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개인적인 시간이 조금 생겨 3주 정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못하는 일이 생겼습니다작년 이맘때쯤 블로그에 여행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의 기억을 정리하는 수준이라 누군가 이 블로그에 정기적으로 들어와 글을 읽으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글을 올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다시 여행기를 시작하면서 가끔 이 블로그에 들어와 글을 읽었던 분이 계셨다면 왜 한동안 글이 없는지에 대해 궁금하셨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미리 알려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한 생각이 들어서 이 글 앞부분에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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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하까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와하까에서 숙소를 연장하며 5박 6일이나 있었다. 숙소도 볼거리도 먹거리도 모두 마음에 들었던 와하까를 내일 떠나기로 했다. 마지막 날은 와하까의 대표 유적지 몬떼 알반(Monte Alban)에 다녀오고나서 와하까를 대표하는 음식 몰레를 먹어 보는 것으로 일정을 정했다.


몬떼 알반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유적지는 해발고도 1940m의 알반(Alban) 산(Monte) 위에 있다. 와하까 시내에서 몬떼 알반까지 가는 버스(라고 해봐야 봉고차)에 올랐다. 어쩐 일인지 이날은 유적지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는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었다.


몬떼 알반은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명 유적지이다. 그래서인지 매표소와 들어가는 입구까지 유럽의 박물관이나 유적지와 다름없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유적 입구에서 표를 사서 들어가면 바로 유적지로 통하는게 아니라 작은 박물관 같은 곳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있다.


몬떼 알반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표지

여행중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문화유산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이런 표지를 봐도 무덤덤해졌다.


경기장을 사용되었던 몬떼 알반의 유적




산 위에 있는 유적이라 규모가 크지 않을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평평한 산봉우리에 많은 유적들이 복원되어 있어서 이곳이 예전에는 꽤나 큰 큐모의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아직 복원을 끝내지 못한 유적들은 커다란 돌무덤이나 동산처럼 남아있었다.




캄보디아 앙코르톰 복원지에서도 봤듯이 돌 하나하나에 번호를 쓰고 꼼꼼하게 복원하고 있다.

이들의 수고로 여행자들은 그 옛날 당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과한 비용이 아니라면 입장료 내는데 인색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유적지에는 강렬한 멕시코 남부의 햇살을 피할만한 그늘이 없기 때문에 모자나 선글라스는 필수적이다.



유적지중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 형태의 유적 꼭대기에 오르니 몬떼 알반 유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피라미드 앞에 있는, 반듯하게 지어지지 않은 유일한 건물은 천문대였다고 한다.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 문명을 이룩한 아즈텍, 마야인들은 수학과 천문학에서 특히 뛰어난 문명을 이루었다고 한다.



몬떼 알반에는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못한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그 중에서 표면에 그림이 새겨진 돌들이 쭉 늘어서있는 곳이 있다. 그 그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치 사람들이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이 새겨져 있다.










몬떼 알반 유적에 다녀온 후에 와하까를 대표하는 음식인 몰레로 유명한 레스토랑을 찾았다. 대부분의 멕시칸 레스토랑이 그렇듯이 튀긴 나초와 함께 곁들여 먹을 매콤한 소스가 기본으로 나왔다.




몰레로 유명한 이 레스토랑은 여행중에 만난, 와하까에서 멕시칸 요리를 배웠다는 여행자에게 소개 받은 곳이었는데 꽤 유명한 곳인지 식사시간대가 아니었음에도 현지인들이 많았다.



우리에게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요리로 나초, 타코, 퀘사디아 등등을 알고 있지만 정작 멕시코를 대표하는 이 몰레는 잘 알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요리로 불고기, 김치, 된장찌개 등이 있지만 이 요리들을 만드는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을 외국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몰레는 칠리에 초콜릿, 견과류, 여러가지 향신료를 배합한 소스이며, 배합하는 향신료에 따라 여러가지 맛의 몰레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 몰레소스에 구운 칠면조나, 닭, 돼지고기를 얹어서 요리를 완성한다. 이날 내가 시킨 몰레의 종류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약간 매콤한 기본 맛에 달고 고소한 맛이 가미되어 있었다. 색깔과 맛이 우리나라의 자장소스와 매우 흡사했다.


조금은 익숙한 맛이라 감탄이 나올만큼은 아니었지만 풍부한 소스에 밥과 고기를 같이 즐길 수 있어서 충분히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야채와 고기가 가득 찬 퀘사디아도 휼륭했다.






와하까는 멕시코시티에 이어서 불과 멕시코의 두번째 도시였음에도 이미 멕시코의 매력에 깊숙히 빠져 있었다. 내일은  와하까를 떠나 치아파스 주의 작은 고산도시, 이름도 긴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로 간다.

와하까 근교에 볼거리가 많아서 현지 여행사들은 여러가지 일일투어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었다. 이튿날에는 그중에 적당한 투어에 참여했다.


투어에서 처음 간 방문지는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처음 가이드의 이런 설명을 들었을 때는 가장 큰 나무는 미국의 자이언트 세콰이어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한적한 공원에 내려서 가이드를 따라 가니 멀리 커다란 나무가 한그루 보였다. 이때까지만해도 크긴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심했었다.



그런데 다가가보니 이 나무 밑둥이 엄청나게 컸다. 높이는 100미터가 넘는 자이언트 세콰이어 나무에 비할 바 아니지만 둘레는 더 클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이게 한그루의 나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나이 2000살, 둘레 58미터, 높이 42미터, 지름 14미터, 무게 63만 6천톤이란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자이언트세콰이어 나무가 높이 100미터에 둘레가 27미터라니 그보다 훨씬 더 굵다.



밑둥이 전부 나오게 찍으려니 나무와 꽤 떨어져야했다. 나무라기보다는 나무로 지은 집처럼 보인다.


옹이 하나가 커다란 나무 둥치와 비슷하다.



나무 한 그루가 커다란 벽을 만들었다. 과연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나무라 할 만하다.


거대한 나무를 떠나 두번째로 도착한 곳은 전통 멕시코 인디오들의 방법으로 양모를 이용해 카페트를 만드는 곳이었다. 투어 참가자들은 독특하게 생긴 집 안으로 안내되었다.


집 입구에 놓여진 멕시코 농부(일거라 생각되는) 모형

무릎을 가슴에 붙이고 얼굴을 묻은 모습이 옛날 이들의 고생을 보여주는 것 같다.



벽에는 양모로 짠 카페트들이 걸려있었고, 바닥에는 설명할 재료들과 모형이 있었다.


아저씨 두 명이 양털로 실을 잣는 것과 염료를 만드는 것을 보여준다.



염료는 대부분 천연식물에서 얻는데 발 아래 여러가지 재료들이 놓여 있었다. 한 아저씨가 염색한 실 묶음을 가져와서 어떤 재료가 어떤 색의 실을 만드는데 이용되는지 설명을 해준다. 그리고, 다른 아저씨가 이 재료로 색을 내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고보니 얼마전 페루에서 알파카의 털로 실을 잣고, 염료를 내는 것을 보여주었던 투어와 아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파카의 털이 양털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페루와 멕시코가 몇 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유사한 점이 많은 것처럼 우리 선조들도 예전에는 이들처럼 옷감에 물을 들였을 것이다.



붉은 색이었다가


노란색으로 변했다가


분홍색으로 변했다.


마지막으로 양털로 카펫을 짜는 모습을 보여준다. 원색에 기하학적인 무늬가 독특하긴 하지만 실이 거칠거 두꺼워서 그리 좋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카펫짜는 시연을 마친 후에는 카펫을 보여주고 팔기 시작하자 슬그머니 무리에서 떨어져나왔다.






여행사 투어중에는 이렇게 물건을 팔기 위해 끼워넣는 곳들이 있지만 이 지역의 특산품을 소개하거나 여행자들이 별도로 찾아가기 어려운 곳을 안내하는 것이라면 의외로 재밌거나 유용한 일정이 되기도 한다. 대놓고 쇼핑몰에 대려가거나 하는 그런 투어만 아니라면...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와하까 지역의 특산품인 메스깔을 만드는 양조장이었다. 메스깔에 대해서는 앞서의 글에서 조금 썼기 때문에 생략하고 양조장에서 찍은 사진 위주로 정리하기로 했다.



양조장에 들어서면 우선 시음대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많은 종류의 메스깔 중에서 시음하고 싶은 것을 말하면 작은 잔에 따라준다. 달콤한 종류도 많지만 도수가 제법 세기 때문에 흥이 나서 여러 번 마시면 취할 수도 있다.



시음대 앞에는 증류를 하는 장치가 있다. 원통형 가마 밑에서는 장작으로 불을 때고 있고, 위에는 차가운 물로 뜨거워진 공기를 식힌다. 그러면 공기중에 포함된 알콜 성분이 액체로 변해 옆에 놓인 금속통에 모이게 되는 구조다. 우리의 전통소주를 비롯한 대부분의 증류주는 이런 방식으로 얻어진다.



증류기에 넣기 전에 용설란을 으깨어 즙을 내는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돌 절구


으깨어 발효중인 용설란


이 용설란이 메스깔의 원료가 된다.


용설란 뿌리는 증류기를 데우는 장작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병속에 애벌레를 넣어놓은 메스깔


양조장 뒤편에는 용설란 농장이 있었다.


투어 참석자들에게는 전통적인 방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만들어진 메스깔은 대규모의 현대적인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일테지만 이런 것을 보는 것도 여행자들에게는 색다른 재미가 된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기념으로 한병쯤 사는 것도 나쁠건 없다.


다음 방문지는 이 지역의 고대 왕국이었던 사포텍(Zapotecs)의 유적지였다. 사포텍의 수도이며, 가장 큰 유적지는 몬테 알반(Monte Alban)이지만 이 곳은 새롭게 발굴중인 곳 같았다. 사실 지금은 이 유적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유적지는 크지 않아서 위 사진에 보이는 돌로 만들어진 건물과 곳곳에 쌓여있는 돌무더기뿐이다.



크기는 작지만 이 유적의 벽면을 장식하는 문양이 꽤나 독특하고 멋스러웠다.


같이 투어에 참여했던 할아버지. 70대의 연세에 불편한 걸음걸이지만 여행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넓은 공간(예전에는 지붕이 덮여 있었을지도)과 그 주위 작은 방들로 이루어져있다.


작은 방들도 벽면이 돌로 만든 멋진 문양으로 가득하다.





이 곳에 자리잡은 고대인들은 잉카인들과는 다른 의미로 돌을 잘 다루었던 것 같다. 잉카인들이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최소한으로 가공하면서도 튼튼한 건축물을 만들어냈던 것에 비해, 이들은 작은 돌들을 하나하나 다듬어서 이들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문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복원하려면 오랜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마지막 방문지도 이름을 알 수 없다. 위키피디아에서 검색해봤지만 아직 찾을 수 없었다. 이곳은 와하까 주변의 고산지대에 위치한 석회암지대였다. 지표면으로 나온 석회질을 품고 있는 지하수가 오랜시간 지표면을 흐르면서 주변을 흰 석회성분으로 덮고 있는 곳이었다. 이런 곳중에 세계적인 관광지로 터키의 파묵칼레가 있다. 파묵칼레에 비해서 규모도 훨씬 작고, 로마 유적을 품고 있었던 그 곳에 비해 그런 유적이 있지도 않지만 이 곳은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탁 트인 전경은 볼만 했다.






군데군데 이렇게 물이 샘솟는 곳이 있다. 석회질을 품고 있는 이 물이 흐르면서 석회암을 만들었다.


이 수영장 보양의 작은 연못은 자연적으로 생긴게 아니라 

고대인들이 물을 가두기 위해 쌓은 제방에 석회질이 굳어 생긴 것이다.


여기까지 둘러보고 와하까로 돌아오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저녁식사를 위해 미리 알아놓은 와하까에서 제법 유명하다는 타꼬 가게로 향했다. 첫날 와하까에 도착해 포장마차에서 먹은 타꼬를 제대로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착한 타꼬집은 유명하다더니 꽤 많은 현지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위에 올라갈 고기종류를 대충 골라서 시키고 앉았다. 포장마차에서 먹은 타꼬도 맛있었지만 역시 여기서 먹은 타꼬는 더욱 훌륭했다.





사진 찍는걸 눈치채고 자세까지 잡아주는 요리사 아저씨. 칼은 굳이 들지 않아도 된다구.

타꼬는 위에 올라가는 고기의 종류나 부위에 따라 메뉴가 달라진다.

하지만 걱정하지말고 이것저것 시켜서 먹어봐도 좋다. 하나같이 훌륭하다. 


타꼬를 배부르게 먹고 소칼로 광장으로 왔더니 역시나 오늘도 광장이 시끌벅적했다. 오늘은 춤판이 벌어져 있었다. 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남녀노소 춤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매일 저녁 흥겹게 벌어지는 노래와 춤판을 보니 멕시코 사람들이 원래 그런걸까, 와하까라는 도시만 그런걸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와하까에서 맞이하는 세번째 날에도 어김없이 하늘은 맑고 햇살은 강렬했다. 오늘은 어제 문이 닫혀서 들어갈 수 없었던 산토 도밍고 수도원에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산토 도밍고 수도원은 소칼로 광장을 사이에 두고 숙소와 반대방향에 있었기 때문에 일단 소칼로 광장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길 양편에 늘어서 있었다. 이 도시는 여행자를 지루하게 만들지 않으려는듯, 또다른 무언가를가를 보여주려나 싶었다.


처음 눈에 띈 것은 차량 사이에 맨 밧줄을 잡고 건너가는 시범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어서 뒷쪽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차례로 앞쪽 차로 건너가는 시범을 보였다. 특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인지 모두 손쉽게 건너갔고, 별 것 아닌 시범일지라도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그 뒤로는 소방차 몇 대가 따르고 있었다.





이들은 한곳에서만 하는게 아니라 조금씩 나아가서 똑같은 시범을 반복했다. 아마도 이런 시범을 반복하며 구시가를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소깔로 광장에 접해 있는 와하까 시청사 앞에 왔을 때, 마침 이 시범단도 거기에 도착해서 마지막 시범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청앞 광장에는 와하까 경찰 악단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기념식 같은 것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이날이 경찰, 소방관의 날쯤 되는게 아닐까 싶다.





미스 와하까? 얼마나 미인인지 궁금해졌다.


음... 우리 기준하고 좀 다른가보다.


기념식을 하면 높으신 분들이 나와서 한마디씩 할테고 내용도 모를 스페인어를 들어봐야 지루할테니 행사장을 떠나 어제 볼 수 없었던 산토 도밍고 수도원으로 향했다.



짙푸른 하늘과 알록달록한 와하까의 집들이 어우러져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산토 도밍고 수도원 중정에 있는 분수


1500년대 후반 건축을 시작해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수도원은 지금은 와하까 문화센터와 박물관을 겸하고 있다. 특히, 와하까 근교의 마야유적지인 몬테 알반(Monte Alban)과 사포텍(Zapotec)에서 나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수도원이 소칼로 광장과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여행자들로 붐비지 않아서 천천히 구경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하얀 돌로 지어진 수도원 건물도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게 아름답다.


수도원 돌바닥을 청소하는 것 같은데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하는 모습이다. 역시나 이곳은 라틴 아메리카.


고서를 보관하고 있는 장서실


이런 고서들과...


이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다른 중정에는 오래된 나무배를 몇 척 전시하고 있었는데, 비바람을 막기위한 시설이 없는 걸로 봐서는 유물로서의 가치가 크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저기 썩어서 구멍이 난 배들을 너른 중정 여기저기에 놔둔 모습이 마치 설치미술 작품을 보는 것처럼 인상적이었다.





수도원 건물 2층에 서면 탁트인 수도원의 뒷뜰이 보였다. 멀리 높은 산이 보이고 뜰에는 여러가지 나무들과 선인장들이 자라고 있었다. 뜰아래 그늘에는 일반인들을 위한 미술교실 같은게 열리고 있었다. 이 수도원은 문화센터를 겸하고 있어서 이런 교육도 진행하나보다. 막힌 강의실이 아니라 뜰에서 진행되니 훨씬 좋아보였다.





수도원에는 고대 마야유물뿐만 아니라 당시에 사용되던 유물들도 전시하고 있었다.


수도원 모형. 생각보다 규모가 꽤 크다.



와하까의 햇살은 스페인의 그것에 못지않았다. 물론 스페인에 있었을 때는 더위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이고 멕시코는 겨울로 접어들던 시기니 같은 조건은 아니지만 햇살의 강렬함은 계절을 뛰어넘은 느낌이었다. 스페인 정복자들도 멕시코에서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자신의 고향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수도원을 나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왜 여기서 이걸 먹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진을 보니 양갈비를 먹었나보다. 멕시코는 음식값이 싸서 여행자로서 마음이 너무 편했다. 어디든 가서 먹고 싶은걸 먹을 수 있다는건 큰 행복이다.


멕시코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타바스코 소스


무척 맛있어 보이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별로였나보다.


와하까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다시 소칼로 광장으로 돌아왔을 때, 광장은 더욱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고기를 굽고 난리가 났다. 광장 곳곳에는 가판이 펼쳐지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기후가 더운 곳이라 그런지 어두워져야 사람들이 시에스타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는 것 같다.







멕시코인들의 알록달록한 색감과 동식물을 단순화한 디자인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치앙마이 야시장 이후로 기념품으로 뭔가 사고싶다는 생각은 멕시코가 처음이었다.


물건 파는건 뒷전이고 체스에 신난 상인들. 역시 낙천적인 라틴 아메리카



와하까의 낮시간은 길었고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남았지만 와하까에 온 뒤로 제법 걸어서 피곤한데다 내일은 하루종일 와하까 근교 투어에 참여할 예정이라 일찍 숙소로 돌아갔다.

와하까에서 두번째 날에 찍은 사진을 고르다보니 기억하고 싶고, 블로그에 올리고 싶은 사진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멋지거나 아름다운 경치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당시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행복하게 만드는 무척이나 소중한 사진들이라는걸 다시금 느낀다.


......


두번째 날은 와하까의 한 시장에서부터 시작했다. 와하까에는 여러 시장이 있지만 이곳은 조금 독특하다. 시장건물 전체가 고기를 구워 파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장이라기보다는 단일메뉴의 음식을 파는 커다란 푸드코트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축들의 고기와 내장, 소시지를 골라 주문하면 구워준다.


시장에 들어서면 엄청나게 시끌벅적하고 건물은 고기를 굽는 연기로 가득 차 있다. 음식을 먹기 위해 온 사람들, 호객하는 사람들로 발디딜틈이 없는데 여러 가게들중에 하나를 골라 겨우 고기와 같이 먹을 야채를 주문하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멕시코에서도 가축의 내장을 먹는다. 타코 같은 것에도 구워서 넣기도 한다. 여행 전에는 소나 돼지의 내장을 먹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는 줄 알았지만 특별히 고기가 많이 생산되어서 먹을 필요가 없는 나라들을 제외하고 많은 나라에서 이것을 먹고 있었다.



건물안이 연기로 가득하다.


또르띠야와 구워져서 나온 고기


주문한 고기는 종이가 깔린 바구니에 얹혀져 또르띠야와 함께 나온다. 또르띠야를 적당히 찢어서 고기와 야채, (토마토, 양파, 고추로 만든) 샐러드를 넣어 싸먹는다. 맛은 나쁘지 않지만 무척 훌륭하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너무 시끌벅적해서 음식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한번쯤 먹어보는게 좋긴하지만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새콤한 이 샐러드 없이 고기와 또르띠야만 먹기는 힘들 것 같다.


시끌벅적한 고기 시장을 나와 소칼로 광장으로 갔다. 스페인어 소칼로(Zocalo)는 멕시코에서 중앙광장을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멕시코 도시 곳곳에 소칼로라는 이름의 광장이 있다. 멕시코시티의 소칼로에 비해서는 아주 작지만 푸른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시원하고 운치있었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주말을 즐겼고, 광장 주변으로는 레스토랑이나 박물관, 조금 떨어진 곳에 와하까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곧 겨울이 될 늦가을이지만 와하까의 햇살은 강렬하고 눈부셨다.



와하까 대성당 (Catedral de Oaxaca). 유럽이건 어디건 더위를 피할땐 돌벽이 두터운 성당 건물이 제격이다. 





특별할게 없는 스페인풍의 성당이다.


와하까 시내를 다니는 여행자용 전차. 모양만 전차이지 버스를 개조한 것이라 밑에 타이어가 보인다.


와하까 구도심을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다가 북쪽에 있는 산토 도밍고 수도원(Templo de Santo Domingo)까지 왔다. 이곳은 수도원이지만 부근에서 발굴된 여러가지 고대유물부터 수도원에서 보관하고 있는 고문서 등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날은 주말이었기 때문인지 개방하지 않고 있어서 다음에 다시 오기로하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야자나무 아래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나처럼 문닫힌 박물관을 보고 허탈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와중에 야자나무 아래에 뭔가를 팔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NIEVES'라고 쓰인 간판을 달고 있는데 통에서 하얀것을 담아 그 위에 시럽을 뿌려서 건네주고 있었다. 찾아보니 'NIEVE'가 눈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였다. 우리의 팥빙수하고 비슷한 것인가 싶었다. 비록 이것을 맛보진 못했지만 세계 곳곳에서 우리와 비슷한 음식, 사는 방식이나 문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시 소칼로 광장으로 내려가다가 기념품점들이 모여있는 작은 상가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가게는 멕시코의 전통술 메스깔(Mezcal)이었다. 메스깔은 멕시코의 가장 보편적인 술(우리나라의 소주)로 이곳 와하까가 주산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멕시코의 술이라하면 대부분 데킬라만을 알고 있지만 쉽게 말해 데킬라는 메스깔의 한 종류일뿐이다. 멕시코의 할리스코주와 타마울리파스주에서 생산된 용설란으로 증류한 술을 데킬라라고 하고, 그 외의 지역에서 생산된 용설란으로 만든 술이 메스깔이다.


그리고, 술병안에 애벌레가 들어간 데킬라를 고급으로 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품질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어쩌다 용설란에 살고 있던 애벌레가 술병에 들어갔는데 이게 히트치는 바람에 마케팅 수단이 되어버렸고, 요즘에는 생산과정에서 애벌레를 한마리씩 집어넣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데킬라도 진정한 데킬라가 아닐지 모른다. 데킬라를 마실땐 원산지가 할리스코나 타마울리파스주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시음용 메스깔. 자꾸 마시라고 주니 안살수가 없었다.


메스깔은 용설란을 증류하여 만드는 술로 도수가 40도 이상이다. 너무 독해서인지 아니면 관광상품인지 메스깔에 여러가지를 섞어서 매우 다양하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요즘 소주에 과일액을 섞어서 여러가지 종류의 소주가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종류가 너무나 다양했다. 갖가지 열대과일뿐만 아니라 초콜렛, 민트, 누가 등등 흔히 생각하기 어려운 별의별 종류가 다 있었다. 여행 초기에 라오스에서 '라오라오'주를 샀던 이후, 다시 여기서 메스깔을 한병 샀다. 짐이 될테니 와하까를 떠나기 전에 다 마셔버리기로 하고.




상가 곳곳에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의 '카탈리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포사다는 멕시코혁명기에 해골을 이용해 상류층과 부유층을 풍자했던 유명한 화가라고 한다. 디에고 리베라도 포사다를 존경했는지 멕시코시티에서 봤던 '알라메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의 꿈'이라는 그림에서 카탈리나를 한가운데 두고 그렸다.






구도심을 구경하다가 다시 재밌는 것을 보았다. (지금은 방앗간이 거의 없어졌지만) 우리나라 방앗간에서 고춧가루를 만들어주거나 참기름을 짜주듯이 와하까의 방앗간에서는 카카오 열매를 가루로 빻아주고 있었다. 


초콜렛으로 유명한 곳은 많다. 유럽에서는 벨기에, 남미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바릴로체, 볼리비아의 라파스가 유명했다. 바릴로체나 라파스는 유럽의 이민자들이 남미에서 생산된 카카오를 이용해 만든 초콜렛이 유명해진 반면에 와하까는 초콜렛뿐만 카카오 그 자체가 유명한 특산품인 것 같았다. 이곳에서 초콜렛 음료를 팔기도 하는데 맛이 무척 진하고 달았다.


카카오의 원산지가 멕시코의 유타칸 반도이고, 이곳에서 살던 원주민들이 카카오콩을 발효시켜 음료로 마신 것이 초콜렛의 기원이라고 하니 와하까가 초콜렛으로 유명한 것도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방앗간에서 고춧가루를 빻는 기계와 거의 같은 모양이다.


카카오에 계피, 아몬드, 설탕을 넣어 고운 가루로 빻아준다.



구도심을 걷다보니 커다란 건물에 시장이 있어서 무작정 들어갔다. 생활용품, 식료품 등을 파는 전형적인 시장이었는데, 시장을 구경하다보면 이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먹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어 재미있다.




멕시코 사람들은 육류, 콜라(1인당 소비량 세계 1위)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마리아치가 연주할때 쓰는 모자일까?


멕시코는 해안부터 5600미터가 넘는 화산까지 표고차가 심한 지형이며, 25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가 매우 많다. 그래선지 열대과일부터 고산지방에서 경작되는 농작물까지 매우 다양한데, 뭐니뭐니해도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농작물은 고추다. 멕시코는 고추의 원산지이기도 하며, 매운 고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매번 언급되는 아바네로를 비롯해 핫소스로 유명한 타바스코 등 다양한 고추가 산생된다.


고추를 파는 곳에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어떤게 가장 매울지 냄새를 맡아보고 싶지만 감히 그러지 못하고 눈으로만 구경했다.




와하까의 또다른 명물은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공모양의 치즈다. 처음에는 흰 끈같은 것으로 둥글게 뭉쳐놓은 이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다가 치즈라는 말을 듣고, 앞서 샀던 메스깔의 안주가 필요하다는 핑계로 작은 것을 하나 샀다. 맛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척 쫄깃하고 고소하다. 흔히 생각하는 부드러운 치즈가 아니다. 오징어처럼 세로로 찢어서 입에 넣으면 쫄깃함도 오징어와 비슷한데 맛은 고소하다. 맥주 안주로도 안성맞춤일 것 같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시장 옆에 와하까에서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었다.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보다는 생과일로 만든 셔벗 같은 것들이 대다수였는데 종류가 무척 많았다.


수박맛으로 골랐는데 수박을 그대로 얼렸는지 중간중간에 씨가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

수박맛바에 있는 씨처럼 초콜렛이 아니다 그냥 수박씨다.


다음으로 본 것은 길거리에서 건새우 같은 것을 잔뜩 쌓아놓고 파는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니 메뚜기였다. 멕시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메뚜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대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시골에서는 메뚜기를 구워먹거나 졸여먹었기 때문에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상인들이 먹어보라며 건네주는걸 맛봤더니 고소하긴하지만 매콤하면서 시큼했다. 멕시코시티에서 먹었던 칩도 그랬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소스에 매콤한 맛과 시큼한 맛을 같이 쓰는 것 같다. 시큼한 대신에 짭조름했더라면 한국사람들 입맛에 훨씬 더 맞을 것 같았다.



잘라서 파는 과일에도 매콤시큼한 소스를 올려서 팔고 있다.


블로그를 쓰다보니 와하까에는 명물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여튼, 와하까의 또다른 명물인 '몰레'다. 여러가지 몰레가 있는데 몰레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써야겠다. (이번 글은 너무 길어서 지쳐버렸다. 빨리 마무리하고 싶다.)


하루종일 와하까 시내 곳곳을 뒤지며 다녔더니 어느새 해가 기울었다. 다시 소칼로 광장으로 돌아왔더니 신나는 음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낮보다 훨씬 많아져있었다.



무대에서는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사람들은 나와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춤을 출 흥이 부족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너무나 좋다. 남녀노소 아무나 꺼리낌없이 춤을 출 수 있는 장소와 분위기가 이들을 훨씬 밝고 낙천적 살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여기서 혼자 춤추던, 모두들 쌍쌍인데 분위기에 취해 혼자서 춤추던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광장 저편에서는 만담인지 개그무대인지가 한창이다.

사람들은 웃고 신나하는데 나야 뭔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풍선이 이렇게나 많이 남았는데 밤하늘은 점점 어두워간다.

풍선에 가려진 아저씨의 속마음도 까맣게 타들어가는건 아니었으면...



시장에 있는 음식점에서 스프와 몰레가 올려진 튀김(?)으로 늦은 저녁식사를 마쳤다. 


자그마한 시내를 하루종일 돌아다녔음에도 볼거리가 넘쳐났다.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끌벅적하고 흥겨웠다. 와하까, 만만치않게 매력적이다.

멕시코시티를 떠나는 날이 되었다. 이곳에서 가진 멕시코에 대한 좋은 이미지 때문에 멕시코 여행에 훨씬 더 큰 기대를 하게 되고, 결국은 한달이나 머무르게 되었다.


숙소 근처에 있었던 과일주스 가게와 그 옆은 속이 푸짐했던 샌드위치 가게다.

오렌지, 자몽, 바나나, 망고, 파파야 등 열대과일 주스도 생각보다 무척 저렴했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버스회사 ADO. 남미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등급의 버스가 있다.


구글맵에서 보면 멕시코시티에서 와하까까지 자동차로 6시간 조금 안되는 시간이 걸린다고 나온다. 오후 이른 시간에 탄 버스가 와하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꽤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보다 더 걸린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멕시코여행은 거의 대부분 칸쿤이라는 신혼여행지에 집중되어 있지만 멕시코에는 가볼만한 곳들이 무척 많다. 심지어 바다조차도 고급 호텔이나 리조트에 머물게 아니라면 칸쿤보다 나은 곳이 수두룩하다. 그 중에서 와하까는 음식으로 유명한 멕시코에서도 더욱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도시이며, 용설란으로 담은 전통술인 메스깔(Mezcal)과 초콜렛(원료가 되는 카카오의 원산지가 멕시코), 유적지 몬테 알반(Monte Alban), 그외 다양한 투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주인에게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곳을 물으니 시내 번화가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늦은 밤에 가로등도 부실한 길을 걷자니 그닥 내키지가 않았다. 처음 도착한 도시의 거리는 항상 약간 긴장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걷다보니 작은 포장마차에 현지인 여러 명이 뭔가를 먹고 있길래 궁금해져서 그틈에 끼어들었다. 유독 길거리 음식 먹는 경험을 좋아하다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포장마차에서 만드는 음식은 타코(Tacos)였다. 또르띠아를 기름에 튀긴 것을 흔히 타코라고 알고 있는데 멕시코에서는 그것뿐만 아니라 작고 동그랗게 구운 또르띠아에 돼지고기나 닭고기, 양파와 야채를 넣고 싸먹는 음식을 타코라고 했다.


멕시코 음식중에서 타코, 브리또, 퀘사디아, 화이타 등은 우리나라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들 음식이 멕시코에서는 주식이 되는 흔한 음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다르다.) 이 음식들의 기본이 되는 것이 또르띠아이다. 또르띠아는 옥수수를 갈아서 부친 것으로 이 또르띠아에 무엇을 넣고,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타코나 브리또가 될지, 혹은 퀘사디아나 화이타가 될지가 결정된다.


타코를 만드는 모습을 찍겠다고 하자 옆에 있는 아주머니가 찍으라며 정작 본인은 카메라에서 사라졌다.

남은 아저씨(나보다 어리겠지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멋적어하고 있다.


잠깐 주제에서 벗어나서, 멕시코를 여행할 때 멕시코의 가장 유명한 스타는 맨유에서 뛰고 있던 에르난데스(치차리토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였다. 여러 기업의 광고와 선전에 나오고 있어서 멕시코에서는 우리나라의 박지성 선수와 동급이었던 것 같다. 이 선수도 눈이 크고 얼굴이 동글동글했는데 타코를 만들던 아저씨도 눈과 얼굴이 동글동글해서 갑자기 생각이 났다.


일단, 입맞에 안맞을지 모르니 다섯개만 시켜봤다. 포장마차에 있던 멕시칸들의 시선이 모두 쏠렸다. 과연 자신들의 음식에 동양인이 어떻게 반응할지 자못 궁금한 것 같았다. 타코를 싸서 한입에 넣었다. 적당한 고기의 느끼함과 또르띠아의 쫄깃함, 양파와 야채의 향이 섞여 굉장히 맛있었다.(너무 배고프기도 했지만)



순식간에 다섯개를 해치우고 다섯개를 더 시켰다. 그러자 크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포장마차에 있는 멕시칸들도 매우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옆에서 타코를 먹던 현지인 앞에 고기수프 같은게 있길래 아주머니에게 나도 그걸 달라고 손짓으로 주문했다. 모든 멕시칸들이 다시 흥미진진한 눈으로 변했다.



고기수프는 고기를 삶고 있는 커다란 냄비에서 떠서 양념을 추가해서 스티로폼 컵에 내어주었다. 고기국물에 야채와 고추가 듬뿍 들어가서 얼큰하고 진했다. 우리의 육개장이나 찌개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타코와 수프를 번갈아 먹으며 무척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이제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적어도 며칠은 있었던 것처럼 이곳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숙소주인부부와 포장마차에 있던 사람들도 친절하지만 과하지 않았다. 와하까에 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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