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여행 기록을 시작하면서 가능한 현지 발음대로 지명을 표현하려고 했으나 국내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현지 지명대로 썼을 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내가 과연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졌다. 방비엥만 하더라도 이 지명은 프랑스어로 표현된 지명이고 현지에서는 왕위앙(혹은 오래된 지명인 무앙송)으로 이야기하는데 2년이 지난 지금 벌써 이 지명들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어차피 개인 기록용으로 블로그를 시작했으니 무슨 상관이랴 싶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이 블로그를 방문하고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가져가시는 분이 있을까 염려된다. 가능한 위키백과도 찾아보고 네이버 백과사전도 뒤쳐보면서 정확하게 올리려고 한다.


작은 마을 방비엥이 형성된 시기가 무려 1353년이라고 한다. 위앙짠과 루앙프라방의 거점 지역으로 발전했다고 하는데 650년이 더 지난 현재는 오히려 도시가 쇠락한 것인지 지금과 같은 작은 마을로 남아있다.


방비엥에서는 저렴하게 할 수 있는 액티비티 투어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 유명한 것이 방비엥을 가로질러 흐르는 남송강을 튜브나 카약을 타고 내려오는 튜빙과 카약킹 그리고 블루라군에서 물놀이 등이 있다. 블루라군은 젊고 체력에 자신 있는 여행자라면 자전거를 빌려서 다녀 올 수 있는 곳인데 당시 몸상태도 썩 좋지 않아서 물놀이보다는 늘어지는게 좋아서 블루라군 투어는 생략했다.



이른 아침 투어를 예약한 여행사(당시에는 여행사로 폰트래블이 유명했었다.) 앞에서 태국의 썽태우 같은 차를 타고 강의 상류쪽으로 비포장 도로를 한참 올라간다. 위 사진은 비포장 길이긴 하지만 매우 양호한 상태이고 이 길을 조금 더 가면 쿠션이 없는 썽태우 의자에 엉덩이가 한참 고생을 해야하는 심한 비포장 길이 나온다. 


카메라 보호를 위해 방수팩을 씌우면 렌즈가 가려져 사진 주변이 검게 나올 수 있으니 제대로된 사진을 찍으려면 항상 신경을 써야한다.



썽태우에서 내려서 동굴 튜빙을 하러 한참 논길을 걸어가면 동굴 바로 옆에 조그만 현지인 집들이 모여 있는데 여기서 아침을 먹는다. 아침으로는 고기와 야채를 낀 꼬치와 볶음밥, 샌드위치를 주는데 10불을 내고 투어와 아침식사까지 제공되는 이런 투어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찾기 힘들다. (2년 6개월이 넘게 지난 기억이라 정확히 10불이었는지 장담할 수 없고, 가파르게 경제가 발전하고 물가가 오르는 개발도상국 특성상 지금은 많이 올랐으리라)


옆에서 돼지, 닭, 오리가 뛰노는 커다란 원두막에서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과 하는 아침식사도 즐겁다.



식사 후에는 머리에 랜턴을 달고, 구명조끼를 입고 튜브에 올라탄채 위 사진에 보이는 조그만 동굴로 들어간다. 입구는 수면과 거의 맞닿아있지만 안쪽은 생각보다 높았고,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지하에서부터 흘러서 지표밖으로 나오는 물이라 황톳빛 강물과는 다르게 맑고 파랗다. 


동굴로 들어간 직후 안에서 찍은 동굴입구



동굴 안은 어둡고 물은 차갑다. 깊은 곳은 발이 닿지 않지만 어차피 가이드들이 튜브를 당겨주는데다 튜브에 올라탄채 동굴 안에 연결된 줄을 잡고 당기면서 다니기 때문에 전혀 겁을 낼 필요는 없다. 부지런히 다녀야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틈도 없고 너무 어두워서 찍어봐야 제대로 찍히지도 않는다. 동굴 튜빙은 튜빙 자체의 재미보다는 으스스한 귀신의 집으로 입장하는 듯한 재미가 있다.





동굴 튜빙이 끝나면 근처 동굴 사원을 구경한다. 코끼리를 닮은 바위(위 세번째 사진)가 있고 동굴 안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 북부에는 석회암 지역이 많은지 방비엥, 루앙프라방 등에는 이런 석회동굴에 형성된 사원들이 매우 많다.


이제 드디어 투어이 하이라이트 튜빙과 카약킹을 하는 시간이다. 말 그대로 튜빙은 튜브를 타고, 카약킹을 카약을 타고 강을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다. 몇 시간 동안 타고 내려오려면 피부가 많이 타니 썬크림을 바르는게 좋다. 바르는 걸 싫어하는 나는 투어가 끝난 다음 따끔거리는 피로부 꽤나 후회했다.





내가 방비엥에 갔을 때는 4월초여서 건기에 속했다. 그래선지 강의 수량은 적었지만 강물색은 황톳빛이 아니었다. 느긋하게 카약을 저어 내려오면 맥주와 음료,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는 물가 휴게소가 나온다. 여기서는 해먹에 드러누워 쉬면서 체력을 보충하고 다시 내려간다. 어차피 하류로 내려가는데다 느긋하게 저어도 카약이 잘 나가기 때문에 사실 힘들 일은 없었다.


카약킹은 오후 4시쯤 끝이 났다. 투어를 같이 하는 현지 가이드들은 사람들의 구명 조끼와 식사를 챙기고 카약을 나르느라 힘들고 바쁘지만 친절했고 얼굴은 항상 웃고 있었다. 투어를 마치고 나서 이 사람들을 위해 약간의 팁과 함께 고마움을 담은 인사를 건냈으면 좋겠다.



투어를 끝내고 저녁으로 몸보신을 위해 스테이크를 시켰다. 사실 스테이크라도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이다. 문제는 고기가 무척이나 질기다는 것이다. 동남아의 근육질 물소일테니 당연하다. 이전 경험으로 소고기는 시키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스테이크의 유혹에 빠져 실수를 했다. 먹느라 턱이 아플지경이었다.









방비엥의 저녁은 아름다웠고 고즈넉했다. 아무 생각없이 며칠을 더 보냈으면 좋았으련만 이때는 루앙프라방에 또 무슨 볼거리가 있을지가 무척 궁금해서 오랫동안 방비엥의 그 고즈넉함을 즐기지 못했다. 물론 방비엥에서 너무 오래 보내서 루앙프라방을 들르지 못했다면 그것도 후회스러운 일이었을테니... 어차피 인생은 복불복이다. 지난 것은 어쩔 수 없고 좋았다면 다시 가면 되는거다.

위앙짠에서 방비엥에 가까워질수록 산이 깊어지고 황토빛 민둥산에서 초록빛을 제대로 갖춘 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평평한 지반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산들이 많았다.


아침 일찍 출발한 버스는 더위가 한창인 시간에 방비엥에 도착했다. 방비엥은 조그만 도시(혹은 마을)이며, 전통적인 농업을 제외한 경제 활동 대부분이 배낭여행자들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듯 싶었다.


방비엥은 동남아의 새로운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곳이며, 어떤 나이 많은 여행자는 방콕 까오산의 수십년 전의 모습이라고도 했다. 이 도시가 조그만 마을이었을 시절에 어떻게 여행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도시 곳곳에서 여행자 숙소용 건물을 짓고 있었다.






싸고 저렴한 숙소를 찾아 마을을 한 번 둘러보고 경관은 조금 부족하고 중심가에서 떨어져 있지만 싸고 조용한 곳에 짐을 풀었다. 깨끗한 침구류를 갖춘, 도미토리도 아닌 넓은 프라이빗 룸이 단돈 10달러다. 게다가 매일 청소까지 해준다. 여행 이전에도 이후에도 볼 수 없었던 가격대비 최고의 숙소였다.


방비엥을 대표하는 경관인 강물과 그 뒤편 바위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전경을 숙소 창문으로 구경하기 위해서는 3,4배 이상의 숙박비에 시설도 더 낡은 곳이었다. 멋들어진 풍경을 침대에 누워서 보기 위해서는 그 댓가가 필요한 법이다.


방비엥의 사진에 꼭 등장하는 나무다리


방비엥을 대표하는 전경...인데 사진 실력이 좀 부족했다.





방비엥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 중에서 한 가지는 레스토랑의 대부분이 배낭여행자, 특히 서양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메뉴들만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 배낭여행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현지 음식을 먹어보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조금 불만스러운 일이었다.


레스토랑 중에서 여행자들에게 유명하다는 식당이 바로 위 사진이다. 상당수의 서양 여행자들은 여기서 하루종일 틀어주는 시트콤 '프렌즈'를 보고, 배고프면 식사를 하고, 낮잠을 자며 낮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밤이 되면 술과 음악에 취해 밤을 새고, 어떤 부류들은 가끔 마약류까지 하는 듯하다.


훌륭한 경치에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너무도 저렴한 물가 때문에 때론 몇 달씩 눌러 앉아버리는 여행자들도 많았다.


숙소 뒤편으로 해가 지는 광경




내일 할 방비엥의 그 유명한 튜빙과 카약킹(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에 나왔던)을 단돈 10달러에 예약하고 인터넷에서 찾은 방비엥의 한국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할만큼 입맛을 잃은 것도 아니지만 먼 라오스, 게다가 이 시골마을 방비엥에서 하는 한국 음식점을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었다.(그 뒤 여행이 길어고 이 나라, 저 대륙을 다니면서 세계 각지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이 이렇게나 많다는걸 알 수 있었다.)


방비엥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방비엥을 떠나고 이 여행을 시작한지 몇 달이 지난 후 어느 날, 내가 방비엥에 머물렀을 당시에 배낭 여행 경험이 꽤 쌓인 상태였더라면 혹은 오랜 여행에 지친 상태였다면 나도 아마 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며칠이고 보내게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좋으면 멈추고 지겨우면 떠나는게 장기 여행자의 특권인데 겨우 한 달 지난 초보 여행자에게는 앞으로 봐야 할 것들, 보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의무감 비슷한게 있었던 것 같다.

여행지가 마음속에 깊이 남게 될 때는 그 곳의 풍광이 너무나도 훌륭하거나, 역사적인 유물이나 예술품에 감동 받거나, 아니면 그 곳의 문화(음식, 음악, 춤 등)에 빠지거나 했을 때다. 그 중에 사람들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마음 깊이 남게 된다. 라오스에서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이 가장 인상깊게 남아있다. 


앓아 눕게되자 덜컥 걱정이 앞섰다. 이 아픈 증상이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위협이 되던 사스나 열대 모기로부터 옮는 말라리아의 초기 증상인지 아니면 또 다른 풍토병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참고 낫기를 기다리다 병을 키우는 것은 아닌지, 병원에 가더라도 라오스의 의료기술은 신뢰할 수 있는지 몸은 몸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아플지경이었다.


결국, 병원에 가보기로 결심하고 인터넷에서 한인들이 갔었다는 라오스의 병원을 검색해서는 숙소 주인아저씨에게 몸이 아프니 이 병원에 대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아저씨에게 바라는 것은 오로지 병원에만 데려다 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출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시간을 끄는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전화를 마치고 '노 프러블럼'이라며 자기가 아는 병원으로 간단다. 병원비를 바가지 씌우기 위해 작전을 짜는 전화는 아니었는지 마음속에서는 의심이 뭉글뭉글 커져갔다.


숙소차가 아닌, 자기 개인 자가용에 태우더니 시내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병원 진료 수속을 대행해 주고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어가 되지 않는 의료진과 통역부터 시작해서 진료비, 주차비까지 본인이 전부 다 지불하는 거다. 여전히 '노 프러블럼'이란다. 그러고 나서 진료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릴 때쯤에야 먼저 돌아간단다.


병원에 오는걸 너무 쉽게 생각했던게 라오스의 의사는 영어가 전혀 되지 않았다. 꽤 규모가 있는 종합병원인데 말이다. 혼자서 수속부터 증상을 설명하고 결과를 받고 병원비를 지불하는게 예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었을텐데 주인 아저씨의 도움으로 일사천리로 끝났다.


감기몸살이라는 진료 결과를 받고, 약을 사고 돌아오면서 이 아저씨에 대한 고마움과 선의를 악의로 의심했던 미안함에 심하게 자책을 했다. 병도 큰 병이 아니라하고 현지에서 이렇게 큰 도움을 받았으니 어떻게 이 곳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뒤에도 라오스 사람들에게 받은 좋은 인상들이 많았다. 어쩌면 처음 주인 아저씨로부터 받은 도움 덕분에 자꾸 좋은 인상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선의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말로만 들을 때는 잘 모르지만 본인이 경험하게 되었을 때는 그 위력의 대단함에 놀라게 된다.


이튿날 감기몸살이 어느 정도 진정되어 계획했던 대로 방비엥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며 환송하는 주인 아저씨에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은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최고의 별점과 후기 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 뒤로 만나는 여행자나 사람들에게 라오스를 좋게 이야기하고 여행지로 추천하게 되었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 위앙짠 주차장













위앙짠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도로 사정은 썩 나쁘지 않았다. 이후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길에 비하면 고속도로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버스 밖으로 펼쳐지는, 이제야 보여주는 라오스의 실제 모습에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모든 산에서는 온통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화전을 일구기 위해 일부러 불을 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산은 황토를 드러낸 민둥산이 대부분이고 아이들은 맨발에 집들은 쓰러질 듯하다. 1달러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종일 일해야 하는 고된 삶과 교육보다는 노동에 몰리는 아이들의 현실이 차창 밖에 있는 것이다.


가 TV에서 인터넷에서 봤던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의 아름다운 경치는 대부분의 라오스와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렇게 버스안에서 찍은 흔들리는 사진을 올리는 이유는 이게 라오스의 실제 모습이기 때문이다. 관광지 사진만 보고 현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다. 즐길때 즐기더라도...

위앙짠에서 가장 먼저 찾게 되는 볼거리는 아무래도 탓 루앙이다. 위대한 불탑이라 불리는, 라오스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 여기는 불교유적 중의 하나이다. 일요일이어서 더욱 그랬겠지만 오전부터 라오스 지방에서 온 듯한 단체 참배객부터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로 붐볐다.



어제 강변에 있던 거대한 동상과 동일인물인듯...



황금색으로 칠해져 눈이 부신 탓 루앙



어느 꼬마 참배객의 센스 




탓 루앙에서 빠뚜사이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지도에서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로 보였으나 실제 더위 속에서 걸어보니 만만치가 않았다. 가는 도중 한국에서 시내버스로 사용되다 중고로 팔려온 듯한 버스가 보였다. 자신이 쓰고 버리는 것들이 타인에게 얼마나 소중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World Peace Gong이라는 징처럼 생긴 거대한 악기를 매달아 놓은 곳이 나왔고, 주위는 분수와 꽃들로 꾸며진 예쁘장한 공원이 나왔다.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Gong(라오스를 비롯한 동남아의 전통악기라고)이란다. 사진을 삐뚤어지게 찍은 것인지, Gong을 매달아 놓은 정자가 삐뚤어진 것인지... 상태는 이때부터 썩 좋지 않았다.


멀리 빠뚜사이가 보이는 공원에는 꽤 차려입은 듯한 라오스 사람들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휴일을 즐기고 있다.


빠뚜사이는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는데, 서방국가에서 도로였는지, 비행기 활주로였는지를 건설하라고 지원한 시멘트로 지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미고자 했던 것 같은데 비용을 마련하지 못했는지 외관의 칠도 일부만 되어 있고, 내부도 일부층만 꾸며져 있다. 계획대로 만들어졌으면 꽤 볼만했을 것 같은데 안타까웠다.


1층 입구에는 표를 받는 사람이 앉아있다.


아치 내부 장식도 파리 개선문과 꽤 흡사한 모양인데 완성을 하지 못했다.




현재의 라오스는 불교 국가인데 웬일인지 천정에 있는 신들의 모습을 보면 힌두신인듯하다.



빠뚜사이 꼭대기에서 보니 위앙짠 시내가 시원하게 보였다. 꽤 역사가 오래된 도시인데 구시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도로도 넓고 곧게 뻗어있다. 라오스는 산이 많은 국가인데 위앙짠은 평야지대라 지평선에 산이 보이지 않았다.



불상 모양을 한 난간 틀이 이색적이다.


전혀 정돈되지 않은 빠뚝사이 꼭대기로 통하는 계단 모습에서 이 나라의 경제상황이 썩 좋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일부 원래 계획대로 도색이된 천정부분은 꽤 아름답고 볼만하다.



라오스의 이색적인 우체통


빠뚝사이를 나와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배낭여행자 거리에 가서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를 예매하고 늦은 점심식사를 할만한 레스토랑을 찾았으나 일요일 오후라 휴무인 곳이 많았다. 찌는 듯한 더위에 반나절을 걷고 나니 체력도 완전히 방전이 되었고 어지러움까지 밀려오는 통에 숙소로 급히 들어가야했다. 


동남아 여행 한달동안 여러차례 야간버스를 타며 떨어진 체력에다 더운 날씨에 무리해서 걸은게 원인이었나보다. 이번 여행 중 첫번째 몸살에 걸려버렸고 다음날까지 꼼짝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다.

저녁에 사반나켓에서 출발한 버스는 새벽 4시쯤 위앙짠에 도착했다. 터미널은 도시의 변두리에 있어서 터미널 내부를 제외하면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절로 움츠러들고 생각과 행동이 방어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적어둔 숙소 주소를 보여주고 라오스 사람들로 가득찬 뚝뚝에 커다란 배낭을 우겨넣고 올라탓다. 라오스 사람들도 장거리 여행에 지쳤는지 얼굴 표정도 밝지 않아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뚝뚝은 수차례 어두운 골목길을 통과해서 사람들을 하나하나 집 앞에까지 내려줬다. 사람들이 다 내리고 운전사와 나만 남게 되었을 때야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고 괜히 긴장해서 사람들 표정을 살피고 위험에 처하면 어떻게 해야할지 혼자 궁리한 자신이 머쓱해졌다.


뚝뚝이 숙소 앞까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주위가 훤하게 밝아있었다. 숙소 마당에는 일찍 도착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사장님이 트렁크 팬츠 차림에 맨발로 나와 있었다. 영어가 능통하고 유쾌한 성격의 사장님이 안내해준 방은 시설이 좋지는 않았지만 넓직하고 에어컨까지 있어서 버스에 지친 몸은 금새 잠이 들었다.




터미널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어두컴컴하다.


한잠 자고 나온 시내는 뚝뚝과 자동차들로 붐비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동대문 같은 쇼핑센터까지 있어서 여기가 라오스의 가장 큰 도시라는게 실감이 났다.


라오스는 역사적으로 타이와 미얀마, 베트남이라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부침을 많이 겪은 나라였다. 근세에는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반도 침략시 타이로부터 프랑스로 넘겨졌다가 일본의 지배도 잠시 받았고, 미국까지 점령했었다. 겨우 1975년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면서 공산화된 국가로 독립한지 40년이 채 되지 않는 신생국가며 아직 농업중심의 국가로 공업화는 이제 시작이며 주요 수출품도 농산물이나 광물자원인 내륙국가이다.


이런 정보들을 구글에서 찾아보고 갔을 때는 세계 최빈국의 하나이며, 독립된지도 얼마안된 농업 중심의 국가라는 정보로 인해서 선입견을 잔뜩 갖게 되었다.


터미널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고(버스가 너무 낡고 시간이 오래 걸려 비싸더라도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걷다보니 시원한 강변이 나왔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강변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과 비슷하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근육질에 긴 칼을 옆에 차고 있는 모습이 라오스의 독립영웅이 아닐까 싶다.

강변 놀이터에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와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로 북적인다.


라오스의 주말 강변 모습은 우리네 주말 강변의 모습과 다를바가 하나도 없다. 자전거를 타는 청소년들, 손 잡고 강변을 걷는 연인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모두 평온한 주말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공산주의 국가에 최빈국 중의 하나여서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가 아닐까 했던 내 선입견이 또 한번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강 건너편은 태국으로 이쪽 국경을 넘으면 방콕까지 금새 닿을 수 있다고 한다. 라오스에서 보는 태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잘 사는 국가로서 젊은이들은 태국으로 가서 돈을 벌고 문화를 즐기고 싶은 욕구가 있는 반면,  나이든 사람들은 식민지배하에 있던 자신들을 프랑스로 넘기고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한 의리없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한다.



주말 강변에는 야시장까지 열려서 갖가지 의류나 장식품, 먹거리들을 판다. 구경할 것도 많고 가격도 무척 싸기 때문 여행중에 가볍게 입을 옷들을 사기에 좋았다. 하지만 다른 옷들이 온통 그 옷 색으로 물드는 경험을 하기 싫다면 꼭 몇 차례 따로 세탁한 후에 입어야 한다.






방콕 까오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먹거리다. 넓은 전병(?)에 바나나, 누텔라, 연유, 달걀 등등을 넣어 부쳐주는 음식인데 매우 달달한데 가격이 까오산보다 무지 싸다. 라오스에서 보기드문 꽃미남 청년의 손놀림이 매우 빨랐다.


내륙국가인 라오스에서 살아있는 해산물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아마 강에서 잡은 물고기인가 싶다.



스프링롤을 고소하고 짭짤한 소스에 찍어 먹으면 꽤 괜찮다. 다만 고수를 즐기는 사람만.


태국보다는 베트남과 비슷했던 쌀국수


길을 지나다 현지인들이 북적거리는 식당을 골라 들어가 먹는 현지 음식이 가장 실패할 가능성이 적다. 관광객을 위한 식당은 비싸고 음식맛은 세계 공통으로 표준화되어버린 맛이기 때문에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다.


위앙짠에서 첫째날은 생각보다 밝은 도시 분위기였고 생각보다 서양 여행객이 많아서 놀랐다. 올해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우리나라 라오스 여행자들이 급격히 늘었고, 비행기 요금도 무척 비싸졌다고 들었지만 몇 년 전만해도 장기 배낭여행자나 동남아를 좋아하고 잘 아는 여행자가 아니면 찾지 않는 곳이었는데 이미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커다란 배낭을 둘러매고 멀고 불편한 이 나라를 찾고 있었다.


동남아에서 4번째 나라, 라오스 여행을 시작하며 기대와 설렘이 만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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