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멘도사는 대부분의 아르헨티나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곳곳에 와이너리가 산재해 있다. 와인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라는 것은 그만큼 일조량이 많고, 날씨가 온화하다는 의미이다. 한달정도 차이가 나긴 하지만 위도 차이가 크지 않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비해서 이곳은 낮에는 반팔이 필요할 정도로 날씨가 정말 따뜻했다.


아르헨티나 와인의 특징은 말벡이라는 포도품종으로 대표된다. 유럽에서는 이 품종의 포도만을 가지고 와인을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며, 여러 포도품종을 섞어서 블렌딩을 한 와인을 제조할 때만 쓰인다고 한다. 그런데, 이 품종이 아르헨티나의 기후와 토양에서는 기막힌 와인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 와인에도 까르베네 소비뇽, 쉬라즈 등등의 와인도 생산되지만 상당부분은 말벡이다. 이 말벡 와인은 무겁고, 거친 특성을 가진다. 부드럽고 가벼운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선호할 수 없겠지만 묵직한 느낌의 와인을 좋아한다면 아마도 반하고 말것이다.


이런 멘도사이니 여행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와이너리 투어가 성행하고 있었다. 내가 묵은 게스트하우스에서도 현지 여행사들과 연계해주는 투어 상품을 팔고 있었다. 도착한 첫날 저녁에 투어를 예약하고 이튿날 오후에 바로 참여하게 되었다.



먼저, 환전을 위해 멘도사 중심가로 나왔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달러 대 아르헨티나 페소의 환율을 1대 4.5로 고정해 놓고 있지만, 워낙 좋지않은 아르헨티나의 경제상황 탓으로 그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환전을 해주는 암달러상들이 도시마다 성행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면서 국제현금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여행자 입장에선 무척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라 단기 여행자들은 미리 달러를 가지고 입국하고, 장기 여행자들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배를 타고 우루과이의 콜로니아로 가서 달러가 출금되는 ATM에서 달러를 인출해서 가지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마다 환전을 한다.



멘도사 시내에 있는 작은 공원은 이미 수목이 초록으로 물들어있었다.


오후에는 게스트하우스로 픽업 온 여행사 승합차를 타고 와이너리 투어에 도착했다. 투어는 세 개의 와이너리를 방문하며, 첫째와 둘째 그리고 둘째와 셋째 와이너리를 이동할 때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다. 와이너리에서는 그 곳의 소믈리에에게 그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설을 견학한 후, 준비한 몇 가지 와인을 시음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첫번째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이 곳은 80년이 조금 넘은, 가족들이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와이너리였다.


먼저 포도밭에서 소믈리에가 이 와이너리의 역사와 와인의 특징에 대해 설명해준다.

당시에는 아직 포도가 열릴 철이 아니라서 포도맛을 볼 수 없었던게 아쉬웠다.




포도밭 주변에는 예전에 사용했음직한 농기구나 시설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 커다란 창고가 전부 와인을 발효하는 통이며, 벽에는 오래된 커다란 수도꼭지 같은 것이 달려있다.



드디어 와인을 시음하는 시간이 되었다. 세 가지 정도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으며, 더 달라고 하면 인심좋게 넉넉한 양을 더 주었다. 와인을 잘 모르지만 그 중 하나가 내 입맛에 꽤 맞았기에 살까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사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오랫동안 후회했다.



두번째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이 곳은 첫번째 와이너리보다 훨씬 크고, 시설도 현대와 되어 있었다. 그래선지 와이너리라기 보다는 그냥 공장 견학같은 느낌이 강했고, 와인도 앞서보다 훨씬 비싸고 내 입맛에도 맞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와인은 가격보다 자신에게 좋은 것이 제일 훌륭한 것이다.

견학시간이 될 때까지 땡볕에 기다리게 했던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설은 무척 깨끗하고 현대적이었지만 와이너리라면 왠지 좀 고풍스럽고 낡은 곳이 더 끌린다.

물론 이런것도 일종의 선입견일테지만.


무엇보다 두번째 와이너리가 좋지 않았던 것은 시음하는 와인이 지나치게 부족했다는 것이다. 여러 병을 가지고 와서 실컷 자랑을 하더니 시음은 고작 와인 한병으로 마무리했다. 첫번째 와이너리와 비교되어서인지 투어했던 사람들 모두 뭔가 아쉬운 분위기였다.



와인이 많다고 저걸 다 시음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냥 자랑하려고 들고나온 것이다.


세번째 와이너리도 꽤 오래된듯한 곳이라 마음에 들었다. 먼저 여러가지 와인 중에서 맛보고 싶은 품종의 와인을 선택해서 시음하고 그 뒤에 더 달라고 하면 준비된 한에서는 넉넉하게 준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세군데서 와인을 마시다보니 이제 약간 취기가 올랐다.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와이너리에서 마셨던 와인이 가장 좋았지만 망설이다 사지 못했기 때문에 세번째 와이너리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것으로 한 병을 샀다. 사실 아르헨티나 와인은 품질에 비해 가격이 무척 저렴한 편이므로 좋다 싶으면 망설일 필요없이 무조건 사는게 남는 것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대형 마트의 와인 매장에는 100페소(한화 2만원) 정도되는 와인은 고급 와인으로 취급해서 유리 진열대 안에 보관하며 열쇠를 채워 놓는다. 이런 와인이 우리나라에 수입되면 매장에서 10만원이 넘는 가격표가 붙고, 레스토랑에서는 거기에 다시 몇 배의 가격표가 붙는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한다면 날마다 와인을 마셔라. 좋아하지 않더라도 마시다보면 좋아질 것이고, 여행 경비를 뽑는 방법이 될 것이다.



와이너리 투어는 꽤 만족스러웠다.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여행자라도 한번쯤 와이너리를 구경하고 시음하는 경험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비싸기만 하고 숙취가 심한 술로만 여겼었는데 지구 반대편에 와서야 와인이 이렇게나 좋은 술인지 알 수 있게 되다니... 매번 2차, 3차에서야 와인을 마셨으니 전에 마신 술과 뒤섞여 숙취가 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와인이 그런 술이라고 판단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게다가 와인은 비싼 술이 아니다. 우리의 소주보다 저렴한 가격부터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의 와인까지 종류가 많을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와인의 가격이 비싼 것은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더한 유통업체들의 문제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 와인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유통업체들의 경쟁이 더해져 가격이 내려가긴 했지만 아직도 거품이 많은 것 같다.


와인을 마셨더니 갑자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매일 밤 먹던 스테이크가 그리워졌다. 투어를 마치고 마트에서 소고기를 사다가 게스트하우스 부엌에서 스테이크를 구웠다. 동양 여행자가 스테이크를 굽고 있으니 저녁을 만들던 서양 여행자들이 호기심에 차서 구경하고 몇몇은 엄지를 세워 보였다.


오늘 산 와인은 아까워서 못마시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저녁에 나눠주는 와인을 곁들여 스테이크를 먹었다. (이날 샀던 와인은 깨질까 배낭에 고이 넣어서 가지고 다니다 2주 후에 칠레 북부 아타까마에서 저녁 만찬으로 마셨다.)


와이너리 투어를 했지만 와인을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사실 그걸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자기한테 좋은 것이 가장 훌륭한 것이라는거, 좋은 느낌이 왔을 때는 놓치지 않고 잡아야 한다는 것을 그날 다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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