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을 떠나기 전날은 숙소 주인장과 저녁식사겸 술자리를 했다. 매리설산 위뻥마을에서 세계여행 중이었던 일행과 중국 위안화와 한국 원화를 맞바꿨기 때문에 수중에 돈이 별로 없었지만, 약간의 남은 돈을 털어주고 부족한 건 주인장이 부담하기로 했다. 주인장은 외진 곳에서 사업을 하다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그날따라 꽤나 술을 마시고 싶었던 것 같다.


그날 나눴던 이야기 중에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이 곳을 찾는 한국인들, 특히 나이가 지긋하고 예전에 회사에서 괜찮은 직책에 올랐거나 주목 받는 임직원이었다는 사람들이 가진 선입견에 대한 것이다. 일생을 한 방향만 보고 달려 온 사람들은 자신이 해왔던 일에 대한 깊이는 있으되 그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의외로 폭이 좁아서 자신이 아는 것 외의 다른 세상은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중국의 외딴 지방에서 숙소를 하고 있는 이 주인장의 일이 하찮게 보이는지 젊은 사람이 야망이 없다는 둥, 이런 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둥 별 도움도 안되는 이야기를 조언이라는 명목으로 꽤나 했던 것 같다. 샹그릴라의 숙박시설 중에서 트립어드바이저 상위권에 올라있는 번듯한 숙소와 꽤 커다란 식당을 가지고 있는 사업가인데도 이들에게는 번듯한 대기업 간판과 그럴듯한 직책이 없으면 모두 하찮게 보이나보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까지 이룬 성과나 앞으로 성공 가능성을 보면 숙소 주인장 쪽이 월등해 보임에도 말이다.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숙소중에서 외국여행자들에게도 잘 알려져있거나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추천하는 숙소는 무척 드물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면 자신에게 맞추려 하지말고 그냥 존중해주었으면, 자신의 시야로 사람들은 판단하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이 불문하고 '꼰대'라고 불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꼰대라고 불리지 않는 것, 이것은 나의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샹그릴라 공항 흡연실에 있던 点烟器, 꽤 참신한 아이디어 아닌가요?


이튿날 이른 아침, 숙소 승합차를 타고 샹그릴라 공항에 도착했다. 서울로 돌아가서 시작할 일이 잘 되면 몇 년내에 다시 찾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주인장과 헤어졌다. 그리고 샹그릴라에서 쿤밍으로, 쿤밍에서 서울로 하루종일 걸려서 저녁무렵 서울에 도착했다. 


윈난은 출장을 제외하고 처음 여행한 중국지역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갑자기 생긴 3주간의 시간을 위해 급하게 결정한 여행지였지만 훌륭한 풍광과 음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가 공존하는 멋진 여행지였다. (비록 여행하기 쉬운 곳은 아니지만...) 지금 내 업무용 노트북의 바탕화면에는 윈난에서 찍은 사진들이 번갈아가며 뜬다. 이 사진들을 볼때면 언젠가 매리설산을 지나 티벳으로 향하는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위뻥마을 숙소에서 찍은 한밤중의 매리설산. 어설프지만 노출을 맞추느라 추위에 떨며 고생했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어둠 저편에 있는 거대한 설산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얼굴에 와닿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작년 10월에 여행한 18박 19일의 윈난여행기를 마무리한다. 출근중 남는 시간에 짬짬이 하다보니 3주도 안되는 여행기를 정리하는데 석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세계여행 정리로 돌아간다. 모든 여행을 정리하고나서 더 이상 할 게 없으면 무척 허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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