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회사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에 내려갔었다. 겨울치고는 따뜻하지만 쌀쌀한 서울과는 다르게 부산은 아직도 선선한 가을 날씨여서 스웨터에 코트까지 입고 있으니 땀이날 정도였다. 그 뒤 터키 여행을 정리하다보니 쌀쌀했던 이스탄불과 다르게 괴레메와 파묵칼레에선 강렬한 햇살과 더위에 고생했던게 생각났다. 비교적 가까운 서울-부산 사이에도 이렇게 날씨가 다른데 이스탄불과 괴레메나 파묵칼레에서 한순간에 봄과 여름을 동시에 느꼈던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파묵칼레를 떠나면서 다음 목적지로 정한 곳은 보드룸이었다. 보드룸은 터키 남서쪽에 위치한 지중해와 맞닿아있는 휴양도시다.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고 고급 휴양지에 머무를 일도 없지만 이 곳을 찾은 이유는 그리스 국경과 가까워 페리로 그리스로 넘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잠깐 머물렀지만 딱 하나의 풍경이 머릿속에 남아서 오랜 세월이 지나더라도 잊혀지지 않을 곳이 되었다.


파묵칼레에서 가까운 큰 도시 데니즐리의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크고 좋아보이는 버스가 늘어서있길래 편안히 가겠구나 싶었는데 시간이 되자 우리나라 마을버스 정도되는 크기의 버스에 타라고 했다. 게다가 받은 표는 다리도 앞으로 뻣을 수 없는 맨 앞자리였다. 이렇게 대여섯시간 되는 시간을 다리를 구부린채 가야만 했다.


한참 가다보니 기사 아저씨가 졸고 있는 것 같았다. 길도 썩 좋지 않은데... 어찌할까 전전긍긍하고 있을찰나 다른 터키 승객도 알아차렸는지 기사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잠을 깨우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붙였음이 틀림없다.


드디어 바다가 나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증거다. 조금만 더 힘내라, 내 다리.


조용하고 한적한 괴레메나 파묵칼레와 달리 보드룸은 휴양도시라 시끌벅적한 레스토랑과 술집도 많고 사람도 차도 번잡했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내린터라 잠시 터미널에 있는 삐끼를 따라갈까 고민하다가 맘을 고쳐먹고 어제 봐둔 숙소로 가려고 버스를 탔다. 그 날은 더 이상 버스를 타고 싶지 않았지만.


숙소에 짐을 풀고 숙소 주변 동네 구경에 나섰다. 숙소 주변은 시끌벅적한 번화가여서 점점 더 멀리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멀리 언덕에 풍차가 서 있는걸 발견했다. 그 날은 오후 늦게 어두워지는 시간이라 내일 가보기로 했다. 저기서 석양을 보면 정말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날 밤이었는지 다음날 밤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보드룸에 머무를 때, 유럽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있었던 것 같다. 여행하면서는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축구를 정말 열심히 봤었다. 시간대도 우리나라에서 볼 때는 한 밤중 혹은 새벽이었으나 훨씬 이른 저녁이나 밤이어서 보기에도 좋았다. 축구를 보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다 시끌벅적한 맥주펍에 들어갔다. 거기서 열심히 축구를 보고 있으니 서빙하던 남자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 차가 기아차란다. '기아, 굿~'이런다. 이럴땐 기분이 썩 괜찮아진다.



이튿날 아침에 일찍 항구로 나와서 내일 코스로 갈 배편을 예약했다. 그리고 항구에서부터 '내 멋대로 보드룸 투어'를 시작했다.

오호,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터키 보드룸 출신이란다.








보드룸 항구에는 정말 많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었다. 커다란 요트부터 작은 고깃배, 옛날 범선 같은 요트부터 유럽의 부자들이 이용할 듯한 최신형 요트까지 다양했다. 내가 가장 갖고 싶었던 요트는 커다랗고 비싸보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위 사진에 있는 자그마한 요트였다. 이 정도는 어쩌면 나중에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일까? 


작지만 아담한 배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낚시를 하고, 요리해서 나누고,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더울때 바다에 뛰어들고, 바다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이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실 그런 삶이라면 이런 요트조차도 과분하다.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행동이 필요한 것이지 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요트 그늘 밑으로 뭔가 까만 것들이 움직이는 듯해서 보니 작은 물고기 떼가 수도 없이 많이 다녔다. 이렇게 많은 배가 정박해 있는데 신기하게도 기름냄새도 전혀 안나고 물위에 작은 부유물조차 거의 없었다. 바다를 가꾸는데 꽤 신경을 쓰고 있나보다. 터키 사람들 좀 멋진 구석도 있다.


요트에 필요한 물과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사진처럼 생긴 장치가 항구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오오~ 이번엔 꽤 큰 물고기 떼가 지나간다.


아침부터 걷다보니 좀 쉬어야할 시간이 되었다. 게다가 지중해의 햇살은 정말 대단히 강했기 때문에 무리하다가는 드러누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겨우 4월말, 5월초의 햇빛이 이렇다면 여름 햇살은 어느 정도로 대단하단 말인가.(그 뒤로 그 여름 햇살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실컷 맛봤다. 그저 대단했다.) 쉬기 위해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사실 동네 찻집은 가더라도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체인점은 잘 안가는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더라도 마찬가지인 스타벅스를 굳이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곳의 스타벅스는 테라스에 멋진 바다가 펼쳐져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커피값은 하겠다 싶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 햇살도 조금 누그러졌다 싶을때 어제 결심했던 풍차가 있던 언덕으로 출발했다.








드디어 풍차가 있는 언덕에 도착했다. 어떤 것은 지붕까지 제대로 남아 있었지만 몇몇은 벽까지 거의 다 허물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움직이지 않는 풍차가 아쉬웠지만 좀 있으니 오히려 허물어지고 멈춰버린 풍차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유일하게 제대로 남아서 동작하는 듯한 풍차는 주위에 철책이 쳐져있고 지금은 풍차를 돌리는 시기가 아닌듯 잠겨있었다.


호기심 많은 송아지가 이방인을 한참동안 쳐다봤다. 송아지에게 다가가면 어미인듯 한 녀석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콧김을 뿜기 시작했다. '오냐오냐, 니 맘 안다.' 더 스트레스 주기 미안해서 슬그머니 물러났다.


어디서 일하다 몰래 빠져나왔는지 터키 아저씨 두 명은 이 한적한 곳까지 와서 대낮부터 음주 중이다. 부러웠다. 나도 맥주 몇 캔 정도는 들고 왔어야했는데.



언덕 맨 뒷편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느 새 요트 한 척이 와서 스토클링을 하는지, 해산물을 잡는지 한참 머무르더니 사라졌다.



시간이 꽤 흐르고 해가 많이 기울었다. 한낮의 뜨거웠던 공기가 금새 차가워지고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석양을 보고 내려가겠다는 일념으로 추위를 견디며 기다렸다. 주위에 몇 있던 사람들도 다 사라지고 이 넓고 조용한 곳이 적막에 쌓였고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차츰차츰 내려오는 태양만 알려주고 있었다. 묘한 시간이었다.








보드룸 시내에 불이 하나둘 켜지고 태양이 산너머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이 시간을 오롯이 보내고 내려왔다. 완전히 어두워지고 시내에 불이 모두 켜질 때까지 있고 싶었지만 내려가는 길도 걱정되고 더 이상 추위를 버텼다가는 감기를 앓을 것 같았다.


단지 그리스로 가기 위한 관문이었던 보드룸에서, 지금은 움직이지도 않는 풍차가 있던 언덕에서 침묵속에 석양을 보던 시간이 왜 이렇게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는지 잘 모르겠다. 잘 모르니 설명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이튿날 그 유명한 파묵칼레의 석회붕으로 갔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갤럭시 태블릿 광고에 나왔었고 예전부터 수많은 광고와 사진으로 잘 알려져 여행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석회붕을 한번쯤 보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곳에 오기전에 이미 먼저 다녀온 여행자들의 기록에서 이 곳에 대한 실망을 수없이 봤던터라 마음에 별다른 기대를 갖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론 광고나 사진에서 봤던 층층이 푸른 물이 가득찬 거대한 석회붕은 볼 수 없었다. 그것과 비교하면 현실은 조금 초라한 것이 사실이다. 수천, 수만년동안 흘렀던 지하수원이 마르면서 이제는 석회붕을 가득 채울 정도로 물이 흐르지 않는 것이다. 이 또한 인간이 자연을 너무 과도하게 개발하고 사용한 탓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은 터키 정부에서 물을 끌어와서 채우고 있지만 겨우 예전의 모습을 살짝 볼 수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몰락해버린 고귀한 귀족의 모습일까. 일년에 한 번 축제 기간에 물을 가득 채운다고 하니 그때는 예전의 제대로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석회붕에 오르려면 신발을 벗어야한다. 석회붕이 신발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오랜 세월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 인간의 순간적인 만족을 위해서 파괴되어서는 안되니 즐거운 마음으로 맨발에 동참했다. 물을 참방거리며 갈 수 있으니 오히려 더 즐거웠다.




미끄러울 것 같았던 느낌과는 다르게 석회암 바닥은 까끌까끌했다. 석회질을 품은 물이 바위 위를 흐르면서 조금씩 쌓여서 바위에 물결 같은 무늬를 남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물 안에는 부드러운 석회질이 두텁게 쌓여 있어서 걸으면 금새 뿌옇게 흐려졌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 아래에 어제 갔던 연못이 보였다.


아직은 이른 계절이지만 성미급한 사람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꼭대기에 오르니 멀리 눈덮인 산맥과 녹색의 벌판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온천까지 나왔으니 오래전 로마인들이 휴양지로 이용할만했다.




물이 찬 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대부분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 곳에 모두 물이 들어차 있었다면  대단한 경치였을텐데. 미리 알고 왔음에도 어쩔 수 없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꼭대기에 다 오르면 앞으로 평평한 분지가 나타나는데 이 분지가 모두 로마 시대의 유적지다. 기원전부터 도시를 형성했던 이 곳은 1300년대 대지진으로 사라졌다가 19세기경 다시 발굴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도 발굴과 복원이 진행중인 곳도 많았다.


성벽의 일부와 온천수가 흘렀을 수로도 남아있다.



유적의 곳곳에 붉은 양귀비가 흐드러지게 펴있었다.







석관이 안치된 무덤의 수가 매우 많다.



인구 8만명이 살았다는 이 거대한 고대도시는 신전, 시장, 묘지, 극장, 목욕탕 등을 제대로 갖춘 휴양도시였다고 한다. 목욕탕에는 지금도 온천수가 나오고 있어 입장이 가능했지만 입장료가 터무니없이 비쌌다. 이곳을 촬영했던 TV 여행프로에서 물밑에 고대의 돌기둥과 유적들이 잠긴 곳에서 사람들이 온천을 즐기는 장면을 방영했던 기억이 났다. 그 기억으로 대신하고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은 포기했다. 터키의 무리한 입장료는 나에게 많은 것들을 포기시켰다.


오후 해가 많이 기운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방문객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파묵칼레는 석회붕이 유명하지만 고대 로마유적도 볼 거리가 많았다. 마을 전체가 관광지라 오랫동안 머무르고싶게 만드는 은근한 끌림은 없었지만 짧게 보고 떠나기에는 충분히 화려했다.


이스탄불에서 터키 일정 계획을 세울 때 고민이 많았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터키 동북쪽에 위치한 나라 '조지아'에 빠져서 비행기 표를 알아보기도 했고, 지중해를 따라 에페소나 안탈리아로 갈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이스탄불에서 터키의 매력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고 가장 유명한 두 곳, 괴레메와 파묵칼레만 갔다가 그리스로 넘어가는 배편이 있는 보드룸으로 가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터키에 머무른 기간은 보름이 채 되지 않았지만 터키는 이스탄불보다 작은 도시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터키를 떠날 때가 다가오니 슬슬 아쉬워졌다.

경치도, 분위기도, 숙소도, 사람들도 모든 것이 좋았던 괴레메를 떠나려니 아쉬웠다. 특히나 여행자들의 평이 썩 좋지 않았던 파묵칼레니... 


괴레메에서 파묵칼레로 가는 버스도 야간버스였다. 이제는 좀 익숙해질만도 했지만 새벽에 밤새 달려온 버스에서 피곤한 몸을 내리고 나도 정신은 한참이나 후에 돌아오곤 했다. 사실은 여기에 도착한 직후의 기억이 희미하다. 데니즐리에 도착한 후, 미니 버스를 타고 파묵칼레로 들어왔다는 것은 언뜻 기억이 나는데 미니 버스를 타기 전과 내린 후의 기억이 없다. 다만 미니 버스에서 피곤하고 멍한 눈으로 바라 본 경치만 단편적으로 기억이 난다.


정신이 돌아오고 정상적으로 신체 활동을 시작한 것은 파묵칼레에서 유명한 '일본인 아줌마의 라면집'에 들어서고 나서부터다. 사진도 그 곳부터 찍혀있다.


가게 터줏대감, 살찐 골든 리트리버 녀석이 어슬렁 거리며 손님들에게 먹을걸 요구한다.

그러다 요구가 안통하거나 요구가 만족되면 저렇게 벌러덩 드러누웠다.


터키의 음식이 썩 나쁘다고 할 순 없었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내 입맛에는 충분히 맛있기도 했다. 하지만 터키에 도착한후 10일동안 빵과 고기 그리고 약간의 구운 야채만으로 지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절로 동남아에 있을 때 먹었던 얼큰한 국물이 생각났다. 괴레메에 있었다는 한국 음식점은 문을 닫았는지 수리중인 그때는 없었다.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해서 파묵칼레에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곳이 이곳이었다.


야채가 듬뿍 들어가 라면은 그야말로 축처진 몸에 단비 같았다. 평생의 라면 중에 손에 꼽을 수 있는 라면이었다.(물론 라면 맛은 라면의 맛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숙소를 잡고 오전에는 버스 안에서 구겨졌던 몸을 펴며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오후에는 당연한 통과의례처럼 동네 마실을 나섰다. 파묵칼레의 중심가는 대부분이 숙소나 음식점, 여행사였고 이 곳의 상징인 하얀 석회붕은 현지 사람들에게 묻지 않아도 쉽게 찾을 수 있을만큼 작은 동네다.





석회붕 아래에는 석회암을 통과한 온천물이 모여지는 연못이 있다. 물론 지금은 온천 수량이 줄어들어버린 덕에 흘리는 물의 대부분이 온천이 아니라 끌어온 물이라고 한다.







연못 주변에는 많은 오리와 거위 등등이 살고 있다. 연초록 연못과 오리들이 보기에 좋아보이지만 실상은 연못 주변은 이들의 변으로 지뢰밭에다 녀석들이 싸우는 소리에 꽤나 시끄럽다. 사진으로 보이는 것과 실상이 다르다는 것은 이런 작고 사소한 부분에도 적용된다.



터키의 중부에서부터 동쪽으로 갈수록 높은 산들이 많다. 특히 아르메니아의 접경지역에 있는 아라라트 산은 해발 5000m가 넘는다. 이 곳 파묵칼레에서도 멀리 눈덮인 고봉이 보인다.


하늘이 흐려지더니 비가 쏟아졌다. 파묵칼레의 짧은 동네 투어는 갑자기 쏟아진 비로 급히 막을 내렸다. 파묵칼레 석회봉에서 멋진 경치를 보려면 내일은 날씨가 좋아야할텐데 하는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괴레메의 다양한 매력중의 하나는 숙소였다. 라오스에서도, 태국 치앙마이에서도 그랬지만 여행지의 매력을 한껏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요인중에 하나가 좋은 숙소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숙소는 우선 그 여행지의 분위기에 어울려야 한다. 그 곳이 고급스럽거나 서비스가 좋은 것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운좋게도 괴레메의 숙소는 매력을 한층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곳이었다.


여기서 내가 묵었던 숙소는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고, 식당을 겸하는 옥상에는 거칠지만 고급스럽지 않아서 오히려 마음 편한 이슬람풍의 쿠션이 놓여져 있었다. 아침을 먹고난 다음, 투어를 하고 나서 지친 몸으로 이 쿠션에 기대있으면 아무런 소리도 없는 적막한 가운데 괴레메는 이런 곳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좋은 숙소와 마음에 드는 경치를 두고도 없앨 수 없었던 한가지 걱정은 벌룬투어를 할 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괴레메의 유명한 투어는 앞서말한 로즈 밸리 투어, 그린 투어, 레드 투어 외에 벌룬 투어가 있다. 말 그대로 열기구를 타고 괴레메의 풍경을 보는 유명한 관광상품인데 가격이 무척이나 비싸다. 한두시간 열기구를 타는데 100유로에서 150유로(여행 당시 환율로 14만원에서 21만원)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유럽이나 오세아니아를 먼저 여행했더라면 비용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을테지만 동남아에서 온지 얼마 안되는 배낭 여행자에게는 이 금액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아닌게 아니라 이 돈이면 한달동안 먹고 싶은걸 다 먹어도 남을 돈이니까... 잠시 고민하다가 깔끔하게 포기했다. 벌룬을 타지 못하는 대신에 나는 밑에서 벌룬을 구경하리라.


새벽에 일어나 숙소 주인 아저씨가 알려준 벌룬이 뜨는 곳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아직 해가 솟기도 전에 수많은 벌룬이 지상에서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새벽에 괴레메의 언덕에서 벌룬이 뜨기를 기다리며 해가 솟는 경치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수많은 벌룬 중에서 한두개가 뜨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빵빵하게 뜨거운 공기를 채운 수십 개의 벌룬이 떠오를 채비를 마쳤다.



먼저 떠오른 벌룬은 이미 높은 곳까지 올랐다. 이 수많은 벌룬들이 하나 둘 떠오르는 경치도 꽤나 장관이었다. 이 날 대충 세어본 벌룬의 수는 8,90개에 가까웠다. 사람들이 많은 성수기에는 100개가 훨씬 넘는 벌룬이 뜬다고 했다.











해가 완전히 뜬 후, 파란 카파도키아의 하늘과 기기묘묘한 지상의 풍경 사이에 색색의 벌룬이 떠 있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물론 벌룬 위에서 본 풍경은 어땠는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무료로 이런 멋진 풍경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동네 개들도 이 멋진 경치를 감상하는데 동참했다. 녀석들은 날마다 보는 풍경이겠지만.


벌써 지상에 착륙한 벌룬


비록 나는 벌룬투어를 하진 않았지만 혹시나 주위에 괴레메에서 벌룬투어를 계획하는 사람들이 묻는다면 비용을 아끼지말고 비싼 투어를 하기를 권하고 싶다. 수많은 벌룬이 뜨지만 얼마나 오래 공중에 떠 있는지, 벌룬이 어디를 돌아다니는지는 각자 여행사마다, 벌룬을 조정하는 조종사마다 다르다. 이 날 수많은 벌룬을 지상에서 관찰하고나서 든 생각은 아무래도 비용이 비싼 여행사의 벌룬이 오래 떠 있고, 더 능숙한 조종사를 고용하고 있는듯하다.


금새 떠서 조용히 한 곳에만 머무르다 착륙하는 벌룬이 있는가하면 바위 봉우리에 스칠듯 지나가면서 오랫동안 이 곳, 저 곳으로 다니는 벌룬이 있었다. 같은 벌룬 투어지만 비용이 다르기 때문에 투어의 품질도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 날 지상에서 벌룬 투어를 구경하던 중에 재밌었던 경험은 엊그제 그린투어를 같이 했던 할머니(혹은 아주머니)를 다시 만난 것이다. 벌룬이 잘 보이는 언덕에서 벌룬을 구경하고 있는데 많이 본 듯 익숙한 서양 할머니가 먼저 눈짓으로 아는체 했다. 그린투어를 같이 했다는 것을 할머니가 먼저 기억하고 인사를 건낸 것이다.


할머니는 호주에서 오셨다고 했는데 몇 커플이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게다가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미니 버스를 빌려서 직접 운전하며 터키를 포함해 유럽 일대를 여행하신다고 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거나 다음 세대에 양보하지 않고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우리 세대가 몇 십년 후에 자기 인생을 사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괴레메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차이, 달걀, 토마토, 치즈, 우유, 주스 등이 매일 아침으로 나왔다. 물론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니까 고급스러운 메뉴는 아니지만 가격대비 훌륭한 한끼 식사를 제공했다. 게다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잘 생긴 터키 아저씨와 그 아빠를 돕는 예쁜 십대 소녀들이 준비하는 식사는 맛을 떠나서 그 가족의 모습이 너무도 보기에 좋았다. 숙소의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 그 가족의 사진을 찍어두지 못한게 지금은 무척이나 아쉽게 느껴진다.


괴레메는 1년 동안의 여행중에서도 무척 기억에 남는 곳이다. 짧은 여행기간으로 터키를 찾는 여행자중에서 터키의 여러 곳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곳에서 머무르기를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다시 찾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어제 계획했던대로 숙소에서 우치사르까지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물론 쉽게 가려면 차들이 다니는 넓직한 길로 가면 되지만 카파도키아를 걸으며 보고 느끼고 싶어서 정확한 길도 모른채 그냥 나섰다. 확실히 계획 자체가 무모했다.


먼저 괴레메를 둘러싸고 있는 언덕에 올랐다. 올라서 보니 괴레메를 둘러싸고 있는 계곡들과 괴레메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햇살은 강렬했지만 아직 덥지 않은 공기로 기분도 상쾌했다.


바로 위의 사진처럼 바위산이 풍화되면서 무른 부분은 없어지고 단단한 암석부분만 남게 된다. 뾰족한 바위들이 예전에는 모두 흰색의 무른 바위들로 덮여있었고 그 위로 나무와 풀도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괴레메 시내 반대쪽으로는 로켓 모양의 많은 돌기둥들이 서있다. 보기에 따라선 조금 민망한 모양이기도 하다.


멀리 오늘 목표로한 우치사르가 보였다. 사진이 광곽으로 찍혀서 멀어보이지만 실제론 그다지 멀어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물병과 단순한 간식거리만 챙겨들고 가볍운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길이 평탄하고 넓었다. 가끔 자동차도 지나다니고 있었고, 휴일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참 가다보니 넓은 길은 우치사르와 반대 방향으로 나 있고 우치사르 방향으로는 좁은 농로만 나 있었다.


구불구불하게 나 있는 농로로 가다보니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우치사르가 가까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경치도 무척 좋았고 일반적인 투어로는 가지 않는 길을 걸으며 이곳저곳 내키는대로 다니는 기분이 정말 최고였다.


농로를 따라 가다보니 갑자기 길이 끊기면서 계곡과 이어진 절벽을 만나기도 했다.


비교적 평탄한 곳을 찾아 계곡을 내려가면 계곡 아래에 숨은 과수원이 나오기도 하고


꽤 넓은 분지같은 곳이 나오기도 했다.


우치사르가 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길이 끊기고 절벽과 만나기를 여러차례 반복했다.


길을 찾아 돌아가다보면 과연 살아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포도나무 밭을 만나기도 했다.


이제 가져온 물도 다 떨어지고 태양은 머리 위에서 이글거릴즈음 우치사르가 손에 잡힐듯 가까워졌다.


하지만 다시 어제 본 피존 밸리가 앞을 막았고 이제는 물도 없이 더 이상 가는 건 어렵다고 생각되어 계곡을 따라 우치사르 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계곡을 엉금엉금 기어 내려와 아래에서 보니 꽤 높아보인다. 하지만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지 않아서 그리 위험하지 않았다.


계곡을 통해 우치사르 방향으로 걷고 있을 때 길 앞에 뭔가가 꿈틀거리는게 보였다. 가서 보니 거북이였다. 이런 물도 없는 계곡 바닥에 거북이가 살고 있을 줄이야. 사막에 사는 거북이도 있다는걸 알고 있긴했지만 이 곳 괴레메에 거북이가 살고 있는게 신기했다.


자세히 보고싶은 마음에 다가가니 거북이도 약간 놀란듯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미안하긴 했지만 더 보고싶은 마음에 약간 떨어져서 길을 마저 건널때까지 지켜봤다.




조금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 뒷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쭉 늘린 모습이 귀엽다.


이 정도는 별 일도 아니라는 듯 가뿐하게 오르더니 수풀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걷다보니 또 다른 거북이가 수풀속에서 햇볕을 쬐고 있다. 거북이가 정말 많은가보다.


피존 밸리의 바위색은 다채롭고 오묘했다. 흰색, 노란색에 분홍색 바위라니... 카파도키아 고원 자체가 아주 오래전 대규모 화산폭발로 생성되어서 품은 광물에 따라 다양한 색의 바위가 보이긴 하지만 분홍색 바위도 있을 줄은 몰랐다.





이미 오래전에 떨어져버린 물, 내리쬐는 햇볕 덕분에 이젠 몸도 지쳐가고 힘들었지만 계곡을 지날 때마다 나타나는 기기묘묘한 바위와 풍경들로 지루한 줄 모르고 걸을 수 있었다.


계곡 사이사이에는 계곡 위의 마을에서 이어지는 오솔길들이 있어서 길을 잃거나 할 염려는 없었다. 우치사르가 가까이 보이는 곳에서 오솔길을 통해 마을로 올라왔다.


우리네 호박과 모양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노랗게 잘 익은 호박이 탐스럽다.


마을로 올라왔을 때는 더 이상 갈증을 참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부랴부랴 레스토랑에 들어가 물부터 주문했다. 2리터짜리 큰 통이 거의 다 비어갈즈음에야 정신이 돌아왔다.


정신없이 밥을 먹다가 뒤늦게 남긴 사진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치사르로 가니 관광객들과 그들을 태우고 온 관광버스가 무척이나 많았다. 우치사르에 오를 수 있는 매표소에 가보니 역시나 입장료가 만만치 않았다. 터키는 모든 관광지의 입장료가 무척이나 비싸서 종종 가난한 여행자를 좌절시킨다.


우치사르 꼭대기에 오르는 일은 포기하고 (나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하고 현명한 일을 했다. 우치사르 앞에서 파는 피스타치오를 산 것이다. 관광지라 시장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비쌀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무척이나 비싼 피스타치오를 불과 몇 천원에 꽤 많이 살 수 있었다.


카파도키아에는 아몬드, 피스타치오 같은 견과류와 무화과 포도 등을 많이 키운다고 했다. 기후가 건조하고 일조량이 강하니 이 과실들도 무척이나 달고 고소했다. 피스타치오를 까느라 손톱이 부러질지경이었지만 먹는걸 멈출 수 없었다.



이 날의 마지막 즐거움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교통편을 알아보면서였다. 도시가 아니라면 대중교통이 불편한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가까운 마을이니까 분명 교통편이 많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치사르는 관광지라 모두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통에 그 근처에는 현지 사람들이 타는 대중교통을 찾을 수 없었다.


현지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와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어봤다. 어차피 영어는 안통하는터라 'BUS'하고 이야기하면 대충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인상이었다. 여러 번을 반복하다보니 그 중에 한 사람이 '오~ 부스~'하고 이야기한다. 여기선 '부스'라고 하나보다. 여튼 드디어 의미가 통했다.


그 중 한 아주머니가 열심히 버스 타는 곳을 설명해주셨는데 서로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아주머니는 포기하더니 따라오라고 하셨다. 직접 안내하실 생각이니 가까우리라 생각했는데 왠걸 10분 이상 걸어야했다. 거기까지 데려다 주시더니 바로 사라지셨다.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아도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고 진지하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면 그 의미를 파악하려 애쓴다. 그 의미가 통했을 때 서로 즐거워하고 미소짓게 된다. 이런 친절을 만나게 되면 여행이 즐겁고, 세상이 밝아보인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대화하면서도 상대방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거나, 상대의 말을 자르고 자기 의견부터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면서도 짐짓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체 하기도 한다. 자기 의견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성의껏 들어주는 태도가 아쉽다. 특히 직!장!에!서!


이 날의 내맘대로 트레킹은 무척 즐거웠고 좋은 시간이었지만 준비가 부족해서 힘들었다. 만약 다시 간다면 충분한 물과 간식을 챙긴다면 훨씬 더 편하고 즐겁게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날의 강렬했던 햇살과 건조한 바람이 아직도 머릿속에서는 뚜렷하게 기억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