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터키에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시리아를 탈출해 터키에서 유럽으로 가려던 가족이 탄 작은 고무보트가 파도에 뒤집히는 바람에 아버지만 살아남고 어린 두 아들과 엄마가 바다에 익사한 사건이었다. 그 중 3살밖에 안된 막내아들이 해변 모래사장에 엎드려 얼굴을 묻고 찍힌 사진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이 슬픈 사건은 지금까지 난민의 입국을 허락치 않았던 영국 정부를 압박해 난민을 받게 만들었고, 세계 각국이 난민들의 문제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이 가족뿐만 아니라 시리아를 떠난 난민들이 터키를 거쳐 EU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주요 경로가 터키의 보드룸에서 그리스의 코스로 가는 것이라고 한다. 3년 전 터키에서 그리스로 국경을 넘을 때 머물렀던 도시라 그런지 유독 마음에 더 크게 남는다.


짙푸른 에게해와 그에 못지않게 푸르고 맑은 하늘, 수없는 하얀 고급 보트들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이 아름다운 휴양 도시에 절망적인 상황에서 조국을 등지고 떠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고난과 슬픔이 가득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지도상에서는 무척 가까워보이는 보드룸과 코스지만 한밤중에 작은 고무보트로 이 바다를 건너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수천년전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오딧세우스와 그의 선원들이 목숨을 걸었던 바다에서 지금은 고향을 떠나온 시리아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있다.


자국의 경제 성장만이 존재 이유가 되어버린 세계 정상들이 이제는 중동문제에 조금 더 힘을 써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


여행자들이 와라스로 오는 이유는 이 도시가 Huascaran 국립공원과 가까이에 있는 가장 큰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 국립공원에는 5,6000미터가 넘는 아름다운 안데스의 고봉들이 즐비해서 세계에서 이름난 트레킹 코스들이 많다. 페루에서 가장 높은 Huascaran(6768m), 세계적인 미봉으로 손꼽히는 Alpamayo (5947m), 멋진 암벽으로 이뤄진 Tawllirahu (5830m)가 있고, 이 산들을 3박 4일동안 돌아보는 산타크루즈 트레킹 코스, 푸른 물빛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69호수 당일 트레킹 코스 등 산을 좋아하고 트레킹을 좋아하는 여행자들은 반드시 와야하는 곳이다.


이 글을 쓰면서 왜 와라스에 더 오래 머물지 못했는지 후회가 된다. 한가지는 와라스에서 리마로 간 후에 멕시코로 떠날 비행기 일정이 다가오기 때문이었고, 다른 한가지는 이곳이 그렇게나 아름다운 곳일지 가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와라스에서는 69호수 트레킹을 하려고 했는데 도착한 당일은 너무 늦어서 여행사 차편을 예약하지 못했다. 69호수 트레킹이 시작되는 곳은 해발 3700미터 정도 되는 곳인데 안데스 산맥 중턱이라 와라스에서도 두 시간쯤 차를 타고 가야한다. 보통은 여행사에서 마련한 차를 타고 트레킹 장소까지 가는데, 가끔 현지인들의 마을과 마을을 다니는 대중교통편을 이용하는 여행자들도 있다. 돌아올때 차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곤란한 일을 겪을 것 같아서 여행사의 차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여행사에서 차편을 예약하고, 조그만 광장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려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아야 트레킹하기도 편하고, 산봉우리나 맑은 호수도 볼 수 있을텐데 오후가 되면서 흐려지는 날씨에 마음이 불안해졌다.


안데스 고산지방에서 여행 내내 추운 몸을 녹여주었던 스프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일어나자 날씨가 거짓말처럼 맑게 개었다. 여행사 앞으로 가니 예약한 사람이 많지 않았는지 기대했던 승합차가 아니라 낡은 택시가 한대 와 있었다. 나를 포함한 여행자 몇몇이 좁은 택시에 몸을 구겨넣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때는 이 택시를 타고 그 길을 간다는게 그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와라스에서 69호수 트레킹이 시작되는 곳까지는 길이 형편없었다. 대부분 비포장도로였고, 포장이 되었더라도 길이라 하기도 민망하게 단지 커다란 돌들을 깔아놓은 곳이었다. 택시는 안에 탄 여행자들을 사정없이 내던졌다. 여행자들은 흔들리는 택시에 부딪히지 않으려고 손잡이를 잡고 팔에 온 힘을 다 주고 있어야했다. 게다가 이 택시 운전사는 딴에 편한 길을 가려고 했는지 큰 길에서 벗어나 작은 길로 들어섰는데 어제 내린 비로 진창이 되어 버려서 바퀴가 빠지는 등 오히려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어려움 끝에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해서 입장료를 샀다. 이제 이 험한 길도 끝이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시 택시를 타고 몇 번이나 택시 천장에 머리를 부딪힌 후에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는 다시 돌아갈 생각에 앞이 캄캄했지만, 지금은 그때 봤던 안데스 고산지역에 사는 현지인들의 작은 마을과 집들, 푸른 산과 깊은 계곡이 자꾸 그리워진다.



택시가 커다란 계곡으로 들어서자 눈앞에 청록색의 커다란 호수(Lagunas de Llanganuco)가 나타났다. 감탄을 연발하는 여행자들 때문에 운전사는 택시를 잠시 세우고 호수를 구경하게 해주었다. 이런 호수의 물빛은 파타고니아에서, 알프스에서 여러번 봤지만 4000미터에 가까운 높이에, 거대한 안데스의 고봉을 뒤에 두고, 바로 머리 위로 구름이 지나가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 멋진 호수의 물빛도 몇 시간 뒤에 본 69호수에 비하면 단지 평범할 뿐이었다.



그 옛날 거대한 빙하가 산맥을 깎고 지나갔을 바로 그런 계곡이다.






이 양가누코 호수(Lagunas de Llanganuco)는 치난코차와 오르콘코차 두 개의 호수로 이뤄져 있고, 호수 사이에는 이렇게 얕은 물이 흘렀다. 이런 모양의 호수를 어디서 봤더라 싶었는데 스위스의 인터라켄이 생각났다. (물론 호수의 크기는 많이 다르지만)




드디어 택시가 멈췄다. 그리고, 저 골짜기 아래에서 트레킹을 시작하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거대한 골짜기 뒤편에는 훨씬 더 거대한, 만년설에 덮인 고봉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출발점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설명을 해줬던 사람이 국립공원 레인저인지, 운전기사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사실 빨리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이 골짜기에는 소가 정말 많았다. 아까 양가누코 호수에서도 많은 소떼들이 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여기도 여기저기에 개울을 건너는 소, 풀을 뜯는 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소들은 코뚜레도 없고 몸에 표식도 없는데, 사람이 가까이 가도 겁을 내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이들 눈에는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도 매일 왔다가는 한무리의 동물로 보일 뿐인가보다. (이 소들은 방목하던 소들이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자연에서 야생소처럼 살아가게 된 것이라 들은 것 같은데... 정확하진 않다.)



길을 비켜주지도 위협하지도 않는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자세.


산으로,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간다.


4000미터에 가까운 높이와 혹독한 기후 탓으로 키 작은 식물이 대부분인 이곳에 한눈에도 고된 풍파를 겪었음을 알 수 있는 나무가 나타났다. 흐린 날씨에는 꽤 흐스스해 보이겠다.




지금까지는 완만한 경사를 따라 산책하듯 느긋하게 걸어올랐다. 좌우 절벽에서는 안데스 고봉의 만년설이 녹아 폭포를 이뤄 떨어지고 있었다. 오른쪽 폭포를 끼고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이때는 작은 폭포에 불과했지만 하산하는 도중 비가 오자 폭포는 거대한 물길을 만들었다.)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 위로 한참을 올랐다. 고도가 낮은 곳에서는 그다지 험하다 볼 수 없는 길이지만 고도가 높다보니 숨이 금방 차올랐다. 더 이상은 힘들겠다 싶어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첫번째 고개 꼭대기에 도착했다. 고개에서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보니 지나온 거대한 계곡과 함께 폭포가 아주 조그맣게 보였다. 다시 걷기 시작해서 고개 모퉁이를 돈 순간 거대한 설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압도적인 설산의 모습에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크고 높은 산을 이처럼 가까이서 바라 본게 이때가 처음이었다. 히말라야의 산들 앞에 서면 어떤 감정이 들지 무척 궁금하다. 갑자기 몸시도 히말라야에 가보고 싶어진다.




69 호수에 도착하기 위해서 이제 마지막 한 고비만 남았다. 스마트폰 지도를 보니 초원 반대쪽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뒤편으로 오르면 거기에 69호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으로는 풀을 뜯는 소들의 풍경이 무척 목가적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야말로 엄청난 소똥밭이다.




멀리서는 절벽처럼 보였던 것이 가까이 다가서자 엄청나게 큰 바위 덩어리였다.



바위의 크기에 압도되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절로 겸손해지고 숙연해진다. 

이것이 내가 자연을 찾게 된 이유가 되었다.



바위 바로 위까지 산에서 내려온 빙하가 이어져 있었고, 그 옛날 빙하에 의해 깎여진 거친 바위 절벽 아래로 빙하에서 녹은 물이 폭포를 이뤄 떨어지고 있었다. 폭포가 워낙 높아 물줄기는 온전히 지표면까지 닿지 못하고 공중에서 바람에 흩뿌려졌다. 그리고, 그런 물들이 모여 시내를 만들어 흘러갔다.



고도 4000미터가 넘는 곳에 이렇게 화사한 꽃이 피었다. 비록 바람에 키를 키우지 못하고 땅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있지만 뿜어내는 생명력은 꽃중에 니가 최고다.



바위산 왼쪽으로 난 경사면을 힘겹게 올라가다보니 절벽 중간에 커다랗게 뚫린 구멍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화에서 종종 지하동굴에서 위험을 만난 주인공이 쫓기다 찾은 출구가 절벽 한가운데였던 장면이 생각났다. 당장이라도 인디아나 존스가 구멍에서 나타날 것 같다.


69호수까지 가는 마지막 고개답게 경사를 오르는 것은 힘들었지만 경치는 놀랍도록 뛰어났다. 오르다 뒤를 돌아봐도 좌우를 살펴도 감탄이 나올만한 풍광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몇 번이나 돌고나서 회색, 흰색의 무채색으로 가득한 시야에 진한 청록색이 빛나는 보석처럼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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