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울한 기분으로 경찰서에서 만났던 아저씨가 운영한다는 숙소가 있는 아쿠말로 왔다. 사실 굳이 툴룸에서 차로 30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아쿠말에 올 필요는 없었다. 이유는 단 한가지, 아저씨가 아쿠말 해변에서 스노클링으로 바다거북이를 볼 수 있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스쿠버다이빙을 배웠던 이집트 후루가다에서 다양한 해양생물을 볼 수 있었지만, 정말 보기 어려웠던 대형 해양동물은 돌고래와 바다거북이였다. 열흘 넘게 다이빙을 하면서도 돌고래와 바다거북이는 서너번 정도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다이빙이 아니라 스노클링만으로도 바다거북이를 볼 수 있다니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쿠말에 도착해 아저씨가 적어준 주소를 보고 숙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은 잠겨 있고 벨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어서 대문 앞에서 전화를 했다. 하지만 전화통화도 안되어서 대문 앞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그리고, 인연이 아닌가보다 생각하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겨우 통화가 되었다. 잠시 후, 아저씨는 어디에선가 돌아와 숙소 문을 열어주고 방을 배정해주었다. 이미 오후해가 많이 기울어있어서 스노클링을 할 수는 없었지만 해변이라도 구경할 생각으로 숙소를 나섰다.



아쿠말은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과 리조트가 있는 해변이 툴룸에서 칸쿤까지 이어진 큰 도로에 의해 나뉘어 있었다. 해변으로 가려면 육교를 통해 윗 사진에 보이는 반대편으로 넘어가야 한다. 

 

해변으로 가는 길. 어째 초점이...



해변을 거닐다 돌아오니 금방 석양이 지고 어두워졌다. 아쿠말 마을에는 현지 사람들이 이용하는 작은 식당 몇 곳을 제외하고 편의시설이 거의 없어서 마을 전체가 어두컴컴했다. 나처럼 바다거북이를 보는데 정신이 팔린 사람이 아니라면 플라야 델 카르멘이나 툴룸에서 묵으면서 당일치기로 아쿠말에 와서 스노클링을 하는게 좋을 것 같다.


......


다음날 일찍 일어나 해변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이빙센터에서 스노클링 장비와 구명조끼를 빌리고 바다로 나갔다. 장비를 빌릴 수 있는 곳은 모래사장 뒤편 다이빙센터와 해변에 바로 접한 야외 매장 두 곳에서 빌릴 수 있는데 가격은 약간 더 비싸지만 스노클링을 마치고 샤워장을 사용할 수 있는 다이빙센터에서 빌렸다.


바다거북이를 볼 생각에 들떠 해변으로 나오긴 했지만 막상 이 넓은 바닷속 어디에서 거북이를 볼 수 있을지 막막했다. 이곳에 거북이가 많다고 하더라도 바다 어디에서 거북이가 나올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바다를 다 살펴보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나가는 현지인에게 어디에 가야 거북이를 쉽게 볼 수 있을지 물었다. 근데 이 사람 반응이 특이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팔을 들어 휘휘저으며 해변 전체를 가리켰다. 이 사람이 내 말을 이해 못했나보다 생각했지만 그냥 고맙다고 하고 일단 바다 위에서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부터 가보기로 했다.


바다속으로 들어가니 아쿠말 바다밑은 모두 곱고 하얀 모래였다. 얼마 들어가지 않았는데 여러 무리의 물고기 떼를 만났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니 온 모래바닥에 짧은 해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아쿠말에서 바닷속 사진을 찍으며 했던 가장 큰 실수는 카메라의 화이트밸런스를 맞추지 않은 것이다.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는 깊은 수심에서 카메라를 보호하는 아쿠아팩이 없어서 수중에서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었다. 이때 처음으로 물놀이용 아쿠아팩을 사용해 수중에서 사진을 찍어본 것이라 화이트밸런스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쉽게도 사진이 모두 푸르딩딩하다.



오리발을 저어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가다보니 갑자기 바다밑바닥에 거북이가 나타났다. 거북이는 느릿하지만 우아하게 움직이며 밑바닥에서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 바다거북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다니, 흥분되기 시작했다.




이 곳에 사는 바다거북이가 어떤 종류인지는 모르겠다. 해변에 세워진 표지판에 큰 것은 최대 1미터 조금 넘게 자란다고 되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종류는 몰라도 곧바로 바다속에서 이처럼 우아하게 움직이는 커다랗고 순하게 생긴 동물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바다거북이가 헤엄치는 모습은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다. 짧은 뒷발은 쭉 뻗고, 커다란 앞발을 마치 날개짓을 하듯 천천히 펄럭이며 헤엄친다. 이 모습이 무척이나 우아하다. 그리고, 순박하게 보이는 커다란 눈과 뭉특하지만 꼭 다문 입이 (나보다 훨씬 높은 연배겠지만...) 무척 귀엽다.


마치 무중력상태의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 만난 거북이를 살금살금 따라다니다보니 어느새 이곳저곳에서 다른 거북이들도 만나게 되었다. 그제서야 해변 어디에서 거북이를 볼 수 있냐는 물음에 황당하다는 듯 해변 전체를 휘휘 가리키던 현지인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거북이는 이곳 바다 밑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이었던 것이다.



거북이를 따라 다니다가 가오리를 만나기도 하고...


이곳에 사는 거북이는 모래바닥에서 자라는 해초를 먹고 산다. 잔잔한 바다위에 떠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바다거북이가 해초를 뜯을 때마다 '또독', '또독'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참 해초를 뜯다가 숨이 가빠지면 천천히 물위로 올라와서 한번 숨을 쉴만큼 짧은 순간 수면에 머리를 내밀었다가 다시 바다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해초를 뜯는 행동을 반복한다. 거북이는 이 단순한 행동을 반복할 뿐이지만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이전에 본 바다거북이의 입은 앵무새의 부리하고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곳의 거북이는 입이 뭉툭한 편이었다. 아마도 바닥에서 해초를 먹이로 하기 때문에 뜯기 좋도록 뭉툭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아주 잠깐 수면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숨을 쉰다.


저 점잖고 순해보이는 눈을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제법 큰 가오리를 만났다. 물속에서는 30%쯤 크게 보인다고 하지만 꼬리까지 길이가 2미터는 훨씬 넘어보였다.


아쿠말에서 바다거북이를 볼 때 주의할 점은 절대로 만져서는 안된다는 것과 항상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흥분된 마음에 조금 가까이 다가가는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절대로 지나치게 가까이 가서는 안된다. 이곳이 잘 알려진 바다거북이 서식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것들이 잘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북이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인간은 단지 지켜볼 뿐이다.



꼬박 이틀 동안을 아쿠말에서 바다거북이만 보면서 보냈다. 툴룸에서 당한 좋지 않은 일의 결과로 경비가 썩 넉넉하지 않아서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도 많았지만 한번 바다에 들어가면 입술이 파래질때까지 오랫동안 거북이를 보고 있는게 너무도 좋았다.



아쿠말의 해변. 깊지도 않고, 물도 깨끗해서 그냥 해수욕을 하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발목보다 조금 깊은 곳에서 뭔가 있어서 보니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다니고 있었다. 물고기조차도 사람을 겁내지 않았다.





스노클링을 하다가 점심식사를 위해 들어간 식당. 음식냄새가 나자 발치에 고양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쿠말은 툴룸에서 받은 약간의 상처를 치유했던 곳이었다. 여행중 첫번째 당한 소매치기(혹은 절도?)에 금전적인 피해도 상당했다. 소매치기를 당한 시점이 멕시코여행 초반이었으면 이곳에 대한 이미지가 무척 나빠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 이후로 어떤 좋은 곳에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을 의심해야 했거나, 어쩌면 일정을 줄이고 다음 여행지로 떠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3주간 멕시코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이미 멕시코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던터라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게다가 작고 조용한 아쿠말에서 바다거북이를 따라다니며 이틀을 지내다보니 그 일은 훨씬 쉽고 빠르게 잊혀졌다.


물속에서 바다거북이와 춤췄던 이틀은 쉽게 잊혀지지않을 기억이 되었다.(물론 춤이라는건 내 입장에서만이다.)


......


- 툴룸에서 소매치기 사건을 위주로 쓰다보니 몇 가지 빠뜨린게 생각났다. 소매치기를 당한 다음날 퍼블릭 비치에 갔었다. 화내고 짜증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아니까.(내 성격중 조금은 장점이 아닐까싶다.) 퍼블릭 비치 누워서 코로나를 마시며 바다를 보는 것도 무척 좋았다. 편안하게 누울 자리가 필요하지 않다면 놀기에는 프라이빗 비치보다 퍼블릭 비치가 더 나았다.


- 아쿠말에서 둘째날, 아저씨의 추천으로 아쿠말과 툴룸 사이에 있는 조용한(길가에서 입장료를 받는 현지인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바닷가를 찾았다. 거기는 거북이와 가오리, 각종 해양생물들을 볼 수 있는 훌륭한 포인트라고 했다. 입장료(바다거북이 보호기금 같은)까지 내고 갔지만 커다란 가오리와 작은 바라쿠다 한마리씩 본 것 말고는 특별한 해양생물이 거의 없었고 파도도 꽤 심해서 다시 아쿠말 해변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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