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에서의 이튿날은 구도심을 구경하며 보내기로 했다. 유럽이나 남미의 도시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리마의 구도심도 광장을 중심으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리마의 중심 광장은 마요르 광장(Plaza Mayor)으로 이 부근은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광장을 대통령궁, 리마 대성당, 정부 관청이 둘러싸고 있으며, 주위로 산 프란시스코 수도원, 산토 도밍고 교회 등이 있다. 그리고, 마요르 광장과 산 마르틴 광장을 잇는 유니온 거리는 리마의 쇼핑과 문화의 중심지다. 어제 다녀온 곳이 서울의 코엑스나 강남이라면, 유니온 거리는 명동이나 종로처럼 오래전부터 리마 시민들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오전에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마요르 광장으로 향했다. 역시나 구도심으로 들어가는 길은 좁아서 꽤나 막혔는데 택시 안에 있는게 갑갑해서 목적지보다 조금 앞서 내려 걸어갔다. 마요르 광장으로 들어서는 길은 대통령궁과는 반대 방향이었는데 대통령궁 앞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무슨 볼거리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근위대 교대식인 것 같았다. 날마다 하는 것인지, 정해진 날에만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지도 못하게 이런 구경을 하게 되었다. 어제 본 야시장도 그렇고 리마에서는 꽤나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한참동안 군악대의 연주가 계속되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엄숙하거나 씩씩한 군가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음악을 연주했던 것 같다.



군악대의 연주가 마치자 대통령궁 출입구에 누군가 나타났고, 그 사람에게 보고하는 듯한 절차가 있었다.(아마도 근위대장쯤 되는 직책인가보다.) 절차를 마치고 다시 군악대의 음악에 맞춰 앞마당을 한바퀴 돈 후, 정면 좌우에 있는 부속건물로 들어갔다.


이 의식은 사진으로 몇 장 남기고 대부분은 동영상 파일로 저장되어 있는데 파일 크기상 업로드가 안될 것 같다.



대통령궁 앞에서 교대식 구경을 끝내고 주위를 둘러보니 마요르 광장은 꽤나 깨끗하고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리마의 다양한 곳을 가보진 못했지만 적어도 주요 장소들은 부에노스 아이레스나 리우 데 자네이루 같이 더 유명한 도시보다 훨씬 깔끔했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리마 대성당이다. 자신들의 조상을 정복하고 복속시킨 인물이자, 그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오랜 세월 피를 흘려왔음에도 피사로의 시신이 여전히 이 성당안에 잠들어 있는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독립영웅인 볼리바르와 수크레, 산 마르틴을 존경하고 동상으로 기리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지나간 과거는 과거일뿐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너무나 오랜 세월이 지나서 이들에 대한 감정이 후대에는 희석된 것인지, 남미 사람들의 성향이 반영된 오늘을 사는 방식인지 모르겠다. 세계인으로서의 나는 이들의 성향과 문화일뿐이라 생각하지만, 한국인으로서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이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내가 성급하게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리마 대성당 (Cathedral de Lima)




대성당 왼쪽에 붙어 있는 리마 대주교 궁(Palacio arzobispal de Lima)



마요르 광장에서 다른쪽으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작은 시위대를 만났다. 숫자와 인사정도만 가능한 짧은 스페인어로는 무엇 때문에 시위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무척 평화로운 시위였고, 시위대의 뒤는 말을 탄 경찰들이 조용히 뒤따르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칠레 등등에서도 여러차례 시위나 길거리 행진을 하는 모습을 봤지만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남미 사람들의 거친 행동은 본적이 없었다.(운이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시위대의 폭력성은 과도한 진압이나 그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목적을 가진 시위가 없지는 않지만 정부기관이 시위의 목적과 행위는 구별하지 않은채, 정책과 반대되는 시위에 대해서만 민감하게 반응하고 과도한 진압을 하는 것은 사회의 질서를 지키고 유지한다는 정부의 목표와 부합되지 않는다.


대통령궁에서 북동쪽으로 가다보면 독특하게 생긴 건물이 나온다. 이 건물은 산 프란시스코 교회 수도원이다. 위키백과에는 이곳에 17세기에 수입한 세비야의 아름다운 타일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여행을 다닐수록 여간 아름답거나 독특하거나 하지 않으면 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사진으로라도 남아 있으면 좋겠지만 가끔은 사진을 찍을 수 없도록 규정한 곳들이 있어서(여기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마저도 없다면...


이 수도원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지하의 카타콤베(catacombae)이다. 카타콤베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지하 공동묘지로 로마의 것이 가장 유명하지만 보통 수도원에 있는 지하 공동묘지도 카타콤베라고 하는 것 같다. 크지 않은 수도원이지만 이곳에 묻힌 수많은 해골과 뼈들이 보존되어 있었다. 



구시가 근처에는 차이나타운도 있었다. 어느 도시에나 차이나타운 출입구에는 중국풍 출입문을 세워서 이곳이 차이나타운임을 당당하게 알리고 있다. 언젠가 우리나라도 이곳이 코리아타운임을 알리는 표식이 세계 곳곳에 세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페루인구의 대부분은 혼혈인 메스티소와 인디오, 유럽계 페루인들이지만 아시아계와 아프리카계 인구도 각각 3% 정도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계는 대부분 중국과 일본인들인데, 이들은 남미의 대농장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혹은 속아서 이민을 온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민족끼리 뭉쳐서 그 도시의 자그마한 타운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조선시대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세계의 오지에 노동자로 와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고생했던 역사가 있었다. 예전 쿠바에 있는 우리나라 교포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농장에서 노예와 다름없는 고생을 했던 이민 초기역사부터 게바라와 카스트로를 도와 쿠바의 혁명에 힘을 보탠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아직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잊혀져가는 한국어를 기억해내기 위해 애쓰며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사할린에도, 중앙아시아에도 힘없는 조국을 등져야했던 수많은 교포와 자손들이 있다. 쓸모없는 한식의 세계화에 들인 비용을 이들에게 지원했더라면 훨씬 더 가치있을뿐더러 한식의 세계화에도 오히려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차이나타운의 길거리는 각종 한자와 중국풍 문양들, 중국 음식점과 은행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거리에도, 음식점에도 중국인들보다는 현지인들이 훨씬 더 많다.


오전부터 많이 걸어서인지 배가 많이 고팠다. 물가가 저렴한 페루니 중국음식점에서 맘놓고 시켜도 그다지 부담되는 가격이 아니었다.




성녀 세드가 모셔진 메드세드 성당. 들어가보진 않았지만 외관이 독특해서 눈길이 갔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구도심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유니온 거리까지 오게 되었다. 이곳은 대부분 상가, 쇼핑몰이라 그다지 눈길을 끄는 것이 없었는데 마침 '007 스카이폴'을 상영하는 영화관 앞을 지나게 되었다. 리마에서 복합상영관이 있는 것도 재밌었고, 내가 좋아하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주연인데다 액션영화니 한글자막이 없어도 대충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1년만에 영화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매표소에 있는 여자직원도 꽤나 당황했고, 나도 많이 당황했다. 여직원은 동양인 여행자가 영화를 보러 온 것에 그랬고, 나는 최신영화 관람료가 이렇게나 저렴할 수 있다는게 그랬다. 그때 환율이 어느 정도였는지 모르겠지만 대충 1000원 미만의 금액으로 표를 살 수 있었다.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영화관 시설은 낡고 지저분했다. 냄새도 나고 스크린은 작고 의자는 불편했다. 스크린 때문인지 필름이 문제인지  오래된 필름영화를 보듯이 화면에는 내내 비가 내리고 있었다.(스크레치?) 그렇지만 어렸을 때 동네 영화관이 생각나는 매우 유쾌한 경험이었다. 그 가격이라면 이 정도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는다. 우리가 얼마나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치르고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는지도 절실히 알 수 있었다.



영화관에서 나와 유니온 거리를 따라 산 마르틴 광장까지 내려오니 날이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산 마르틴 광장 주변에는 온통 흰색의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역사적인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비싸보이는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들로 보였다. 내가 있을 곳은 아닌가보다 싶어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로 정했던 곳은 페루의 대학가에서 한국인 청년들이 운영한다는 한식당 '헝그리 타이거'였다. 이곳은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들이 리마에 가면 꼭 가보라고 몇 번이나 추천한 곳이었다. 한국음식점은 대부분 한국사람 혹은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데 이곳의 손님들은 리마의 대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한국음식을 먹고싶기도 했지만 머나먼 리마에서 한국음식점을 하는 용감하고 멋진 청년들을 보고 싶어서였다.


산 마르틴 광장에서 택시를 타고 주소를 보여줬는데 이 택시기사는 주소가 어딘지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도로까지 가서는 모르겠다며 신경질을 내길래 나도 울컥해서 뭐라고 하다가 내려버렸다. 그런데 어둠이 내려앉은 그 곳은 왕복 몇 차선이 되는, 리마에서는 제일 큰 듯 싶은 도로였다. 스마트폰 지도를 보고 가다보니 이 도로를 따라 수십 번지나 떨어진 곳이었다. 그래도 여행자들이 추천했던 '한국에서 먹던 그대로의 김치찌개'를 먹기 위해 어두운 도로를 따라 열심히도 걸었다. (아마 한시간은 족히 넘게 걸었던 것 같다.)


드디어 헝그리 타이거라 쓰인 담벼락을 찾고 기뻐하려던 찰나, 뭔가 이상했다. 담장 너머는 어두웠고, 출입구는 쇠창살로 된 문으로 굳게 닫혀있었다. '무슨 일이지? 두세달 사이에 장사를 접었나?' 생각하다보니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그래서 대통령궁의 근위대 교대식도 했었던 것이고, 어제는 토요일밤의 야시장도 열렸던 것이다. 카톨릭 국가인 페루에서, 더구나 대학생들이 주손님이라는데 일주일에 하루를 쉰다면 바로 일요일일 것이다.


허탈한 마음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배도 고프고 정신적인 충격도 커서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밤에 무엇을 먹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숙소 근처에 있던 도미노 피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결국 리마에서는 첫날 찾았던 한국식당도, 다음날 찾았던 헝그리 타이거도 모두 실패했다. 이러고나니 먹은지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국음식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강해졌다.(그래서, 멕시코시티에서 실컷 한을 풀었나보다.)


택시로 돌아오던 중에...


이미 블로그에 몇 번을 썼던 말이지만 모든 것이 좋을 수 없고, 모든 것이 나쁠 수도 없다. 리마에 도착했을 때가 주말이었기에 야시장과 근위병 교대식을 볼 수 있었지만, 그랬기에 한시간 넘게 걸어서 찾아간 헝그리 타이거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여행도, 좀 더 비약하면 인생도 그런 것이다. 알고 있는데 여행이 자꾸만 반복학습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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