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도사에서 목적지인 칠레의 산 페르도 데 아타카마까지 가려면 중간에 아르헨티나의 북부도시 살타까지 가야했다. 그런데, 멘도사에서 살타까지도 한번에 가기에는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방금 찾아본 구글맵에는 1200km, 16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로 나오지만 버스 매표소에서 알아본 바로는 24시간이 훨씬 넘는 거리였다.(중간에 다른 도시에 정착하기 때문인지,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야간 장거리 버스를 타는게 지겨워져서 멘도사와 살타 사이에 있는 코르도바를 거쳐서 가기로 했다.


당시에는 단 하루만 머물고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코르도바가 어떤 도시인지 전혀 조사하지 않았는데, 위키에서는 이 도시가 130만명이 넘는 아르헨티나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며(국토가 넓은 국가에서 인구 100만명이 넘는 도시는 썩 드물다.) 경치가 좋은 교육도시라고 설명하고 있었고, 재미있게도 코르도바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가 스페인 식민지시대 여기에 도시를 건설한 스페인 사람의 아내가 스페인 코르도바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남미 여러 국가들의 도시명이 스페인의 도시와 같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비슷한 언어권에서 도시 이름이 같은 경우가 흔한 것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만 봐도 알 수 있다.)



단 하루를 머물렀을 뿐이지만, 코르도바에서 예약한 호스텔은 내 기호와 상당히 동떨어진 곳이었다. 늘상 마찬가지로 예약사이트에서 별점이 높은 숙소를 골라 예약하지만 가끔 숙소선정에 실패하는 이유는 별점을 주는 사람들의 나이나 성향에 따라 좋은 숙소의 기준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자 치고는 나이가 든 편이기 때문인지 나는 조용하고 가능한 깨끗한 숙소를 선호하는데, 젊은 배낭여행자들은 서로 어울리기 쉽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호스텔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 호스텔은 후자에 속하는 곳으로 머무는 사람들도 주로 서양의 젊은 여행자들이었고 벽에는 유명한 힙합 뮤지션들이 그래피티로 그려져 있었다.


게다가 이 호스텔의 장기 투숙객인, 여행하다가 경비 마련을 위해 호스텔의 일을 돕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힙합 머리를 한 흑인과 같은 방으로 배정 받았는데, 장기 투숙객이 머무는 방의 특성상 굉장히 지저분했다.(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매일 청소를 하지 않는다. 투숙하던 사람이 떠나야 그 사람이 머물던 자리를 치우는게 일반적이다.) 하룻밤 자고갈 뿐이니 뭐 어떠랴 싶었기 때문에 그냥 머물렀다. 그리고, 그게 실수였다.


하룻동안 코르도바에서 머물며 했던 일은 축구를 보는 것이었다. 식당을 겸하는 거실에는 꽤 커다란 TV가 설치되어 있었고, 마침 그날은 엘 클라시코(스페인 축구리그를 대표하는 두 팀인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연달아 세 경기를 보고 오후가 한참 지나서야 시내구경이라도 해볼 요량으로 호스텔을 나섰다.










동네 마실가는 마음으로 나온 코르도바 시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호스텔에서 알려 준 방향으로 걸어가서 광장을 중심으로 성당과 쇼핑상가를 구경하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버스를 갈아탈 목적으로 머문 곳이라 별다른 기억도 남아있지 않다. 단지, 남아있는 특별한 기억이라고는 하룻밤 머문 그 방에서 여행중 8개월만에 처음 빈대에 물렸다는 것이다. 단 하룻밤만에...


이날 저녁에 다음 목적지 살타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슬금슬금 가려워오기 시작했다.


낡긴했지만 가장 좋은 등급의 버스를 탔더니 거의 180도로 누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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