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도 어김없이 맑고 새파란 하늘에 강렬한 햇살이 쏟아졌다. 초봄이라 숨막히는 더위와 햇살의 따가움은 덜했지만 강렬함은 그리스나 스페인보다 더했다. 오후에는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달의 계곡 투어에 나섰다.
마을 도심에 있는 여행사 입구에서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여행사의 승합차는 잠시 공원 입구에 멈춰 수속을 밟고나서 어느 건조하고 황량한 계곡 입구에 멈췄다. 해가 많이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에다 봄이었지만 워낙 햇살이 강렬해서 절벽 그늘에 자리를 잡고 가이드에게 설명을 들었다. 이 사막이 만들어지게 된 지질학적인 설명을 한참 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반쯤은 대충 알아듣고, 나머지 반은 짐작과 상상으로 메우면서 이해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야 인터넷을 찾아보면 되지만 지금 사막이 만들어진 이유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설명을 듣고나서, 한줄로 서서 좁은 계곡안으로 들어갔다.
활달하고 건강해 보였던 여자 가이드
계곡 사이를 트레킹하는데 폭이 무척 좁기 때문에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뒤에서는 느긋하게 기다려야했다. 분명 자신도 사진을 찍고 싶어질테니 앞사람이 더디다고 불평할 수는 없다.
계곡은 흙과 바위와 소금이 만들어낸 기둥과 절벽들이 기묘한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세계에서 달의 계곡으로 불리는 곳은 여러 곳이다. 지구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황량하고 기묘한 곳은 대부분 달과 연관된 단어를 갖다붙이는 것 같다. 볼리비아 라파즈 근교에도 달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어떤 곳은 혼자서도 몸을 잔뜩 구부려야 통과할 수 있을만큼 좁다.
동굴 같은 계곡을 통과해 위로 올라서면 달이라기 보다는 SF영화의 외계행성처럼 보이는 풍경이 나타난다. 조지 루카스 감독이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스타워즈를 찍었다는데 분위기로는 이곳이 더 지구가 아닌 곳처럼 느껴졌다.
짧은 계곡 트레킹을 마치면 다시 버스를 타고 아타카마 사막을 더욱 깊숙히 들어간다. 그곳은 어떤 식물도 자라지 않는, 모래와 덜 풍화된 바위밖에 없는 황량한 곳이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거대한 바위와 그 앞에 V자를 그린 거인의 손가락같은 바위
이 바위들은 왼쪽부터 공룡, 다음은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세번째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가장 오른쪽이 기도하는 소녀의 형상을 닮았다고 한다. 어찌보면 조금 비슷하기도 하고 약간 억지스럽기도 하다. 사실 각지에 있는 무언가와 비슷하다고 이름붙여진 바위들이 조금 과장스러운 점이 있다.
투어의 마지막은 지금까지 있었던 달의 계곡을 벗어나 위에서 계곡을 아래에서 내려다 볼 수 전망대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코스였다. 계곡에서 전망대까지 도착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기 때문에 해가 꽤 기울어서 계곡이 점차 붉게 물들고 있었다. 위에서 보니 이 황량한 계곡을 왜 달의 계곡이라고 이름 붙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달의 표면처럼 거칠고 황량했다.
사진으로는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지만 계곡에 있을 때는 엄청 커보였던 바위와 산들이 전망대에서는 작은 언덕처럼 보일만큼 전망대는 꽤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절벽으로 툭 튀어나온 바위는 항상 여행자들이 사진찍는 인기장소이다.
저물어가는 석양을 받아 바위가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금새 해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해가 사라진 지평선의 반대편 산자락은 어제처럼 진한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다시 봐도 희안한 광경이라고 감탄하고 있다가 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해가 저문쪽 지평선 부근은 이제 어두컴컴한 어둠이 내려앉았는데 반대편 지평선은 붉게 물들었다가 차츰 색깔이 변해갔다. 어떤 색인지 표현해보려해도 글솜씨가 부족한 나로서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아래 사진들을 보면 그때의 경이로움이 다시 느껴진다. 사진으로도 느껴지는 경이를 난생 처음 직접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좀 더 훌륭한 사진 솜씨로, 좀 더 나은 카메라 성능으로 남겨두지 못한게 아쉬울뿐이다. 다시 여행을 간다면 사진찍는 기술을 더 익히고, 그 솜씨의 부족함을 조금이라도 채워줄 수 있는 카메라를 가지고 가고 싶다.
아타카마에서의 마지막 밤은 곧 칠레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두 달 가까운 시간동안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경을 어러 번 넘으며 여행을 했다. 그리고, 내일 볼리비아로 넘어가면 이번 여행동안은 다시 아르헨티나나 칠레로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었다.
밥을 짓고 아껴둔 카레와 깻잎 통조림을 따서 만찬을 만들었다. 멘도사에서 사서 열흘동안 깨질까 조심조심 가지고 다녔던 와인도 꺼냈다. 늦은 저녁식사를 거하게 만들어먹고 숙소 마당에서 보니 온 하늘에 별이 가득차 있었다. 어디가 은하수고, 어느 별이 밝게 빛나는지 모를 정도로 그냥 하늘 전체에 별들이 가득했다.
움켜쥐고 있던 손을 펴야만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듯이, 떠나야만 알 수 있는 것과 볼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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