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저녁에는 라파스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타야했기 때문에 수크레의 명소 몇 군데를 느긋하게 둘러보기로 했다.
스페인 점령기부터 La Plata, Charcas, Chuquisaca 등으로 불리던 이 도시는 결국, 시몬 볼리바르와 함께 남미의 여러 국가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키고 30살이 되기 전에 국가 최고 지도층에 올랐으나 권력이나 정치욕이 없었던, 그래서 35살에 암살당하고만 위대한 독립운동가 안토니오 호세 데 수크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이곳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나 콜롬비아 등 남미 곳곳에 수크레의 이름을 행정구역으로 하는 주와 시가 있다.)
스페인에 의해 점령되고 개발된 도시여서인지 수크레의 도로는 좁지만 곧게 이어져있으며, 도시 전체가 바둑판 모양으로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다. 게다가 도심 대부분의 집들은 흰벽에 갈색의 기와가 얹어져 있어 스페인의 작은 도시를 연상시켰다.(이 흰색의 벽을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시정부에서 흰페인트를 제공하고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길거리나 건축물은 스페인의 도시를 연상시키지만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디오이거나 인디오와 백인의 혼혈이다.
COPA DE NIEVE라 쓰여진 수레에서 뭔가를 팔고 있는 인디오 여인. 수레에 있는 기계가 우리의 빙수기계와 거의 흡사했다. Cup of Ice(Snow)라니 얼음을 갈아서 색소를 얹어 파는 것 같았다.
길에서 가방을 맨 십대 소녀들이 지나갔다. 교복인지 모두들 흰색 원피스 같은 것을 입고 있어서 몰래 사진을 찍다가 뒤돌아 본 소녀에게 딱 걸렸다.
어느덧 점심때가 되어 꽤 분위기 있어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물가가 싸다는 것은 여행자에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물가가 비싼 곳에서 매번 미리 조사하고, 가능한 비용인지 판단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이곳에서는 없다. 먹어보고 싶으면 먹고, 보고 싶으면 볼 수 있다. 다만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더 가지려 욕심을 부린다면 결국 혼자서는 질 수 없는 짐에 눌려 어디로든 갈 수 없게 되어버린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인생의 농밀한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수크레 대성당 옆을 전통복장을 한 인디오 여인이 지나가고 있다.
점심식사를 하고 Museo Colonial Charcas를 찾아갔더니 점심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았다. 수백년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스페인의 시에스타 풍습까지 받아들였는지 남미 곳곳에서 점심시간이 매우 긴 경우가 많았다.
문 앞에 먼저 온 여행자가 박물관 문이 다시 열리길 기다리며 보도에 앉아있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서 수크레 시내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을 향해 걸었다.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워낙 구역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지도만 보고도 찾는게 어렵지 않았다. 가다가 흥미로운게 있으면 멈춰서 구경하고 사진 찍으며 천천히 오르다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어느 길 벽에 있었던 타일에 그린 수크레 지도. 가운데 녹색의 방사상으로 길이 난 곳이 Plaza 25 de Mayo다. 화려하거나 잘 만든 지도는 아니지만 손으로 그린 듯 소박한 모양새가 마음에 들었다.
언덕에는 수도원(La Recoleta)가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아케이드처럼 생긴 곳으로 가면 시내전경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시내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아케이드 밑으로는 음료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 거기서 볼리비아 맥주 Pacena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La Recoleta
올랐던 길과 다른 방향으로 내려오다보니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기념품을 파는 가판들이 늘어서 있었다. 기념품의 대부분은 남미 인디오들의 전통적인 색상과 무늬로 된 가방과 옷감들이었는데 그 아래 계단에 인디오 소년이 앉아서 실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동남아에서부터 봐오던 모습이지만 절대 적응하긴 어렵다. 내가 잘나서, 더 노력했기 때문에 지구 반대편까지 올 기회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좋은 곳에서, 좋은 환경에 태어난 덕분이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이 소년에게 언젠가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 있기를,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해가 기울어지는 언덕길을 천천히 걸어서 내려오며 생각하니 점점 수크레가 마음에 들었다. 스페인어 강습을 한다는 벽에 붙은 쪽지를 보니 여기서 머물며 스페인어를 배워볼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늘밤 떠나야 하는게 조금 아쉬워졌다.
사흘간 좋은 가격에 훌륭한 저녁식사를 책임지고, 축구경기까지 보여주었던 레스토랑, Napolitana
호텔에 맡겨둔 짐을 찾아서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도착한 버스 터미널은 뭔가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사람들은 많았는데 정작 떠나는 버스는 거의 없었다. 표를 예약한 버스회사에 물어보니 파업중이라 버스가 다닐 수가 없단다. 버스회사가 파업을 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군가가 파업을 해서 도로를 점거해버린 것 같았다. 여행은 예상치 못한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불시에 당황스럽고 곤란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터미널에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서양 커플이 말을 걸어왔다. 오늘 버스가 오진 않을 것 같으니 자기들이 찾은 호스텔로 가는게 어떠냐면서 택시비를 나눠서 내자고 제안했다. 아직 어디서 묵을지 찾지도 못했는데 숙소도 찾고 택시비까지 절약할 수 있다면 거절 할 수가 없다. 아니, 이런 기회는 절대 거절해서는 안된다. (제안을 받았다고 아무에게나 응해서는 안되지만 이 커플들은 정말 버스를 타지못한 배낭여행자였기 때문에 의심없이 따라간 것이다.)
이 착한 커플은 독일 여행자들이었다. 이들이 택시비 몇 푼(해봐야 1,2천원이었을거다) 아끼려고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보아하니 자기들처럼 버스를 타지못한 여행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그런 제안을 했던 것이다. 이튿날 이른 새벽, 이들이 호스텔에서 나갈 때도 자는 나를 깨우지 않기 위해 배낭과 짐을 주섬주섬 들고 복도에 나가서 짐을 꾸렸다. 전날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몇 마디 나누지 않은 인연이지만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마음이 무척 기쁘고, 여행은 즐거워진다.
버스도 없이 어두컴컴했던 수크레의 버스터미널
떠나기가 조금 아쉬웠던 수크레에서 강제로 더 묵게 되었다. 생각지 못한 파업은 계획을 어긋나게 만들고, 잠시 당황스러움과 곤란함을 주었지만 덕분에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좋았던 수크레에 조금 더 머물 수 있게 만들었다. 나쁘기만 한 일은 없고, 좋기만 한 일도 없다는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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