쏭끄란 마지막날, 아침부터 따끈한 국물 생각에 다시 예전에 갔던 보트 누들을 파는 집에 갔다. 태국 국수는 양이 무척 적기 때문에 남자들은 곱빼기로 달라고 한다던지, 두 가지를 시켜서 먹어도 많지 않다. 쇠고기 국수는 국물이 진하고 닭고기 국수는 맑고 시원하다. 


간혹 타이 음식이 무척이나 생각날 때에는 우리나라에 제대로 현지식으로 만들어내는 타이 음식점이 없다는게 너무 아쉽다. 몇 번 유명하다는 타이 음식점을 가봤지만 베트남 음식점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한국화한 맛으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 베트남 쌀국수집들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에는 당연히 고수가 들어가 있었고 그 맛이 싫은 사람은 빼달라고 해야했는데 어느샌가 고수가 들어가지 않는게 당연해지고 맛은 밋밋하고 평범해졌다. 사업은 성공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호응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게 당연하지만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면에서는 많이 아쉽다.


그러고보니, 여행 초기 방콕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그리스 레스토랑을 했었던 덩치 큰 '그 녀석'이 생각난다. 이제 이름도 잊어버렸지만. 그는 여행중에 그리스 음식이 좋아서 그리스 요리를 배웠고 한국에서 레스토랑을 개업했다고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리스 요리는 지중해에서 많이 나는 올리브유, 가지, 레몬 등등이 주재료이고 조금 느끼하다. 얼큰한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입맛에는 맞지 않았고, 현지화하라는 주위의 조언보다는 제대로된 그리스 음식을 내놓겠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기에 레스토랑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분명 그리스 음식을 좋아하는 일부의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들만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기에는 시장이 너무 작았던 것이다.




쏭끄란의 마지막 날을 아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구도심으로 통하는 성문 근처에 모여 있었다. 도시 곳곳에는 아래 사진처럼 'No ALCOHOL'이라고 써진 깃발들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타이 국왕이 축제 기간중에 알콜로 벌어지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 지시한 것이라고 했다. 알콜을 전혀 팔지 않고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낮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 사실 술 마시는 것보다 더 신나게 놀 수 있으니 마실 필요도 없다.


꽃남방과 커다란 물총, 다이빙 마스크로 중무장한 커플. 나이도 있어뵈는데 이 기간동안에는 모두 아이가 된다.





쏭끄란 축제기간 동안에는 밤에 사원에서도 음식을 파는 장이 선다. 거기서 파는 음식은 사찰음식이라거나 채식위주의 음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먹어볼 신기하고 다양한 것들이 많았다.







시끌벅적했던 사흘동안의 쏭끄란 물축제가 끝이 났다. 다음날 숙소를 나왔을 때는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가서 어제까지 그런 축제가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간간히 골목에서 어린 아이들만 축제의 아쉬움을 풀고 있을뿐이었다. 이틀간 수고했던, 내 인생 첫번째 물총은 골목 아이들에게 선물로 넘겨졌다.


이 날 아침식사는 '론리 플래닛'의 강력한 추천 식당인 아룬 라이 레스토랑에서 했다. 커리와 똠양, 스티키 라이스를 배부르게 먹고 쏭끄란을 즐기느라 미뤄뒀던 치앙마이의 명소를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

왼쪽 바구니안에 쫄깃한 찰밥이 담겨있다.


어떤 음식을 시켜도 풍부하게 들어가있는 해산물 들


축제가 끝나고 치앙마이의 명소로 방문한 곳은 왓 프라탓이 있는 도이수텝이었다.  도이수텝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왓 프라탓은 부처님의 사리가 안치된 불탑이 있고, 이 사리를 운반해 온 흰 코끼리의 절설이 있는 유명한 사원이다.


치앙마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버스와 택시가 없다. 시내에서는 몇 개의 노선으로 나뉘어진 썽떼우(색깔로 노선을 판별했는데 상세한 생각은 나지 않는다)를 타고 다닌다. 도이수텝은 치앙마이에서 좀 떨어진 외곽에 있기 때문에 시내에서 치앙마이 동물원으로 가는 썽떼우를 탄 다음, 여기서 도이수텝으로 가는 차로 갈아타고 가야한다.


산을 빙빙 돌아올라가서 도이수텝 입구에 내리면 아래 사진처럼 계단이 나온다. 높거나 가파른 계단은 아니지만 이 땡볕에 올라가려니 괜히 한숨부터 나왔다.


계단을 올라가면 커다란 잭 푸르트 나무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가지가 아니라 큰 줄기에 주렁주렁 붙어있다. 더운 나라를 여행하면 종종 드는 생각이지만 열대지방의 풍성한 생명력과 다양성은 놀랍다.





왓 프라탓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산 위에서 치앙마이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새해를 맞이하는 쏭끄란 기간이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참배하고 복을 기원하고 있었다. 여기서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부처님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는 커다란 황금불탑이 나온다. 




불탑주위의 모든 것이 황금색으로 칠해져있어 눈이 부실 정도다.



스님에게 가족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향이나 초에 불을 붙이기도 하고, 향로에 기름을 부으면서 또는 종을 치면서 행복을 기원한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복을 비는 방법이 무척이나 다양한 것 같다.



부처님 사리를 운반한 흰 코끼리가 세 번 돌고 죽었다는 불탑 주위를 돌며 뭔가를 기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이수텝을 내려와 시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저녁을 해결해야 하기에 썽떼우에서 내린 곳에서 가까운 시장으로 갔는데 그 와중에 달콤한 고기 굽는 냄새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발걸음이 향한 곳은 돼지 갈비나 삼겹살, 곱창을 석쇠에 구워 파는 노점이었고 타이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었다. 여행 경험상 이건 여행자들은 잘 모르는 현지인들의 맛집이 분명했다. 이들 사이에 끼어 기다린 끝에 종류별로 고기를 사고, 다른 노점에서 쏨땀과 밥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동안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가격대의 여러가지 음식들을 먹었지만 시장에서 사온 고기와 쏨땀이 나에게 동남아 최고의 음식이 되었다. 구운 고기도 최고였고, 그 옆 노점에서 산 쏨땀도 그에 못지않았다. 먹는데 열중하느라 이 날 남긴 사진조차 없지만, 여행이 끝난 지금도 고기가 먹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바로 이때 먹은 고기였다. 정보를 보고 찾은 곳도 아니고 늦은 저녁을 때우기 위해 우연히 간 곳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특별한 음식을 먹었다. 


살다보면 찾으려고, 가지려고 많은 노력을 쏟은 후에 얻은 것들이 생각에 못미칠 때가 있다. 이럴 때 흔히 노력이 부족해서, 열의가 부족해서 얻은 것이 보잘것 없다고 이야기하고 더 노력하면 더 큰 것을 얻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래 보잘것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반대로 평소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더 집중한다면 훨씬 소중한 것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늦은 여행 후기를 쓰는 중에 뜬금없는 소리이긴 하지만 여행내내 이런 생각들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여튼, 오늘 낮에 본 도이수텝과 왓 프라탓보다 늦은 저녁식사로 먹은 고기와 쏨땀이 훨씬 크게 각인되었고, 다시 치앙마이에 가야할 이유가 되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