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으로 수크레에 발이 묶였지만 마음이 급하진 않았다. 굳이 수크레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도 아니었고, 정해져있는 일정이, 돌아가야 할 날짜가 임박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먼저 묵었던 훌륭한 호텔에서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로 옮겼지만 전날의 친절한 독일커플 덕분에 마음 편히 묵을 수 있는 좋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 수 있었다.
오전에는 버스터미널에 가서 버스가 언제쯤 다시 다닐지 알아보고 나서(여전히 파업중), 길거리 음식을 사먹기도 하고, 시장구경도 하며 수크레 시내 이곳저곳 발길 닿는대로 다녔다.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길거리 음식이 가장 많은 곳이라 더 맘에 들었다. 유럽이나 다른 남미국가에서는 찾을 수 없는 길거리 음식이 유독 볼리비아에서 많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상당수가 빈곤층인 볼리비아 사람들이 적은 돈으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점심으로 먹었던 고기튀김과 감자와 밥
간이 싱거워서 입맛에 잘 맛지는 않았다는 것은 배부른 소리, 다 먹는다.
나름 잘 꾸며진 레스토랑은 붐비진 않았지만 꾸준히 현지인들이 들어와서 식사를 하고 갔다.
남미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차종은 폭스바겐의 구형 비틀이다. 구형 비틀이 마지막으로 생산된 곳이 멕시코라 했던가... 여튼, 아직도 굴러다니는게 신기한 낡은 비틀부터 깨끗하게 잘 관리된 멀쩡한 비틀까지 각종 색깔의 수많은 비틀들이 남미의 도로를 누비고 있다. 자꾸보다보니 구형 비틀의 디자인이 아직도 현대의 자동차에 전혀 뒤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신형은 단순화한 디자인 때문에 금방 질리는 느낌인데 구형은 볼 수록 매력있었다.
걷다보니 Plaza 25 de Mayo 광장 한켠에 Casa de la Libertad가 자리하고 있었다. 남미 인디오들의 독립운동 역사도 모른채 처음에는 가벼운 생각으로 들어게 되었다.
이곳은 18세기 스페인으로 독립하기 위해 시도하다 실패하거나 처형되었던 아마루, 카타리, 아파사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었다. 이들은 잉카의 후손으로서 식민통치에 저항한 남미의 독립운동가들로 그들의 독립운동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후 백수십년이 지나, 시몬 볼리바르나 수크레에 의해 남미의 여러나라가 차례로 독립되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볼리바르나 수크레는 백인으로 이들의 선조는 유럽에서 건너 온 사람들이다.
인디오로서 독립을 시도한 이들에 대한 실제적인 유물은 찾아볼 수 없고, 스페인어로 쓰여진 문서나 그림에 겨우 이들의 행적이 남아있다. 전시된 설명을 하나하나 읽어보기에는 너무 양이 많아서 대충 살펴보고 짐작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남미의 독립이 2,3백년 전부터 시작된 오랜 역사이며, 어느 순간 때가 되었기에 쟁취할 수 있었던게 아니라 수많은 인디오들이 흘린 피 위에서야 얻게 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투팍 아마루 2세 (출처, 위키백과)
쿠스코 광장에서 집행된 투팍 아마루 2세의 거열(오마분시)형 (출처, 위키백과)
투팍 카타리의 초상 (출처, 위키백과)
실제 당시의 유물이나 사실적인 조형물은 없지만 나처럼 남미의 역사를 잘 모르는 여행자라면 꼭 한번 둘러볼만 한 곳이었다. 과거 세계 강대국에 의해 벌어졌던 수탈과 핍박의 역사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더욱 고도화된 방법으로 행해지고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가 누리는 것들이 그런 방법으로 얻어지는 것은 없는지 생각하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다음으로 간 곳은 근처 시장이었다. 이 시장은 도심과 가까워서 그런지 실내에 위치해 있고, 가게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볼리비아의 시장이라고 옛날 시골 오일장을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세상은 항상 내 예상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몇몇 과일들을 제외하고 이름모를 열대과일들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다.
좀 더 머물 계획이었다면 이런저런 과일들을 사다가 맛보고 싶었다.
남미의 시장에서는 육류를 가판에 넣어놓거나 걸어놓고 판다. 우리네 정육점에 있는 냉장고는 찾아보기 어려운데도 위생에 문제가 없는게 신기했다. 아마도 그날 팔리는 만큼만 가져다 놓는 것이려니 생각했었는데, 며칠전 여행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 브라질 북부편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거기 나온 정육점 주인의 대답은 '오후 2시면 다 팔려요'였다. 역시나 팔 수 있는 만큼 파는게 정답이었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 하지 않는 것,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서로가 행복해지는 지름길인가보다.
독일 커플의 소개로 오게 된 게스트하우스의 침실
보통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이층침대가 늘어선 구조가 아니라 넓고 쾌적했다.
매트리스가 좀 심하게 꺼져있는걸 제외하고는...
다음날에도 버스 터미널에 가서 버스가 다니는지 확인해야 했다. 딱히 날짜를 정해놓고 파업을 하는건 아니니 매일 가서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터미널에서 버스가 다니는지 확인하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던 언덕에서...
게스트하우스는 도심이 아니라 볼리비아 사람들이 사는 주거지에 있는 3층 건물이었다. 비록 이 지역의 치안이 그다지 좋지 못한탓에 상점은 주인과 손님이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물건과 돈을 주고받는 구조이며, 밤늦은 시간에는 나가기가 좀 꺼림직하긴 했지만 숙소자체는 친절한 젊은 주인부부가 깔끔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숙소 이름은 Quechua Inn. Quechua는 잉카 제국을 세운 안데스 산맥에 사는 인디오를 일컫는 말이다.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숙소에 들어가자 인디오 아주머니(라고 해도 나보다 훨씬 젊지만)가 청소를 하고 있었고, 티브이 앞 소파에는 어린 딸이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아주머니는 딸을 재우느라 소파를 차지해버린게 미안하면서도 자는 딸을 깨울 수도 없어 약간 난감한 표정이었다. 전혀 난감해 할 일이 아닌데 오히려 너무 일찍 들어온 내가 미안해져버렸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니 자는 예쁜 모습과 소파 아래 놓여진 낡은 아이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자신을 이렇게 열심히 키운걸 꼭 기억하고 감사하길 바랬다. 그리고, 우리네 어머니들에 대한 감사와 아이를 키우며 직장에 나가는 모든 어머니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여행을 다니다보니 마음이 감정적으로 변하나보다. 예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눈길을 주게 되고,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인지 여러가지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이것 또한 여행이 주는 장점인 것 같다.
남은 시간은 해외 축구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 경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빅게임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S사의 커다란 LCD TV 앞에 앉아서 신나게 축구 경기를 보고 어둑해질즈음 주인부부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터미널로 나섰다. (숙소마다 체크아웃 시간이 다르다. 호텔이 아니라 게스트하우스라도 체크아웃을 빡빡하게 운영하는 곳이 있고, 어떤 게스트하우스는 여행자의 편의를 봐줘서 추가 요금을 받지 않고도 저녁까지 머물거나 침대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터미널에는 며칠 동안 볼 수 없었던 버스들이 플랫폼마다 들어와 있었고, 사람들도 북적거렸다. 특히 전통 인디오 복장을 한 몇몇 여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등에 커다란 봇짐을 메고, 짙은 검은색 머리는 길게 땋았으며, 머리에는 모자로서의 기능은 거의 하지 못하는 것 같은 모자를 머리에 얹고 있다. 자꾸보니 이들의 이런 복장이 어느새 익숙해지고 있었다.
드디어 수크레를 떠나 라파스로 가는 버스가 출발했다. 원래 이틀을 머무를 생각이었지만 파업으로 이틀을 더 머무르게 된 수크레는 나에게 이틀이 아깝지 않을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하게 머무른 그 시간이 체력적으로 고된 여행에서 일종의 휴식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지금도 가끔 수도원이 있던 언덕에서 맥주 한 잔을 앞에 놓고 조용한 가운데 내려다보던 수크레의 모습을 생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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