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18박 19일간의 윈난 여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무리하면 하루 정도는 메이리쉐산에서 더 보낼 수 있었음에도 샹그릴라로 돌아온 것은 여행 마지막날은 그동안의 여행을 정리하며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메이리쉐산으로 떠나기 전에 가보지 못한 쑹짠린시(송찬림사松贊林寺)에 가보기 위해서였다.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숙소에서 알려준 곳에서 버스를 탓다.


샹그릴라에는 시내버스 노선이 몇 개 없으니 잘못 탈 염려는 없다. 우리나라 마을버스 크기의 버스가 다니는 노선이 몇 개 있다.


샹그릴라 시내에서 5킬로미터쯤 떨어진 쑹짠린시도 여느 다른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티켓을 사는 곳과 입장하는 곳이 나뉘어져 있다. 버스가 경찰의 검문소 비슷한 곳에 서더니 제복을 입은 사람이 버스에 탓다. 그리고는 현지인이 아닌 듯한 사람은 내리게 했다. 현지인들은 그 버스를 타고 그대로 들어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검문소 옆에 있는 커다란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했다. 샹그릴라에 사는 티베티안을 제외하고는 중국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뒷문으로 나가면 셔틀이 기다리고 있다. 이 셔틀을 타고 조금 더 들어가면 언덕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쑹짠린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한국사람들도 무척 많이 찾는 듯, 모든 안내표지판이 한국어로도 잘 번역되어 있었다. 따리의 어설프고 웃긴 번역하고는 달랐다. 표지판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쑹짠린시는 1679년 청나라 강희 18년에 5세 달레이라마가 황제의 비준을 받아 짓기 시작하였으며, 1681년 준공되었다. 5세 달레이라마는 '갈단 송찬림'으로 이름을 지었고, 청나라 영정 황제는 '귀화사'라는 이름으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외관 구조가 티벳불교의 본산인 포탈라궁전과 비슷하여 '소 포탈라궁'이라 불리기도 한다. '길강', '자창', '주강' 3대 대전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5대 달라이라마가 머물렀으며 포탈라궁과 비슷해 더욱 유명한 쑹짠린시


버스에서 내린 여행자들에게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티벳여인들의 노점

 



솔직히 쑹짠린시에 오게 된 것은 포탈라궁과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여행매체나 여행자들의 블로그에서 세계의 명소를 볼 때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곳들을 지난번 세계여행을 하며 제법 많이 가볼 수 있었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해서 아직도 많은 곳들이 남아 있는데 그 중에 한 곳이 포탈라궁이다. 시간이 남아돌더라도 포탈라궁을 보기는 어려운데, 소수민족들의 독립운동이 외부로 알려지는게 싫은 중국정부가 외국인들의 티벳여행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모험심 많은 여행자들이 몰래 숨어들어간다고 하는데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갈 수야 없다. 어쨌든 사진으로만 보고 그리던 포탈라궁을 간접체험이라도 해볼까하고 쑹짠린시에 가게 되었다.


쑹짠린시 앞에 있는 호수




티벳불교의 중요한 사원이니 화려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휘황찬란했다.


아이고, 3000미터가 넘는 이곳에서 가파른 계단을 보니 벌써 숨이 차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절도 건물이 여럿으로 나뉘어 있고 그마다 모시는 부처님이 다른 것처럼 티벳불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티벳불교는 커녕 불교라는 종교 자체에 무지하다보니 내가 보고있는 불상이 어느 부처님을 모신 것인지도 몰랐다. 티벳불교 사원의 분위기를 느껴보려고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조용한 발걸음으로 여기저기 둘러 볼 뿐이다. 종교적인 장소에서는 이유불문하고 경건한 마음가짐과 자세만 가진다면 어디든 박대당하지 않는다는게 내 생각이다. 


사원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데 사방이 막힌 내부는 어둡고 분위기가 무척 엄숙해서 찍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불상을 중심으로 네 벽면에는 승려들이 앉는 방석이 깔려 있었다. 몇몇 승려들이 앉아서 열심히 불경을 외고 있는데 그 속도가 우리가 흔히 보던 스님이 불경을 외는 속도보다 무척이나 빨라서 조금은 낯설었다. 사원 한 곳에도 승려들이 앉는 방석이 그렇게 많았는데 사원 전체에는 얼마나 많은 승려들이 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700명의 승려들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





워낙 유명한 사원이고 알려진 곳이다보니 이곳의 승려들도 여행자들을 대하는데 스스럼이 없었다. 지나가는 관광객이 승려를 붙잡고 같이 사진 찍기를 부탁하면 흔쾌히 들어준다. 이 큰 규모의 사원이 이제는 신도들의 시주만으로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관광객들의 입장료와 기부가 큰 비중을 차지할테니 어느 정도 그에 대한 배려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부탁한 사람이 여성이라 수락했던건... 절대 아닐거다.



사원의 네 벽면은 창이 거의 없고 대부분 막혀있다. 창이 있는 곳은 햇볕이 들지않게 가림막이 쳐져있는데 가림막이 없는 곳은 창틀에 그을음이 묻은 것으로 봐서 주방 같은 곳일 듯하다. 혹독한 겨울 추위 때문에 벽에 창을 많이 내지않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그나마 있는 창문마다 가림막을 치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원들은 모두가 비슷비슷해서 금새 지루해졌다. 내부를 봐도 불상의 생김새만 조금 다르지 구조나 모양이 다 비슷하다. 사원 돌아다니기를 그만두고 쑹짠린시의 가장 높은 곳에서 경치를 보고 있으려니 근처 계단에서 두 스님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스님은 십대 초반으로 보였고 다른 스님은 적어도 삼십대 후반은 되어 보였다. 이 두 사람은 승복을 입지 않았다면 부자지간으로 보일 정도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왠지 느낌이 어린 스님의 불만을 나이가 많은 스님이 들어주는 듯했다. 나이로 보면 어린 스님이 나이든 스님에게 매우 공손하고 깍듯해야 할 것 같은데 둘의 이야기는 스스럼이 없었다. 티벳불교의 승려들 사이에도 무척 엄한 서열이 있을테지만 그 서열이란게 나이와는 상관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이차가 있다보니 큰 형과 막내동생 혹은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였다.


두 스님이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좀 더 나이든 스님이 지나가다가 본인이 먹고 있던 튀김빵 같은 것을 내밀었다. 삼십대쯤 되어 보이는 스님은 받아들었지만 어린 스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이 든 스님이 빵을 우물거리며 걸어다니는 것도, 봉지에서 주섬주섬 꺼내 아래 스님들에게 건네는 것도 무척 낯설었다. 왠지 발우공양하는 시간에만 음식을 먹고, 항상 몸가짐이나 자세에 신경쓰는 줄 알았는데 서로 이야기하는 태도나 행동거지가 일반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이들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이들의 생활은 무척 절제되고 엄격할거라 생각했었는데 항상 그런건 아닌가보다.


한 손에 먹던 빵을 든 나이든 스님, 삐딱한 자세로 서서 이야기하는 스님, 한걸음 떨어져 두 사람의 대화에 신경도 안쓰는 어린 스님...



두 스님은 어디론가 가고 어린 스님만 남았다. 어린 스님은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지 한참을 계단 난간에 기대어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종교에 평생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했더라도 어린 나이니 가족이 보고 싶을 수도,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부러울 수도 있겠다. 그 각오조차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을 수도 있다. 아래에 내려다 보이는 어린 스님의 작은 몸집이 외로워 보였다.



어린 스님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하늘에는 까마귀떼들이 맴돌고 있었다.




쑹짠린시에 다녀오는 것으로 나의 윈난여행 일정이 모두 끝났다. 오후에는 티벳의 햇볕이 내리는 숙소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면서 시간을 보냈다. 쿤밍, 따리, 리장, 샹그릴라, 매리쉐산을 거치면서 더 깊이, 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교통편은 불편해지고 숙소와 음식도 거칠어졌지만, 그럴수록 윈난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따가운 햇볕이 받으며 아직 못가본 스촨성과 티벳자치구도 언젠가 가보리라 다짐했다.


내일은 이른 아침에 샹그릴라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쿤밍으로, 쿤밍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서울로 간다. 여행을 계속 이어가고 싶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한다. 짧았던 윈난 여행이 아쉽게 막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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