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를 떠나는 날이 왔다. 동남아를 떠나던 날도 있었고, 유럽을 떠나던 날도 있었다. 동남아를 떠나던 날에는 불과 두어달 전에 시작된 여행에 대한 설렘과 더위와 모기에 시달렸던 시간 때문에 어느 정도 속시원했다. 유럽을 떠나던 날에는 항상 신경써야 했던 물가 스트레스와(결국 남미에서도 물가에 신경쓰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미지의 대륙 남미로 떠난다는 긴장감에 아쉬울 틈이 없었다. 그런데, 남미를 떠날 때는 적지않게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주엘라, 그리고 브라질(겨우 2도시 밖에 못가봤으니)에 못 가보고 떠난다는 아쉬움도 있었고, 남미의 아름답고 광활한 풍광과 독특한 문화, 친근감이 드는 사람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정작 나를 알고 기억할 남미 사람들은 없음에도 나는 남미가 좋아졌다.)



마지막날 오전에는 숙소에서 키우던 커다란 강아지와 놀며 시간을 보냈다. 롯트 와일러라는 견종이 아닌가 싶은데 경비견으로 많이 사용하는 종류라고 한다. 녀석은 1살 밖에 안된 강아지지만 덩치가 이미 보통의 대형견을 넘었다. 처음에는 거칠어보이는 인상에 영화나 대중매체에 워낙 사납게 나오는터라 조금 긴장을 했었지만 어려서 그런지 사람을 무척 잘 따르고 성격도 온순했다. (영화에서 사납게 나오기로는 도베르만과 함께 넘버 1,2를 다툴 것 같다.)


숙소의 브라질 여자매니저가 먹을 것을 준다고 하면 저렇게 손을 내밀어주고 아양을 떤다.


몸을 스다듬거나 두 손으로 얼굴을 잡고 문질러도 가만히 있다. 단점은 몸에 기름기가 많아서 손에 가득 묻는다.


먹을 것만 바라보는 저 집중력


주인이 이 녀석을 키우는 이유는 숙소가 번화가 가까이에 있지만 리마의 치안을 썩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둑이 녀석의 얼굴과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몰래 들어온 걸 후회할 것 같다. 그런데 털색이 까맣기 때문이지 자세히 보면 얼굴도 무척 귀엽게 생겼다.


점심은 남은 리마 화폐(솔)을 탈탈 털어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사실 이런 만찬은 유럽에선 언감생심이라 물가가 싼 나라일수록 더욱 즐겨야 한다. 가까이에 있는 꽤 좋아보이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서 해산물 크림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시켰다.


오오~ 가리비, 가리비


육즙을 품은 고기사이에 치즈가 가득이다.




드디어 멕시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창밖으로 멀리 구름에 덮인 안데스 산맥이 보였다. 분명 멕시코도 같은 라틴 아메리카인데 이상하게 멕시코는 미국과 지형적으로 가까이에 있어서인지 남미와 많이 다른 나라처럼 느껴졌다. 남미를 떠나는 아쉬움과 멕시코에 대한 기대가 뒤섞인 복잡한 기분이었다.


Adios, América Latina! Hola, Mex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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