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멕시코시티를 떠나 와하까(Oaxaca)로 가야한다. 멕시코시티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어디로 가야할 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멕시코시티에서 가장 큰 고대문명 유적지이자,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테오티우아칸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테오티우아칸은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40km 떨어져 있어서 버스를 타야했기 때문에 아침부터 서둘러 멕시코시티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버스 좌석에 수놓아진 테우티우아칸 이미지


이곳을 통해 테오티우아칸에 입장하면...


넓은 분지에 유적들이 펼쳐져 있다.


위키피디아에 나오는 테오티우아칸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테오티우아칸은 대략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500년까지 멕시코 중부지방에 부흥했던 문명의 이름이자, 그 문명을 대표하는 유적지의 이름이다. 이 문명을 이루었던 부족이 누구인지, 어째서 갑자기 멸망했는지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후 아즈텍 문명기에 테오티우아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이 뜻은 '신의 탄생지' 혹은 '신의 길을 가는 자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고학자들은 이 도시가 10만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추측하고 있다. 유적지의 면적은 총 83제곱킬로미터이며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매표소를 통해 입장하면 드넓은 분지에 유적들이 펼쳐져 있고, 멀리 거대한 태양의 피라미드와 더 멀리 달의 피라미드가 보인다. 이런 너른 유적을 돌아볼때 힘든 것은 그늘이 제대로 없기 때문에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물과 모자는 필수로 준비해야 한다.




정면에 있는 계단을 올라갔더니 그 너머에 작은 피라미드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아직 복구가 덜 되었는지, 아니면 유적지에서 발견된 돌로 완벽하게 복구가 불가능한건지 정면을 제외하고는 돌무더기로 남아있었다. 


그중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인류학 박물관에서 봤던 동물모양의 기단들이 피라미드의 사면을 장식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박물관에서는 붉고 푸른 색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유적지에서는 그 색깔이 대부분 지워지고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었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본 사원의 거대한 불탑에는 그 사면을 불교의 신성한 동물인 흰색 코끼리가 장식하고 있었다. 아마 이 피라미드에 있는 동물들도 테오티우아칸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동물들이 아니었을까.




다시 봐도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가까운 모양이다.


이번엔 북미대륙에 세워진 가장 큰 피라미드라는 태양의 피라미드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변의 길이가 225m, 높이가 65m의 계단식 피라미드다. 이집트에서 봤던, 높이가 140미터에 달하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보다 훨씬 낮지만 밑변의 길이는 거의 비슷할 정도로 거대하다. 게다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겉면이 모두 훼손되어 실제 보면 거대한 돌무더기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데다 올라갈 수도 없지만 이곳의 피라미드는 계단식이어서 올라갈 수 있다.





태양의 피라미드에 올라서 보니 구름이 꽤 낮게 떠 있었다. 생각해보니 멕시코시티도 해발 2300미터가 넘는 고지대였다. 며칠전까지 해발 3,4000미터가 넘는 안데스 산지에 있어서 인식하지 못했을뿐이었다.


죽은 자의 길 끝에 있는 달의 피라미드가 보인다.


태양의 피라미드를 내려와서 달의 피라미드로 향했다. 달의 피라미드는 죽은 자의 길이라는 테오티우아칸의 가장 큰 길 끝에 있다. 이 길의 양 옆으로는 당시의 주거지역이나 상가들로 예상되는 건물 유적들이 있다.




달의 피라미드는 밑변이 146미터, 높이 46미터로 크기는 태양의 피라미드보다 훨씬 작지만 이곳이 더 중요한 곳이었을 거라고 한다. 죽은 자의 길을 지나 온 제물이 바쳐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중남미에서 발생된 대부분의 문명들은 인신공양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종교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돼지나 소같은 가축이 없었던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노예나 포로를 먹어 부족한 단백질을 섭취했을 것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이들의 식인풍속을 금지시키고 유럽에서 돼지를 들여왔다.


달의 피라미드에서 내려다 본 모습


고대 테오티우아칸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유적지에서는 뭔가 종교의식을 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페루의 잉카 유적지에서도...


달의 피라미드에서 내려와 당시의 주거지를 복원해 놓은 곳을 둘러보는 것으로 테오티우아칸 유적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주거지의 규모나 화려함이 2천년전 이 도시의 강성함을 잘 보여준다. 몇 달전 이탈리아에서 봤던 폼페이의 도시 유적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폼페이는 화산폭발로 사라진 도시지만 이 곳은 어째서 이 강성한 문명이 한순간 멸망하게 되었을까?




테오티우아칸으로 멕시코시티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멕시코시티에서 보낸 며칠동안을 생각해보니 남미를 떠나며 들었던 아쉬움이 조금은 없어진 느낌이 들었다. 비록 안데스의 광활한 대자연과 아름다운 풍광은 없지만 이를 상쇄하는 멕시코만의 매력이 충분히 있을 것 같았다.



버스터미널 주변 멕시코시티의 달동네. 조금 위험해보인다는 생각은 선입견일까?

내일은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여행자가 추천한 도시, 멕시코 전통음식으로 유명한 와하까(Oaxaca)로 간다. 


여행을 하기 전까지 라틴 아메리카의 예술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특히나 미술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르네상스 이후의 서구화가들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조금이나마 배우는 것이 있고, 늘상 언론매체에서 다뤄지니 겉핥기나마 자연스레 알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주류에서 벗어나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미술가에 대해서는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보테로나 (영화로 먼저 대중에게 유명해진) 프리다 칼로, 칼로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이름만 겨우 들어봤을 뿐이었다.


하지만, 멕시코시티 여행 정보를 찾다보니 멕시코 근대미술의 아버지이자, 공산주의자이며, 멕시코 민중이 가장 사랑했던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이름이 도시 곳곳에 넘치고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미술에 무지한 나조차 어디선가 봤던 그림들이니 흥미가 절로 생겼다. 멕시코시티에서의 둘째날은 리베라의 이름만 따라다녀도 충분할 듯 싶었다.


둘째날의 첫번째 장소는 어제 인류학 박물관을 가면서 겉모습만 보고 지나쳤던 멕시코시티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과 사그라리오 성당으로 정했다.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성당으로 손꼽히는데 1573년 건축을 시작해 1813년 완공된, 240년 동안 지어진 교회다. 이렇게 오랜 기간 지어졌기 때문에 르네상스, 바로크, 네오 클래식 양식이 혼합되었다는데 건축에 문외한이라 정확하게 어디가 르네상스 양식이고 어느 부분이 바로크 양식인지 뚜렷하게 구분할 깜냥이 없다.


성당내부에 들어서니 우선 전면에 황금 빛 제단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검은 대리석으로 조각된 십자가에 못밖힌 예수상이 보였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수차례 화려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당을 봐왔기 때문에 그에 비할 수는 없지만 이교도의 나라를 식민지로 삼아 자신들의 종교 건축물을 이 정도로 크고 화려하게 지었다니... 역사는 정복자에 관대하게 기록되는건 알지만 이걸 짓느라 수탈당했을 원주민들의 고통은 알려지지 않는게 불편했다.





 

당연하게도 성당 내부는 스페인에서 본 성당들과 매우 흡사하다. (성당에 들어서면 먼저 전면 가까이에 제단이 있고, 그 뒷쪽에 또 제단이 있다. 그리고, 좌우로는 귀족이나 성직자가 드나들었을 나무로 만든 커다란 문이 있다.)




지어질 당시에는 피지배계층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을지언정 지금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당시의 기술과 자금을 총 동원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때의 문화수준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없을 테니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아이러니하다.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 바로 옆에는 사그라리오 대성당이 있다.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보다는 훨씬 크기가 작고 화려함도 덜하지만 종교적인 분위기는 더한 것 같았다.



성당에서 나와 왼쪽에 있는 국립왕궁(Palacio Nacional)로 걸어갔다. 이 건물은 아즈텍 왕국 이후에 멕시코를 지배했던 계층의 궁전이었다가 지금은 국회의사당과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간단한 검문을 받고 입장한다.


여행자들이 이 건물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가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미술활동을 하며 이탈리아 벽화에 영향을 받았던 리베라가 멕시코로 돌아온 후, 정부의 요청으로 공공건물에 많은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이 벽화들은 멕시코의 역사의식과 사회주의 사상을 담고 있어서 멕시코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 건물에도 그런 벽화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이 곳에 그려진 벽화 중에 가장 크고 유명한 것은 주 계단 전면과 좌우측에 그려진 벽화이다. 우측부터 아즈텍의 신화와 역사, 스페인의 침략과 지배, 근대의 자본주의와 혁명 순으로 그려져 있다. 크고 복잡한 이 벽화들을 일부분씩 떼어놓고 보면 모두 하나씩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멕시코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이런 그림들을 통해 못배우고 착취만 당했던 군중들을 깨우치려했던 리베라의 의도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계단 전면의 벽화(스페인의 침략과 지배)


계단의 우측(아즈텍 시대의 역사)


계단의 좌측(근대, 혁명)


타락한 성직자


칼 막스의 자본론을 손에 든 노동자


원주민에게 인두로 표식을 남기는 노예상인


노예로 팔리지 않기 위해서는 개종할 수 밖에 없었던 것...



리베라는 벽화에 역사적인 인물들이나 그의 주위사람들을 많이 그렸다고 하는데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영향을 받았는지도) 벽화에서 붉은 옷을 입은 이 여인은 리베라의 처제이자 정부였던 크리스티나라고 한다. 리베라는 화가로서는 훌륭했으나 자신의 예술적 근원이 여인들과의 관계에 있다고 할 정도로 문란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프리다 칼로가 세번째 아내였으며, 칼로의 사후에 네번째 결혼을 했다.



리베라는 계단에 그려진 벽화말고도 이 커다란 건물을 빙 둘러서 멕시코의 역사를 주제로한 십 여점의 벽화들을 그렸다.





건물 안에는 자그마한 리베라의 기념관도 있는데, 기념관에 있는 리베라의 사진을 보면 덩치가 크고, 뚱뚱하고, 못생겼다. 외모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내적으로 강렬한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나보다.



리베라의 벽화 외에도 전시실에 미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나로서는 어떤 유명한 화가의 작품인지, 어째서 훌륭한지 볼 능력이 없었다.


벽화를 보고 나오니 벌써 점심때가 가까워져 있었다. 다음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현지인들이 꽤 많은 식당에 들어가 치킨과 샌드위치를 시켰다. 멕시코는 음식이 무척 저렴했다. 게다가 매콤한 소스를 같이 주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도 먹기에 좋았다.

 

매콤한 소스. 푸른 고추냐 붉은 고추냐의 차이다. 둘다 맵다.


점심식사를 하고 다음 목적지로 가다가 멋진 우체국 건물을 만났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체국 건물중에 하나라는데 특별한 구경거리는 없으니 굳이 찾아갈 필요는 없고, 지나는 길이라면 한번 들러볼만 하다.






우체국 건물치고는 꽤 멋지다. 명동에 있는 중앙우체국(포스트 타워)도 멋지게 지었으면 좋았을텐데.




다음 도착한 장소는 Palacio de Bellas Artes 였다. 이곳은 멕시코 전통 음악과 춤을 공연하는 극장과 극장 벽면에 그려진 멕시코 유명 화가들의 벽화가 유명하다. 전통 공연은 볼 수 없었지만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벽화들을 볼 수 있었다. 오전에 본 국립왕궁 벽면에 그려진 리베라의 벽화보다 단순하지만 훨씬 강렬하게 주제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않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인지 사진이 한장도 없었다. 어쩌면 하루종일 걸어다녀서 지쳐버렸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디에고 리베라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아라메다 공원의 일요일의 꿈'이 전시되어 있는 Museo Mural Diego Rivera로 향했다. 처음엔 디에고 리베라 벽화 박물관이라고 해서 규모가 꽤 큰 박물관인줄 알았는데 아라메다 공원 한쪽에 있는 작은 건물이라 의아했다. 그리고, 박물관 앞 공원에는 멕시코 할아버지들의 체스 게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Museo Mural Diego Rivera


이 박물관은 오로지 '아라메다 공원의 일요일의 꿈'의 전시를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다. 몇 점의 그림이 더 있지만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은 이 벽화를 보기 위해 오기 때문이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벽화는 무척 컸다. 박물관에서는 벽화에 그려진 각 인물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인쇄물을 나눠주었지만, 대부분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크게 흥미가 생기진 않았다.



관심이 가는 부분은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해골여인과 어린 시절의 리베라(좌측), 나이 든 리베라(우측), 그리고 뒤편의 프리다 칼로였다. 그때도 그랬지만 블로그를 하면서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려 해도 도통 이 남자의 뜻을 알기가 힘들었다. 이 그림에 대해 설명한 분들의 블로그나 기사를 찾아보니 네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그림들이 가진 역사적인 의미는 알겠지만 리베라가 이 네 명을 그린 의미가 정리되진 않았다.



 

박물관에서 나와 거리를 걷다보니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에 들어오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네 명동쯤 되는 것 같았다. 길거리에는 이런저런 먹거리 음식도 팔고, 거리 양쪽에는 상가들이 가득했다. 감자칩에 붉은 소스가 올려진 먹거리를 샀는데, 감자칩인 줄 알았던 것은 딱딱한게 감자맛이 나지 않았고 붉은 소스는 매운맛보다는 신맛이 강했다. 겉모습이 같다고 해서 같은 특성을 갖는 건 아니라는걸 또 경험했다.




 

생각해보니 이 날 숙소를 옮겼다. 나쁘진 않았지만 구시가 가까이에 있어 번잡했던 호스텔을 떠나 신시가 주택가에 있는 곳으로 옮겼다. 숙소에 맡겨둔 배낭을 찾아 둘러매고 새로운 숙소에 짐을 풀고나니 꽤 밤이 늦은 시간이 되었다. 숙소를 옮기느라 저녁도 거르는 바람에 새 숙소로 오면서 봐둔 길거리 샌드위치를 파는 곳에서 가장 토핑이 많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젊은 멕시코 청년이 만들어 준 샌드위치는 내용물이 굉장했다. 햄, 소세지, 베이컨, 고기, 치즈, 달걀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여기에 야채를 좀 더 넣어주었다면 더 훌륭했을텐데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불만을 가질 수는 없었다. 먹을게 맘에 들면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타입이라 멕시코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봤던 리베라의 벽화보다 강력했던 건 결국 샌드위치였다.




인류학 박물관에 들어서면 세계의 인종들을 대표하는 얼굴과 해골이 겹쳐진 사진들이 보인다. 그리고, 아즈텍 문명의 천지창조신화라고 보이는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위키피디아에 나오는 아즈텍 문명의 천지창조신화는 다음과 같다.


(생략)... 다섯 번째 세상이 열린 곳이 바로 아스텍 문명에 있었던 테오티우아칸이었다. 테오티우아칸은 나우아틀어로 '신이 태어난 곳'을 말한다. 그러나 사방은 컴컴했다. 해를 다시 만드는 법은 오직 하나, 신들 중 누군가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것이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오만한신 테크시스테카틀이 스스로 가장 위대한 신이라며 태양이 되기를 자청했다. 다른 신들은 모두 그를 싫어했기 때문에 동의하진 않았지만, 신들은 커다란 화룻불을 피워 놓고 테쿠시스테카틀에게 불속으로 뛰어들라고 했다. 그는 불길을 보고 겁이 나고 말았다. 바로 그 때, 현명하고 인기가 많았던 나나우아신이 불 속으로 펄쩍 뛰어들어 태양이 되었다. 이를 본 테쿠시스테카틀도 불 속으로 뛰어들어 달이 되었다. 그러나 달과 태양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또 다른 희생이 필요했다. 그래서 신들은 차례로 뱀의 신 케찰코아틀에게 와서 자신의 심장을 꺼냈다. 그러자 달과 태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속에 뛰어드는 나나우아신? 좀 더 멕시코 문명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훨씬 잘 기억하고 있을텐데...


아즈텍인들은 잉카인들이 돌을 다루는데 천재적이었던 것처럼 디자인에 뛰어난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나보다. 유물들 중에는 사물의 특징을 매우 잘 포착해 만든데다가 알록달록한 색감을 가진, 지금봐도 훌륭하게 생각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나중에 티우테우아칸이나 치첸잇사 같은 유적지에서 파는 기념품들은 웬만해서는 기념품같은 것은 쳐다보지 않는 나조차도 무척 사고싶게 만들었다.



해골이 혀를 삐죽 내밀고 있는 것 같아서 무척 귀엽다. 실제 용도는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즈텍인들의 그림문자다. 

그림으로 설명하고 나타내야했으니 사물의 특징을 잡아서 표현하는데 뛰어나게 된 것은 아닐까?


돌칼로 보이는데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 같이 귀엽다.


아즈텍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때 86년 멕시코 월드컵 개막식을 보면서였다. 중미를 대표하는 문명으로는 마야문명과 어렸을 때 들었던 아즈텍 문명 밖에 몰랐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마야, 아즈텍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문명이 멕시코에서 발생했다는 걸 알게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에 사람이 살게 된 것으로 학자들이 추측하는 여러가지 학설중에 대표적인 것은 아시아에서 빙하기때 베링해협을 건너 정착했다는 학설이다. 그리고, 건너 온 사람들이 점차 남하하여 남미의 대륙의 끝까지 퍼졌다고 한다. (다른 학설로 폴리네시아인들이 태평양을 건너 남미에 정착했다거나 하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리고, 중앙아메리카에서 시대별, 지역별로 올메카, 테오티우아칸, 마야, 톨테카, 아즈텍 문명이 꽃피웠다.


특히, 멕시코시티는 테오티우아칸과 아즈텍 문명의 중심지였다. 테오티우아칸은 근교에 거대한 유적이 남아있는데 반해, 아즈텍 문명은 멕시코에서 가장 최근에 발생한 문명임에도 그런 거대한 도시 유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즈텍의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은 지금의 멕시코시티 자리에 있었던 텍스코코라는 호수에 지어졌다고 한다. 무척 아름다웠다는 이 도시는 스페인인들에 의해 파괴되고 메워졌다니, 그래서 아즈텍 유적이 드문게 아닐까 싶다.


테노치틀란의 상상도는 마치 베니스를 연상시킨다.





아즈텍인들의 디자인은 정말 독특하고 재미난 것 같다. 유적의 가치나 의미보다 그냥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몇개의 전시장을 거치고나니 벌써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박물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이런 곳에 있는 레스토랑 치고는 가격이 심하게 비싸진 않았다. 멕시코의 물가는, 특히 음식값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인류학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은 뭐니뭐니해도 '태양의 돌'이다. 소칼로 광장에서 발견되었다는 이 거대한 돌판은 아즈텍인들의 태양신을 중심으로 멸망한 네 개의 세상과 지금의 다섯 번째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이 돌판에 새겨진 아즈텍인들의 천지창조 신화에 따르면 다섯 번째 세상은 2012년 12월 22일에 멸망할 것이라고 하는데 내가 이 태양의 돌을 본 것은 세계 멸망을 한달 조금 더 남겨둔 시점이었다.








박물관의 외부 전시장에는 유적을 그대로 옮겨 온 건물들이 몇 채 있었다. 외벽의 기하학적이고 섬세한 부조는 무척 독특하다.






에메랄드 가면을 쓰고 거대한 석관에 묻혀 있던 미이라





박물관을 나오니 오후 해가 많이 기울어있었다. 하루종일 서서 박물관을 구경하는 일은 꽤나 몸과 머리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 피로가 몰려왔다. 잠시 쉬어가자 싶어 공원 벤치를 찾았는데 한쪽에서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서보니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높은 기둥에 오르고 있었는데, 멕시코에 오면서 잠깐 조사했던 전통의식 '볼라도르'를 보여주는 공연단이었다.


무척 높아보이는데 아무런 두려움없이 척척 올라간다.




다들 자리를 잡고 앉더니 갑자기 빙빙 돌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둥에 돌려진 줄이 풀리며 점점 지상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속력도 무척 빨라졌다.


빙빙 돌아가는 와중에도 피리를 불고, 북을 친다. 아무리 공연단이라 하더라도 대단하다.




이 블라도르 의식에 대해서 위키피디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블라도르 의식에서는 사람들이 새처럼 차려 입었는데,이것은 신이 스스로 이 모습을 택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생명의 나무를 뜻하는 기둥에 매달려 둥글게 흔들리는 사람들을 밧줄을 서서히 풀면서 땅으로 내려놓았다. 밧줄의 길이는 정확하게 52번을 돌고 땅에 닿도록 계산했다. 이 의식은 52년 만에 일어나는 아스텍의 두 달력의 일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또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날의 마지막 공연이었던 듯 공연단을 짐을 챙겨서 자리를 떴다. 생각하지 못했던 공연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무척 기분이 좋았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해가지는 공원을 가로질러 Reforma 거리로 나왔다. 이 거리는 멕시코시티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가장 큰 길인데, 양쪽으로 현대적인 오피스 빌딩들이 들어서 있어서 조금은 서울의 테헤란로 느낌이었다. 하지만, 테헤란로보다는 무척 덜 붐비고 인도가 넓어서 걷기에 좋았다.





Reforma 도로를 따라 걸어서 찾아간 곳은 한국식당과 가게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식당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순대국밥을 시켰다. 여행중에 여러번 한국식당에서 음식을 먹었지만 순대국밥은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메뉴판을 보자마자 무척 반가웠다. 맛도 훌륭했었는데 특이한 것은 이 식당에는 손님으로 한국사람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꽤 있었다. 이 식당에서는 한국음식의 글로벌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사진을 보고있으니 갑자기 순대국밥이 먹고싶어진다.



아즈텍인들은 자신들을 멕시카(Mexica)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나라이름도 멕시코가 되었나보다. 사실 지금 이들이 쓰는 언어가 스페인어이기 때문에 발음상 멕시코가 아닌 메히꼬라고 부르는게 맞다. 현지인들 중에는 멕시코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도 외국인이 제대로 된 발음으로 '대한민국', '서울'이라고 부르면 무척 반갑지 않을까? 가능하면 현지에서는 그들의 발음대로 불러주는게 좋겠다. 사실 나도 그러진 못했기 때문에 다음 여행에서는 반드시 그러고 싶다.

리마를 출발한 비행기가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 공항에서 서둘러 버스를 타고 멕시코시티 구도심에 있는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그때까지도 밤에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약간은 긴장이 되었다. 더구나 외신에서 마약카르텔과 관련된 험한 사건사고가 많이 보도되는 멕시코 아닌가.


남미여행중 만났던 어학 연수중인 대학생은 처음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날, 가판에 파는 신문에서 마약조직이 육교에 상대편의 시체를 매달아놓은 사진을 보고 일주일간 숙소밖을 나가기가 두려웠다고 했다. 또 다른 대학생은 멕시코시티를 기준으로 미국국경까지 북쪽은 치안이 위험하지만 남쪽으로는 사람들도 무척 친절하고 좋았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어서인지 처음엔 멕시코시티에 대한 인상이 썩 좋지는 않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구도심이라 현지인과 여행자들이 많아서인지 길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들도 상당히 많았다. (멕시코는 동남아를 제외하고는 다양하고 저렴한 길거리 음식이 많은 편이었다.) 아는 멕시코 음식이라고는 타꼬와 또르띠야 밖에 없지만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음식들을 이것저것 골라 광장 보도에 앉아 먹었다. 무슨 음식인지도 모르겠지만 노점에서 산 음식치고 무척 괜찮았다. 멕시코 여행중에는 먹는 즐거움이 크겠구나 싶으니 괜히 멕시코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남미 여행을 마치고 적도를 넘어온터라 계절도 바뀌어서 여름에 접어들던 날씨가 늦은 가을이 되었다. 다만, 멕시코 시티도 꽤나 적도에 가까이 위치한 도시라 춥지는 않았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 느낌이 들었다.


커다란 멕시코 국기가 게양되어 있는 헌법광장(Plaza de la Constitución)


숙소는 멕시코 구도심의 중심인 헌법광장 혹은 소칼로광장(Zocalo)이라 부르는 커다란 광장 근처에 있었다. 광장 주변은 멕시코시티 대성당, 사그라리오 성당, 국립궁전 등에 둘러싸여 있어서 주변에만해도 볼거리들이 무척 많았다. 하지만 첫날 멕시코시티 여행의 시작은 세계 3대 고고학박물관인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서 하기로 했다. 박물관에서 대략이나마 마야문명에 대해 이해하고 멕시코 여행을 시작하는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광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멕시코시티의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de la Ciudad de México)


생각외로 깔끔한 멕시코시티의 지하철



지하철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하철 노선을 심플한 아이콘으로 표시한 것이었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너무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복잡한 노선도보다 알아보기 쉬운 이런 노선이 훨씬 편하다. 오래전 마야인들의 미적감각이 후손들에게 계속 유전되고 있는지 멕시코 출신의 유명한 화가, 건축가들이 많을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마야의 문양을 바탕으로 디자인한 것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인류학박물관은 커다란 차풀테펙 공원 한켠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내려 공원을 가로질러 걸었다. 아침이라 한가한 공원을 걸으니 기분마저 좋아진다.




마야의 독특한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표지석. 위에 올라앉은 메뚜기(?)가 귀여워 보인다.


국립 인류학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ía) 정문


박물관 정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오니 한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거대한 캐노피가 눈에 들어왔다. 박물관을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다는데(이름 기억안남), 그 중에서 박물관의 상징적인 구조물이 이 캐노피이다. 한개의 기둥을 가진 건축물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84m) 기둥 위에서는 물이 떨어지는데 자세히 보면 기둥 표면에 마야문명과 관련된 여러가지 부조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날 박물관에서 본 사진들을 정리하고 보니 한번에 다 올리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어서 첫날 일정을 나눠 올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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