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의 바다에 빠져버린 다음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로도스의 바다만 보기로 했다. 아직 못본 기사단장의 궁전이나 박물관 등등은 관심 밖에 있었다.
로도스 시내에 있는 해수욕하기 적당한 해변은 대부분 동글동글하고 예쁜 자갈로 덮여 있었다. 햇살은 강렬하고 공기는 더웠지만 바닷물은 무척 차가웠다. 아직 바닷물이 데워지기는 이른 5월 초여서 그런가 싶다. 이 깨끗한 해변은 파도 거품은 커녕 소금기를 품은 바다 특유의 냄새마저 나지않는데다가 물이 차가우니 마치 계곡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숙소에서 빌려 온 큰 수건을 깔고 누웠다가 몸이 더워지면 바닷물에 몸을 담궜다. 넓은 해변에는 이른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고 그와중에 토플리스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여자들도 있었다. 에게해의 강렬한 태양 아래서 안그래도 여행하느라 서서히 갈색으로 변해가던 살갗이 진한 갈색으로 변해버렸다.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다 끼니 때가 되면 축구 중계를 해주는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했다. 더 이상 바랄게 없었다.
그리스의 물가는 그 뒤에 여행한 이탈리아나 독일, 스위스에 비해서는 저렴한 편이지만 그래도 유럽에 속한 곳이라 만만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로도스에서는 여행 경비에 대한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앞에서도 썼듯이 부엌이 달린 저렴한 숙소에서 묵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침에는 간단한 빵과 쿠키, 음료까지 제공했다.
아침은 숙소에서 주는 빵과 쿠키를 양껏 먹고, 저녁은 근처 수퍼에서 산 재료와 방콕을 떠날 때 한인 마트에서 보험용으로 산 볶음 고추장으로 찌개나 볶음을 만들거나 스파게티를 해 먹었다. 점심만 낮동안 돌아다니다 저렴하게 해결하면 되고, 터키처럼 비싼 입장료를 받는 관광지도 없었다. 유럽에서 보낸 3,4개월 동안 가장 저렴하게 가장 호사를 누리며 보낸 기간이었다.
숙소 앞에 있는 야외 소파. 쿠키와 빵을 잔뜩 가져다 여기서 먹었다.
아침 식사로 충분하다. 다만, 좀 창피하니 얼굴에 철판은 깔아야 한다.
어느새 나흘 밤이 지나고 내일은 페리를 타고 산토리니로 가는 날이다. 마지막 날은 그동안 미뤘던 기사단장의 궁전과 박물관 등등을 보러 갔다.
기사의 길 끝자락에 있는 궁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면 안쪽에 높은 벽으로 둘러쌓인 궁전이 나왔다. 궁전이라기 보다는 단지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혹시 있을 전투에 대비하기 위한 용도로만 지어진 성과 같은 모양이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궁전을 보니 이 기사단이 얼마나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만을 생각하며 이 궁전을 지었는지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궁전 내부에 있는 소박한 성당
모조품이겠지만 라오콘 상이 있다.
궁전에서 가장 화려했던
방
궁전의 안뜰. 정원이 아니라 광장이다. 군사 훈련을 하지 않았을까.
궁전은 무척 단단하게 그리고 실용적으로 지어져있었다. 방들은 아주 소박했고, 건물에도 화려하게 장식된 부분이 거의 없었다. 그랬기에 100배가 넘는 오스만 군대에 맞서 2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이 성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궁전을 나와 어느 집 앞에서 아주 애교가 많은 고양이와 만났다. 이 녀석은 처음 볼 때부터 문앞 그늘에 무척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누워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들고 있던 로도스 지도 가지고 장난을 쳐봤다. (어차피 내일이면 용도가 없어질 지도니까)
이 녀석이 장난을 너무 잘 받아준다. 열심을 다해서 장난치는게 녀석도 꽤나 심심했었나보다.
갈 목적지도 잊어버리고 한참 녀석하고 놀았다. 가다가 돌아서보니 예의 그 자세로 다음 같이 놀 상대를 구하고 있었다.
로도스 구시가에서 가장 높은 종탑이다. 개인 소유라 입장료가 무척 비쌌다. 패스~
이 녀석은 스타킹을 짝짝이로 신고 요염한 모델 포즈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로도스의 박물관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박물관을 빠뜨리지 않고 방문하는 편이고, 박물관 구경을 좋아하는데 여기서는 가장 마지막에 반 의무감으로 갔던 것 같다.
박물관에는 여기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대부분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하는 토기들이었다.
그리스 음식으로는 수블라끼와 기로스, 무사카 등이 있는데 수블라끼는 터키의 시시케밥과 비슷하고 기로스는 도네르 케밥과 비슷했다.(무사카는 먹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사진에서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위 사진은 기로스인데 빵이 좀 더 두껍고 야채와 소스가 조금 더 들어있다는 것 말고는 큰 차이가 없었다. 현지 음식 먹어보는걸 좋아하지만 터키에서 늘상 먹었던 음식하고 비슷해 보이는 외양이라 딱히 끌리지 않았던데다 여행 중 처음 조리가 가능한 부엌을 만난터라 매일 저녁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로도스에서는 그리스 음식을 별로 먹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섬으로 가는 페리가 없어서 우연히 길게 보내게 된 로도스. 이 우연한 행운으로 1년간의 여행지 중에서도 특별히 기억남는 이 곳의 매력을 듬뿍 느끼고 갈 수 있었다. 5박 6일동안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12월 초 영하 10도에 가까운 지금은 이 곳의 태양과 바다가 더욱 그립게 느껴진다. 언젠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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