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보다는 훨씬 나은 잠자리였지만 딱딱한 소금침대 위에서 자는게 그리 편할 수는 없었다. 어스름할 때 잠에서 깨어버린 김에 일출이나 볼까하고 숙소 앞으로 나왔더니 시간에 맞았는지 동쪽 지평선이 붉그스레 밝아오고 있었다.





까끌한 입속으로 숙소에서 차려 준 아침식사를 밀어넣은 후, 다시 차를 타고 셋째날 투어를 시작했다. 오늘 첫번째 목적지는 투어의 클라이막스인 우유니 소금사막이었다.


여행중에 만난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칠레 아타카마쪽으로 투어를 했던 여행자들은 첫날 투어를 시작하자마자 우유니 소금사막을 보고나니 그 다음 코스들이 시시했다는 말을 했었다. 나는 반대 방향으로 투어를 하면서 첫째, 둘째날 봤던 호수와 사막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독특해서 소금사막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다.


길도, 차선도 없는 흰색으로 펼쳐진 드넓은 소금사막을 사륜구동 SUV가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방향을 알리는 것은 투어하는 차들이 다니면서 만들어낸 바퀴자국뿐이고, 이마저도 우기가 되어 소금사막에 물이 차면 다 없어질테지만 이곳을 수없이 다녔을 가이드의 감과 지평선에 희미하게 보이는 산들의 모습만으로도 방향을 찾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나보다. 한참을 달린 차는 정확하게 소금사막 가운데 있는 물고기 섬(Isla Incahuasi)에 도착했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해발 3656m에 위치해 있으며, 우리나라 경기도보다 조금 더 넓다. 이 흰색으로만 가득 찬 넓은 평원 가운데 물고기의 섬이라 이름붙은, 선인장들이 가득한 조그만 산이 있는 것이다.  Isla Incahuasi는 스페인어 Isla(섬)와 Inca라는 단어에다가 남미 토착민들의 Quechua어로 집을 뜻하는 wasi라는 말에서 파생된 huasi가 합쳐진 말로 '잉카의 집'이라는 뜻인데, 이 곳의 모양이 물고기를 닮았다고 하여 물고기 섬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위키백과 참고)



좁은 곳에 이렇게나 크고 많은 선인장들이 모여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 섬 꼭대기까지 걸어서 오를 수 있다. 

높지 않지만 출발지점이 이미 3600미터가 넘는 곳이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힘들다.

사진 왼쪽 둥그런 케익모양의 물건은 여기서 파낸 소금덩어리로 만든 탁자다.



멀리서 본 선인장은 부드러운 털로 뒤덮인 커다란 강아지풀 같았다. 윗부분은 하얗고 아랫부분은 누르스름한데 선인장 가시들이 부드럽고 부들부들해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본 선인장은 잘못 몸에 닿았다가는 크게 상처를 입을 수도 있을만큼 딱딱하고 커다란 가시잎으로 뒤덮여 있었다.


정말 딱딱하고 길고 뾰족하다.


사방 수십킬로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소금밖에는 없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념품이나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것 같다. 예전에는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식용소금을 캐서 팔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국가가 지정한 회사만 채굴이 가능하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모양도 몽글몽글한 것이, 너무나 부드러울것 같다.


선인장으로 만든 덧창. 구멍이 숭숭 뚫린 나무가 뭘까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선인장이었다.



봄이 한창인지 선인장도 이 척박한 곳에서 번식을 위한 꽃망울을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 선인장 한그루에 이렇게나 여러 송이의 꽃이 피는 줄 미쳐 몰랐다.


분홍색 꽃망울이 아직 단단히 닫혀 있었지만 활짝 피면 꽤나 화려할 것 같았다.




대부분의 선인장은 크기가 비슷비슷했지만 특히나 큰 선인장들이 몇몇 있었다. 이 날 본 가장 큰 선인장은 밑에서 찍은 사람 키와 비교하니 어림잡아 8미터가 훨씬 넘을 것 같았다.


이 날 본 가장 커다란 선인장. 원래 알던 선인장 크기가 아니다.


꼭대기에 오를 때는 보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내려오다가 쓰러진 커다란 선인장 앞에 있는 조그만 표지판을 발견했다. CACTU MILENARIO(천년된 선인장) 이란다. 길이가 12.3m, 나이는 자그마치 1203세, 2007년에 죽었다는 내용이다. 살아있었다면 어마어마한 크기였을텐데 5년전에 아쉽게도 수명을 다해버렸다.


선인장도 여러 종류와 크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무만한 크기로 1천년을 넘게 사는 경우도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겉부분은 썩어 없어지고 있었지만 단단한 내부는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앞에서 봤던 덧창도 이렇게 선인장의 단단한 내부 목질을 이용해 만든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도, 휴지통도 모두 선인장으로 만들어져있다.


1200년이나 살았던 선인장은 죽었지만 새로 자라나는 조그만 선인장들이 이어서 열심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Isla Incahuasi를 떠나 차를 소금사막 한가운데 세웠다. 사방은 바람소리를 제외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건기라 하얀 바닥에는 우기에 고인 물이 증발되며 남긴 벌집 모양의 무늬만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다른 차에 탄 20대의 팔팔한 청춘들은 하얀 사막을 배경으로 원근감이 사라진 재밌는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몇 컷의 사진을 찍었지만 곧 시들해졌다. 우리 차에 같이 탄 어르신들은 조용히 대화하거나 눈을 감고 소금사막에 누웠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지 사진을 찍기보다 조용히 이 곳의 분위기를 느끼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소금사막은 우기(12월~3월)에 비가 오면 사막 전체에 얕게 물이 고인다고 한다. 그때는 잔잔한 물위에 하늘이 그대로 반영되어 보이는데 그 모습이 이 소금사막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 불리는 풍경이다. 나도 처음에 그 사진을 보고 우유니에 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소금사막에서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Hotel del Sal(소금호텔)이라는 곳이었다. 예전에는 우유니 소금사막 투어를 하는 여행자들이 묵었던 곳이었지만 오염수등의 문제로 얼마전부터 숙박기능은 하지 않고 기념품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몇 년전, 한창 세계여행을 꿈꾸며 이런저런 블로그와 사이트를 배회하던 시절에 봤던 곳이었는데 숙박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환경보존을 위한 일이라고 하니 오히려 돈벌이보다 보존에 더 우선한 이들의 정책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앞으로 여러가지 문제점을 보완해서 여행자에게 평생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어 줄 숙소로 다시 오픈했으면 좋겠다.



이 곳에는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자기나라의 국기를 게양해 놓은 곳이 있다. 원래는 이곳이 볼리비아의 국토임을 알 수 있도록 볼리비아 국기만 걸려있었을테지만 언제부턴가 여행자들이 자신들의 국기를 같이 게양하기 시작한 것 같다. 내가 갔을 땐 우리나라 태국기도 크고 높게 걸려 있었다. 워낙 바람이 센 곳이라 몇 달만 지나면 닳아 없어지겠지만, 각국의 국기들을 게양해 놓은 것이 단지 자신들의 출신국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여행자들간의 화합과 이해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내부에서는 소박한 기념품과 간단한 식음료를 팔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숙박객들이 이용했을 소금으로 만든 식탁, 안데스에 사는 동물들을 조각해 놓은 것들이 있다.



사람들이 기념품을 구경하고 화장실을 이용하느라 분주할 때, 밖으로 나오니 같은 차로 여행하고 있던 할아버지가 앉아 계셔서 옆에 가서 앉으니 조용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본인은 조용하지만 활발한 아내를 묵묵히 챙겨주던 자상함을 가졌으며, 70세의 나이임에도 양보를 당연히 여기지않고 항상 감사함을 나타내던 분이셨다. 이때도 조용한 목소리로 2박 3일간의 고마움과 나의 남은 인생에 축복을 기원해 주셨다.


아직은 많은 나이가 아니어서 그런지 젊음이 부러웠던 적 보다는 멋있게 나이드신 분들을 보고 저렇게 나이들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고상하고 깊은 지식이나 식견도 아니다.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외모와 멋들어진 옷차림, 경제적인 여유로움은 더더욱 아니다.



우유니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철도 무덤이라는 곳이었다. 19세기에 영국의 철도회사가 건설한 철도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버려진 기차와 철길이 놓여있는 곳이었다. 근대 열강들이 세계 각국에서 수탈을 일삼을 때, 이곳에서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 코스라 젊은 친구들은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 투어가 끝나면 다들 자기 갈 길로 헤어지거나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동행을 하기도 한다.


철도 무덤을 마지막으로 모든 투어가 끝이났다. 우유니 시내에 있는 여행사로 돌아와 짐을 내리고, 2박 3일동안 같이 투어했던 여행자들끼리 작별 인사를 했다. 다른 차였지만 같이 다녔던 젊은 친구들도 모두 착하고 예의가 발라서 작별 인사를 하고 앞으로 안녕을 빌어주었다. 같은 차를 타고 다녔던 미국 노부부와 브라질 중년부부와는 너무 아쉬워서 작별인사도 여러번 해야했다. 이런 좋은 사람들과 투어를 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으며, 그래서 이 우유니 투어가 너무나 특별하게 남을 수 있었다.


연락할 방법은 없지만 요즘도 가끔 생각나면 모두들 건강하시길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재밌었던 것은 나이 많은 그룹을 데리고 운전했던 가이드와 젊은 그룹이 탄 차를 운전했던 가이드가 마지막에 희비가 엇갈렸던 것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가이드하느라 혼자 이것저것 챙겨야했던 우리 차의 가이드는 투어내내 얼굴에 힘든 내색이 가득했고, 반면 젊은 그룹쪽 가이드는 젊은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신나게 투어를 했었다. 그런데, 투어를 마치고 가이드에게 팁을 줄 때 아무래도 나이든 그룹의 주머니 사정이 낫다보니 이쪽 가이드의 팁이 훨씬 많았던 것이다. 얼굴 표정이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나이든 그룹의 가이드 얼굴은 너무 신이 나서 붉게 상기될 지경이고, 반대편 가이드는 속이 꽤나 쓰린 표정이었다.


우유니는 작은 도시여서 여기서 딱히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우유니 투어를 마친 여행자들은 당일 바로 큰 도시인 수크레나 포토시로 가는 버스를 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하루 쉬고 다음날 이동하기로 했다. 꽉차가는 30대의 체력을 과신해서는 안된다.


게스트하우스를 잡고,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갔다. 그동안 부실했던 영양을 보충할 요량으로 맥주와 고기요리를 시켰다. 고기요리는 대부분 닭이나 돼지지만 이 곳에는 소와 양, 심지어 알파카 요리도 있었다. 과감하게 알파카 스테이크에 도전했고, 나온 것이 아래 사진이다.


보기에는 꽤나 먹음직했다. 하지만 한입 먹고는 바로 도전을 후회할 수 밖에 없었는데 소위 말하는 누린내가 너무 심했다. 지금까지 어떤 양고기에도 누린내 때문에 남긴적이 없는 식성인데도 불구하고 이 알파카 요리는 결국 다 먹을 수 없었다. 알파카 스테이크는 나를 좌절시킨 최초의 고기요리가 되었다.



우유니 투어는 1년간의 여행에서 했던 여러가지 투어들 중에서 최고에 속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나에게는 소금사막보다 그 전에 봤던 에두아르도 아바로아 국립공원의 여러 풍광들이 더 마음에 다가왔다. 소금사막만 다녀오는 반나절 투어도 있는데, 2박 3일 투어가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걱정으로 이 반나절 투어를 선택하는 여행자들도 꽤 있었다. 혹시 그런 이유로 고민하는 여행자가 있다면 70대의 어르신들도 할 수 있는 투어이니 그냥 해보라고, 게다가 당신은 나처럼 소금사막보다는 그외 기타등등이 더욱 강렬하게 인상에 남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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