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국제 정세를 전달하는 뉴스 프로그램에서 아르헨티나의 경제상황이 갈수록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전하는 장면을 보았다. 

  내가 방문했던 작년 가을쯤 정부에서 정한 공식 환율이 아르헨티나 페소와 달러가 4.5:1이었는데 암달러 상들은 6.2:1이어서 황당했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암달러 상들이 조금 환율을 좋게 처주기는 하지만 여기는 너무 차이가 컸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가능한 달러를 많이 가지고 와서 암달러 상에게 페소로 바꾼다. 달러를 전혀 준비하지 못한 나는 꽤 큰 손해를 봤는데, 아르헨티나에서 달러를 환전하는 것은 다들 아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는 사실이었다.

  여하튼, 뉴스에서는 현재 비율은 거의 7배에 가까워졌고, 과도한 물가 상승으로 하우스 푸어가 늘어나고 국민들의 불만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작년 말 바릴로체에서 주민들이 대형 마트를 습격하는 자료화면을 보여주었다.

  내가 기억하는 바릴로체는 너무나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산과 호수의 이미지였고 다시 가고 싶은, 더 오래 머무르지 않았던게 아쉬움으로 남았던 곳이었다. 게다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소매치기와 조금 불안한 치안에서 벗어난 첫번째 도시였기에 사람들마저 좋게 기억되고 있었다. 뉴스를 본 바릴로체를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단지 치안이 불안하고 폭동이 일어난 곳이라는 이미지로 기억될 것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가보지 않으면 언론매체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로 인식 되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동남아에, 남미에 가기 전에 가졌던 생각은 모두 허구였다는 경험을 이미 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 아름다웠던 파타고니아에서 처음 방문했던 도시, 남미의 알프스라는 바릴로체를 다시 떠올려보고 싶어졌다.

  내가 바릴로체를 방문한 시기는 겨울이 막 지난 초봄이었다. 바람은 아직 쌀쌀했지만 가로수에 핀 꽃과 파란 하늘, 청량하게 느껴지는 공기가 춥고, 흐리고, 눅눅했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온 여행자의 움츠러든 어깨를 펴게 해주었다.

  바릴로체는 등산과 트레킹뿐만 아니라 겨울에 스키, 여름에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휴양지이며 나우엘 후아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바릴로체에서는 개인적으로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차를 이용해서 나우엘 후아피 호수를 돌거나, 배를 타고 나우엘 후아피 호수를 구경하거나, 리프트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는 방법으로 여행을 한다.

  트레킹이나 등산도 유명하지만 우리나라 여행자에게는 엘찰튼이나 토레스 델 파이네가 더 유명한 것 같다. 나도 거기서 실컷 할테니 여기서는 미리 쉬자는 기분으로 여행을 했었다.

  나우엘 후아피 호수 투어를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한다. 버스 번호는 잊었지만 바릴로체에서 가장 고급호텔이라는 Llao Llao(야오야오? 랴오랴오?) 호텔로 가는 버스를 탔다.

  도착한 선착장에서부터 '오~', '와~'하는 탄성이 나온다. 깨끗하고 맑은 호수와 푸른 하늘, 멀리 보이는 눈덮인 산이 어우러져 엽서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멀리 Llao Llao 호텔이 보인다. 꽤 고급스럽다.]


[투어를 하는 회사가 몇 군데 있는데 가까운 시간으로 아무 배나 타면 된다. 투어 경로나 비용은 비슷했다.]


[바다와 하늘이 모두 눈부시게 푸르다.]



  비스킷을 쥐고 팔을 올리고 있으면 갈매기가 와서 채어간다. 우리나라에서만 새우깡을 가지고 그러는줄 알았는데 다들 그러나보다. 배에서 스탭들이 사진기로 찍어서 배에서 하선할 때 인화하여 팔고 있었다.




  정말 날씨가 좋았는데, 이때는 정말 운이 좋았다는 것도 모르고 당연히 그런줄로 알고 있었다. 눈이 시린 푸름이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처음 도착한 섬은 껍질이 주황색에 가까운 나무들이 자라는 곳이었다. 나무들 사이로 산책로를 만들어 놓아서 느긋하게 다니며 구경할 수 있다. 나무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매우 단단해서 물에 가라앉는다는 것, 보호수종이라는 것만 기억이 난다. 실제로 나무를 만져보니 거의 바위처럼 단단했다.







  두 번째 섬에서도 깨끗한 호숫가를 따라, 긴 겨울이 끝나고 막 연둣빛 잎사귀가 나오는 울창한 나무 사이로 느긋하게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깨끗한 자연속에 있다보니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다음날에는 나우엘 후아피 호수의 경치를 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미리 인터넷에서 다녀온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보니 정말 멋진 풍경이었다. 그러나, 연속해서 이틀동안 날씨가 좋은 행운은 나에게 없었다.



[어제는 그렇게 푸르던 하늘과 호수가 오늘은 회색빛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바람이 제법 불어서 아르헨티나 국기는 내내 저 상태로 펄럭였다.]

[햇빛이 약간 나는가 싶었지만 더 이상의 행운은 없었다.]

[걸어올라가도 되지만 등산로가 잘 되어 있지 않은듯...]

  전망대에서 본 경치는 멋있었고 가슴이 확 트이는 듯했지만, 어제처럼 아름다운 빛깔은 볼 수 없었다. 바람도 심하게 불었고, 기온도 뚝 떨어져서 밖에 서 있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에 전망대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아쉬워해야했다.

  나는 가보지 못했지만 바릴로체에는 검은 빙하 트레킹이라던지, 여러가지 투어나 볼거리가 많았다. 여름에는 눈덮인 산을 볼 수 없겠지만 대신 깨끗한 호수에서 물놀이나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좀 더 여유있게 머물면서 즐겼다면 좋았을텐데...

  바릴로체에는 스위스와 독일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초콜렛이 유명하다. 조그만 번화가 상점의 상당수가 초콜렛 가게였지만 관심이 없어서 먹어보진 않았다. 중미, 남미 여행중에는 초콜렛 가게들이 많은 도시들이 여럿 있었는데 멕시코 와하까나 볼리비아의 수크레가 현지인들이 즐기는 초콜렛이라면 바릴로체는 관광상품 같이 느껴지는 초콜렛이라서 꺼려지기도 했다. 특히, 여행책자에서 맛있고 유명하다고 했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아이스크림들이 전혀 맛이 없었기 때문에 바릴로체의 초콜렛도 기대되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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