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다는 멕시코 유타칸주의 주도이면서 인구가 100만 정도 되는 대도시다. 내가 머물렀던 곳은 스페인 식민지시대에 건설된 구도심지역이라 규모가 작았지만 도시가 커지면서 생긴 신도심에는 높은 빌딩들도 있다. 앞서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메리다에서는 요일마다 정해진 공연이 정해진 장소에서 열리는데 단지 여행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뻔한 공연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즐기는 춤과 음악을 여행자들이 같이 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매력적이다. 


여행자의 주머니를 노리는게 뻔히 보이는 행사나 이벤트는 그들이 다시 오고싶거나 주위 사람에게 추천해줄 만큼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나라가 관광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나 지자체가 벌이는 축제나 행사가 과연 여행자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것인지 냉정하게 돌이켜봐야한다. 솔직히 하는 행사들을 보면 대부분은 내가 외국인이라면 절대 관심이 가지 않거나 흥미를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왜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이 외국 사람들에게 인기인지는 뻔하지 않은가?


메리다에서의 즐거운 첫날을 보내고, 두번째 날은 어제 신청한 세노떼 스노클링 투어에 참여했다. 메리다나 유타칸 반도에서 할 수 있는 재밌는 경험중 하나는 세노떼에서 수영을 하는 것이다. 석회암지대인 유타칸 반도는 이 석회암이 빗물과 지하수에 녹아서 싱크홀처럼 움푹 꺼진 곳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곳을 세노떼(Cenote)라고 한다. 그리고, 이 석회암이 녹아서 생긴 구멍에는 맑은 지하수가 차 있어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광경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수십 명이 들어가서 수영을 할 수 있을만큼 큰 곳도 있다. 마야시대에는 이런 세노떼가 식수를 공급하는 곳으로, 종교의식을 치르는 곳으로 중요한 장소였다고 한다. 지금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들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세노떼에서는 여행자들을 위한 투어가 진행된다.


아침에 여행사 승합차를 타고 메리다 근교에 있는 세노떼로 출발했다. 운전사는 메리나 시내를 지나면서 역사적인 건물들 앞에서는 간략한 설명을 했는데, 안그래도 안들리는 말인데 역사적인 배경을 모르니 알아듣기 더 힘들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 찍는 것으로 분위기를 맞췄다.



뭔지 모르지만 설명을 하길래 사진만 찍었다.


메리다 교외로 나와서 한참을 달린 후에 어느 작은 마을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말이 끄는 마차로 갈아타라고 했다. 세노떼가 밀림 군데군데 있어서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없는 모양이었다.



마차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타서 말이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세노떼로 가는 길마다 엉성하지만 철로가 놓여져 있어서 마차는 그 위를 달렸다. 철로가 없는 비포장도로에서 사람들이 잔뜩 탄 마차를 끄는 것보다는 힘이 훨씬 적게 드니 말은 제법 빠르게 마차를 끌었다.



멕시코 남부의 하늘과 구름은 항상 맑고 푸르렀다.


첫번째 세노떼에 도착했다. 세노떼로 들어가는 입구도 크고, 내려가는 계단도 잘 되어 있었지만 처음에는 어두컴컴한 동굴 안으로 내려가는게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노떼가 가장 시설(?)이 좋은 곳이었다. 다른 곳은 거의 구멍에 사다리 놓인 수준이었다.)



막상 세노떼 안으로 내려가자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눈이 아직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세노떼 대부분은 어둡게 보였지만 햇빛이 비치는 곳의 물색깔은 환상적이었다.




세노떼의 수심은 제법 깊어서 사람키의 몇 배는 족히 되었지만 물이 워낙 맑아서 밑바닥이 매우 선명하게 보였다. 가이드는 구명조끼와 오리발을 나눠주고 세노떼에서 스노클링을 하라고 했다. 유럽이나 미주에서 온 여행자들은 호수나 강에서 수영하는게 익숙한지 구명조끼 없이 들어가서 물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을 했지만,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운 나는 아직 바닥이 닿지 않는 곳에서의 수영은 서툴러서 구명조끼에 의지해야했다. 오리발을 끼고 있으니 괜찮을 법도 하지만 어두컴컴한 세노떼에서 내가 혹시 물을 먹고 허우적대더라도 사람들이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세노떼에 들어가는 입구말고도 군데군데 작은 구멍들이 있어서 세노떼 안으로 햇빛이 비친다.


첫번째 세노떼에서 스노클링을 마친 뒤에는 두번째 세노떼로 향했다. 이번에는 입구가 좀 더 작고 더 은밀해 보였다. 하지만 물빛은 오히려 더 맑았고 은밀해서인지 더 신비로웠다.






두번째 세노떼는 첫번째처럼 수면 바로 위까지 계단이 놓여있지 않았다. 동굴 벽을 따라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지만 가이드는 중간에 놓여진 발판에서 세노떼로 뛰어들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먼저 장비를 착용하고 뛰어들었다. 스킨스쿠버 전문가인 그는 덩치도 무척 크고, 뚱뚱해서 물보라가 엄청나게 튀었지만 물속에서는 한마리의 바다코끼리처럼 아주 자유로워보였다.


세노떼로 뛰어들기 직전의 바다코끼리


역시나 엄청난 물보라를 내며 입수


역시나 서양 여행자들은 구명조끼도 착용하지 않고 세노떼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멈칫거리던 서양 여자들까지 비명을 지르며 뛰어었고 나도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뛰어들었다. 예전 용인에 있는 캐리비안베이의 다이빙풀에서 구명조끼 없이 뛴 적이 있었다. 그때는 구조요원이 지켜보고 있었고 주위도 밝았기 때문에 두려움없이 뛸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러지 못했다.


자유롭게 물속을 유영하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세번째 세노떼에는 그야말로 조그만 구멍에 수직으로 허술한 사다리만 놓여 있었다. 어쩌면 가장 위험하고 허술한 곳이었지만 가장 멋진 세노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세번째라 이제 너무 익숙해져버렸는지 그 뒤로는 찍은 사진이 없다.



하루종일 물놀이로 손발이 퉁퉁 불고 몸이 추워지자 세노떼 투어를 마치고 가이드가 안내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멕시코 전통가옥 형태인지 아주 높은 천정에 지붕은 긴 풀로 엮은 나무집이었다. 음식가격은 투어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어서 각자 본인이 먹고 싶은걸 시키고 식사하며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으로 투어는 끝이 났다.


여행을 하며 세노떼에 대해 더 찾아보니 내가 갔던 세노떼보다 훨씬 더 신비하고 아름다운 곳이 많았다. 어쨌든 유타칸 반도를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하루쯤 세노떼에서 스노클링을 즐겨보길 추천하고 싶다. 아름다운 바다나 호수에서 수영하는 것은 어디서든 해볼 수 있지만 아름다운 동굴에서 수영을 하는 것은 쉽게 경험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물에서 텀벙거리다 와서 피곤했는지 그 날 있었던 공연은 보러 가지 못했다. 대신 숙소 베란다에서 어두워지는 광장을 바라보며 밤늦게 여러가지 알콜 음료를 마시다 잠들었다.(멕시코에는 코로나라는 세계적인 맥주가 있지만 캔으로 나온 여러가지 칵테일 음료들도 있다. 이것저것 마셔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양한 풍경과 맛있는 음식과 술, 재밌는 경험이 어우러진 멕시코 여행이 점점 더 즐거워졌다.

빨렝께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이튿날 아침에 메리다에 도착했다. 야간버스를 신물나게 타왔고 이미 몸도 적응을 했음에도 다음날 힘든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서둘러 숙소를 잡고,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까지 먹었음에도 좀처럼 나갈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괜스레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바깥이 시끌벅적해졌다.


마침 숙소로 잡은 곳은 메리다 대성당이 있는 광장(Plaza de la Independencia)과 바로 접한 곳이었다. 보통은 시끌벅적한 곳보다는 여행자들의 평점이 높고 조용한 곳을 선호하는데 이번에는 뜻대로 되지 않은데다 야간버스 영향으로 몸이 피곤해서 다른 곳을 다시 찾기도 싫어서 그냥 지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시끄러워지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숙소 건물의 광장쪽으로 난 베란다에 나와서 보니 악대가 선두에 서고 그 뒤로 흰옷에 하늘색 깃발을 든 사람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 뒤로 사람들이 가마에 뭔가를 둘러메고 오는게 보였다.




이미 스페인에서부터 남미의 여러나라를 거치는 동안 여러차례 비슷한 광경을 봐왔기에 성모나 성인상을 메고 거리행진을 하는 것인 줄 알고 있었다. 일년에 한번, 그 성인의 날에 하는 것으로 들었는데 성당도, 성인도 많아서 그런가 어째 너무 자주 보는 것 같았다. 





베란다에서 행렬을 한참 구경하고 나니 몽롱했던 정신도 돌아왔다. 우선 점심을 먹고 메리나 구경에 나서기로 했다.



멕시코 레스토랑의 기본셋팅이다. 양파,고추,토마토로 만든 샐러드와 녹색과 붉은색의 소스 두가지, 그리고 나초.



점심메뉴는 타꼬와 몰레가 같이 나오는 치킨 바베큐 요리였다. 지금보니 이 날의 몰레는 밭앙금하고 똑같아 보인다.


메리다의 첫 방문지는 숙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몬테호의 집이었다.1542년 지어졌다는 이 집은 멕시코 유타칸 지역의 통치자였던 스페인 사람 몬테호가 살았던 곳이다. 지금은 보존되어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박물관처럼 쓰이고 있었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는지 내부를 찍은 사진이 없다. 규모가 크진 않아서 둘러보는데 시간이 걸리진 않는데 특이하게도 뜰에 여러가지 귤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생전 처음보는 거대한 귤이 열린 나무도 있었는데 지난달 중국 윈난성에 가니 이와 비슷한 크기의 귤을 팔고 있었다.



귤이 멜론만큼 크다.


몬테호의 집에서 나오기 전 기념품 코너에서 구경하다가 갑자기 엄지발가락이 따끔해서 보니 바닥에 벌이 한마리 버둥거리고 있고 발가락 위에 침이 꽂혀 있었다. 맨발에다 흔히 조리라고 하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어째서 벌이 발가락에 침을 놓았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벌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그랬겠지만. 부으면 어쩌나 했는데 여행하는동안 모기, 빈대 등에 수없이 물리면서 벌에도 내성이 생겼는지 작은 표시 외에는 별다른 증상없었다.


메리다 대성당(Catedral de Merida)


다음으로 간 곳이 어디였는지 사진을 봐도 모르겠다. 여러가지 회화작품 전시되어 있었고, 건물 내부에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다. 강렬할 인상의 벽화 때문에 다른 회화작품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구글에서 찾아봤지만 결국 어딘지 찾지 못했다.


멕시코만큼 벽화를 좋아하는 나라도 드물 것 같다. 전국 곳곳의 시청사나 미술관 등 많은 공공건물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물론 순수미술은 아니고 국민을 깨우칠 목적이거나 혹은 작가의 사상이나 이념을 전파할 목적으로 그들의 고대와 근대사를 그린 벽화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강렬한 힘이 느껴져서 꽤 인상적이다.






여기가 어디였더라... 용량과 저장시간이 유한한 기억력을 너무 믿었나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은 체력소모가 많다. 크지 않은 미술관이었지만 역시나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잠시 쉬어가려고 메리다에서 유명하다는 소르베 가게에 앉았다. 이곳은 구글맵을 보니 어딘지 기억이 났다. 가게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고 대략적인 장소와 구글맵에 뜬 사진을 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숙소가 있는 광장(Plaza de la Independencia) 북쪽면에 접해 있는 'Dulceria y Sorbeteria Colon Centro' 다. Dulceria는 제과점, Sorbeteria는 소르베 가게이니 '도심에 있는 제과와 소르베 파는 가게'라는 뜻인가보다.(Colon Centro는 스페인 점령기에 스페인인들이 건설한 도시의 중심지역을 뜻하는 말 같다.)


이날 먹었던 망고 소르베. 나쁘진 않았으나 나에게 소르베를 포함한 최고의 아이스크림은 역시나 피렌체의 '그 집'이다.


어느새 메리다에 어둠이 내렸지만 메리다의 하루가 끝나려면 한참은 더 있어야 한다. 재미있게도 메리다에서는 매일 저녁에 요일별로 정해진 공연들이 정해진 장소에서 펼쳐진다.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그날 공연이 펼쳐진다는 공원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공원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사서 나오니 예상외로 너무 조용해서 잘못 온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는 어두침침하지만 다행히 공원에는 가로등이 밝혀져 있었다. 그런데, 너무 조용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공원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음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이 보였다. 화려한 무대는 아니지만 여러 명의 연주자들이 내가 모르는 (멕시코 음악?)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뒤편에는 좌석이 마련되어 있어서 앉아서 음악을 듣거나 음악을 듣다가 흥이 나면 무대로 나가서 춤을 췄다.





이 날의 주인공은 붉은 셔츠를 입은 할아버지와 검은 바탕에 흰 무늬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였다. 꽤 고령으로 보이는 두 분은 거의 쉬지 않고 음악이 나올 때마다 춤을 췄다. 이제는 날렵한 몸동작이나 현란한 기술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열정만큼은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매료되어 한참동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춤동작이 귀여우면서도 아름답게 보였다. 지금까지 춤추는 모습은 보더라도 내가 추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저렇게 춤을 추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갈 수 있다면 탱고를 배워볼까?


아름다운 춤은 댄서의 현란한 기술과 스텝에 의해 나오는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이 날 두 분들의 춤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공연은 꽤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늦은 시간이라 숙소로 돌아오면서 조금 긴장이 되었지만, 매일매일이 축제인 메리다에서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일뿐이었다.

어제 해산물 요리에 흠뻑 빠져서 빨렝께에 대한 이미지가 엄청 올라갔지만 사실 빨렝께는 인구 10만이 조금 넘는,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보다 더 작은 도시이다. 게다가 주변은 모두 밀림지역이라 딱히 볼거리가 많은 것 같지 않았다.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대부분 마야유적을 보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이미 여러곳에서 마야유적을 봤었고 앞으로 치첸잇사나 툴룸에서도 볼 예정이지만,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우리에겐 치첸잇사나 툴룸이 훨씬 유명한 유적이지만) 멕시코의 유적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라니 그냥 지나치기도 꺼림직했다. 게다가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에서 다음 여행지인 메리다까지 바로 가기에는 꽤나 먼 거리였기에 중간에 한번쯤 들를만한 곳이 필요하기도 했다.


숙소에서 빨렝께 유적까지 가는 방법을 대충 물어보고 길을 나섰다. 유적까지는 빨렝께 중심가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했는데 숙소가 몰려있는 지역과 도시 중심가는 조금 떨어져있어서 주변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사진에서 보기에는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지만 꽤 크고 높은 나무였다.

고도가 낮은 열대우림 기후라 확실히 나무들이 크고 무성했다.


커다란 나무 둥치에 송충이처럼 보이는 뭔가가 잔뜩 붙어있었다.

처음엔 커다란 벌레인줄 알고 기겁했지만 자세히 보니 선인장처럼 가시가 잔뜩 난 식물이었다.

커다란 식물에 붙어 기생하는 종류가 아닌가 싶은데 생태계의 한 부분이지만 징그럽게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


물어물어 버스타는 곳까지 갔지만 출발 시간이 좀 남았고, 식사도 해야하는터라 근처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들어가서 샌드위치를 시켰다. 멕시코에서는 음식을 시키고 후회한 적이 거의 없다. 큼직한 빵에 고기와 치즈, 야채가 채워진 저렴한 샌드위치는 한끼 식사로 충분했다.



시내에서 빨렝께 유적으로 가는 버스는 대부분 그렇듯이 승합차였다.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밀림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밀림이라서 길이 험하거나 그렇진 않았다. 워낙 유명한 유적지다보니 길도 잘 닦여있고 시내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았다.


빨렝께 유적으로 들어가는 입구


입장권을 사서 유적 입구를 통과하면 울창한 숲사이로 난 길을 조금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길이 끝나면 넓은 잔디밭에 거대한 마야 유적들이 펼쳐져 있다.



빨렝께 유적은 대부분 서기 6세기 무렵에 세워졌는데 띠깔이나 치첸잇사 등의 유적보다 크기는 훨씬 작지만 고고학적인 가치는 두 유적에 못지않고 한다. 특히 빨렝께 피라미드의 지하에서 유골이 발견됨으로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무덤이고 마야의 피라미드는 신전이라는 학설이 힘을 잃었다. - 위키피디아




빨렝께 유적은 오랜 세월 정글에 묻혀 있다가 1949년에서야 발굴이 시작되었고,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것은 1960년대에 들어서였다. 하지만 현재 발굴이 완료된 부분은 전체 유적의 겨우 10%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도 조금씩 발굴과 복원이 계속되고 있다.








빨렝께 유적중에서 회반죽으로 만든 부조가 특히 유명하다고 하는데 어떤 학술적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유적 곳곳에 보존상태가 좋은 회반죽 부조들은 간단하게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차양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언덕위에 지어진 집처럼 보이지만 실제 저 언덕 아래에는 거대한 석조건축물이 묻혀있다.






이 곳은 마야인들의 구기 경기장처럼 보인다. 치첸잇사나 다른 유적에 남아있던 경기장 모습과 매우 비슷한데 아직 제대로 발굴이 이뤄지진 않은 것 같다.

빨렝께 유적에서 나오다보면 숲속에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를 볼 수 있다. 유적 근처에는 강도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도 있었으니 마야인들이 이처럼 문명을 이룩하고 오랫동안 살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유적에서 돌아올 때는 버스 타는 곳을 몰라 조금 헤맸다. 그래서, 시내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빨렝께에서 유명하다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잠시 쉬었다. 역시나 여행 다니면서 괜찮다는 아이스크림을 여기저기서 먹어봐도 피렌체처럼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은 할 수 없었다.


빨렝께 시청사였던 것 같다.


빨렝께시청 앞 광장

내일이면 메리다로 떠나야한다. 거기는 바다와 더 가까우니 훌륭한 해산물요리가 더 저렴할지도 모르지만 오늘 즐기고 싶은 것은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한다는 핑계로 다시 해산물 레스토랑을 찾았다. 충분한 양이 나오리라 생각하고 어제에 비해 적은 요리를 시켰긴했지만 막상 나온 요리는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새우요리를 시키면 새우 한두 마리와 대부분은 야채나 다른 것들로 채워지는 것과 다르게 새우요리에는 새우가 제일 많아야 한다는 내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키고 있었다.

몇 년동안 먹을 새우보다 단 2주간 먹은 새우가 더 많았던 멕시코 새우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빨렝께로 가는 날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의 날씨는 무척 좋았다. 방문했던 멕시코 도시 대부분에서 날씨가 좋았지만 여기서는 춥고 흐린날도 있었는데 떠나는 날에 날씨가 좋아지다니... 이건 무슨 법칙 같다.


버스터미널에서 나초를 팔고 있길래 호기심이 생겼다.


나초봉지만 내어줄거라 생각했는데 치즈맛 소스와 함께 그럴듯하게 담아준다.

가격은 기억나지 않지만 비싸다면 샀을리가 없다.



떠나는 날은 항상 날씨가 좋아진다.

터미널 주변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머릿속에서 사라졌지만 버스를 기다리며 햇살에 눈부셔했던 기억난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와 빨렝께는 같은 치아파스 주에 속해있어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진 않다. 구글맵에서는 두 도시사이 거리가 200km가 조금 넘고, 시간은 4시간 정도 걸린다고 나온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버스는 구글맵에서 검색되는 시간보다 훨씬 더 걸렸다. 게다가 해발 2200m가 넘는 곳에서 60m 밖에 안되는 팔렝께까지는 멕시코 고원지대를 넘어야했다.


주위에 민가도 없어보이는데 자그마한 시골학교가 도로가에 위치해 있다.

고산지대라 넓직한 운동장을 만들 장소도 없었는지 시멘트로 포장된 농구장과 단층 건물이 전부다.



워낙 시골이라 번듯한 집은 아니지만 드문드문 작은 마을이나 민가가 보였고, 그 마당에는 많은 빨래가 널려있다. 

아파트가 전국을 점렴하기 전 우리네 모습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버스는 아직도 고원을 달리는데 해는 이미 기울기 시작했다. 낯선 곳에서의 석양은 항상 여행자의 마음을 침잠하게 한다.



빨렝께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이 깊게 내려앉았다. 전날까지 밤이 되면 쌀쌀했던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와는 달리 빨렝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덥고 습한 공기가 훅하고 밀려왔다. 이곳은 밀림속에 위치한 전형적인 열대기후였다.


밤에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안전문제도 있지만 목적지를 쉽게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인적이 드문 작은 도시에서는 길을 물어 볼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고, 방향을 정하기도, 표지가 될만한 게시판이나 건물을 찾기도 어렵다. 빨렝께에서도 그랬다. 길가에 가로등도 없는 길을 전날 스마트폰에 캐싱해 둔 구글맵만 보고 한참을 헤매서야 겨우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갑작스런 온도변화와 어두운 길을 무거운 배낭을 멘 채 긴장하며 걸었던 탓에 이미 몸은 진이 다 빠졌다. 식욕도 크게 일지는 않았지만 끼니를 거른다면 내일은 더 힘들어질거라는 생각으로 다시 어두운 길로 나왔다.


숙소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현지인들이 많이 찾을 것 같은 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는 제법 규모가 큰 레스토랑만 몇 군데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멀리 찾아가기도 어려우니 오늘 저녁식대는 제법 나갈 각오를 하고 숙소근처의 해산물 레스토랑에 무작정 들어갔다.


메뉴를 보니 다행히 가격이 그리 비싸진 않았다. 그리고, 레스토랑에 들어와 앉으니 그제야 몸에서 시장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떤 요린지 알지는 못하지만 대충 영어로 된 설명을 보고 새우요리와 생선요리를 하나씩 시켰다.


레스토랑에서 주는 식전빵이 멕시코에서는 나초와 소스가 대신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지불해야 먹을 수 있는 나초가 공짜로 무한정 리필된다. 게다가 바삭한게 꽤 맛있다.


식사를 시키고 조금 기다리니 새우요리가 먼저 나왔다. 크지는 않지만 제법 많은 새우가 야채와 새콤한 라임소스, 고춧가루와 버무려진 샐러드였다. 적당히 익혀져서 퍽퍽하지 않은 새우와 새콤한 소스가 꽤 잘 어울렸다. 메뉴판의 설명과 조금 다르다 싶었지만 멕시코 요리에 대해 아는게 없으니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맛있게 먹었다.


문제의 무료 제공 샐러드. 공짜치고는 양과 질이 너무 훌륭해서 착각할 수 밖에...


그런데 잠시 후에 자작한 소스에 제법 큰 새우와 치즈가 올려진 요리가 다시 나왔다. 뭔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요리는 2가지를 시켰는데 벌써 새우요리만 2가지가 나왔고, 이미 나온 둘 중에 한가지는 잘못 나온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나온 요리가 잘못 나온 것이라면 그건 이미 다 먹어버렸고, 두번째 나온 요리가 잘못 나온 것이면 먹지말고 물려야 한다. 지나가는 웨이터를 불러 손짓발짓을 섞어 열심히 설명을 하니 처음엔 이해를 못하는 표정이다가 나중에야 이해하고 알려주었다. 먼저 나온 요리는 돈을 받는 요리가 아니라고...


세상에, 공짜로 나온 나초만해도 좋다고 신나게 먹었는데 새우가 듬뿍 들어간 샐러드도 그냥 제공되는 것이라니... 그제서야 두번째로 나온 새우요리도 먹기 시작했다. 여행 중 대부분의 지역에서 비싸서 엄두를 내기 힘들었던 새우를 멕시코에서는 레스토랑에서 포식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생선요리는 큼직한 접시 위에 알루미늄 호일로 싸여있었다. 알루미늄 호일을 젖히니 다시 바나나잎인 듯 보이는 커다란 잎이 나왔다. 이파리까지 벗기자 따뜻한 소스에 잘 익은 생선요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생선요리에도 커다란 새우가 제법 많이 들어가 있었다.



비리지도 않았고 촉촉한 생선살이 꽤나 훌륭했다. 

게다가 멕시코 요리는 전혀 느끼하지 않아서 한국사람들 입맛에 아주 잘 맞는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빨렝께의 해산물 레스토랑은 감동적이었다. 칠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해산물이 무척 비싸거나 해산물 요리 자체가 별로 없었다. 여행하면서 워낙 해산물을 못먹고 다닌 탓도 있지만 빨렝께에서 이렇게 저렴하게 이런 훌륭한 해산물 요리를 먹을 수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가격도 무척 저렴해서 인당 만원 안팎으로 이 요리들을 더 이상 먹기 힘들정도로 먹었다.



마야유적을 볼 목적으로 방문했던 빨렝께의 첫인상은 아이러니하게 해산물 레스토랑 때문에 상한가를 기록하게 되었다. 멕시코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빨렝께는 바다에 접한 도시는 아니지만 멕시코만과 그리 멀리 떨여져있지는 않아서 해산물이 저렴한게 아닌가 싶다. 나중에 멕시코 유카탄 반도를 여행하며 알게되었지만 멕시코 남부 해안도시에는 새우가 무척 쌌다. 멕시코만에는 새우가 많이 잡히는 것 같다. (예전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에서도 검프가 멕시코만에서 새우잡이 사업으로 성공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실제로 '검프 쉬림프'라는 이름의 레스토랑 체인이 있었다.)

전날 와하까를 출발한 버스는 이튿날 아침에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에 도착했다.(구글맵에서 자동차로 8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여행을 하면서 이름이 긴 도시들, 이를테면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라던지 '산 카를로스 데 바릴로체'를 갔었지만 방문했던 도시중에서 가장 이름이 긴 도시가 이곳이었다. 게다가 아타카마나 바릴로체처럼 줄여서 부르기에도 까사(casa)라는 단어가 집을 의미하는 스페인어라 적당하지 않았다.


이곳을 방문하게 된 이유는 아르헨티나에서 만났던 여행자가 추천을 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멕시코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여행자는 이 곳이 멕시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라고 했다. 사실, 멕시코 여행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고 일정도 길게 잡지 않았음에도 이 여행자뿐만 아니라 그동안 만났던 여러 여행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멕시코 여행을 추천받았다. 그리고, 결국 멕시코는 오랫동안 머물렀던 몇몇 나라중 한 곳이 되었다.


오전에는 숙소에서 쉬다가 오후에는 내일있을 투어를 예약하고 거리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도시는 인구가 20만명이 채 되지않는 작은 도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20만명이라 하더라도 시 면적이 좁은데다가 시내 중심가를 기준으로 모여서 도시가 형성되기 때문에 나름 번화한 도시의 면모를 보이지만, 국토가 넓은 나라들은 일단 도시의 면적이 넓고 주민들이 그 외곽까지 퍼져서 살기 때문에 인구 규모보다 시가지가 생각보다 작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곳도 그랬다. 광장을 중심으로 오래된 좁은 골목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가지는 무척 작았다.


저녁식사를 할만한 곳을 찾다가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무척 별점이 높은 타이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멕시코에서 태국음식이라니... 동남아 여행중에 무척이나 좋아했던 태국음식을 그 후로는 7,8개월 동안 구경도 못했는데, 이 작은 멕시코의 도시에서 맛볼 수 있다니 기대가 생겼다. 사실 처음에는 큰 기대보다 태국 음식과 비슷한 것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타이 레스토랑을 찾아가며 본 거리의 개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는 해발 2200미터의 고지대에 있다. 멕시코에는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고원에 있는 도시들이 꽤 많지만 난방시설이 되어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고지대이며 위도가 낮은 지역의 특성상 낮에는 강렬한 햇살로 기온이 꽤 올라가지만 밤이 되면 뚝 떨어졌다. 게다가 습도도 높은지 공기가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서 더 춥게 느껴졌다. 길가에 나와있는 개들도 밤에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리웠던 오리엔탈 음식맛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타이 레스토랑

입구에 'Very Very Slow Food'라고 적고 달팽이 그림을 그려넣은게 재미있었다.


타이 레스토랑은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는 작은 규모였다. 그래서 오히려 꺼리낌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큰 규모에 비싸보이는 곳이었다면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팟타이를 비롯해 타이 음식을 먹으니 그동안 그리웠던 동양의 짭조름하고 매콤한 음식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태국에서 먹은 음식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먹는 국적불명의 타이(혹은 베트남) 음식하고는 질적으로 달랐다. 게다가 가격까지 배낭여행자로서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외국 음식들이 현지화 혹은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국적불명의 음식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사업이니 수익을 많이 내는게 중요하지만 비싼 돈을 들이더라도 현지의 맛이 그리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아쉽게 느껴진다. 차라리 기존의 음식과 현지화한 음식을 따로 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동남아와 거의 비슷한 음식맛에 만든 사람이 궁금해 주방을 힐끗 살펴보니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음식값을 치루며 알아보니 멕시코 남자와 결혼해 이곳에 정착한 태국여자였다. 오랜만에 그리웠던 음식을 맛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리고, 즐거워진 기분을 더 오래 만끽하기 위해 카페에서 카푸치노까지 마셨다.



이튿날 아침 일찍 예약해둔 여행사의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강가에 도착했다. 사실, 이 투어도 이전에 만난 여행자의 추천으로 하게 되었다. 이 강의 이름이 무엇인지, 투어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보트를 타고 계곡을 돌아보는 투어가 좋다는 말만 듣고 무조건 예약했다. 이렇게 직접 알아본 것, 공부한게 아닌 것은 쉽게 머리에서 잊혀지나보다.




강가에는 여행자 대상의 보트 투어를 업으로하는 곳들이 많이 있었다. 전날 사용한 구명조끼를 빨아 널어놓은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사람들은 투어 준비에 한창이었다.



배의 구조는 독특했다. 가이드는 배 뒤에 설치된 구조물에 올라가 배를 조종하면서 여러가지 설명을 했다. 굳이 높은 곳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잠시 뒤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배는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저 간단히 만들어진 배 구조물에 좁은 좌석이 놓여있는게 전부였다. 하지만 배 크기에 비해 달린 모터의 성능은 꽤나 좋은지 물보라를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조금 가다보니 멀리 까만 무언가가 물위에 잔뜩 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자 이것들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물 위를 까맣게 뒤덮은 것들은 온 몸이 새카만 가마우지와 비슷하게 생긴 새들이었다. 정말 많은 수였는데 그 모습을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는게 아쉽다.



잠시 후에 가이드의 목소리가 빨라지고 손은 물가의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처음엔 바로 찾을 수 없었는데 자세히 보니 물가에 악어가 나와 볕을 쬐고 있었다. 가이드가 배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던 이유는 이런 것들을 쉽게 찾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여튼, 배에 탄 여행자들은 웅성거리고, 사진을 찍고 바빠졌다. 나도 야생 악어는 처음 보는 것이라 꽤 흥분되었다. 악어가 먹이 사냥을 할 때 외에는 움직임이 많은 동물이 아닌데다 일광욕 중이어서 전혀 움직이지 않는게 아쉬웠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이 강에 악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강이 두려워졌다.



조금 더 가다보니 한마리가 더 있었다. 역시나 움직이지 않는게 혹시 모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처음에 넓었던 강폭이 좁아지면서 옆으로는 바위산이 우뚝 솟은 협곡이 드러났다. 북유럽이나 안데스 산맥의 빙하가 깎아놓은 협곡만큼 거대하다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보트를 타고 협곡을 지날때마다 충분히 멋진 풍경이 계속되었다.





이 사진은 북유럽의 협곡과 조금은 비슷한 것 같다.







배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더니 멈춘 곳은 바위 절벽에 있는 움푹들어간 곳이었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절벽 가운데 있는 좁은 장소에 성모 마리아상과 꽃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곳에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밧줄과 부실하게 설치된 사다리가 전부였다. 배를 타고 여기까지 와서 밧줄과 사다리로 올라가 성모에게 기도하고 꽃을 바치고 오는 이들의 신앙심은 참 대단하구나 싶으면서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봤던 빡우동굴이 생각났다. 물론 크기가 이곳과 비교할 수 없이 크지만 몇 시간동안 배를 타고 가서 동굴에 놓인 크고작은 수많은 불상에 기도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종교는 다르지만 정확히 겹치는 것 같았다.


특정 종교를 믿지않는 내가 보기에는 종교에 믿음이 강한 사람들일수록 서로 비슷한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다른 점은 서로가 믿는 신이 다르다는 것 밖에 없다. 게다가 종교가 무엇이건 신앙심이 깊은 일반인들이 종교가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경우는 없었다. 내가 절에 들어가건, 카톨릭 성당에 들어가건, 혹은 모스크에 들어가건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성스러운 공간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나가라고 하지도,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종교로 인해 벌어지는 많은 분쟁들은 오히려 가르침을 잘못 전하는 지도자들이나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꾼'들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 아닐까...





보트는 다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거대한 절벽 중간부터 아래로 진한 녹색으로 덮여 있는, 마치 나무 둥치에서 자라난 버섯 모양을 하고 있는 곳에 보트가 멈췄다.



절벽 아래에 투어중인 보트와 비교해보면 그 크기가 만만치 않다.


처음에는 어째서 이곳만 이렇게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하를 흐르던 물이 절벽 중간에서 지표면을 뚫고나와 절벽을 타고 흐르거나 공중에 뿌려지고 있었다. 이 물로 인해서 그 주변만 이끼나 풀같은 식물들이 풍성하게 자랄 수 있었던데다 물이 석회질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서 버섯모양의 거대한 바위껍질(?)을 형성하게 된 것 같았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의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독특한 풍경임에는 분명했다. 나중에 세계의 절경을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크로아티아에 있는 이와 유사한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종류의 새인지 모르겠지만 알바트로스처럼 거대한 날개를 가진 새가 하늘을 맴돌고 있었다.


보트가 한동안 더 나아가자 갑자기 강폭이 넓어지며 커다란 호수가 나타났다. 그 너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댐이었다. 우리가 지나온 협곡은 댐을 건설하면서 수위가 높아져서 형성되었던 것이다. 댐을 보게되자 조금은 속은 기분이 들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줄 알았던 거대한 협곡이 사실은 반쯤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 생각해보니 댐으로 수위가 높아지긴 했지만 협곡 양쪽에 있던 거대한 바위산과 훌륭한 경치, 새들과 동식물들의 서식지를 그것만으로 폄하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수질 보호를 위해서일까? 더 이상은 갈 수 없다.





보트는 왔던 물길을 거슬러 다시 돌아왔다. 아침 일찍 시작된 투어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끝이났고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점심식사를 할 시간이 주어졌다. 점심식사는 투어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서 여행자들마다 마을에서 알아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과실주일까, 과일절임일까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던...




마을 광장 한쪽에는 푸드코트처럼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대부분은 바베큐요리를 팔고 있었다. 먹음직한 고기들이 구워지는 냄새에 혹해서 샀지만 기름기가 거의 빠진 닭고기는 퍽퍽해서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다. 몸에는 안좋지만 고기맛은 기름이 적당히 있어서 좋다는 것은 진리다.


바베큐보다 좋았던 것은 아이스크림이었다. 와하까에서도 과일을 그대로 얼린 아이스크림에 감탄했는데 여기도 그런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이번에는 딸기가 그대로 박혀있는 아이스크림을 샀다.



투어에서 돌아온 후에 오후 느지막하게 찾아간 곳은 이곳에서 평생 멕시코 인디오들의 생활과 문화를 연구하고 보존하려 애썼던 인물이 살았던 저택이었는데 지금은 박물관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굳게 잡은 손이 인상적이다.




이 사진은 마치 존 웨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방문한 시간이 늦었던대다 서투른 영어로 설명을 일일이 읽기도 귀찮아서 이들이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대강 둘러보고 나왔을 때는 이미 어두워지고 빗방울마저 떨어지려하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해야할텐데 새로운 식당을 찾기도 귀찮은데다 내일 이곳을 떠나면 언제 다시 타이음식을 먹어보겠나 싶어서 자연스레 메뉴가 결정되었다.






타이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이곳에서의 마지막은 모히또를 마시며 마무리했다. 나에게 이곳은 생각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지만, 머무른 이틀은 이곳의 매력을 평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라 뭐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11월말의 이곳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춥고 습해서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의 일정에 따뜻한 카리브해의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고, 이집트 후루가다 이후 처음으로 다이빙을 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너무나 좋은 느낌을 받아서 생각지 못하게 한달이상 머물렀다는 여행자들도 있었다.) 내일은 빨렌께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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