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살타에서 칠레의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줄여서 아타카마)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아타카마는 워낙 작은 곳이라 이 곳이 최종 도착지는 아니고, 세계 최대의 구리광산이 있는 카라마로 가는 버스가 아타카마에서 잠시 정차하는 것이다.
버스는 다시 안데스를 오르기 시작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지그재그로 여행하며 여러번 안데스를 넘은터라 이제는 몇 번짼지도 잘 모르겠다.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면서 멘도사에서부터 계속 봐왔던 익숙한 안데스의 황량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때 봤던 서부영화에서 본 풍경과 흡사했다. 저 멀리서 말을 탄 보안관이 나올 것 같다.
황량하지만 아직은 수목한계선을 넘지는 않은듯 와중에 가끔 나무가 보인다.
어찌보면 터키 파타고니아의 지형과 흡사한 면도 있었다. 대지의 약한 부분부터 서서히 침식되어 거대한 골짜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버스는 거대한 골짜기를 조금씩, 끊임없이 올랐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돌고돌다보니 어느새 주위에 나무가 없어지고 덤불이나 선인장외에는 자랄 수 없는 높이까지 올라왔다.
갑자기 버스 옆으로 과나코인지, 비쿠냐인지 모를 한무리의 야생 동물들이 보였다. 이런 황량한 곳에서도 동물들이 살아간다는게 새삼 신비롭게 느껴졌다.
사진의 동물이 무엇인지 찾아보려고 위키에서 비슷한 동물을 찾아서 사진과 비교해봤다. 사진으로는 비쿠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인다. 낙타과 동물은 낙타속에 속하는 단봉낙타와 쌍봉낙타, 라마(야마)속에 속하는 라마와 과나코, 비쿠냐속의 비쿠냐와 알파카가 있다고 한다. 낙타과에 속하는 3속 6종의 동물중에서 남미에만 2속 4종의 동물이 살고 있다는게 흥미로웠다.
비쿠냐속에 속하는 알파카는 잘 알려져있듯이 털이 고급 코트를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하지만 비쿠냐의 털이 더 훌륭해서 잉카제국때부터 귀족들의 옷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무분별한 포획이 이뤄졌고 개체수가 엄청나게 줄었다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면서 다시 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 동물은 해발 3500~5500미터에서 서식한다니 혹독한 바람과 추위를 이기려면 털이 곱고 훌륭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오래된 똑딱이 카메라로 달리는 버스안에서 지나치는 동물을 찍기는 불가능했다.
안데스 산맥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어가니 저멀리 하얀 평원이 보였다. 여기서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이 보일리는 없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궁금했었다. 사실 바다가 융기되어 형성된 소금사막은 우유니가 가장 크고 유명한 것일뿐, 이 지역에는 그렇게 만들어진 소금사막이 여러 곳이었다.
작은 소금사막 가로질러 달렸다. 군데군데 소금을 채취하는 것으로 보이는 곳들이 있었는데 바닷물로 소금을 만드는 염전만 보다가 땅위에서 채취한 소금더미를 보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이 황량한 사막을 가로질러 기다리는 사람에게 소식을 전해줄 통신줄이 가느다란 전봇대에 매달려있다. 전깃줄일까 생각도 했지만 아마 전화선일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다.
몇 번 안데스를 넘을 때마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곳을 지나왔지만 그 때는 잠시여서 그런지 고산증세를 느끼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몇 시간째 버스를 타고 지나다보니 머리가 약간 무거워졌다. 승객들중에서 민감한 사람들은 어지럼증,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보통 해발 3000미터 이상인 곳에서부터 발생하는 고산병은 사람에 따라서 더 낮거나 높은 지역에서 생기기도 한다. 경증의 고산병은 두통이나 불면 등을 동반하지만, 중증의 고산병은 뇌나 폐의 부종을 일으켜서 사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여행전 블로그나 책자를 통해 매우 고통스럽고 힘들었다는 고산병 경험담을 보면서 적잖게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고산병은 건강상태, 나이와 상관이 없기 때문에 미리 대비할 수도 없다.
높은 지대의 저산소 상태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증세를 약화시키는 방법은 있지만 낫기 위해서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천천히 상승하면서 몸을 적응시켜야 하는데 고산지역에 적응을 하면 몸속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올라간다고 한다. 실제 고산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산소를 운반하는 기능을 하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나는 원래 사람들의 평균치보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았는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약간 무겁게 느껴진 것 빼고는 별다른 증세가 없었다. 앞으로 고산지대에서 해야 할 여행코스가 많은데 증세가 약한게 적잖게 안심이 되었다.
하루종일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창밖의 풍경도 시들해지고 더 이상 잠도 오지 않으면 버스 승객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이 날 버스에서 본 가족은 여행중에 본 가장 인상 깊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서 여행에 대한 내 생각이 조금 더 넓어졌다는 느낌이다.
처음 이 가족들에게 눈길이 가게 된 것은 버스가 출발한지 몇 시간 지났을 때, 30대 여자가 좌석 위 선반에 올려놓은 가방을 뒤져 먹을 것을 꺼내는 모습을 보면서부터였다. 먹을 것을 내려 앉아있는 10살 내외의 두 남녀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때는 아이들 둘을 데리고 이 멀고 험한 곳을 여행하는게 대단하다는 단순한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키가 엄청 컸던 아빠의 배위에서 놀고 있는 이제 두어살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를 보게 되었다. 어라, 아이가 둘이 아니라 셋이었구나, 게다가 저렇게 어린 아이를 데리고도 배낭여행을 하는게 놀라웠다.
아이는 장거리 버스 내내 칭얼대거나 울지않고 갑갑함을 잘 참아내고 있었다. 아무리 부모라하더라도 혼자 여행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남미에서 아이 셋을 돌보면서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부지런함과 인내력의 힘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각자의 몫을 충실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막내아이의 나이로 볼 때, 집밖에 내보내는 것도 전전긍긍할 부모들이 많을텐데 이들은 세 아이와 함께 세상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 뒤에 놀랄 일이 또 한번 일어났다. 커다란 아빠의 덩치에 가려 보이지 않던 옆 좌석에는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첫째 아이가 앉아있었고, 이 아이는 여행중에 팔이 부러졌는지 깁스까지 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 부부는 두어살부터 10대 초반까지 아이 넷을 데리고 여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이 하나가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하는 사고가 있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고, 무모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이 돌아갈 곳 없는 떠돌이나 노숙인이 아님에도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직 돌아갈만큼 힘들지 않기 때문이며, 여행을 하면서 얻는 부분이 돌아갔을 때 얻는 것보다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아이는 여행을 통해 참을성있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랄 것이며, 이 때 배운 것들은 살아가는 동안 만나게 될 어려움에서 이 아이들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다음날 아타카마의 관광안내소에서 엄마와 막내아이를 다시 만났다. 엄마는 안내소 직원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고, 아이는 엄마 발치에 철퍼덕 주저앉아서 혼자 열심히 놀고 있었다. 아이는 뽀로로가 나오는 스마트폰도, 값비싼 장난감도, 유기농 먹거리도 없지만 혼자서 놀 수 있는 상상력과 왠만한 세균은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 엄마의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력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이 가족은 나에게 적지않은 충격과 놀라움을 주었다.
여기서도 비쿠냐 무리를 만났다.
버스는 안데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을 지났다. 희고 검은 호수들, 침식이 되어 단단한 바위만 우뚝 솟은 외계 행성같은 들판, 손에 잡힐듯 떠있는 구름들을 지나고 다시 버스는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타카마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많이 기울어있었다. 아타카마도 해발 2400미터가 넘는 고지대지만 고산증세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었다. 인구 2000명 남짓한, 도시가 아니라 마을 수준인 아타카마는 사막 한가운데 위치해있어 황량했고, 바람이 불면 모래 먼지가 휘몰아쳤다.
숙소 예약을 미쳐 못한 탓에 부랴부랴 숙소를 잡고 마을 중심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물자가 부족한 탓인지, 마을이 여행자로부터 나오는 수익으로 유지되기 때문인지 식사 가격은 비쌌고, 맛은 없었다. 해가 지니 가로등도 없는 마을이 어둠에 잠겨서 스마트폰의 플래시에 의지해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밝혀야했다.
아타카마의 첫인상은 황량하고 거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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