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 프라방은 거쳐왔던 라오스의 도시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잘 정돈된 길거리와 깨끗하고 예쁘장한 집들, 그리고 알려진대로 많은 불교사원들, 초록빛이 우거진 산과 거대한 가로수, 까페와 레스토랑까지... 그동안의 여행으로 조금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갈만한 느긋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루앙 프라방을 흐르는 강변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들은 무척이나 크고 풍성했다. 마치 아바타에 나오는 큰 나무와 닮아서 여기에 있는 동안 그냥 아바타 나무라고 불렀다.





길을 걷는 동안 끌고 가려는 사람들과 가지 않으려는 돼지의 씨름이 재밌어서 한참 구경했다. 다리를 묶여 자포자기한 듯 누워있는 돼지의 표정도 재밌다. 우리네 옛날 농촌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루앙 프라방에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부터 비싼 호텔까지 여행자들을 위한 다양한 숙소가 있다. 그리고 다양할뿐만 아니라 특색있고 잘 꾸며져 있었다. 루앙 프라방 시내에서만큼은 여기가 경제적 발전이 더딘 라오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커다란 물통에 물을 받아놓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붓기도 하고 자기들끼리는 뿌리며 놀고 있었다. 어른들이 보고도 당연하다는듯 말리거나 하지 않았다. 비가 많이 오고 수량이 풍부한 곳이기는 하지만 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생활용수가 그리 넉넉하진 않을텐데 참 이상했다. 그 이유는 일주일쯤 후에 태국 치앙마이에 도착하고서야 알 수 있었다.








루앙 프라방에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강변 옆 커다란 아바타 나무 아래에 있어서인지 식당 이름이 '빅 트리 까페'였다. 꼭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 다시 한국 음식점을 갈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가서 먹기로 했다.



길건너 강변에서는 야외에 앉아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떠 있는 배들을 보며 느긋하게 식사할 수 있고, 식당 안에서는 라오스 사람들을 찍은 멋진 사진들을 감상하면서 식사할 수 있다. 빅 트리 까페의 여주인께서 라오스에서 프랑스인(맞나?) 사진 작가와 결혼했기 때문에 식당 내부가 마치 사진 전시장처럼 되어 있었다.








길을 걷다 예쁜 꽃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집을 보았다. 자세히 보고 꽃보다 더 놀란게, 속이 빈 야자열매를 화분으로 쓰고 있었다. 중간중간 오래되었는지 썩어 까맣게 된 화분들도 보였다. 정말 멋진 생각이라 감탄했다.











위앙짠에서 봤던 민속앙기 '공'이다.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지 사원에 공이 무척 많았다.




사원의 도시 루앙 프라방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왓 시앙통을 방문했다. 방콕에서도 사원들을 여러 번 보긴 했지만 가장 독특하고 아름다운 사원이 아니었나싶다. 불교 문화에 무지하기 때문에 벽면에 채색된 그림들이 의미하는 바는 모르지만 그 그림들과 멋들어진 지붕과 처마의 모양은 나를 절로 감탄하게 했다. 규모가 거대하다거나 웅장한건 아니지만 충분히 엄숙한 종교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다만, 군데군데 뚫려 있는 지붕과 많이 낡아있는 내부를 보고 소중한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하고 관리할 수 없는 이들의 경제상황이 안타워졌다.





왓 시앙통을 보고나서 여행자가 잘 찾지 않을 듯한 한적한 골목의 상점에서 본 모빌(?). 나무, 새의 깃털 등으로 만든 것 같은데 솜씨나 디자인이 놀라웠다. 얼마 후, 치앙마이의 주말시장을 보고 다시 느꼈지만 이쪽 사람들은 손재주가 무척 좋은 것 같다.



어느 경기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이 날은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강팀들끼리 빅매치가 있던 날이었다. 펍이나 레스토랑에서는 축구 중계를 볼 수 있다는 간판을 내걸고 축구팬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축구 유니폼을 챙겨 입은 사람들을 보니 아마 그날 저녁에 있을 경기 결과를 이야기하고 내기하고 있던게 아니었을까.





동남아의 불상들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불상과 모습이 많이 다르다. 특히나 서 있는 불상들이 많았다.






저녁도 시장에서 현지인들과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강에서 잡은 커다란 물고기는 간이 좀 심심했지만 살코기가 많았고 이것저것 골라서 접시에 잔뜩 담은 음식도 가격대비 만족스러웠다. 음식의 질이 그다지 중요해지지 않을만큼 가격이 너무 만족스럽다.


루앙 프라방에서 유명한 것은 이른 아침에 있는 승려들의 탁발 모습이다. 하지만 루앙 프라방에 있는 동안 내내 늦잠을 자는 바람에 결국 못보고 말았다. 루앙 프라방은 느긋하고 평화롭고 사람들도 친절했던 곳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방비엥에서 더 오래 머물지 못했지만 그다지 아쉽지 않을만큼.

좋았던 방비엥을 등지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루앙 프라방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방비엥과는 다른 의미에서 루앙 프라방은 매력적인 곳이었다. 여행중에 들른 많은 도시들 중에 방비엥과 루앙 프라방은 둘 다 반드시 다시 가고 싶은 곳이긴 하지만 둘을 동시에 방문하고 싶진 않다.


방비엥에서 아침에 떠난 여행사에서 소개해준 승합차는 오후 느지막히 루앙 프라방에 도착했다. 12시간 이상 걸리는 야간 버스도 여러 번 탔던터라 얼마나 걸리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누가 '그 길이 어땠냐'라고 묻는다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라고 대답하고 싶다.


방비엥에서 출발한 승합차는 루앙 프라방까지 산악지대의 꼬불꼬불한 길을 사정없이 내달렸다. 산길 오른편으로는 아무리 급한 커브길이라 하더라도 차량을 보호하는 그 무엇도 없는 낭떠러지였다. 내가 탄 차를 운전했던 기사는 이 급 커브길을 다니면서 마치 일방통행처럼 내달렸다. 마주 오는 차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듯이. 차를 탔던 시간동안 마주 오는 차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한게 수십 번이었다.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할 필요는 없는게 어떻게 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렇게 위험한 길을, 이렇게 위험하게 내달리는 것만으로 나는 다시는 방비엥에서 루앙 프라방으로 차를 타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 승합차에 같이 동행한 라오스 현지인마저도 얼마 못가서 창 밖으로 음식물을 게워낼만큼 이 길은 험했고 운전사의 운전은 위험했다.(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구토물이 뒷자리의 창 밖에 가득 묻는 경험을 하고나면 다음에는 그냥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마음속으로 기도하게 된다)




방비엥에서 루앙 프라방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높은 고개에 있는 휴게소



운전사의 옆자리는 몇 시간동안 계속되는 롤러코스터 같은 길을 못견디고 음식물을 게워낸 라오스 처녀, 나머지는 가운데 한국인 아저씨가 인도하는 라오스 가족, 승합차의 맨 마지막 자리는 가장 불행하게도 가장 큰 덩치로 가장 좁은 자리에 앉은 나.


몇 시간 동안 비좁은 승합차의 맨 뒷자리에 구겨져 가다보니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 승합차에 탈 때는 뒤에 타는 손님들을 위해서 앞자리를 양보하고 가장 좁은 뒷자리에 앉았는데 길이 힘들다보니 아무도 자리를 바꿔줄 의사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 자리 양보를 강요하던 한국인 아저씨는 나의 요구를 못들은척 무시하더니 이젠 편하게 앉아 잠까지 자고 있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해 폭발하기 직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내 앞자리에 앉은 라오스 아주머니가 뭔가를 깎고 있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나는 내 자리를 강요한 앞자리에 앉은 한국인 아저씨와 자리를 바꿔야한다는 생각에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온 신경을 거기에 집중하고 있던 그 때에 옆에서 누가 툭툭치며 뭔가를 내밀었다.


같이 탄 라오스 가족중에 어머니가 뭔가를 깎더니 내 옆에 앉은 자그마한 아버지가 그 깎은 것을 나에게 내밀었다. 맛을 보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린 파파야에 고춧가루를 뿌린 것 같았다. 먹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권한 것이니 마다할 수가 없어 대충 집어 입안에 넣고 다시 앞에 앉은 아저씨에게 험악한 눈빛을 뿌려댔다. 약간 시큼하고 떱덜한 맛이라 다시 먹고 싶지도 않았다. 


잠시 후에 옆에서 다시 그것을 내밀었다. 이번에도 대충 집어 입안에 넣을 수는 없어 감사라도 표시해야겠다 싶어  얼굴을 돌려 보니 그 라오스 아버지는 얼굴에 미안함과 쑥스러움을 담뿍 담고 있었다. 그 무리 중에 가장 덩치가 큰 내가 가장 비좁은 자리에 타고 있는데 그의 자식들이 앞에 앉아서 편히 가는 것에 대한 미안함, 양보대한 고마움, 하지만 외국인에게 그것을 표현하기 쑥쓰러움이 그냥 마구 느껴지는거다. 게다가 그것을 깎은 라오스 어머니까지 합세해 그와 같은 표정으로 자꾸만 그것을 권했다.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사람이 얼굴에 담은 표정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줄은 몰랐다. 그게 꾸며낸 것이 아니라 진정이라 느껴질 때에는 어떤 위로의 말이나 칭찬보다 무서운 무기가 됐다. 결국은 그 깎은 그것을 다 먹고, 눈빛으로 감정을 교환하고 나서 불편한 자리를 바꾸려는 욕심을 완전히 버리게 되었다.


여행중에 가장 불편했던 이 몇 시간동안이 아이러니하게도 현지인과 가장 내밀하게 소통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두 번째 휴게소에서 바라본 경치가 우리나라 강원도 고갯길 같다.


온 몸이 피로에 푹 절었을 때쯤 루앙 프라방에 도착했다. 루앙 프라방 외곽에서 승합차에서 내려 시내로 가는 뚝뚝을 타려고 걸어가는데 아이들이 내 얇고 허술한 티셔츠에 물을 붓고는 웃었다. 황당하지만 뭐 더운 나라니까 그리 불쾌하진 않았다. 그냥 같이 웃어주고 다시 갈 길을 갔다. 그 때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루앙 프라방 시내에 잡은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저녁을 먹기 위해 돌아다니던 중에 조그만 빈터에 라오스 사람들이 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어서 무작정 들어가서 같은 걸 달라고 손짓으로 주문했다. 사람들이 먹고 있는건 벌건 국물의 국수인데 정작 나온건 사진처럼 멀건 국물의 국수였다. 열심히 눈을 굴려 보니 사람들이 벌건 양념장 같은 것을 타서 먹고 있길래 따라서 양념장을 타려고 했는데 매운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한국 사람도 매운 음식은 꽤나 잘 먹는데, 게다가 나도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는데 이건 도저히 따라할 수 없겠다 싶었다. 약간만 타서 먹어보니 이건 벌써 매운 짬뽕 맛이 났다. 어, 라오스 사람들 알면 알수록 장난이 아니다.


루앙 프라방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푸시 산 언덕을 오르다가 해가 저버렸다.


해가 질 무렵 야시장이 펼쳐졌다. 동남아 여행의 큰 재미는 야시장 구경이다.


루앙 프라방의 여행자 거리



야시장의 먹거리 골목.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좁은 골목에서 어깨를 맞대고 끼니를 때우는데 정신이 없다.


힘들게 방비엥에서 루앙 프라방에 도착했다.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길인 반면에 다시 경험하기 힘든 소중한 시간이었다.  완전히 좋은 시간은 없고 오로지 싫은 시간도 없다.

블로그에 여행 기록을 시작하면서 가능한 현지 발음대로 지명을 표현하려고 했으나 국내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현지 지명대로 썼을 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내가 과연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졌다. 방비엥만 하더라도 이 지명은 프랑스어로 표현된 지명이고 현지에서는 왕위앙(혹은 오래된 지명인 무앙송)으로 이야기하는데 2년이 지난 지금 벌써 이 지명들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어차피 개인 기록용으로 블로그를 시작했으니 무슨 상관이랴 싶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이 블로그를 방문하고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가져가시는 분이 있을까 염려된다. 가능한 위키백과도 찾아보고 네이버 백과사전도 뒤쳐보면서 정확하게 올리려고 한다.


작은 마을 방비엥이 형성된 시기가 무려 1353년이라고 한다. 위앙짠과 루앙프라방의 거점 지역으로 발전했다고 하는데 650년이 더 지난 현재는 오히려 도시가 쇠락한 것인지 지금과 같은 작은 마을로 남아있다.


방비엥에서는 저렴하게 할 수 있는 액티비티 투어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 유명한 것이 방비엥을 가로질러 흐르는 남송강을 튜브나 카약을 타고 내려오는 튜빙과 카약킹 그리고 블루라군에서 물놀이 등이 있다. 블루라군은 젊고 체력에 자신 있는 여행자라면 자전거를 빌려서 다녀 올 수 있는 곳인데 당시 몸상태도 썩 좋지 않아서 물놀이보다는 늘어지는게 좋아서 블루라군 투어는 생략했다.



이른 아침 투어를 예약한 여행사(당시에는 여행사로 폰트래블이 유명했었다.) 앞에서 태국의 썽태우 같은 차를 타고 강의 상류쪽으로 비포장 도로를 한참 올라간다. 위 사진은 비포장 길이긴 하지만 매우 양호한 상태이고 이 길을 조금 더 가면 쿠션이 없는 썽태우 의자에 엉덩이가 한참 고생을 해야하는 심한 비포장 길이 나온다. 


카메라 보호를 위해 방수팩을 씌우면 렌즈가 가려져 사진 주변이 검게 나올 수 있으니 제대로된 사진을 찍으려면 항상 신경을 써야한다.



썽태우에서 내려서 동굴 튜빙을 하러 한참 논길을 걸어가면 동굴 바로 옆에 조그만 현지인 집들이 모여 있는데 여기서 아침을 먹는다. 아침으로는 고기와 야채를 낀 꼬치와 볶음밥, 샌드위치를 주는데 10불을 내고 투어와 아침식사까지 제공되는 이런 투어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찾기 힘들다. (2년 6개월이 넘게 지난 기억이라 정확히 10불이었는지 장담할 수 없고, 가파르게 경제가 발전하고 물가가 오르는 개발도상국 특성상 지금은 많이 올랐으리라)


옆에서 돼지, 닭, 오리가 뛰노는 커다란 원두막에서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과 하는 아침식사도 즐겁다.



식사 후에는 머리에 랜턴을 달고, 구명조끼를 입고 튜브에 올라탄채 위 사진에 보이는 조그만 동굴로 들어간다. 입구는 수면과 거의 맞닿아있지만 안쪽은 생각보다 높았고,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지하에서부터 흘러서 지표밖으로 나오는 물이라 황톳빛 강물과는 다르게 맑고 파랗다. 


동굴로 들어간 직후 안에서 찍은 동굴입구



동굴 안은 어둡고 물은 차갑다. 깊은 곳은 발이 닿지 않지만 어차피 가이드들이 튜브를 당겨주는데다 튜브에 올라탄채 동굴 안에 연결된 줄을 잡고 당기면서 다니기 때문에 전혀 겁을 낼 필요는 없다. 부지런히 다녀야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틈도 없고 너무 어두워서 찍어봐야 제대로 찍히지도 않는다. 동굴 튜빙은 튜빙 자체의 재미보다는 으스스한 귀신의 집으로 입장하는 듯한 재미가 있다.





동굴 튜빙이 끝나면 근처 동굴 사원을 구경한다. 코끼리를 닮은 바위(위 세번째 사진)가 있고 동굴 안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 북부에는 석회암 지역이 많은지 방비엥, 루앙프라방 등에는 이런 석회동굴에 형성된 사원들이 매우 많다.


이제 드디어 투어이 하이라이트 튜빙과 카약킹을 하는 시간이다. 말 그대로 튜빙은 튜브를 타고, 카약킹을 카약을 타고 강을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다. 몇 시간 동안 타고 내려오려면 피부가 많이 타니 썬크림을 바르는게 좋다. 바르는 걸 싫어하는 나는 투어가 끝난 다음 따끔거리는 피로부 꽤나 후회했다.





내가 방비엥에 갔을 때는 4월초여서 건기에 속했다. 그래선지 강의 수량은 적었지만 강물색은 황톳빛이 아니었다. 느긋하게 카약을 저어 내려오면 맥주와 음료,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는 물가 휴게소가 나온다. 여기서는 해먹에 드러누워 쉬면서 체력을 보충하고 다시 내려간다. 어차피 하류로 내려가는데다 느긋하게 저어도 카약이 잘 나가기 때문에 사실 힘들 일은 없었다.


카약킹은 오후 4시쯤 끝이 났다. 투어를 같이 하는 현지 가이드들은 사람들의 구명 조끼와 식사를 챙기고 카약을 나르느라 힘들고 바쁘지만 친절했고 얼굴은 항상 웃고 있었다. 투어를 마치고 나서 이 사람들을 위해 약간의 팁과 함께 고마움을 담은 인사를 건냈으면 좋겠다.



투어를 끝내고 저녁으로 몸보신을 위해 스테이크를 시켰다. 사실 스테이크라도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이다. 문제는 고기가 무척이나 질기다는 것이다. 동남아의 근육질 물소일테니 당연하다. 이전 경험으로 소고기는 시키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스테이크의 유혹에 빠져 실수를 했다. 먹느라 턱이 아플지경이었다.









방비엥의 저녁은 아름다웠고 고즈넉했다. 아무 생각없이 며칠을 더 보냈으면 좋았으련만 이때는 루앙프라방에 또 무슨 볼거리가 있을지가 무척 궁금해서 오랫동안 방비엥의 그 고즈넉함을 즐기지 못했다. 물론 방비엥에서 너무 오래 보내서 루앙프라방을 들르지 못했다면 그것도 후회스러운 일이었을테니... 어차피 인생은 복불복이다. 지난 것은 어쩔 수 없고 좋았다면 다시 가면 되는거다.

위앙짠에서 방비엥에 가까워질수록 산이 깊어지고 황토빛 민둥산에서 초록빛을 제대로 갖춘 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평평한 지반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산들이 많았다.


아침 일찍 출발한 버스는 더위가 한창인 시간에 방비엥에 도착했다. 방비엥은 조그만 도시(혹은 마을)이며, 전통적인 농업을 제외한 경제 활동 대부분이 배낭여행자들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듯 싶었다.


방비엥은 동남아의 새로운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곳이며, 어떤 나이 많은 여행자는 방콕 까오산의 수십년 전의 모습이라고도 했다. 이 도시가 조그만 마을이었을 시절에 어떻게 여행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도시 곳곳에서 여행자 숙소용 건물을 짓고 있었다.






싸고 저렴한 숙소를 찾아 마을을 한 번 둘러보고 경관은 조금 부족하고 중심가에서 떨어져 있지만 싸고 조용한 곳에 짐을 풀었다. 깨끗한 침구류를 갖춘, 도미토리도 아닌 넓은 프라이빗 룸이 단돈 10달러다. 게다가 매일 청소까지 해준다. 여행 이전에도 이후에도 볼 수 없었던 가격대비 최고의 숙소였다.


방비엥을 대표하는 경관인 강물과 그 뒤편 바위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전경을 숙소 창문으로 구경하기 위해서는 3,4배 이상의 숙박비에 시설도 더 낡은 곳이었다. 멋들어진 풍경을 침대에 누워서 보기 위해서는 그 댓가가 필요한 법이다.


방비엥의 사진에 꼭 등장하는 나무다리


방비엥을 대표하는 전경...인데 사진 실력이 좀 부족했다.





방비엥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 중에서 한 가지는 레스토랑의 대부분이 배낭여행자, 특히 서양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메뉴들만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 배낭여행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현지 음식을 먹어보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조금 불만스러운 일이었다.


레스토랑 중에서 여행자들에게 유명하다는 식당이 바로 위 사진이다. 상당수의 서양 여행자들은 여기서 하루종일 틀어주는 시트콤 '프렌즈'를 보고, 배고프면 식사를 하고, 낮잠을 자며 낮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밤이 되면 술과 음악에 취해 밤을 새고, 어떤 부류들은 가끔 마약류까지 하는 듯하다.


훌륭한 경치에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너무도 저렴한 물가 때문에 때론 몇 달씩 눌러 앉아버리는 여행자들도 많았다.


숙소 뒤편으로 해가 지는 광경




내일 할 방비엥의 그 유명한 튜빙과 카약킹(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에 나왔던)을 단돈 10달러에 예약하고 인터넷에서 찾은 방비엥의 한국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할만큼 입맛을 잃은 것도 아니지만 먼 라오스, 게다가 이 시골마을 방비엥에서 하는 한국 음식점을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었다.(그 뒤 여행이 길어고 이 나라, 저 대륙을 다니면서 세계 각지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이 이렇게나 많다는걸 알 수 있었다.)


방비엥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방비엥을 떠나고 이 여행을 시작한지 몇 달이 지난 후 어느 날, 내가 방비엥에 머물렀을 당시에 배낭 여행 경험이 꽤 쌓인 상태였더라면 혹은 오랜 여행에 지친 상태였다면 나도 아마 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며칠이고 보내게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좋으면 멈추고 지겨우면 떠나는게 장기 여행자의 특권인데 겨우 한 달 지난 초보 여행자에게는 앞으로 봐야 할 것들, 보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의무감 비슷한게 있었던 것 같다.

여행지가 마음속에 깊이 남게 될 때는 그 곳의 풍광이 너무나도 훌륭하거나, 역사적인 유물이나 예술품에 감동 받거나, 아니면 그 곳의 문화(음식, 음악, 춤 등)에 빠지거나 했을 때다. 그 중에 사람들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마음 깊이 남게 된다. 라오스에서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이 가장 인상깊게 남아있다. 


앓아 눕게되자 덜컥 걱정이 앞섰다. 이 아픈 증상이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위협이 되던 사스나 열대 모기로부터 옮는 말라리아의 초기 증상인지 아니면 또 다른 풍토병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참고 낫기를 기다리다 병을 키우는 것은 아닌지, 병원에 가더라도 라오스의 의료기술은 신뢰할 수 있는지 몸은 몸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아플지경이었다.


결국, 병원에 가보기로 결심하고 인터넷에서 한인들이 갔었다는 라오스의 병원을 검색해서는 숙소 주인아저씨에게 몸이 아프니 이 병원에 대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아저씨에게 바라는 것은 오로지 병원에만 데려다 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출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시간을 끄는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전화를 마치고 '노 프러블럼'이라며 자기가 아는 병원으로 간단다. 병원비를 바가지 씌우기 위해 작전을 짜는 전화는 아니었는지 마음속에서는 의심이 뭉글뭉글 커져갔다.


숙소차가 아닌, 자기 개인 자가용에 태우더니 시내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병원 진료 수속을 대행해 주고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어가 되지 않는 의료진과 통역부터 시작해서 진료비, 주차비까지 본인이 전부 다 지불하는 거다. 여전히 '노 프러블럼'이란다. 그러고 나서 진료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릴 때쯤에야 먼저 돌아간단다.


병원에 오는걸 너무 쉽게 생각했던게 라오스의 의사는 영어가 전혀 되지 않았다. 꽤 규모가 있는 종합병원인데 말이다. 혼자서 수속부터 증상을 설명하고 결과를 받고 병원비를 지불하는게 예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었을텐데 주인 아저씨의 도움으로 일사천리로 끝났다.


감기몸살이라는 진료 결과를 받고, 약을 사고 돌아오면서 이 아저씨에 대한 고마움과 선의를 악의로 의심했던 미안함에 심하게 자책을 했다. 병도 큰 병이 아니라하고 현지에서 이렇게 큰 도움을 받았으니 어떻게 이 곳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뒤에도 라오스 사람들에게 받은 좋은 인상들이 많았다. 어쩌면 처음 주인 아저씨로부터 받은 도움 덕분에 자꾸 좋은 인상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선의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말로만 들을 때는 잘 모르지만 본인이 경험하게 되었을 때는 그 위력의 대단함에 놀라게 된다.


이튿날 감기몸살이 어느 정도 진정되어 계획했던 대로 방비엥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며 환송하는 주인 아저씨에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은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최고의 별점과 후기 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 뒤로 만나는 여행자나 사람들에게 라오스를 좋게 이야기하고 여행지로 추천하게 되었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 위앙짠 주차장













위앙짠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도로 사정은 썩 나쁘지 않았다. 이후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길에 비하면 고속도로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버스 밖으로 펼쳐지는, 이제야 보여주는 라오스의 실제 모습에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모든 산에서는 온통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화전을 일구기 위해 일부러 불을 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산은 황토를 드러낸 민둥산이 대부분이고 아이들은 맨발에 집들은 쓰러질 듯하다. 1달러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종일 일해야 하는 고된 삶과 교육보다는 노동에 몰리는 아이들의 현실이 차창 밖에 있는 것이다.


가 TV에서 인터넷에서 봤던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의 아름다운 경치는 대부분의 라오스와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렇게 버스안에서 찍은 흔들리는 사진을 올리는 이유는 이게 라오스의 실제 모습이기 때문이다. 관광지 사진만 보고 현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다. 즐길때 즐기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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