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는 태국 북부에 위치하고 있고 비교적 남부지방보다는 연평균 기온이 낮은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비교적이라는 것이고 절대 시원하다거나 쾌적하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방문했던 4월 중순의 치앙마이는 여름의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웠다. 이 더위 속에서 돌아다니려면 잘 먹어야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간 곳은 일명 '보트누들'로 유명한 식당이다.




왜 보트누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식당에서 국수를 퍼주는 아저씨의 자리가 배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어쩌면 바다나 강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배에서 끓여 먹던 국수는 아니었을까.


기원이야 어쨌든 국수맛이 일품이다. 국수 위에 숙주나 고수같은 야채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고기와 피쉬볼이 잔뜩 올라가 있고 MSG맛이 좀 나긴하지만 국물도 진했다. 방콕 까오산을 여행했던 사람이라면 짜오프라야 강변쪽에 있는 고기국수 집을 많이 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곳의 국수가 더 맛있었다.


치앙마이 여행의 첫번째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의 서쪽에 있는 '왓 프라씽'에서 시작했다. 왓 프라씽은 치앙마이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사원이며 오래전 실롬(스리랑카)에서 만들어져서 이 곳에 보관되고 있는 신성한 불상이 모셔진 사원이다.






왓 프라싱에서 무슨 행사라도 있는지 긴 장대에 뭔지 모를 깃발(?)이 달려 있었고 입구에는 연꽃 봉오리를 팔고 있었다. 게다가 내부 전체를 촘촘하게 줄로 연결해 놓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 줄에는 지폐를 끼우도록 만들어진 길죽한 뭔가가 달려있었다. 이때는 처음이라 빈 곳이 많았지만 며칠 뒤에 다시 왔을 때는 더 매달 곳이 없을만큼 빽빽하게 달려있었다. 지폐를 끼워서 부처님께 공양하고 소원을 비는 것 같았다.


무심코 지나가다 깜짝 놀란 고승의 '밀랍인형'


존경 받았던 고승의 생전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 예를 표하는 듯



동남아에서는 부처님이 큰 뱀위에 앉아있고 머리 위로 뱀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의 불상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동남아에 불교가 전파되기 전에 힌두 문명권이었기 때문에 힌두교의 '나가'가 불교화된 것인데 '나가'의 머리가 점차 부처님의 머리 뒤에서 보이는 후광으로 변했다고 한다.


불교에서 신성시되는 흰 코끼리


이 법당 앞에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서 본 것과 유사한 나가의 모습을 한 뱀이 조각되어 있다.


행사를 준비하는 스님들


라오스에서 봤던 '공'이 매달려 있는데 공을 치고 소원을 빌 수 있다.


스님들이 수행하던 곳이라고 한다. 창문도 없고 내려올 수 있는 계단도 없다. 면벽수행이란 이런 것이었나보다.


더운 곳을 여행할 때는 무리하지 말고 자주 쉬어줘야한다. 왓 프라싱을 나와서 더위를 피해 와위 커피에 들어갔다. 방콕이나 파타야에는 스타벅스 같은 해외의 유명 커피 브랜드가 들어와 있고 가격도 우리나라와 엇비슷하게 비쌌는데 치앙마이에는 사진에서 보이는 와위커피라던지 블랙 캐년 커피 같은 현지 브랜드가 유명하고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아마도 현지 브랜드였던...)


사원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현 태국국왕이 청년시절에 수행했던 사원이었다. 태국에서는 사회 지도층일수록 젊은 시절에 일정기간을 사원에서 승려로 보낸다고 한다.




또 한가지 동남아의 불교 문화로 사원에서 파는 금박을 사서 불상에 붙이고 소원을 빈다. 며칠 뒤면 이 불상은 금박이 빽빽하게 붙여질 것이다.



사원에는 사진처럼 종들이 쭉 매달린 곳이 있는데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며 이 종들을 하나하나 치면서 지나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종을 쳤는지 나무가 종과 닿는 부분이 닳아서 움푹 패여있었다.






방콕의 왓 프라깨오에 있는 태국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인 에메랄드 불상이 처음에는 이 곳 왓 체디루앙에 있었다고 한다. 지어진지 600년이 넘은 왓 체디루앙을 돌아 들어가면 16세기에 지진으로 소실된 거대한 본당이 나온다. 일부 무너져있지만 크기가 제법 거대했다.


하루종일 여러 사원들을 돌아다니느라 피곤하고 사원들의 이름도 헷갈릴 즈음 구도심을 관통하는 도로에 야시장이 서기 시작했다. 동남아에서는 더위를 피해 밤에 시장이 많이 서는데 야시장에서는 여러가지 먹거리와 악세서리, 기념품 등등을 팔기 때문에 구경하는 재미가 특별하다. 게다가 야시장의 규모가 꽤 커서 구도심의 양쪽 끝까지 노점들이 가득했다.




태국식 해물전인지 오므라이스인지... 전에다가 홍합, 오징어 같은 해산물과 숙주를 넣어서 주는데 빨간 소스에 찍어 먹으면 해산물과 아삭한 숙주가 어우러져 꽤나 맛있었다. 처음에는 과연 맛이 있을까 주저하며 주문했지만 게눈 감추듯 해치우고 또 다른 먹거리를 찾아 헤매게 되었다.





치앙마이는 바다와 접한 곳이 아닌데 조개, 홍합, 새우, 오징어 등등을 파는 곳이 많았다. 특히나 오징어 몸통을 잘라서 구워 파는 곳에서는 몸통의 일부분일뿐인데 그 거대한 크기에 가래떡인 줄 알았다.



치앙마이의 주말 야시장은 다양한 먹거리와 손으로 제작한 악세서리와 소품으로 이 곳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는 무척이나 유명한 곳이고 꼭 둘러봐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주말에만 열리기 때문에 여행기간이 맞지 않으면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주말도 아닌데 시장이 열렸으니 이상하다 하면서도 이 야시장이 그 주말시장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다음날이 되어서 알게 되었다. 라오스에서부터 궁금했던 그 수수께끼까지 다 풀리며...


여하튼, 일년간 여행하며 각지의 시장들을 봐왔지만 이 곳처럼 다양한 물품들을 저렴하게 파는, 그러면서도 품질도 상당히 좋은 곳은 없었던 것 같다. 맘껏 구경하고 먹고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야시장이라 생각한다.

라오스 루앙 프라방에서 태국 제2의 도시인 치앙마이로 가는 길은 언뜻 지도에서만 봐도 그리 녹녹한 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는 방법은 크게 2가지로 배를 이용하는 방법과 차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비행기도 있었던 것 같지만 배낭여행자에게는 배부른 소리라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배는 동남아 최대의 강이자, 세계에서 12번째로 긴 강이라는 메콩강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간 다음에 태국쪽 국경을 건너 다시 차로 치앙마이로 가는 방법이었는데 정보가 정확한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만 2,3일이 걸리고 강의 상류다보니 앞에서 이야기한 강의 암초 등으로 무척 위험하다는 말이 있었다. 다음으로는 차를 타고 태국 훼이사이를 통해서 치앙마이로 가는 방법인데 루앙 프라방에서 오후에 출발하면 태국에서 오후에 도착한다고 했다. 가는 동안에는 배가 편할지 모르겠지만 힘든건 짧고 굵게 끝내자는 생각으로 그나마 24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차로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출발시간은 오후 해가 저물 무렵이므로 낮시간에는 마지막 루앙 프라방 구경에 나섰다.


루앙 프라방의 옛왕궁이자 국립 박물관



어느새 해가 기울고 여행사에서 에약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앞의 빡우동굴과 꽝시폭포 투어를 예약한 여행사로 일하는 젊은이가 무척 싹싹한데다 최신 승합차 사진을 보여주며 이 버스로 갈 것이니 편안하고 안전하게 갈 수 있다고 장담했었다. 하지만 여행사 승합차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그냥... 루앙 프라방의 시외버스 터미널이었다. 큰 차이는 아니더라도 웃돈을 주고 여행사를 통해 예약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생각하며 헛웃음을 짓고마는 정도지만 당시에는 무척 화가 났었다. 화가 난 이유는 얼마의 돈이 아깝다는 생각보다 라오스 사람에 대한 나 혼자 가졌던 신뢰가 깨졌다는 것이 컸다. 그 동안 만났던 라오스 사람들은 무뚝뚝하긴 해도 가격이나 약속을 어기는 일도 없었고, 인사(싸바이디)와 고마움(꼽짜이)에 대한 표현을 빠뜨리지 않는 속 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그렇다하더라도 모두가 그럴리는 없는거다. 그 친구는 잔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라오스에서는 조금 드문 타입이었을뿐이다. 모두가 친절할리도, 모두가 약삭빠를리도 없다. 어디선가 조금 불쾌한 일을 당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그 사람들에 대한 인상을 다 바꿀 필요는 없다. 그날 만났던 누군가가 그런 사람일뿐이니까.


하여튼, 라오스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서 새벽에 태국 국경 건너편에 여행자들을 내려준다. 출국 관리소가 문을 열기 전에 멍한 머리로 까끌한 입속에 다시 활동할 에너지를 채워넣어야 했다.


달디단 연유와 같이 주는 동남아식 커피


푸짐하고 저렴한 샌드위치


버스에서 내린 여행자들이 출입국 사무소가 문을 열 시간을 기다리며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다.


라오스쪽 출입국 사무소


자전거로 동남아를 여행하는 아저씨들이 먼저 강을 건넜다.



강 건너편은 태국 훼이사이


태국 출입국사무소를 통해 입국하고 나면 그 라오스 여행사와 연계된 태국 여행사에서 준비한 뚝뚝이나 썽태우를 타고 어디론가 가게된다.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면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자세히 설명해주지도 않았고 바로 출발하는 줄 알고 있었기에 어디로 가는지 무척 궁금했다. 도착한 곳은 치앙마이로 가는 버스가 준비되기 전에 한두시간 대기할 호텔급 숙소였는데 정원이 무척 잘 꾸며져 있었고, 자연 친화적인 약간은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아마도 이 호텔에서 치앙마이로 가는 사람들과 같이 출발하느라 대기시킨게 아닌가 싶다.

정원에 아직 덜 익은 망고가 탐스럽게 달려있다.



잘 꾸며진 정원 산책길




훼이사이를 출발한 버스는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렸다.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를 여행하면서 이렇게 도로 상태가 좋은 길을 달려본 기억이 없기에 인도차이나 반도의 국가들 중에서 태국의 경제 상황이 월등하게 낫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치앙마이로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여기서 재미난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한참을 봐야했는데 알고보니 캐슈넛이라는 견과류였다. 그동안 맥주 안주로 먹어봤음에도 최종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라 열매 상태의 캐슈넛은 처음이었다. 노랗고 빨간 동그란 버섯모양의 열매 꼭지에 캐슈넛이 달려 있었다. 이 꼭지를 따서 말리고 가공해서 우리가 먹는 캐슈넛이 되는 모양이었다. 호두나 땅콩처럼 열매 안쪽에 딱딱한 껍질에 쌓인 모양을 생각했는데 이렇게 귀여운, 팬시 상품처럼 생겼을 줄은 몰랐다. 이 휴게소 부근은 캐슈넛으로 유명한 곳인지 곳곳에서 캐슈넛을 말리고 있었고 광고판에는 캐슈넛을 선전하고 있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노랗고 빨간 부분은 캐슈애플이라고 하는데 그 부분도 식용으로 사용되는 것 같고, 특이하게도 씨가 열매 안쪽에 있는게 아니라 밖으로 노출된 채 열매 밑으로 자란다고 한다.


오후 시간이 한참 지나서 저녁이 되어갈 무렵에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치앙마이는 수백년 전에 세워진 정사각형 모양의 성곽 내부에 있는 구도심과 그 성곽 외부의 도시로 나뉜다. 버스는 성곽 외부의 게스트하우스들이 밀집된 곳에서 여행자들을 내려줬다. 그런데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문의하니 오늘 하루밖에 방이 없다고 한다. 그 먼 길을 달려와 피곤해 죽을 지경인데 다시 내일부터 묵을 방을 찾아야하게 되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열심히 방을 찾아서 구도심으로 들어가서 가까스로 방을 구하고 골목길에 있는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피곤해서 입맛이 없을만도 하지만 이 태국 북부지방의 음식들은 내 입맛에 너무 잘 들어맞았다. 저렴한 음식을 갖가지 시켜놓고 먹다보면 어느새 기분도 좋아지고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여행이 즐거우려면 체력도 필요하고 못 본 것에 대한 호기심, 현지인이나 다른 여행자들과 쉽게 친해지는 친밀한 성격도 필요하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가리지 않는 식성이다.


동남아의 푸슬푸슬하고 길쭉한 밥맛이 입맛에 맞지 않는 여행자라 스팀 라이스말고 스티키 라이스를 달라고 하면 위 사진처럼 찹쌀로 지은 밥을 준다. 이 밥은 찰기가 있어 쫄깃하고 씹으면 단맛이 있어 스팀 라이스보다 훨씬 먹기가 편하다.


매콤한 고춧가루가 들어있는 소스에 직화로 구운 바베큐가 정말 맛있었다. 나중에 여러 곳에서 팔고 있는 걸 보니 태국 북부지방의 대표적인 음식인가 싶다. 위의 것은 아니지만 태어나서 최고 맛있었던 바베큐가 치앙마이 시장에서 사먹었던 바베큐였다.


힘든 여정이지만 무사히 동남아에서의 마지막 여행지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루앙 프라방의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왁자지껄한 동남아 여느 관광도시의 밤거리와는 달리 해가 지면 조용하고 새카맣게 어두워진다. 그 어둠이 두려움이나 불안함을 가져오는게 아니라 평화로움과 느긋함이 느껴진다. 밤을 즐기는 여행자라면 루앙 프라방은 심심하고 따분한 곳일 수도 있겠다 싶다.

어제 루앙 프라방 시내의 사원과 동네 구경을 하고 오늘은 미리 여행사에 예약해둔 빡우동굴과 꽝시폭포 투어를 가기로 했다.

빡우동굴은 루앙 프라방에서 롱테일보트라는 길쭉한 배를 타고 한두시간쯤 가면 나오는데 절벽에 생긴 석회암 동굴에 사람들이 수천개의 불상을 가져다 놓았다. 수천개의 불상이라 어마어마하고 거대한 장관을 기대하면 안된다. 소박하고 불심이 깊은 개개인이 가져다 놓은 가지각색의 조그마한 불상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엄청난 돈과 국민의 혈세를 들여 권력자들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규모의 사원이나 불상보다 이 곳 빡우동굴의 불상들의 모습이 더 부처님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좁고 길쭉한 모양의 롱테일보트


나란히 앉으면 딱 두 명이 앉을 수 있다. 이 보트들도 조금씩 크기가 다른데 사진의 왼쪽 보트는 크기도 더 크고 무엇보다 좌석이 버스에서 떼어 온 듯한 편안한 좌석으로 되어 있다. 기왕이면 저런 배를 타고 싶었으나 내가 탄 배는 그냥 딱딱한 나무걸상이 전부였다.


대부분의 보트는 키잡이가 맨 뒤에 있는데 이 보트는 맨 앞에서 운전하도록 되어 있다. 건기와 우기에 따라 수량의 차이가 많이 나서 강의 암초를 잘 보고 피해야 하기 때문인가 싶다. 내가 루앙프라방을 여행하던 시기는 건기에서 우기로 넘어가는 때여서 그런지 강의 중간중간에 암초나 바위가 많아서 그 곳을 잘 아는 사공이 아니라면 다니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가는 도중에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배 안으로 비가 막 들이친다. 일상생활에서라면 짜증이 났을 일인데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여행중에 비 좀 맞는다고 별로 문제될 게 있을까.


보트를 타고 빡우동굴을 가는 도중에 잠깐 조그만 마을에 내려주는데 이 마을은 여행자들에게 '라오라오'라는 라오스 전통술과 여자들이 베틀로 짠 직물을 팔고 있었다. 직물은 거들떠보지 않고 '라오라오'에 관심을 보이니 조그만 잔에 마셔보라고 준다. 라오라오는 우리나라 전통소주처럼 쌀로 만든 술이고 도수도 40도 정도했다. 맥주도 좋아하지만 여행중 자주 마시다보니 이 독주가 끌려서 조그만 병으로 샀다.





드디어 빡우동굴에 도착했다. 절벽 아랫부분에 갑자기 뻥뚤린 듯한 동굴이 특이하다.





장엄하고 거대한 수천개의 불상을 기대했다면 에게? 싶을 수도 있지만 수백년을 거쳐서 불교 신자들이 하나하나 가져다 놓은 것이니 더 의미는 곳이 아닐까.




여러 대의 보트들이 라오스 불자들과 여행자들을 싣고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한다. 여기서 옆으로 난 사잇길을 돌아가면 동굴 하나가 더 있다. 커다란 나무문에는 부처님의 모습이 새겨져있었던 듯한데 얼마나 오래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희미한 형태만 남아있다.


빡우동굴에서 돌아온 후에 여행사 사무소에 차려놓은 간단한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차를 타고 꽝시폭포로 향했다. 꽝시폭포는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공원인데 입구에서부터 곰 보호소를 지나 산림욕하는 기분으로 걷다보면 옥빛 물이 ㅂ이기 시작한다.




성미 급한 사람들은 벌써 이곳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물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마치 터키의 파묵칼레와 같은 지형이 나온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파묵칼레도 예전에는 이렇게 물이 흘렀을텐데 지금은 수원이 바닥나서 거의 말라버렸다.




꽝시폭포로 오르는 도중, 중간중간에 물놀이를 할만한 곳이 있으면 으레 사람들이 들어차있다. 그 중에는 나무 위에서 줄을 잡고 물로 뛰어내리거나 작은 폭포 위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제는 뛰어내리는 즐거움보다 옆에서 보는 즐거움이 더 커져버린 나이인지 선뜻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친구인 듯한 이십대 초반의 우리나라 여행자 3명은 다른 어느 나라 여행자들보다 열심히 그 곳을 즐기고 있었다. 그 사진을 제대로 남겨두지 못한 것이 아쉽다.


꽝시폭포를 보고 나면 다시 차를 타고 라오스 마을에 들른다. 물론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기념품을 팔기 위한 곳이다. 주로 실로 만든 손목에 감는 팔찌를 만들어 파는 곳이었는데 이 기념품들 보다는 아이들 표정이 더 호감이 갔다. 매일 여러차례 여행자들이 왔다 갈테니 심드렁할만도 하지만 아이들은 놀던대로 뛰어놀고 하던대로 즐거운 표정이다. 여행자들 중에 이탈리아에서 여행 온 처자 한 명은 하루종일 다닌 투어로 피곤할텐데 맨발로 아이들과 신나게 공놀이를 하고 놀고 있었다. 아이들과 놀아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즐기고 있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멋진 모습이었다.





라오스에서의 일정도 오늘로써 거의 끝났다. 내일 저녁에는 훼이사이를 거쳐 태국 치앙마이까지 24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라오스를 떠나려니 아쉬움이 커졌다. 이렇게 좋을 줄 알았더라면 일정에 무리가 있더라도 빡세나 시판돈에도 갔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을 마치고나서 여행중에 받은 느낌에서 시각이 차지하는 부분이 생각보다 적다는걸 깨달았다. 후각, 청각, 미각, 촉각 등 모든 감각이 어우러져 그 곳에서의 느낌이 결정되었다. 가끔 일생생활 중에 여행의 기억이 되살아 날때는 시각보다는 다른 감각에 의해서였다. 가보지 않으면 좋은줄 모른다는 말도, TV나 잡지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돈과 시간을 들여서 여행을 가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루앙 프라방은 거쳐왔던 라오스의 도시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잘 정돈된 길거리와 깨끗하고 예쁘장한 집들, 그리고 알려진대로 많은 불교사원들, 초록빛이 우거진 산과 거대한 가로수, 까페와 레스토랑까지... 그동안의 여행으로 조금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갈만한 느긋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루앙 프라방을 흐르는 강변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들은 무척이나 크고 풍성했다. 마치 아바타에 나오는 큰 나무와 닮아서 여기에 있는 동안 그냥 아바타 나무라고 불렀다.





길을 걷는 동안 끌고 가려는 사람들과 가지 않으려는 돼지의 씨름이 재밌어서 한참 구경했다. 다리를 묶여 자포자기한 듯 누워있는 돼지의 표정도 재밌다. 우리네 옛날 농촌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루앙 프라방에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부터 비싼 호텔까지 여행자들을 위한 다양한 숙소가 있다. 그리고 다양할뿐만 아니라 특색있고 잘 꾸며져 있었다. 루앙 프라방 시내에서만큼은 여기가 경제적 발전이 더딘 라오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커다란 물통에 물을 받아놓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붓기도 하고 자기들끼리는 뿌리며 놀고 있었다. 어른들이 보고도 당연하다는듯 말리거나 하지 않았다. 비가 많이 오고 수량이 풍부한 곳이기는 하지만 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생활용수가 그리 넉넉하진 않을텐데 참 이상했다. 그 이유는 일주일쯤 후에 태국 치앙마이에 도착하고서야 알 수 있었다.








루앙 프라방에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강변 옆 커다란 아바타 나무 아래에 있어서인지 식당 이름이 '빅 트리 까페'였다. 꼭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 다시 한국 음식점을 갈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가서 먹기로 했다.



길건너 강변에서는 야외에 앉아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떠 있는 배들을 보며 느긋하게 식사할 수 있고, 식당 안에서는 라오스 사람들을 찍은 멋진 사진들을 감상하면서 식사할 수 있다. 빅 트리 까페의 여주인께서 라오스에서 프랑스인(맞나?) 사진 작가와 결혼했기 때문에 식당 내부가 마치 사진 전시장처럼 되어 있었다.








길을 걷다 예쁜 꽃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집을 보았다. 자세히 보고 꽃보다 더 놀란게, 속이 빈 야자열매를 화분으로 쓰고 있었다. 중간중간 오래되었는지 썩어 까맣게 된 화분들도 보였다. 정말 멋진 생각이라 감탄했다.











위앙짠에서 봤던 민속앙기 '공'이다.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지 사원에 공이 무척 많았다.




사원의 도시 루앙 프라방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왓 시앙통을 방문했다. 방콕에서도 사원들을 여러 번 보긴 했지만 가장 독특하고 아름다운 사원이 아니었나싶다. 불교 문화에 무지하기 때문에 벽면에 채색된 그림들이 의미하는 바는 모르지만 그 그림들과 멋들어진 지붕과 처마의 모양은 나를 절로 감탄하게 했다. 규모가 거대하다거나 웅장한건 아니지만 충분히 엄숙한 종교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다만, 군데군데 뚫려 있는 지붕과 많이 낡아있는 내부를 보고 소중한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하고 관리할 수 없는 이들의 경제상황이 안타워졌다.





왓 시앙통을 보고나서 여행자가 잘 찾지 않을 듯한 한적한 골목의 상점에서 본 모빌(?). 나무, 새의 깃털 등으로 만든 것 같은데 솜씨나 디자인이 놀라웠다. 얼마 후, 치앙마이의 주말시장을 보고 다시 느꼈지만 이쪽 사람들은 손재주가 무척 좋은 것 같다.



어느 경기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이 날은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강팀들끼리 빅매치가 있던 날이었다. 펍이나 레스토랑에서는 축구 중계를 볼 수 있다는 간판을 내걸고 축구팬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축구 유니폼을 챙겨 입은 사람들을 보니 아마 그날 저녁에 있을 경기 결과를 이야기하고 내기하고 있던게 아니었을까.





동남아의 불상들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불상과 모습이 많이 다르다. 특히나 서 있는 불상들이 많았다.






저녁도 시장에서 현지인들과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강에서 잡은 커다란 물고기는 간이 좀 심심했지만 살코기가 많았고 이것저것 골라서 접시에 잔뜩 담은 음식도 가격대비 만족스러웠다. 음식의 질이 그다지 중요해지지 않을만큼 가격이 너무 만족스럽다.


루앙 프라방에서 유명한 것은 이른 아침에 있는 승려들의 탁발 모습이다. 하지만 루앙 프라방에 있는 동안 내내 늦잠을 자는 바람에 결국 못보고 말았다. 루앙 프라방은 느긋하고 평화롭고 사람들도 친절했던 곳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방비엥에서 더 오래 머물지 못했지만 그다지 아쉽지 않을만큼.

좋았던 방비엥을 등지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루앙 프라방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방비엥과는 다른 의미에서 루앙 프라방은 매력적인 곳이었다. 여행중에 들른 많은 도시들 중에 방비엥과 루앙 프라방은 둘 다 반드시 다시 가고 싶은 곳이긴 하지만 둘을 동시에 방문하고 싶진 않다.


방비엥에서 아침에 떠난 여행사에서 소개해준 승합차는 오후 느지막히 루앙 프라방에 도착했다. 12시간 이상 걸리는 야간 버스도 여러 번 탔던터라 얼마나 걸리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누가 '그 길이 어땠냐'라고 묻는다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라고 대답하고 싶다.


방비엥에서 출발한 승합차는 루앙 프라방까지 산악지대의 꼬불꼬불한 길을 사정없이 내달렸다. 산길 오른편으로는 아무리 급한 커브길이라 하더라도 차량을 보호하는 그 무엇도 없는 낭떠러지였다. 내가 탄 차를 운전했던 기사는 이 급 커브길을 다니면서 마치 일방통행처럼 내달렸다. 마주 오는 차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듯이. 차를 탔던 시간동안 마주 오는 차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한게 수십 번이었다.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할 필요는 없는게 어떻게 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렇게 위험한 길을, 이렇게 위험하게 내달리는 것만으로 나는 다시는 방비엥에서 루앙 프라방으로 차를 타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 승합차에 같이 동행한 라오스 현지인마저도 얼마 못가서 창 밖으로 음식물을 게워낼만큼 이 길은 험했고 운전사의 운전은 위험했다.(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구토물이 뒷자리의 창 밖에 가득 묻는 경험을 하고나면 다음에는 그냥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마음속으로 기도하게 된다)




방비엥에서 루앙 프라방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높은 고개에 있는 휴게소



운전사의 옆자리는 몇 시간동안 계속되는 롤러코스터 같은 길을 못견디고 음식물을 게워낸 라오스 처녀, 나머지는 가운데 한국인 아저씨가 인도하는 라오스 가족, 승합차의 맨 마지막 자리는 가장 불행하게도 가장 큰 덩치로 가장 좁은 자리에 앉은 나.


몇 시간 동안 비좁은 승합차의 맨 뒷자리에 구겨져 가다보니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 승합차에 탈 때는 뒤에 타는 손님들을 위해서 앞자리를 양보하고 가장 좁은 뒷자리에 앉았는데 길이 힘들다보니 아무도 자리를 바꿔줄 의사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 자리 양보를 강요하던 한국인 아저씨는 나의 요구를 못들은척 무시하더니 이젠 편하게 앉아 잠까지 자고 있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해 폭발하기 직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내 앞자리에 앉은 라오스 아주머니가 뭔가를 깎고 있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나는 내 자리를 강요한 앞자리에 앉은 한국인 아저씨와 자리를 바꿔야한다는 생각에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온 신경을 거기에 집중하고 있던 그 때에 옆에서 누가 툭툭치며 뭔가를 내밀었다.


같이 탄 라오스 가족중에 어머니가 뭔가를 깎더니 내 옆에 앉은 자그마한 아버지가 그 깎은 것을 나에게 내밀었다. 맛을 보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린 파파야에 고춧가루를 뿌린 것 같았다. 먹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권한 것이니 마다할 수가 없어 대충 집어 입안에 넣고 다시 앞에 앉은 아저씨에게 험악한 눈빛을 뿌려댔다. 약간 시큼하고 떱덜한 맛이라 다시 먹고 싶지도 않았다. 


잠시 후에 옆에서 다시 그것을 내밀었다. 이번에도 대충 집어 입안에 넣을 수는 없어 감사라도 표시해야겠다 싶어  얼굴을 돌려 보니 그 라오스 아버지는 얼굴에 미안함과 쑥스러움을 담뿍 담고 있었다. 그 무리 중에 가장 덩치가 큰 내가 가장 비좁은 자리에 타고 있는데 그의 자식들이 앞에 앉아서 편히 가는 것에 대한 미안함, 양보대한 고마움, 하지만 외국인에게 그것을 표현하기 쑥쓰러움이 그냥 마구 느껴지는거다. 게다가 그것을 깎은 라오스 어머니까지 합세해 그와 같은 표정으로 자꾸만 그것을 권했다.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사람이 얼굴에 담은 표정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줄은 몰랐다. 그게 꾸며낸 것이 아니라 진정이라 느껴질 때에는 어떤 위로의 말이나 칭찬보다 무서운 무기가 됐다. 결국은 그 깎은 그것을 다 먹고, 눈빛으로 감정을 교환하고 나서 불편한 자리를 바꾸려는 욕심을 완전히 버리게 되었다.


여행중에 가장 불편했던 이 몇 시간동안이 아이러니하게도 현지인과 가장 내밀하게 소통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두 번째 휴게소에서 바라본 경치가 우리나라 강원도 고갯길 같다.


온 몸이 피로에 푹 절었을 때쯤 루앙 프라방에 도착했다. 루앙 프라방 외곽에서 승합차에서 내려 시내로 가는 뚝뚝을 타려고 걸어가는데 아이들이 내 얇고 허술한 티셔츠에 물을 붓고는 웃었다. 황당하지만 뭐 더운 나라니까 그리 불쾌하진 않았다. 그냥 같이 웃어주고 다시 갈 길을 갔다. 그 때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루앙 프라방 시내에 잡은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저녁을 먹기 위해 돌아다니던 중에 조그만 빈터에 라오스 사람들이 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어서 무작정 들어가서 같은 걸 달라고 손짓으로 주문했다. 사람들이 먹고 있는건 벌건 국물의 국수인데 정작 나온건 사진처럼 멀건 국물의 국수였다. 열심히 눈을 굴려 보니 사람들이 벌건 양념장 같은 것을 타서 먹고 있길래 따라서 양념장을 타려고 했는데 매운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한국 사람도 매운 음식은 꽤나 잘 먹는데, 게다가 나도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는데 이건 도저히 따라할 수 없겠다 싶었다. 약간만 타서 먹어보니 이건 벌써 매운 짬뽕 맛이 났다. 어, 라오스 사람들 알면 알수록 장난이 아니다.


루앙 프라방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푸시 산 언덕을 오르다가 해가 저버렸다.


해가 질 무렵 야시장이 펼쳐졌다. 동남아 여행의 큰 재미는 야시장 구경이다.


루앙 프라방의 여행자 거리



야시장의 먹거리 골목.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좁은 골목에서 어깨를 맞대고 끼니를 때우는데 정신이 없다.


힘들게 방비엥에서 루앙 프라방에 도착했다.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길인 반면에 다시 경험하기 힘든 소중한 시간이었다.  완전히 좋은 시간은 없고 오로지 싫은 시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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