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괴레메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하루는 로즈밸리 투어도 그린 투어도 아니라 마을 주변근처를 마음내키는대로 걸어다녔던 날이었다.

평소에도 투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성향의 문제도 있지만 스스로가 생각하고 결정해서 다니는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다.

물과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기고 대략적인 경로를 호스텔 주인에게 물어본 후, 출발했다.

[호스텔 주인에게 마을 주변에서 경치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을 물어서 도착한 마을 뒷산]

[진행중인 풍화작용으로 돌의 단단한 부분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무른 부분은 모두 풍화되고 결국 이런 모양의 돌기둥만 남았다]

[괴레메 마을 전경. 어딜가도 가장 높은 건축물은 모스크의 첨탑이다]

한가롭게 마을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고 나서, 풍화작용이 계속되고 있는 계곡과 그 주위로 척박한 땅을 일구어 놓은 밭들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가끔 주말을 맞아 피크닉 나온 현지인 가족들이 나무그늘에 자리를 펴고 쉬는 풍경이 보였다. 우리들 피크닉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가족들과 함께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멀리 보이는 목적지를 정하고 걷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한 가지 실수한 것은 이곳이 수많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괴레메라는 사실이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반드시 목적지로 이어져 있다는 보장이 없다. 길은 끊기기도 하고,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길이 갑자기 끊어지고 바로 앞에 계곡이 나타나는 황당함도 경험할 수 있다.

그렇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끊어진 길 대신에 다른 길이 있게 마련이고, 목적지에 반드시 도착해야 할 필요도 없다. 걸으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순간이 즐겁고 만족스러우면 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가장 편하긴 하지만 즐겁고 만족스러운 길은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루하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을 고민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런 사람들이 무척이나 부럽다.

멀리 보였던 목적지가 점차 가까워졌다. 이제 얼마 안남은듯 보이던 그 순간에 길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결국 물도, 간식도 떨어지는 바람에 계곡을 가로질러 건너기로 했다. 계곡 능선이 덜 가파른 곳을 골라 내려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 예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에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일도 생긴다.

계곡 아래로 난 길을 걷던 중에 길을 가로지르던 거북을 보게 되었다. 이 곳은 강수량이 적은 곳이긴 하지만 사막에서 사는 거북도 있으니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잠시 피로를 잊게 만드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을 피해 무척 서두르는듯한 몸짓을 보니 슬그머니 미안해져서 자리를 피해주었다.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계곡을 걸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서 출발했던 마을로 돌아가는 길도 수월하진 않았지만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친절한 마을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버스 정류장을 찾을 수 있었고 반나절 이상 걸었던 길을 버스로 15분만에 돌아왔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걸으면서 느리게 느낄 수 있는 경치와 바람과 소리를 좋아한다. 걸으면서 하게되는 생각들과 예상하지 못하게 만나는 어려움과 즐거움을 모두 좋아한다.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었지만 걷는걸 좋아하지 않는 여행자라면 괴레메에서 내키는대로 걷는 트래킹은 몸을 힘들게만 하는 고행일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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