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추위에 떨며 잤더니 온몸이 뻐근하고 관절이 굳은 느낌이었다. 숙소에서 준비해주는 차를 마시며 몸에 온기를 돌게하고 몸을 풀었다. 고도가 워낙 높은 탓에 일부 사람들은 어지러움과 두통을 느끼기도 했지만 다행히 심한 고산병을 호소하는 사람은 없었다. 약한 고산병 증세를 느끼는 사람들은 코카잎을 씹거나 민트향이 나는 바세린을 콧구멍 주위에 발라서 조치했다.
남미 안데스를 여행하다보면 시장에서 코카잎을 팔기도 하고, 게스트하우스에도 코카잎을 배치해둔다. 약한 고산병을 느끼는 사람들은 코카잎을 우려 차로 마시거나 입에 넣고 질겅절겅 씹는데 원래 안데스에 사는 원주민들의 조치방법이라고 한다. 마약의 원료이기는 하지만 코카인은 엄청난 양의 코카잎을 정제해서 마약성분을 뽑은 것이기 때문에 소량의 코카잎을 씹는다고 해서 환각작용이 생기지는 않는다. 진통제나 마취제 같은 약들이 대량으로 몸에 주입되면 마약효과를 갖는 것과 같다.
불편한 잠자리였지만 같은 숙소에서 묵은 20대부터 70대의 여행자들은 곧 활기를 찾았다. 아침식사 후, 짐을 꾸려서 4륜구동 차량 지붕에 얻어서 묶고는 다시 투어를 시작했다.
두번째날 처음 도착한 곳은 사막 가운데서 풍화되고 있는 바위들이 늘어선 곳이었다.(장소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옛날 이 곳이 아직 바다였을 때 바닷속에 있던 바위인지, 거친 기후로 무른 부분은 풍화되고 단단한 부분만 남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모래로 된 사막 가운데 버섯모양의 작은 바위부터 커다란 바위까지 바위군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 유명한 Arbol de Piedra(Stone tree)라 불리는 바위
하지만 바위들이 만들어낸 모습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묘한 색상들이 만들어 낸 사막과 산의 풍경이었다. 밝은 노랑색부터 짙은 갈색까지 소위 누런색이라고 표현되는 모든 색들이 절묘하게 섞여 지구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이곳만의 독특한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제보다 날씨가 춥고 구름이 더 많았다. 해가 비치나 했다가 한순간 구름으로 뒤덮였다. 워낙 높은 지역이라 그런지 구름은 바로 머리 위를 지나가는 듯 했고, 간혹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다음 목적지는 Laguna Celeste였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Celeste는 '하늘의'라는 스페인어였다. Laguna Celeste라면 하늘에 닿을만큼 높은 곳에 있는 호수라는 의미쯤 되나보다. 이 의미에 맞게 이 호수는 해발 4500미터가 넘는 곳에 있다.
사실 사진만 보고 이 호수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앞서 여행했던 호수들은 그 색깔이 워낙 독특하니 대충 짐작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쉽게 이름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 호수는 위키를 한참 뒤져서야 찾을 수 있었다. 사진이 워낙 비슷하니 잘못 올려진게 아니라면 이 이름을 가진 호수가 맞을거다.
위키에서 Laguna Celeste를 검색하면 위 이미지가 나온다.
맑은 날에 찍은 사진인지 내가 찍은 사진보다 밝고 깨끗하지만 동일한 곳임이 틀림없다.
다음 호수도 위키에서 비슷한 호수를 찾아야 했다. 그 결과로 찾은 이름은 Laguna Hedionda(악취가 나는 호수) 였다. 이런 이름의 호수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수의 플라밍고가 있었다.
실제 쾌쾌한 유황 냄새가 나기도 했는데 더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를 보니 Laguna Hedionda라는 이름이 그냥 붙여지지는 않은 듯하다. 2박 3일 투어를 하는 동안 여러 호수에서 플라밍고를 봤지만 이 호수에서 가장 많은 플라밍고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이 호수는 플라밍고의 서식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똑딱이 카메라로 날아가는 플라밍고를 찍고 싶어서 여러차례 실패한 끝에 겨우...
아무것도 살것 같지않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소금호수(라기보다 진흙탕)에서 플라밍고는 뭔가를 계속해서 부리로 걸러 먹고 있었다. 아마도 부족한 소금기나 미네랄을 섭취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날 점심식사는 야외에서 했다. 따로 다니던 다른 여행사들의 차량도 멈춰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이 곳이 점심식사를 하는 암묵적인 장소인가보다. 운전사 아저씨는 차량 뒤에 전날 숙소에서 싸준 음식들을 풀고, 음료수를 준비했다. 여행자들은 준비된 음식을 각자 식판에 덜어 담고는 근처에 굴러다니는 돌을 끌어와 앉았다. 테이블도, 바람을 막을 벽도 없고, 음식도 썩 훌륭한 편은 아니지만 그런 것에 불만을 가질 여행자는 없었다. 평생 처음보는 대자연의 풍광 앞에서 이런 사소한 불편은 불만거리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점심식사 후에는 다시 한참을 달려 활화산인 오야구에(Ollague)가 보이는 계곡에 도착했다. 오야구에 산은 화산활동으로 봉우리가 없이 큰 분화구만 있는데도 높이가 5868m라고 한다. 이 계곡도 고도가 꽤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들 천천히 산책하거나 앉기 좋은 바위를 차지하고 주위 풍경을 감상했다.
산책하다보니 노란꽃이 핀 식물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 고도에서 살 수 있는 식물이라고는 가시덤불 같은 식물밖에 없었는데 그런 식물조차도 꽃이 피고 있었다. 모양이 거칠고 볼품없어도 당연히 꽃은 피울텐데 그런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활짝 피기 전인지, 이곳의 혹독한 기후에 적응했기 때문인지 꽃은 작고 꽃잎은 뾰족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꽃을 피우는 생명력이 놀랍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날 마지막으로 들렀던 곳은 이 높은 고원을 통과하고 있는 철길이었다.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지금도 열차가 달리는지 알지 못한다. 아름답다거나 특이하다기보다 이 높은 곳에 철길을 놓느라 고생했을 노동자들의 수고에 마음이 엄숙해졌다.
이로써 둘째날까지 일정을 마쳤다. 오늘 묵을 숙소는 어제보다 훨씬 건물이 크고 단단해 보였다. 고도가 많이 낮아져서인지 주위도 어제보다는 덜 황량했다. 게다가 이 숙소에서는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물이 워낙 귀하기 때문에 샤워비를 따로 받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다 밖으로 나왔다. 오늘도 석양이 멋지게 물들고 있었다. 사진으로 보던 우유니 소금사막을 기대하며 투어를 시작했는데 벌써 충분히 만족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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