리라도 있을까해서 그쪽으로 가까이갔다. 멀리서 사람들이 뭔가를 메고 다가오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방금 메트로폴리탄 성당 안에서 본 성녀 카르멘의 상이었다.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봤었는데 그 도시의 수호성인의 날에는 이렇게 성인의 상을 지고 도심을 한바퀴 도는 행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 뒤에도 페루나 멕시코 등 중남미 여러 곳에서 비슷한 행사를 볼 수 있었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쏭끄란 축제 때 모든 사원에 있는 불상을 메고 퍼레이드 하는 것과 유사했다. 완전히 다른 종교지만 비슷한 점이 많은 것은 그것을 믿는 사람의 마음이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슷한 마음의 사람들끼리, 비슷한 교리가 더 많은데도 다른 교리만을 가지고 전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산티아고에서도 백화점이 많은 상업지구에 기마경찰이 나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닌 듯하다. 현지인들도 모여서 사진을 찍거나 말을 스다듬고 있다. 정작 경찰은 그러거나말거나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성녀의 상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을 즈음에 다른 한편에서는 주로 젊은이들로 구성된 인파가 피켓이나 현수막을 들고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스페인어 까막눈이라 행사인지, 시위인지도 알 수 없고, 물어 볼 생각도 못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 표정이 밝은게 시위는 아닌 것 같다.
산티아고에서 묵은 숙소는 고층건물의 오피스텔이었기 때문에 도심을 먼곳까지 조망할 수 있었다. 밤에 창밖으로 보이는 산티아고의 불빛은 세계 여느 대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그리고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며 봐왔던 칠레와 대도시의 칠레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하기야, 이때 나의 느낌은 우리나라 시골 모습을 먼저 보고 서울에 온 외국인 여행자의 느낌과 똑같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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