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버스는 칠레나 아르헨티나 버스만큼 크고, 넓지 않아서 탄 시간이 12시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온 몸이 뻐근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라파스에 도착할 때쯤 겨우 아침 햇살에 눈을 떴을 때, 창밖을 보자 남은 잠이 한순간 달아났다. 버스 창 밖으로 다양한 크기의 누런 블록이 커다란 골짜기를 덮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달동네 바로 그것이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서 예약해둔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배낭을 매고 걸었다. 왠걸, 9개월째 매고 있는 이 배낭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배낭의 무게가 더 무거워졌을리도 없는데 조금만 걸으면 심장이 뛰는 속도가 빨라지고 입은 절로 벌어져 공기를 빨아들였다.
그랬다. 여기는 해발 3600미터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수도 라파스(La Paz)였다. 우유니 투어를 하면서 5000미터가 넘는 곳에도 갔었지만 그때는 차로 이동했고 맨몸으로 다녔으니 고도가 높은 곳에서의 산소부족을 그다지 실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서 20킬로가 훨씬 넘는 배낭을 메고 걷자니 비로소 고산지역의 산소부족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헉헉거리며 겨우 숙소를 찾아서는 제공하는 아침을 입속에 밀어넣고 그대로 침대에 뻗었다. 한잠을 자고 일어나서 저녁에 있는 라파스의 유명한 촐리타 레슬링 투어를 예약했다.
오후 늦게 여행사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촐리타 레슬링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은 라파스의 분지 꼭대기에 위치해 있어서 숙소가 있는 도심에서 좁은 길을 돌고 돌아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말로는 '한참 올라가야 한다'라고 썼지만 라파스가 위치한 분지가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그리 쉽게 올라갈 수 있는 높이는 아니다. 해발 3600미터인 분지 바닥부분과 꼭대기의 고도차가 700미터나 되기 때문이다. 한라산을 등반할 때 출발지점이 대개 1100고지이고, 한라산 정상이 해발 1950m이니 850m를 오르는 셈이다. 라파스의 도심에서 외곽으로 가려면 한라산 등반하는 높이에서 조금 못미치는 높이를 올라야 하는 것이다.
촐리타 레슬링 경기장으로 오르는 길, 버스에서 본 라파스 전경
경기장으로 가던 버스가 갑자기 멈췄다. 어리둥절해 하는데 여기가 라파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니 사진을 찍으란다. 내려서 보니 버스가 출발한 도심이 까마득하게 멀리 보였다. 사실 어디가 도심인지 알 수 없지만 고만고만한 건물들 중에서 딱 한군데 높은 빌딩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어서 거기가 도심이란걸 짐작할 수 있을뿐이다.
이 거대한 분지의 바닥부분은 이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이 사는 곳이고 위로 갈 수록 저소득층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도시들은 부유층이 윗쪽에 살고(홍콩이나 샌프란시스코처럼), 인프라가 안되어 있는 도시들은 저소득층이 윗쪽에 사는 것 같다. 촐리타 레슬링 경기장은 라파스의 분지 꼭대기에 있는걸 보니 이 촐리타 레슬링은 라파스 서민들에게 인기있는 즐길거리인가보다.
낮게 내려앉은 거대한 구름에서 때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높은 곳에서 비가 내리는걸 바라보니 마치 하늘과 지표면 사이에 거대한 물기둥이 생긴 것 같았다. 물기둥은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곳곳을 옮겨다니고 있었는데 몇 시간 뒤 촐리타 레슬링이 끝나고 밤이 늦어졌을 때는 물기둥이 그곳을 지나고 있었다.
비슷하게 생긴 직육면체의 집들이 마치 수많은 레고블록을 뿌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라파스너머 만년설이 덮인 안데스의 봉우리가 보인다.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물기둥
세계 어느 곳보다 거대한 달동네다. 어렸을 때 살았던 부산의 그 달동네는 정말 아담했구나.
도착한 촐리타 레슬링 경기장은 아담했다. 크기는 학교 체육관만 했는데 생김새는 어렸을 때 농촌에서 봤던 창고 같았다. 이 조그만 체육관 가운데 레슬링이 펼쳐질 링이 설치되어 있고, 그 링을 둘러싸고 관객석이 있었다. 초라한 경기장이지만 라파스의 서민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이 무대가 라스베이거스 특설링보다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지금은 마흔이 넘은 나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오래전 우리나라에 프로레슬링이 인기가 있어서 간혹 지방도시에서도 시합을 하곤 했었다고 한다. 그때 시합을 했던 경기장은 어쩌면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먼저 사회자가 나와서 뭐라고 이야기하더니 첫번째 시합을 할 선수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어설프지만 나름 열심히 꾸민 듯, 스파이더맨 복장을 한 선수가 링을 한바퀴 돌며 관객의 흥을 돋우고, 이어서 전형적인 악역을 담당할 선수도 입장했다.
촐리타 레슬링은 인디오 전통복장을 한 여인들의 레슬링이다. 그래서, 남자들끼리의 경기는 오프닝 시합이고 본격적인 메인 경기들은 여인들끼리의 태그매치나 혼성매치다. 이것도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이곳만의 특징이다.
경기장에 모인 볼리비아 사람들은 경기가 진행되면서 함성과 탄식을 뱉으며 경기에 집중했다. 그 중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볼리비아 할머니가 아래 사진에 있다. 얼핏 봤을 때 이날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연세가 꽤 있으신 듯한 할머니는 누구보다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악역인 레슬러가 상대방에게 반칙을 하면 손을 들고 큰 소리로 한참을 뭐라고 하셨다. 경기내내 악역 레슬러에 대해 끊임없이 소리치는 모습이 마치 자신의 손자를 괴롭히는 몹쓸 녀석을 꾸짖는 것 같았다. 결국 할머니가 응원하는 레슬러가 악역을 물리치고 승리하자 열심히 박수를 보내셨다. 이 볼리비아 할머니를 보고 있으니 드라마에 심취하여 악역을 맡은 배우를 그 인물과 동일시하여 혀를 차는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가 생각났다.
한 경기가 끝나고 잠시 휴식시간일 때, 뭔가를 달라는 듯한 표정으로 여자아이가 다가왔다.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몰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었는데 여행자들이 가진 간식이나 잔돈들을 달라는 것 같았다. 눈이 맑고 곱상하게 생긴 아이였는데 여행자들이 많은 이 경기장에서 안좋은 버릇이 생겨버린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기념품을 팔거나 교환의 의미라면 기꺼이 할 수 있지만 동정으로 뭔가를 대가없이 주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니란 생각일뿐더러 아이에게도 좋지 않으리란 생각이었다. 그래서, 끝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방실방실 웃어만 주었지만 마음은 썩 좋지 못했다.
남성들의 레슬링 두 경기가 끝나고 나서 드디어 촐리타 레슬링이 시작되었다. 인디오 전통복장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나타나 링주위를 돌며 같이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는 등 더욱 흥을 돋우었다. 그날 경기장에 온 여행자들 중에는 일본에서 온 젊은 단체 여행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다들 레슬링 복면까지 쓰고 나타나 링위에 오르기도 하고, 레슬러들과 사진을 찍고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즐겼다. 예전 좀 더 젊었을 때의 나라면 예의없는 천방지축에 눈쌀을 찌푸렸을지도 모를텐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활기차고 좋아보였다. 나이가 들어서 마음이 물렁해진 탓이었는지, 빈대같이 좁은 속이 조금은 넓어져서였는지, 아니면 그들의 젊음이 부러웠던건지 잘 모르겠다.
챔피언의 여유만만한 모습
첫경기 남녀간 대결을 시작으로 남녀 혼성팀 대결, 여성간 대결까지 촐리타 레슬링이 이어졌다. 대결은 대부분 코믹하게 진행되었지만 간간이 프로레슬링 기술이 펼쳐지면 모두 손벽을 치며 좋아했다. 미국의 프로레슬링에 힘과 기술을 비할바가 아니지만 다들 즐길 수 있는 마을 잔치같은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는 링주위에 가스관에 불을 붙여놓고 남자 선수들의 경기가 진행되었다. 자동으로 불꽃이 솟아오르고 불꽃이 튀는 것을 생각하면 안된다. 가스가 나오는 구멍 하나하나에 사람이 불을 붙이는데 불꽃은 채 30센티미터가 될까말까하다. 그럼에도 불이 자꾸 꺼지고 좀처럼 유지되지 않아서 진행요원이 꽤나 애를 먹고 있었다. 경기장에 가스냄새가 가득차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할 정도였다. 이런 허술한 장치에도 사람들은 충분히 레슬링 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즐기는데 훌륭한 기술을 가진 레슬러나 화려한 장치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수단은 될 수 있을지언정 많은 연봉을 지급하는 직장, 값비싼 자동차와 주택이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즐거운 인생도 마음이 먼저가 아닐까.
경기가 모두 끝나고 나오니 사방이 어두워져 있었다. 다시 여행사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내려와 숙소로 걸어가다보니 눈앞에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펼쳐져 있었다. 낮에는 세계에서 제일 커다란 달동네, 빈민가로 보였던 곳이 밤이 되자 집집마다 밝힌 전구로 인해 가장 커다란 크리스마스가 되었던 것이다.
레고블록 같은 집들로 가득한 이 거대한 달동네에는 빈곤한 사람들의 고된 삶만 있는게 아니었다. 우유니, 수크레, 라파스까지 오면서 도시마다 다른 분위기, 다양한 모습에 볼리비아가 더욱 좋아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다시 가서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찍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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