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부터였나보다, 오래된 싸구려 똑딱이 카메라의 초점이 왔다갔다 했던 것이. 유독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이 많다는 것은 한참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원래 사진 실력이 좋지 못한데다가 조금 흔들리거나 흐릿한 사진도 사진의 품질보다는 거기에 담긴 시간과 추억이 소중하다 생각했기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진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보다보니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일상을 기록하는 스냅사진용 똑딱이 카메라를 50도에 육박하는 열사의 사막에서부터 빙하와 만년설이 즐비한 남미대륙의 남쪽까지 보호 케이스조차 없이 끌고 다녔으니 탈이 날만도 했다. 이미 찍은 사진은 어쩔 수 없지만 다음 여행에는 좀 더 탄탄하고 성능좋은 녀석을 데리고 가야겠다.
......
라스스(La Paz). 도시이름이 평화(Paz)라니 꽤 멋있다고 생각했고, 어떤 연유로 이런 이름이 지어졌는지 궁금했었다. 하지만, 알고나니 조금 시시해져버렸는데 스페인 정복자들이 인디오들의 도시를 점령하면서 'Nuestra Señora de La Paz' 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Nuestra Señora'는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라니 '평화의 성모'라는 의미쯤 되나보다.
라파스는 인구 90만명 내외로 수크레보다는 큰 도시라 훨씬 번잡하기도 했다. 숙소에서 조금 걸어가면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정도 되는 곳이어서 밀집된 상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곳에서 큰 길을 건너가면 여행자 거리가 나온다. 그 거리에는 배낭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들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나 행상들로 가득했다.
쇼핑지역과 여행자거리를 잇는 육교
도심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라파스에 있다는 한국식당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칠레 산티아고 이후로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먹은 적이 없으니 한국음식들 사진만 봐도 입에 침이 고일 지경이었다.
한국식당은 라파스에서 신도심쪽에 위치해 있다. 숙소가 있었던 구도심이 명동이나 종로 같은 곳이라면 한국식당이 있는 쪽은 오피스 건물들이 있는 테헤란로 같은 곳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말이다.
식당은 어렵지않게 찾을 수 있었다. 노란색 바탕의 간판에 쓰여진 이름부터가 'Korea Town 한국식당' 이었기 때문이다. 들어가서 사진이 같이 붙은 메뉴판을 받아들자 무엇을 시켜야 할지 고민스러워졌다. 원래 이런 일로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언제 다시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음식들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져버렸다. 잠시 고민끝에 고른 음식은 자장면이었다.
지금까지 여행하며 갔던 대부분의 한국식당에는 현지인들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라파스의 한국식당에는 현지인들도 꽤 찾고 있었던 점이 특이했다. 우리가 스파게티를 먹는 것과 뭐가 다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음식은 아직 세계화되지 않은데다 가격 또한 현지 음식에 비해 너무 비쌌기 때문에 보통은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식당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이곳이 오피스 지역이라 주머니 사정이 비교적 괜찮은 직장인들이 많은 편일 거라는, 라파스의 한국식당 음식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는, 이곳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다니는 현지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었을거라는 이런저런 이유가 떠올랐다.
다시 구도심으로 돌아와 라파스의 대표적인 성당(Iglesia de San Francisco)에 갔다.(얼마전 여행프로에 나오는 걸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1500년대 중반에 짓기 시작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200년이나 지나서야 봉헌된 이 성당은 카톨릭 성당치고 화려한 외부장식이나 건축학적인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에,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지어진 이 성당이 볼리비아 사람들의 신앙심조차 가난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성당 내부도 비교적 작고 단출했다.
산 프란시스코 성당 왼쪽 옆길로 걸어 올라가면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여러가지 기념품이나 장신구를 파는 가게들과 행상들이 줄지어 있다. 특히나 많았던 것은 인디오들이 입는 알록달록한 원색의 옷이나 천들이었다. 알파카나 양모로 짠 것이라는데 품질은 좋은지 모르겠지만 가격이 저렴해서 추위를 많이 타는 여행자라면 하나쯤 사서 둘러쓰고 다니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세계 각국의 국기를 배지로 만들어 파는 곳에서 남미 국가들의 배지를 샀었다. 그런데, 배낭에 한번도 달아보지도 못한 채 여행중에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잉카에서 숭배한 콘도르, 푸마 같은 동물이나 잉카문양을 주제로 만든 세공품들이 많았다.
남미의 음악은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의 삼바와 탱고뿐만 아니라 볼리비아와 페루의 안데스 인디오들의 음악도 유명하다. 특히, 사이먼&가펑클이 불러서 유명해진 'El Condor Pasa'는 사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아픈 역사에 대한 정서가 담긴 남미 인디오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라고 한다. 남미 전통 악기들로는 'El Condor Pasa'의 구슬픈 음색을 담은 남미 인디오의 피리 'Quena', 스페인의 기타를 변형해 작게 만든 'Charango', 팬플룻처럼 생긴 'Siku', 하프를 개량한 'Arpa' 같은 다양한 악기들이 있다. (네이버 캐스트 참조)
라파스의 이 여행자 거리에도 전통악기들을 팔거나 연주를 가르쳐주는 가게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언젠가 볼리비아에 눌러앉아 이런 악기들을 배워 볼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다음으로 간 곳은 이름으로는 무시무시한 마녀시장(Mercado de Las Burujas)이다. 마녀시장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인디오들의 전통신앙과 의료와 관련된 물품들을 파는 곳이다. 현대적인 의료시설이 미비하기 때문에 아직도 그 혜택을 받기 힘든 가난한 인디오들은 몸이 아플때 전통적인 방법으로 주술사에게 치료를 의뢰한다.
주로 여러가지 동식물들을 말린 것들을 파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야마의 태아를 말린 것이다. 이 야마의 태아를 집에 걸어두거나 묻어두면 악귀를 막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아래 사진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들이 그것이다. 이들의 방법이 과학적이냐 아니냐를 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지 이들의 전통 문화일뿐이니 말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점을 보고 굿을 하는데 그것을 외국인들의 시각에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걷는데는 이제 이골이 낫음에도 고도가 높은 라파스에서 하루종일 걸었더니 제법 피곤했다. 오후 늦게 도심 광장(Plaza Mayor) 근처에 앉았다가 주변으로 눈을 돌리니 이제 막 두어살이나 되었을 아이가 혼자 놀고 있었다. 아이와 조금 떨어져서는 아이의 엄마인 듯 싶은 젊은 인디오 아주머니가 손으로 만든 자질구레한 것들을 팔고 있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도 그랬었다. 컴컴해지는 집에서 일나간 부모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거나, 같이 나갔을 때는 부모님의 일이 끝날 때까지 혼자서 노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젠 이 아이만큼 어렸을 때 기억은 사라졌지만 이 아이에게서 내 어린시절의 단편을 보는 듯해서 마음이 아릿해졌다. 아이가 어렸을 때의 고생이나 금전적인 부족함만을 기억하지 말고,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하며 커가길 바랬다.
어둑해지는 Plaza May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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