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위뻥마을에서 페이라이시로, 오늘은 다시 샹그릴라로 돌아가야한다. 이번 여행의 클라이막스도 지나고 이젠 남은 여운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할 때다. 마지막으로 메이리쉐산을 보기위해 이 날도 새벽에 일어났다. 어째서 항상 돌아가는 날이 되면 이렇게나 날씨가 좋은 것일까. 징크스는 깨지기는 커녕 더욱 심해졌다.





6000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지만 높이에 따라 햇빛이 비추기 시작하는 시간이 약간씩 차이가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먼저 붉은 색을 띄기 시작한다.





며칠째 설산과 설산에서 해뜨는 사진만 올려대고 있으니 가끔 들어오는 분이 있다면 지겨우실지도 모르겠다. 사진으로는 흔한 설산일뿐이지만 직접 가서 보고, 걷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고흐의 그림을 미술관에서 처음 보았을 때, 미켈란젤로나 베르니니의 조각상을 처음 마주했을 때도 사진으로는 수없이 봐왔던 작품들이지만 실제로 보면 그 감동이, 느낌의 깊이가 다르다. 자연이 만들어낸 풍광을 직접 보는 것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미술품을 직접 보는 것보다 훨씬 커다란 차이가 난다.





마지막으로 메이리쉐산의 일출을 보고 숙소로 돌아와 따끈한 국수 한그릇으로 몸을 녹였다. 다른 테이블에서 시킨 것을 보고 따라 시킨 것이지만 고기 고명이 올라간 짭짤한 국수는 입맛에도 잘 맛았다.


원래는 오늘 위뻥에서 나오는 헤어진 일행들과 더친에서 합류하여 샹그릴라로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 더친으로 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빠오처에 문제가 생겨서 샹그릴라로 바로 가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나도 좁은 빠오처에 끼어서 활달하기 그지없는 중국처자들과 몇 시간 차를 타고 가는게 썩 내키지 않았기에 상관없지만 문제는 내가 샹그릴라로 가야하는 시간이 촉박해졌다는 것이다. 혼자서 샹그릴라로 가기로 했더라면 페이라이시에서 일출을 보고 떠나는 사람들과 섞여 샹그릴라나 더친으로 가는 빠오쳐를 타면 됐을텐데 이제는 빠오처들도, 사람들도 모두 떠나고 애매한 시간에 페이라이시에 남겨져버렸다.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좀 더 빨리 연락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마음이 썩 편하진 않았다.




더친으로 가는 빠오처를 알아보는데 어째서 날씨는 이렇게나 좋고, 설산은 멋진 자태를 보여주는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서둘러 사진을 조금 더 찍었다.






페이라이시와 더친은 거리가 가까워서 빠오처를 쉽게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며칠전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더친 정류장에 수없이 서있던 빠오처들을 보고 마음을 놓았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이미 아침에 여행자들이 빠져나가버려서인지 빠오처 자체가 보이지 않았고, 어쩌다 오는 빠오처들도 현지인들을 태우고 근처 마을로 가는 차들밖에 없었다. 전망대 매표소에도 물어보고 숙소에도 물어보지만 마땅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사실 말이 아니라 수첩에 페이라이시->더친이라고 삐뚤삐뚤 쓴 한자였다.)


이렇게 동분서주해보지만 아무 대책이 없어 난감해하고 있을 때 다시 친절한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행 가방을 앞에 둔 중년 아주머니가 계시길래 가능한 착해보이는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수첩을 내밀었더니 자기도 그쪽으로 간다면서 조금 떨어져있던 남편을 불렀다. 남편은 영어를 조금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불러 준 것이었다. 그 분은 '자신들도 외지(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국의 도시가 한두개란 말인가?)에서 왔는데 더친으로 가는 중이니 자기들과 같이 가면 된다면서, 자기가 빠오처를 잡을테니 걱정말고 여기에 있어라'고 하셨다.


중국은 희한한 나라다. 사람 때문에 실망하거나 화가 나면 그 갚음을 해주려는지 어느새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살뜰하게 도와준다. 보편적인 친절함이나 서비스는 기대할 수 없지만 또 속깊은 배려와 진심어린 도움은 기대할 수 있다. 이거 웃어야 하는 건지 울어야 하는 건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이게 중국의 매력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가방을 옆에 두고 빠오처를 기다리고 있는 친절한 중국 아저씨


왕복에서 편도로 바뀌었지만 산사태로 어제 걸어서 지나야했던 길에 어찌어찌 차가 다닌다.


이 분들은 빠오처 기사에게 요금을 물어보고, 나에게 기사 옆자리에 타라고 자리를 내주고는 자신들은 다른 사람들과 비좁은 뒷자리에 앉았다. 더친 터미널에 도착해서도 매표소까지 나를 데려다 주고는 표를 잘 샀는지 확인까지 해주었다. 물어본 부분에 대한 대답만하고 끝내는게 아니라 이 부부는 정말 친절하게 내가 샹그릴라로 잘 가도록 챙겨주었다. (사실 어느 정도는 과하기도 하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고마울 뿐이다.) 부부는 더친에서 하루를 묵고 샹그릴라로 갈 예정이라해서 '셰셰'를 남발하고 헤어졌다.(고마운 분들의 사진이라도 남겼어야했는데 정신이 없었다.)


버스표를 사고나니 어제 위뻥을 나오면서 했던 고생이 끝났구나 싶었지만 그건 내 바램이었을 뿐이었다. 내 자리는 35인승쯤 되는 중형 버스의 가장 마지막 자리 창가석이었다. 맨 뒷자리는 보통 등받이가 뒤로 젖혀지지 않는데 이 버스는 앞뒤로 간격까지 무척 좁았다. 허리를 세우고 앉아야 무릎이 앞 좌석에 닿을락 말락 했다. 게다가 내 옆자리는 100킬로는 한참을 넘을만한 몸무게의 젊은이였다. 버스는 빠오처보다 샹그릴라까지 가는 시간이 더 걸렸다. 장장 5시간동안 불편한 자세로, 옆에서 침범하는 거대한 허벅지를 내 얇은 다리로 막으며 가야했다.(내 다리도 보통에 비해 굵은 편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렇게나 얇았을 줄이야...)


오후 느지막이 숙소인 자희랑에 도착하니 빠오처로 출발한 일행들은 이미 들러서 짐을 가지고 리장으로 떠났다고 했다. 어째 메이리쉐산을 트레킹하는 것보다 거기서 나오는게 더 힘들게 느껴졌다. 방을 잡고 신발을 벗으니 산길을 걷느라 고생한 양말에 큼직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날은 오랫만에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자희랑에도 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뻥이나 페이라이시처럼 자려고 불을 끄면 천장에서 운동회를 벌이는 쥐떼들은 아니었고, 옆에서 밤새 코를 고는 일행도 없었기 때문이다. (위뻥의 숙소는 하룻밤에 4,5천원으로 무척 저렴했기 때문에 쥐떼가 좀 돌아다니더라도 불만을 갖기는 어렵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