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서 4박 5일을 지내는 동안(밤에 도착해서 나흘 뒤 낮에 떠났으므로 머무른 날은 3일 정도)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다는 칠레의 해안도시 발파라이소에 다녀올까 생각하다가 관뒀었다. 당시에는 자주 머무는 곳을 옮기고 배낭을 꾸렸다 푸는데 진저리가 났었던 것 같다. 


파타고니아 여행을 마친 지금 다음 여행의 큰 목적지는 우유니였다. 칠레에서 볼리비아쪽으로 우유니 투어가 시작되는 산 페드로 데 아타까마까지 어떤 경로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칠레에서 계속 북쪽으로 이동하면 되겠지만 그 사이에는 그다지 끌리는 곳이 없었다. 문득 지도를 보다가 아르헨티나 포도주 대부분이 생산되는 멘도사가 칠레의 산티아고와 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멘도사에는 와이너리 투어와 남미 최고봉인 아콩카과 투어 등등 몇 가지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방향은 정해졌으니 안데스를 넘어 다시 칠레에서 아르헨티나로 가야했다.


산티아고 버스정류장에서 인상적이었던 빨간 옷의 할머니


산티아고에서 멘도사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구글맵에서는 자동차로 5시간이 조금 넘는 것으로 나온다. 도로 상태도 무척 양호한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에서 히말라야 다음으로 큰 안데스 산맥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발 고도 500미터가 조금 넘는 산티아고에서 출발해서 단 몇 시간만에 안데스의 40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어야한다.


산티아고에서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 잠이 들었다가 깼더니, 주위는 이미 수목한계선보다 높아져서 황량하고 거친 산봉우리뿐이었다. 스마트폰 지도앱으로 현재 고도를 보니 3000미터가 훨씬 넘어있었다.


버스는 조심스레 커브길을 돌고돌아 끊임없이 위로 올라갔다.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니 구부러진 도로가 마치 실타레를 풀어놓은 것 같았다. 라오스의 왕위앙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던 길은 좁은 도로폭과 차선을 무시하고 달리는 운전사 때문에 위험하고 험한 길이었지 이 정도로 심한 경사길은 아니었다. 아직 덜 올라왔는지 이후로도 계속해서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잇는 국경도로라서 그런지 커다란 화물차도 자주 보였다.



이제 도로 주변은 해발 5,6000미터대의 눈덮인 산봉우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국경 검문소에 도착했다. 이 거대하고 거친 산맥의 고갯길 가장 높은 곳에 양 국가의 검문소가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역시 봄치고는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출입국 심사를 마친 후, 검문소 옆에 달린 간이 건물에서 요기를 했다. 이 곳의 유명한 메뉴는 핫도그와 남미식의 커다란 샌드위치인데 여행자들 사이에 꽤 알려져있는 듯했다. 사실 음식이 특별히 맛있다기보다 국경을 넘는 동안 요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는데다 이 황량한 국경에서 먹는 음식이니 맛있을 수 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길고 긴 내리막이다.




멘도사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방금져서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먼 옛날 야마에 짐을 싣고 걸어서 넘었던 사람들은 며칠이나 걸려야 안데스의 고갯길을 넘을 수 있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스페인 사람들이 가지고 오기 전까지 남미에는 말이라는 동물이 없었다.) 해발 4000미터가 훨씬 넘는 고개를 몇 시간만에 넘어서 산맥 반대편에 도착할 수 있다는게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경험하지 않았을 때는 단순히 받아들여지는 정보가 경험을 통한 감각과 감정이 뒤섞여 뇌리에 깊게 들어와 박힌다.


(남미대륙의 끝자락인 파타고니아의 안데스 산맥은 2,3000미터대의 산들이 주를 이루지만, 위로 갈수록 높아져서 이 곳은 주요 산들이 5,6000미터대 높이다. 남미 최고봉이자 아시아 대륙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산인 아콩카과(6962m)도 이 곳 아르헨티나 멘도사 주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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