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니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 수크레로 가기로 했다. 우유니는 볼리비아에서도 작은 도시라 그런지 수크레로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일단 포토시까지 가는 버스에 올랐다. 어제 버스를 예약하면서 제발 좋은 버스이기를 빌었지만 도착한 곳에 서 있는 버스는 매우 낡아서 아무 자동차 부속이나 가져다 끼운 듯한 모습이었다. 제발 포토시까지 별일없이 가 주기만을 바랐다.
지금까지 여행했던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는 전체 인구에서 전통 남미 인디오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낮았었는데 우유니에서는 얼굴이나 옷차림을 보니 대부분이 인디오들이었다. 왠지 이제야 본격적인 안데스 여행을 시작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내를 다니며 보니 은행 ATM기 앞을 산탄총을 든 무장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남미에서 최빈국에 속하는 볼리비아는 범죄율이 높은 걸까, 치안이 안좋은가 조금 걱정도 됐었다.
한참을 달린 버스는 점심때가 다 되어서 어느 동네 조그만 식당 앞에 멈췄다. 운전사도 휴식을 취할겸 식사를 하고 가는 듯 싶었지만 좀처럼 식욕이 나지 않았다. 버스 안은 좌석뿐만 아니라 통로까지 현지인들로 가득 찼는데 그러다보니 몇몇 이들의 몸에서 나는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가 너무 심해서 비위는 누구 못지않다고 생각했음에도 속이 좀 불편했다.
그래도 배를 곯으며 갈 수는 없다 싶어서 옆에서 먹고 있는 음식들 중에 괜찮다 싶은 따끈한 스프를 시켰다. 스프는 맑은 고깃국물에 감자와 당근 같은 야채와 보리 같이 생긴 곡물이 들어가 있었는데 예상외로 이게 입맛에 딱 맞았다. 한그릇을 쭉 들이켜니 미식거리는 속이 달래지며 정신이 돌아왔다.
우리나라는 국이나 찌개같은 국물요리가 많은데 여행을 해보면 동남아를 제외하고는 국물요리를 좀처럼 찾기 어렵다. 국물에 길들여진 한국사람들은 몸에 한기가 돌거나 입맛이 없을 땐 뜨끈한 국물을 마셔줘야 하는데 이런 요리가 없으니 아쉬웠었다. 그런데, 볼리비아에서 그런 국물요리를 만나니 참 반가웠다.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그제야 주변을 돌아볼 정신이 생겼다. 이 곳도 해발 3000미터는 가뿐히 넘는 곳이라 하늘이 눈부시게 파랬다. 고도가 높으니 공기는 서늘하지만 햇살은 눈부시게 밝았다.
이 낡은 버스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느 나라에서 왔을지 알 길이 없다.
다시 버스가 출발했지만 속이 편안해진데다 코가 냄새에 길들여져서 오전처럼 속이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뱃속이 든든해야 뭐든 할 수 있는 법인가보다. 속이 편안해지니 이제 창밖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칠고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안데스 풍경은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보던 것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중간중간 보이는 마을과 집들의 모습은 앞선 두 나라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더 빈곤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버스는 우리네 시골 버스와 마찬가지였다. 버스에 탄 승객 누군가가 내린다고 하면 그곳이 정류장이 된다. 적당히 길가에 세우고 짐을 내려준다. 옛날 우리네 시골 완행버스하고 똑같아서 불편하고 느리지만 또한 정겹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멈추고 운전사가 차에서 내렸다. 처음엔 소변이 급해서 그런가 생각하고 기다렸는데 운전사가 돌아오기는 커녕 다시 몇몇 남자들이 내렸다. 시간이 더 지체되자 나도 궁금해서 내려봤더니 바퀴에 문제가 생겼는지 몇 사람이 달라붙어 끙끙대고 있었다. 이제 배낭여행 8개월 차인데 조급히 생각해봐야 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나도 길가에 시원하게 소변을 보고나서 타이어 교체하는 걸 구경했다.
아래 사진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듯이 버스 크기에 비해서 타이어 크기가 무척 작다. 차는 크고 바퀴는 작으니 커다란 남자가 여자 하이힐을 신고 뛰는 격이다. 속도를 내기도 힘들고(물론 낡아서 속력을 낼 수도 없겠지만) 급히 제동하기도 어렵겠지만 이네들은 늘상 이러고 다녔을테니 도착만 한다면 별일도 아닐터다.
우여곡절 끝에 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탄 좌석은 버스 앞쪽에서 두번째였고, 그 앞좌석에는 젊은, 젊다못해 어려보이는 인디오 부부가 아기를 안고 타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멀끔히 잘 생겼지만 얼굴은 거칠고 피로가 묻어 있었다. 포토시로 돈을 벌러 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달달한게 먹고 싶어 샀던 추파춥스가 주머니에 만져지기에 슬그머니 아기에게 건넸다. 엄마, 아빠가 놀란 얼굴로 바라봤다.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니 젊은 아빠가 감사의 표시인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며칠간 이 부부가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안데스 고산지대의 거친 바람과 자외선에 화장품이라고는 로션도 발라 본적이 없을 것 같은 그 얼굴이 자꾸만 생각났던 건 수십년 전 우리 부모들의 모습과 겹쳐 보여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가끔 생각날때마다 그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불편한 버스를 타고 드디어 포토시에 닿았다. 사실 동남아에서 탓던 버스에 비해 그리 불편할 것도 없는데 벌써 세계 최고 수준의 남미 버스에 길들여진 것인지도 몰랐다. 포토시 버스터미널에서 다시 수크레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면 밤늦게나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적어도 오늘은 더 이상 불편한 버스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미리 봐둔대로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포토시와 수크레 사이를 왕복하는 택시를 찾았다.
부르는 값이 듣던 것보다 꽤 비싸서 흥정을 해도 차이가 적지 않았다. 어떡하나 망설일때 어찌어찌 현지인들과 섞여서 타게 되었다.(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가격이 적당히 떨어졌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가는 택시를 타는게 낫겠다 싶어서 타긴했는데 문제는 같이 탄 사람들이 너무 뚱뚱했다. 소형 자동차 크기에 성인 다섯 사람이 탔는데 나도 작은 몸집은 아니지만 그 중 두 사람은 좀 지나쳤다. 뭐 피하려다 뭐 맞는다고 편하게 가려고 택시를 탓다가 짐짝처럼 껴서 두세시간을 시달려야 했다.
구름이 손에 잡힐듯하다. 평야같은 이곳이 해발 3,4000미터로 보이진 않는다.
그날은 영 운이 좋지않은 날이었다. 버스운도, 택시운도, 같이 동승한 승객운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은 항상 섞여 있지 나쁘기만한 것은 없는 것 같다. 현지 사람들과 부대끼는 여행도 해봤고, 버스 타이어 가는 것도 구경했다. 어렵게 온 수크레는 생각보다 멋진 곳이었고, 예약한 숙소도 가격에 비해서는 완전 최고였으며, 늦은 저녁을 먹으려고 대충 들어간 레스토랑도 훌륭했다.
볼리비아 여행의 시작이다.
피스코 사워와 볼리비악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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