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900만 명에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120위권으로 3000불이 채 되지 않는 볼리비아는 남미 최빈국중 하나다. 16세기 초부터 시작된 스페인의 오랜 지배와 억압 속에서도 끊임없이 독립을 꿈꾸었으며, 그 끝에 19세기 초 300년만에 독립을 하게 되었으나, 칠레와의 전쟁에서 져서 태평양 연안을 빼앗기는 바람에 내륙국으로 전락한 비운의 국가이다.(하지만 아직도 볼리비아 해군은 국토회복을 꿈꾸며 티티카카 호수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볼리비아는 행정상의 수도(라파스)와 사법상의 수도(수크레)로 나뉘어있는데 해발 3600미터가 넘는 곳에 있는 라파스는 세계 모든 국가들의 수도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수도이며, 수크레도 2800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해 있다.


1500년대 수크레 근교의 포토시에서 엄청난 규모의 은광이 발견되었고, 은의 발굴을 위해 동원된 인디오들은 고된 노동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며 죽어갔으나 이 은들은 전량 스페인으로 보내져서 당시 스페인이 세계 최강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수크레는 스페인이 이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건설한 도시로, 그 당시에 지어진 오래된 건축물들과 하얀색으로 칠해진 도심은 199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은광의 막대한 은은 한번도 볼리비아 국민들을 위해 쓰여지지 못하고 이미 오래전 고갈되었다. 몇달 전 스페인 성당에서 봤던 은으로 만든 성물이나 제기들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인디오들의 목숨과 바꾼 은이었다고 생각하니 그 값어치가 하찮게 느껴졌다.


수크레에서 묵었던 숙소는 수크레 대성당이 있는 Plaza 25 de Mayo (5월 25일 광장)근처에 있는 꽤 깨끗하고 훌륭한 호텔이었다. 우유니 투어에서 묻은 먼지와 때를 벗길 수 있는 욕실이 필요했으며, 이틀만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 받지않고 쉬고 싶었기 때문에 거금을 들여서 별 네개짜리 호텔을 찾았다. 그럼에도 볼리비아는 물가가 무척 쌌기 때문에 이런 훌륭한 호텔도 유럽의 호스텔 가격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따뜻한 물로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먼지 가득한 옷들을 근처 세탁소에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우유니에서는 쌀쌀하고 거칠었던 바람이 고도가 2000미터나 낮은 수크레에서는 따뜻하고 온화하게 바뀌어 있었다. Plaza 25 de Mayo 광장에서부터 수크레 구경을 시작했다.



볼리비아 국민의 대다수가 인디오임에도 이들의 언어는 대부분 스페인어이며, 종교는 카톨릭이다. 아직도 극소수의 백인들이 대부분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지만 지금 볼리비아의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는 볼리비아 최초의 인디오 출신 국가원수이며 원주민과 빈민들을 위한 정치로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차기 대통령까지 기조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Plaza 25 de Mayo 광장의 한쪽

정면의 목조 발코니가 있는 건물이 이틀 뒤에 갔던 Casa De La Libertad(자유의 집)이다.




Corte Suprema de Justicia (볼리비아 대법원)


Parque Bolivar (볼리바르 공원)


수크레 시내를 천천히 걸으며 내려오다보니 골목 곳곳이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조금 더 내려오다보니 하얀 건물의 볼리비아 대법원이 나왔다. 서울에서 대법원이 있는 서초역 부근에 변호사 사무실이 많은 것과 같은 이유인 것이다. 대법원 건너 맞은 편에는 볼리바르 공원이 있었다. 폭이 좁고 길쭉한 모양의 이 공원은 여러가지 볼거리가 많다거나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오히려 소박해서 편안히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남미를 여행하다보면 주요 도시에는 볼리바르나 산 마르틴이라는 이름을 가진 광장, 공원이 반드시 있다. 시몬 볼리바르와 호세 데 산 마르틴은 남미 독립의 영웅, 해방자,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볼리비아는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으로 국명을 정했으며, 볼리바르의 절친이며 독립운동의 동지였던 안토니오 호세 데 수크레의 이름을 따서 입법 수도의 이름을 지었다.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이들에 대한 존경이 절로 우러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후대들이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교육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볼리비아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국력이 강성함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분들에 대한 대우나 존경은 이들보다 못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Parque Bolivar 공원에서 산 군것질 거리




시장에서 다양한 열대 과일들을 구경하고, 상점을 기웃거리면서 다시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왔다. 수크레에서는 이틀만 머무를 생각이었기 때문에 라파스로 가는 야간 버스표를 사기 위해 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비록 봉고차나 미니버스라 하더라도 남미에서 시내버스가 있다는 것은 도시가 꽤 크고 정비가 잘된 도시라는 의미다. 낯선 도시에서 처음 시내버스를 탈 때는 왠지 조금 긴장이 되는데 낯선 동양인의 승차가 현지인들의 주목을 끌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버스가 과연 목적지로 가는 버스인지, 내릴 곳을 지나치지는 않을지 항상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몇 번 버스를 타고 나면 어느새 창밖 풍경을 보거나 나를 보고 있는 현지인들과 눈을 맞출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즈음 되면 낯선 도시가 점점 친근해지고 좋아지기 시작한다.






내일 라파스로 떠나는 버스표를 사고 돌아오니 날씨가 무척 더웠고, 투어의 피로가 다 풀리지 않아선지  피곤해졌다. 호텔에서 그날 조금 저렴하게 제공하는 Menu del Dia와 맥주를 시켜 먹고 한숨 자다가 저녁이 되어 선선할 때쯤에 나왔다.






저녁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Plaza 25 de Mayo에서 시간을 보냈다. 광장을 천천히 한쪽씩 구경하고나서,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지겨워지면 담배를 한대 폈다. 여행을 다니며 매일매시간 쪼개서 도시를 샅샅이 훑고 다닐 수는 없다. 이렇게 무의미한듯 보내는 시간이 나중에는 오히려 기억에 남았다.


저녁은 어제 가격대비 음식이 훌륭하다고 느꼈던 그 레스토랑에 다시 가서 먹었다. 과연 오늘 시킨 음식도 만족스러웠다. 볼리비아에서 올리브를 제법 올린 샐러드와 따뜻하고 바삭한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를 먹으며 만족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지금까지 거쳐 온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남미의 도시답게 붐비지만 깨끗한 도시, 그다지 걱정스럽지 않은 치안, 다양한 길거리 음식과 저렴한 물가, 친절한 볼리비아 사람들... 수크레만 그런건지 볼리비아가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이틀만 머무르고 떠나야하는 이 도시가 단 하루만에 좋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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