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가장 비싸면서 또한 가장 편한 방법으로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이지만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여행자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선택하는 방법은 마추픽추행 기차가 정차하는 역 중에서 마추픽추와 가장 가까운 오얀따이땀보까지 버스를 타고 간 다음, 거기서 마추픽추행 기차를 타는 것이다.(그래도 기차 탑승권 가격이 만만치 않다.) 가장 저렴한 방법은 모험심 많고 체력도 충분하지만 여행비를 아끼려는 여행자들이 선택하는 방법인데 버스로 마추픽추와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간 다음에 걸어서 가는 방법이다. 그외에 몇 일간 전문 가이드와 잉카 유적을 찾아다니며 야영하는 잉카 트레일 투어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것은 돈과 시간과 체력이 모두 많은 여행자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대부분의 여행자들과 다르지않게 오얀따이땀보까지 버스로 간 다음, 이튿날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이었다.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는 등급에 따라, 회사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데, 가장 저렴한 등급에 저렴한 회사의 열차를 탓음에도 (정확하진 않지만) 기억에 100달러쯤 줬던 것 같다. 물론 기차가 매우 깨끗하고 좌석도 편안하지만 고작 2시간 남짓 가는 기차를 그렇게나 비싼 돈을 내고 타야하는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은 기차를 이용하지 않고는 걸어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렇게 마추픽추행 기차 탑승권이 비싼 이유는 마추픽추까지 철로를 놓은 서구자본들이 탑승권 가격을 주무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일생에 한번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큰 돈을 들여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여행자의 주머니를 사정없이 뜯어내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이 또 있겠는가? 마추픽추가 상업적으로 오염되었다는 이미지를 갖게 하는데는 이 기차 탑승권 가격이 한몫한다.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 쿠스코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가장 훌륭했던 샌드위치 가게를 다시 한번 방문했다. 숙소에서 아르마스 광장으로 가는 길에 현지인들과 여행자들까지 가득 붐비는 것을 보고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는데 샌드위치의 크기와 맛이 무척 훌륭했다.


맛이 좋을뿐만 아니라 샌드위치가 큼직하고 가격마저 저렴했다. 고기패티, 치즈, 야채가 듬뿍 담긴 가장 비싼 샌드위치가 0.5리터 콜라를 포함해 지금 환율로 4000원 정도 였다. 특히 감자를 얋고 작게 튀겨 샌드위치 안에 넣었는데 이게 바삭바삭하니 식감이 아주 좋았다. 4000원이면 우리나라에서도 점심때 맥도널드 빅맥 햄버거를 먹을 수 있지 않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가게에는 아이스크림도 팔고 있었는데 샌드위치와 아이스크림 모두 손님들에게 엄청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 정도면 비주얼도 훌륭하지 않은가?


쿠스코에서 만난 훌륭한 샌드위치 가게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터미널에서 타는 것이 아니라 쿠스코 근교의 작은 도시들만을 오가는 버스들이 모여있는 길거리에서 탄다. 버스도 일반적인 대형 버스가 아니라 승합차 정도의 미니버스인데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섞여서 탄다. 다행히 버스가 깨끗하고 상태도 나쁘지 않아서 중간에 가다가 멈추진 않겠다 싶었다.


시내는 비교적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으나 조금만 벗어나면 정돈되지 않은 달동네 모습이다.


쿠스코를 벗어나 국도를 타기 시작했을 때 미니버스가 길을 벗어나더니 연료를 채우느라 정차했다. 다시 출발하길 기다리면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길 건너편에서 동양인 여행자들로 보이는 커플이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배낭여행의 극한을 경험하려는 젊은 패기인지, 단순히 여행경비를 아끼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고단해 보이고 또한 걱정스러웠다.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기억에 남을 경험을 할 수도 있지만, 이곳은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최악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뒤섞인 남미이며 현지인들조차 낮에도 두꺼운 쇠창살로 된 대문을 닫고 사는 쿠스코라는 대도시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시골이나 소도시보다 대도시의 빈민가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버스를 타고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내내 이 커플이 생각났다. 이들의 여행이 별 탈없이 마무리되길 속으로 기원했다.







쿠스코에서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길은 너른 구릉에 펼쳐진 밭과 수량이 풍부해보이는 강과 호수, 진한 녹색의 무성한 나무들이 펼쳐져 있어서 지금까지 본 안데스의 풍경 중에서 가장 풍요롭게 보였다. 역사적으로 너른 평야와 풍부한 수량이 갖춰진 곳에서 문명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안데스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던 것 같다.


오얀따이땀보에 거의 다달을때쯤, 계곡을 따라 난 길 옆으로 '레프팅, 카약킹, 패러글라이딩'을 광고하는 간판들이 계속해서 보였다. 강과 계곡의 수량이 풍부하다보니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물과 관련된 액티비티가 성행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지금까지 보아오던 척박하고 건조한 안데스가 아니었다.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에 도착했다. 버스는 오얀따이땀보 유적으로 가는 길과 숙소들이 있는 마을 사이 애매한 곳에 여행자들을 내려주었다. 일단, 예약한 숙소에 가서 방을 잡고나서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얀따이땀보도 마추픽추나 모라이에서 봤던 계단식 밭과 잉카인의 뛰어난 석조기술을 볼 수 있는 잉카의 대표적인 유적지 중 하나이다. 멀리 보이는 계단식 밭을 통해 많은 여행자들이 유적지로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유적지 앞에 있는 기념품점과 주차장을 지나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입장하려고 보니 입장료가 도저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잉카문명을 대표하는 유명한 유적 중 하나라 하더라도 인당 몇 만원에 달하는 입장료는 페루가 아니라 물가가 비싼 유럽이라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오얀따이땀보 유적은 거대해서 몇 시간은 돌아봐야하는 그런 곳도 아니다. 반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터키 이스탄불의 톱카프 궁전과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느꼈던 기분이 다시 살아났다.


세계 각지의 여행자들이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큰 돈을 들여 머나먼 남미의 오얀따이땀보까지 왔으니 입장료를 비싸게 받더라도 대부분 돈을 쓸거라는 상술이 아닐까 싶었다. 여행중에 비싼 비용이 들더라도 감수하려면 비용대비 경험의 가치가 크다고 느껴져야 하는데 이곳은 나에게 반드시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들에게 가치가 크다고 해서 자신에게도 그런 것은 아니다. 판단은 오로지 여행자의 개인적인 생각에 달린 것이다. 과하다 싶은 입장료에 기분이 상했다.


유적 앞에는 기념품점들이 많이 있었는데 심지어 기념품까지 비싸다.




유적지에 가려던 시간에 마을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마추픽추와 오얀따이땀보가 있는 이쪽은 지금까지 거쳐왔던 해발 3,4000미터에 달하는 고산지대가 아니다. 거의 1000미터가 낮은 곳이라 그런지 식물의 식생이 매우 풍부했다.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고, 꽃들이 마을 곳곳에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마추픽추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 아구아깔리엔떼까지 가는 기차가 다니는 역



계절이 맞지않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안데스에서 볼 수 없었던 꽃들이 이곳에는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마을 곳곳을 다니다보니 여행자들을 위한 깔끔한 까페도 제법 보였다. 이곳은 오로지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오는 여행자들로 인해 유지되는 마을로 보였다. 본의아니게 유적지 입장료도 아꼈겠다,  까페에서 모히또를 한잔 시키고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어스름이 질 무렵 까페에서 돌아오는 길, 마을 광장에는 벌써 가로등이 켜졌다. 오얀따이땀보에서 묵은 숙소에는 부엌이 없었기 때문에 저녁을 간단히 때울 요량으로 마을 광장에 있는 빵집에 들어갔다. 맛있어 보이는 빵을 몇 가지 고르고 계산대에 가니 뜬금없이 카운터를 보는 백인 아가씨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무척 반가워했다. 자신이 부산에서 5년간 영어 강사를 했었다며 한국 음식 중에 특히 순두부 찌개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갈비나 김치가 아니라 순두부 찌개를 좋아한다니 한국에서 살았던게 정말인가보다 싶었다. 어설픈 발음으로 짧은 한국 문장을 늘어놓는 아가씨에게 한국말을 잘한다고 칭찬해주자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단다.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괜히 이 빵집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빵은 무척 맛이 없었다. 1년간의 여행을 통틀어 가장 맛없는 빵, 아니 음식이었다.)




오얀따이땀보의 골목골목은 모두 잉카인의 석조기술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었다. 좁은 골목길 옆으로 만든 물길과 커다란 자연석을 그대로 가져다 썼지만 빈틈없이 만들어진 양옆의 벽들을 보면 이곳이 잉카의 유적지는 아니지만 그들의 놀라운 능력은 충분히 알 수 있다.


숙소로 돌아와 맛없는 빵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내일이면 마추픽추로 간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와 아르마스 광장 뒤쪽에서 여행사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한참 내달렸다. 안데스의 아름답고 독특한 고산 풍경을 감상하는 중에 버스는 몇개의 마을을 지나고도 한참 더 달리고 나서 어떤 마을 건물앞에 도착했다.


어제 투어를 예약하면서 쿠스코 근교에 있는 잉카유적 모라이와 살리네라스만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그 외에 다른 곳에 간다는 생각은 해보질 않았다. 그런데, 모라이가 아니라 건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게 좀 마뜩잖았다. 들어가는 입구에 털실로 짠 목도리나 장갑, 모자들이 가판대에 널려져 있는 것을 보니 역시나 물건을 팔려는 수작이구나 싶어서 기분이 더 상했다.


건물안 빈터에는 안데스 고산족 복장을 한 현지여인들이 뭔가를 준비하고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여행자들이 그 여인들을 중심으로 준비된 의자에 앉고나자 준비한 것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알파카나 양털로 실을 잣는 것, 그 실들을 현지에서 나는 선인장이나 식물들로 염색하는 것이었다. 


선인장과 몇 가지 재료를 섞으니 신기하게도 투명했던 액체가 금새 붉은 빛이 도는 염료로 바뀌었다.

(선인장 재료로 실을 염색하는 모습은 한달 뒤 멕시코에서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인디오 여인은 실을 붉은 색으로 염색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는데, 여인 주위에 있는 바구니에 갈색, 회색, 노란색, 초록색 실들이 그 색을 내는 천연재료와 같이 놓여 있었다. 인디오 여인들이 입은 원색의 알록달록한 옷들은 이런 방법으로 물들인 실을 써서 만든 모양이다. (사실 지금도 이렇게 예전 방법대로 의복을 만드는지는 모르겠다.) 천연재료로 실을 물들이는 방법이 놀랍기도하고 실들의 색이 생각보다 다양하고 예뻐서 처음 들어올때 나빴던 기분이 누그러들었다.



원주민 여인의 설명과 시연이 끝나고나자 예상했던대로 가판에서 물건을 사게끔 유도했다. 여행중에 뭔가를 사지않는 편이지만, 이들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실을 잣고 염색하는 것을 보여준 것에 대한 관람료라고 생각하고 알파카로 짠 얇은 목도리를 하나 샀다. 감촉도 생각보다 부드러운데다 우리나라 돈으로 2천원인가 4천원인가 했던 것 같으니 그다지 비싼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다른 곳에서 비슷한 목도리의 가격과 비교해보니 조금 더 비싸긴 했지만 관람료가 포함된 가격이라 별로 아깝지 않았다.)


이 마을에서 나와서 다시 안데스 고원을 한참 달려 모라이에 도착했다. 모라이는 잉카인들이 농업기술을 연구하던 동심원 모양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계단식 밭이다. 올해 방송되었던 '꽃보다 청춘'에서 윤상, 윤종신, 이적씨가 액션캠을 들고 빙글빙글 돌던 그 곳이다.(정규방송은 본 적이 없고 방송예고에서는 그랬다.) 이 곳은 잉카제국 멸망 후, 사람들에게 잊혀져 수풀로 뒤덮여 있다가, 1930년대 미국인 탐험가의 항공촬영 중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산 다음, 조금 걸어들어가면 갑자기 화산 분화구처럼 움푹 들어간 곳이 나온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게 꽤 높아보였다. 이곳에서 잉카인들이 무슨 농경기술을 연구했다는 것인지 선뜻 감이 오지 않았다.





계단식 논밭이라지만 한칸이 사람의 키와 비슷한 높이라 어떻게 오르내릴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쌓아서 만든 돌벽 중간에 돌이 네 개씩 튀어나와 있었다. 난간도 없고 밑이 뚫려 있어 좀 불안했지만 실제로는 무척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조금 주의가 필요하긴 했지만 오르내리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잉카인들의 석조기술은 인정해줄만하다.




어느 정도 내려오고 나서 가이드가 이곳에서 잉카인들이 했던 연구를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잉카인들은 계단식 밭으로 이뤄진 모라이에서 농작물을 키웠는데, 맨 아래층 밭과 맨 위층 밭의 높이(차이가 100미터가 훨씬 넘는다.)에 의한 기온도 차이를 이용해서, 추운 곳에서 잘 자라지 못하는 작물을 아래쪽에 심었다가 점차 윗쪽으로 옮겨 심으면서 작물이 추위에 강해지도록 개량했다고 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로...) 농사짓는 방법을 연구한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그때 벌써 품종개량을 시도한 것이다. 비록 잉카인들은 다른 대륙과 동떨어진 지리적인 문제로 선진문명의 유입없이 독자적인 문명밖에 이룰 수 없었지만, 자연을 이용하고 극복하기 위한 훌륭한 문화수준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페루의 잉카유적을 여행하면서 잉카문명에 대해 실망했었다. 이전에 마추픽추에 대한 여행기에서도 썼었지만 잉카문명이 다른 지역의 고대문명보다 느리게 발전하고 있었고, 때문에 거대한 유적이나 지금으로서도 놀랍게 느껴지는 기술을 축적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 후에 이들의 문명화가 천천히 진행된 것은 이유가 있었고, 이들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문명을 발달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마추픽추가 과장된 면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중간에 박혀진 돌계단을 이용해 계단식 밭을 한칸한칸 내려와야 한다.



맨 아래에 있는 밭의 한가운데에는 태양의 정기가 모인다는 설이 있어서 둥그렇게 둘러앉아 명상을 하는지 주문을 외우는지 자신들만의 의식을 치르는 여행자들이 있었다.


제발 아무데나 동전을 버리고 가지 말았으면...


계단식 밭 벽에 난 홈은 수로로 이용한 것 같았다. 마추픽추에도 비슷한 물길이 있었다.


나가는 길에서 보니 모라이의 규모가 더욱 커 보였다.


이런 동심원의 계단식 밭은 한군데가 아니었던 듯, 다른 곳에서는 복원작업이 진행중이었다.


모라이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살리네라스로 향했다. 같은 안데스 고원지대지만 모라이가 구릉 같았다면 살리네라스는 훨씬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해 있다.


갑자기 골짜기 도로가에 버스를 세우더니 내리라고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건 깊은 골짜기 밖에 없는데 왜 내리라는지 이유도 모른채 엉겁결에 내렸다. 내려서도 보이는건 산밖에 없으니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가이드는 골짜기 아랫쪽을 보라고 했다. 세상에 깊은 골짜기 아래가 온통 하얀색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하얀색은 한 덩어리가 아니라 칸칸이 작게 나뉘어진 염전이었다.




골짜기에서 내려와 염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이드가 이곳에서 나는 옥수수와 바나나 말린 것들을 먹어보라고 나누어주었다. 물론 관심있으면 사라는 이야긴데 사지는 않지만 궁금하긴하니 종류별로 골라서 먹어보았다.



옥수수, 고추, 감자 등등 남미가 원산지인 작물들은 꽤 많지만, 쌀이나 밀이 남미로 전파되고 남미산 작물들이 다른 대륙으로 퍼져나간 것은 스페인이 남미를 식민지로 둔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잉카인들은 옥수수나 감자를 주식으로 하고 살았다. 그래선지 옥수수 품종도 다양해서 어떤 것은 한알이 내 엄지손톱보다 더 큰 것도 있었다. (남미 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먹는 밥처럼 요리에 같이 나온 옥수수들을 여러번 먹어봤지만 우리가 먹어 온 옥수수와 다르게 퍽퍽하고 찰기가 없어서 그다지 입맛에 맞지는 않았다.)



좁은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다보면 갑자기 골짜기가 넓어지면서 햐얀 염전이 펼쳐진다. 잉카인들은 이곳에서 바다가 융기하면서 땅속에 스며든 염분이 우기에 내린 비에 씻겨 소금물이 되고, 이 물을 수많은 조그만 염전에 가두었다가 건기에 수분이 증발되고 소금만 남으면 채취했다고 한다.


내가 살리네라스에 갔을 때도 염전에 가두어진 물이 모두 하얀색을 띄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우기에 찍은 사진을 보니 대부분이 황톳빛 물만 채워져 있었다. 염전을 따라 골짜기 안으로 걸어갈 수 있는데 걷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서 부랴부랴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언뜻보면 그리스 산토리니와 색감과 구도가 비슷하다. 

하지만, 산토리니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하얀색이라면 이곳은 자연의 색을 띄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제법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는데 아랑곳하지않고 사진을 찍고 있는 여행자들





살리네라스에 기념품점에서는 이곳에서 캔 소금, 주변에서 발견된 조개화석(3000미터가 넘는 이곳이 바다였음을 알 수 있다), 양이나 알파카로 짠 신발이나 작은 장신구들을 팔고 있었다. 조개화석이나 간단한 장신구들은 기념으로 몇 가지 사고 싶었지만 나중에 모두 짐이 될거란 생각에 선뜻 실행하지 못했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니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있었다. 현지인들이 꽤 많았던 레스토랑에서 덮밥같은 음식을 먹고, 엊그제 가보려고 생각했던 코리칸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르헨티나를 제외하고 남미국가에서 쇠고기는 썩 좋은 선택이 아니다. 꽤 질긴 편이다.


이날은 여러 곳을 다니다보니 중간중간 사진이 빠진 곳이 많다. 코리칸차 입구나 들어갈 때는 사진을 찍지 않았는지 아예 없었다. 아마도 이때쯤엔 꽤나 지치기도 했고, 너무 여러가지 것들을 본터라 왠만큼 인상적이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이유를 못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나온 사진은 코리칸차 내부에 진열된, 벽을 쌓는 돌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었다. 겉으로는 직육면체의 돌을 깨끗하게 잘라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돌과 돌이 닿는 곳은 사진처럼 돌에 홈을 파서 돌과 돌이 맞물리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 잉카의 성벽은 대지진에도 끄덕없이 수백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청동기 도구를 사용하는 문명인들의 석조기술이 이렇게 대단한 것이 놀라웠다. 이런 예는 아마도 세계역사상 보기 드물지 않을까.



돌들이 마치 퍼즐조각처럼 되어 있다.



지금 쿠스코에서 성당이 있는 자리의 대부분은 잉카제국 시절에 신전, 왕의 궁전 등 주요건물들이 있던  곳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 건물들을 파괴하고 그들이 믿는 종교의 건축물들을 쌓았지만 잉카인들의 석조기술이 훨씬 더 대단했기 때문에 태양의 신전(코리칸차)이 있던 자리에 지어진 산토 도밍고 성당은 잉카인들이 만든 기반위에 다시 성당을 지은 것이다. 1650년 대지진 당시, 산토 도밍고 성당은 무너졌지만 잉카인들이 만든 벽은 틈하나 없이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단한 석조기술을 가졌던 잉카인들도 바닥을 만들거나 벽을 세우는 기술은 뛰어났으나 돌로 지붕을 얹는다던지, 아치형태의 지붕을 만드는 기술은 없었던 것 같다. 당시 잉카의 건물들을 보여주는 모형들을 보면 지붕이 모두 갈대같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코리칸차에서 내려다 본 쿠스코



중정이 있는 내부의 구조와 아치형 기둥, 갈색 기와가 올려진 모습은 전형적인 스페인풍 건물이다. 다만 중정 가운데 우물은 잉카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코리칸차 내부 신전의 벽들을 보면 짜여지고 맞춰진 기술이 놀랍도록 정교하다.


철기도 갖지 못한 잉카에 금과 은은 그리도 많았던 것인지... 잉카의 마지막 왕인 아따우알파가 스페인 정복자들의 요구에 따라 방을 가득 채울 만큼의 금을 내어주고도 이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곳이다. 잉카인들로부터 빼앗은 금붙이들은 수 톤에 달했다고 하는데 이것들을 녹여 금괴로 만들어 스페인으로 보냈다고 한다.



잉카인들의 세계관, 우주관을 보여주는... 유물인지 복원품인지 모르겠다.



잉카 여인의 전통복장인데 어쩐지 아시아 고산족의 복장과 비슷하게 보인다.




쿠스코 자체도 매력적인 곳이지만 근교에는 내가 갔던 모라이와 살리네라스뿐만 아니라 잉카 거석문명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사크사이와만 유적 등 다양한 유적이 있다. 다만, 일부 책자나 언론이 잘못 만들어 놓은 잉카문명에 대한 환상을 가진다면 좀 시시할 수 있다.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많은 것이 보인다.



이른 아침 숙소에서 나와 쿠스코 구시가지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잉카의 기원과 문명을 나타내는 커다란 벽화가 설치되어 있어서 쿠스코가 잉카의 수도라는 것을 다시 실감하게 했다.




쿠스코 구시가지의 중심은 아르마스 광장이다. 아르마스 광장 주위로 스페인인들이 세운 쿠스코 대성당, 은행, 여행사들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를 예매할 수 있는 티켓판매소와 쿠스코 주위의 잉카유적지 투어를 하는 여행사들이 있어서 여행자들이 꼭 한번은 갈 수 밖에 없는 곳이다.


하지만, 잉카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으며 중심이 되는 곳은 바로 위 사진에서 보이는 '코리칸차'이다. 잉카 제국의 태양의 신전이 있었으나 스페인 정복자들이 그 위에 산토 도밍고 성당을 만들어 버린 아픔이 있는 곳이다. 처음 이 곳을 지날 때는 그런 배경을 모르고 '뭔가 중요한 곳인가보다, 나중에 시간될 때 와봐야지' 하고 지나쳐버렸다.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지만 정작 아르마스 광장까지 가는 동안 잉카 유적이나 건축물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당연히 그랬겠지만 그것들은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파괴되고 그들이 그 위에 다시 지은 건물들만 남게 된 것이다.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은 꽤나 넓었다. 광장 주위는 누런 기와를 얹고 벽이 흰 전형적인 스페인풍 건물들과 성당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 너머로 해발 3600미터나 되는 이 도시를 더 높은 안데스의 산들이 감싸고 있었다.


케추아어로 '배꼽'이라는 뜻을 가진 쿠스코는 잉카인들이 세계의 중심이라 여기는 곳이었다. 그들의 신성한 장소들은 모두 파괴되었지만, 쿠스코에서 중심이 되는 아르마스 광장에 잉카제국의 시조인 망코 카팍(Manco Capac)이라 생각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열차 매표소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표를 예매하고 나니 벌써 점심 때가 가까워졌다. 인터넷에서 아르마스 광장 근처에 한국식당이 있다고 들은터라 가보기로 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무척 가까운 골목길에 위치해 있는데 광장으로 통하는 골목길이 한두개가 아닌터라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닌 끝에야 찾을 수 있었다.


정겹게도 이름이 사랑채였다. 여기서 김치찌개와 소고기덮밥을 먹었다. 한국에서 먹는 맛과 정확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랫만에 먹는 한국음식은 항상 기가 막히다. 해외에 있는 한국 음식이 원래 맛과 조금씩 다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음식재료의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한국음식 맛을 좌우하는 발효시킨 장맛을 현지에서 비슷하게 내기 어렵거나, 음식의 현지화로 현지인이나 다른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추다 보면 조금씩 달라질 것 같기도 하다.(짜장면과 까르보나라가 중국이나 이탈리아의 그것과 완전히 다른 음식인 것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점심을 거하게 먹고 나오니 밖에는 이미 한바탕 소나기가 퍼붓고 지나가있었다. 


누구의 동상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잉카의 시조인 망코 카팍이 아닐까...



라파스에서도 봤지만 비구름이 소나기를 뿌리면서 이미 지나간 하늘과 비가 내리고 있는 하늘이 극명하게 다른 모습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되었다. 고지대라서 그런건지 유독 안데스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것 같았다.


아르마스 광장을 구경하다가 그 유명하다는, 12각 돌을 보러 가기로 했다. 잉카인들의 석조술은 어떤 시대, 어떤 문명보다 더 뛰어났다고 한다. 잉카문명은 고작 청동기 시대 수준에서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멸망했지만, 그들의 석조술은 스페인인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래서, 이 침략자들도 잉카인들의 건물을 모조리 허문 다음에 다시 지은것이 아니라 벽이나 바닥은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자신들의 건물을 올렸다. 옛날 쿠스코에 큰 지진이 발생했을 때, 스페인인들이 만든 건물들은 다 무너졌지만, 건물 밑 잉카인들이 만든 벽은 무너지지 않고 남았다고 하니 얼마나 이들의 석조술이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쿠스코 대성당의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가면(아마도... 기억이 가물가물)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보통의 골목길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커다란 돌들로 만들어진 담벼락이 나온다. 보통의 담이나 벽은 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돌들을 쌓고 흙으로 그 틈을 메운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담벼락은 쌓은 돌들 중에서 같은 모양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그 크기도 무척 컸다.



겉으로는 조금 틈이 있는 것 같아보여도 안쪽으로는 꼭 맞물려 있어서 종이 한장 들어가질 않는다.




얼마나 대단한지 정말 칼끝조차 들어갈 틈이 없었다. 더 대단한 것은 겉으로 모양만 비슷하게 깎아 맞춘게 아니라 안쪽으로 각 돌들이 퍼즐처럼 서로를 단단하게 물고 있도록 쌓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지진이나 흔들림에는 끄떡도 하지 않다. (코리칸차에서 돌들이 맞물린 벽 내부를 볼 수 있는데 정말 감탄했었다.)


이 벽을 쌓은 석조술이 대단하긴 하지만 12각돌은 그냥 12각돌일뿐이다. 이 벽을 쌓은 돌들 중에서 가장 각이 많은 돌로서 유명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돌이 아니라 벽 자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 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고 나도 그랬다.



잉카인들이 만든 벽과 비교해서 그 후에 만들어진 벽들은 갈라지고 파괴되어 보수된 흔적들이 많았다.


아르마스 광장을 지나는 2층 투어버스와 전차 모양의 투어버스




오전에 이미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표와 내일 쿠스코 근교의 잉카 유적지 투어 예매를 마쳤기 때문에 마음도 느긋해진데다 지나간 줄 알았던 빗줄기도 가끔 떨어졌다. 궃은 날씨도 피하고 걷느라 피곤한 다리도 쉴겸 아르마스 광장 근처를 지나다 봐둔 아이리쉬 펍에 들어갔다. 아쉽게도 좋아하는 기네스 생맥주는 없었지만 커다란 흑맥주와 피스코 사워를 홀짝거리며 펍에 설치된 텔레비전으로 프리미어 리그 축구경기를 보며 나머지 오후 시간을 보냈다.



이 펍의 입구에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아이리쉬 펍'이라고 쓰여 있다. 처음에는 설마 했지만 생각해보니 히말라야나 안데스의 몇몇 도시들은 쿠스코보다 고도가 높겠지만 그곳에 반드시 아이리쉬 펍이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 허튼 소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펍 화장실에 있는 재밌는 경고문


옛날 정복자들은 의례 정복한 문명은 발전된 문명이며, 피정복민들의 문명은 말살되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쿠스코 시내에 잉카유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탄압과 억압으로 그들의 문화와 문명을 없애는 것은 쉽게 착취하고 복종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남미의 인디오들이 아직도 그들의 토속 문화와 종교색(많이 희석되었더라도...)을 가지고 있음은 오히려 도시화되기 어려웠던 척박한 환경의 탓은 아니었을까...

푸노를 떠나 잉카의 수도였던 곳, 엘도라도를 찾아 온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정복된 비운의 도시 쿠스코로 향했다. 수도인 리마가 페루에서 가장 큰 도시지만 리마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세운 도시이며 태평양 연안에 있기 때문에 잉카제국과는 큰 연관성이 없는 반면, 쿠스코는 잉카의 수도이면서 주위에 마추픽추를 비롯해 잉카의 유적들이 산재해 있어 여행자들에게는 오히려 쿠스코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푸노 버스터미널에서 제발 저 버스들 중에서 제일 깨끗하고 좋은 버스이길 바랬다.



버스 정류장에 비닐천으로 덮인 짐이 놓여 있었다. 그 근처에 서 있으니 짐 안에서 뭔가 작은 동물의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호기심에 비닐천이 없는 쪽으로 가서 보니 세상에 좁은  플라스틱 상자안에 꾸이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귀여운 꾸이들이 버스에 실려 어디론가 팔려가나보다.


꾸이(cui)는 남미 사람들이 육류를 섭취하기 위해 키우는 가축이다. 언젠가 남미 다큐멘터리를 보니 부엌 바닥에 풀어놓고 키우는데 음식을 만들다 남은 야채나 식물들을 주고 사육하고 있었다. 이 꾸이들의 정식명칭은 기니피그이고 페루가 원산지라고 한다. 실험동물이나 애완동물로 많이 길러지지만 남미에서는 식용을 위해 예전부터 길러왔다. 꾸이가 남미 사람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가축이었는지는 남미의 미술관이나 성당에서 성화 '최후의 만찬'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님 앞에 통째로 노릇하게 구워진 꾸이가 놓여 있다.


레스토랑에서도 꾸이 바베큐 요리를 먹을 수 있는데 가격이 닭보다 비싸기도 하거니와 이날 본 꾸이의 귀여운 모습이 생각나 결국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버스 상태가 다행히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남미에서는 아무리 짧아도 반나절 이상 가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버스 상태가 꽤나 중요하다.


버스가 안데스 고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짙푸른 하늘과 낮게 떠 있는 구름, 황량하지만 다채로운 색을 띤 산들은 이제 꽤 오랫동안 봐 온 풍경임에도 이상하게 질리지 않았다. 














쿠스코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고 났더니 이미 해가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숙소는 도심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고 대문은 자동으로 잠기는 커다란 쇠창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두컴컴한 밤거리를 걸어서 도심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두 장소는 앞서 볼리비아 코파카바나에서 갔던 태양의 섬과 페루 푸노에서 가까운 우로스 섬이 있다. 태양의 섬은 잉카제국을 건설한 인물의 탄생과 기원이 담긴 곳으로, 우로스는 여전히 수백년 전의 생활양식으로 살아가는 잉카 후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서로 여행 포인트가 다르다.


이튿날 아침 일찍, 어제 푸노 시내가 축제로 시끌벅적한 가운데서도 영업을 하는 여행사를 찾아 예약해뒀던 우로스 섬 투어에 나섰다. 푸노는 도시가 제법 크기 때문인지 배를 타는 선착장도 코파카바나처럼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것이 아니라 시멘트와 블록으로 크고 단단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바람이 거의 없어서 하늘에 뜬 구름이 그대로 반영될 듯 호수가 잔잔했다. 그런데, 호숫물은 코파카바나쪽보다 훨씬 지저분해 보였다. 큰 도시에 속하는 푸노의 생활하수가 처리되지 않고 그대로 유입되는대다가 구글맵에서 보면 커다란 티티카카 호수에서 푸노쪽은 내륙으로 움푹 들어가 있어서 호숫물이 순환이 잘 안되는 것은 아닐까... 맘대로 생각했다.


푸노에서 조금 멀어지면 호수에 자라는 갈대 사이로 난 물길을 따라 간다.


어째 물이 녹색에다 거품도 떠 있다. 맑았던 코파카바나쪽의 티티카카 호수와는 좀...


태양의 섬 투어를 했던 배와 마찬가지로 배 위에도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다.

야외에서 경치를 감상할 목적인지, 더 많은 여행자를 태우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갈대 사이로 난 물길을 가다보면 환영한다는 표지판과 함께 본격적으로 우로스 섬이 나타난다.

푸노에서 가깝기 때문에 금방 도착한다.



어렸을 때 사진으로 봤던 갈대로 만든 배(관광용으로 만든 배라서인지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크다)와 집들이 호수 여기저기에 떠 있었다.


찍힌 사진을 보니 레고나 프라모델로 만들어진 미니어처 같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여행사의 보트들이 이미 섬들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우로스 섬은 일반적인 섬처럼 물 위로 솟은 육지가 아니라, 티티카카 호수에서 자라는 갈대를 커다란 블록처럼 뭉쳐서 물위에 띄운 섬이다. 그리고, 섬은 하나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대가족으로 이뤄진 집단마다 각각 하나씩 섬을 가지고 있어서 갈대로 만들어진 작은 섬 수십 개가 모여 있다.

여러 개의 섬 중에 하나에 올라서면 여행사 가이드가 티티카카 호수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다. 태양의 섬 투어는 교통편만 제공하고 가이드 없이 개인이 알아서 다니는 투어였는데 우로스 투어는 가이드의 설명이 포함된다. 이런 투어는 각자 장단점이 있는데 미리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아두지 못했다면 가이드가 있어서 나쁠 건 없다. 쇼핑이나 추가상품에 대한 판매만 없다면...


가이드는 준비한 판넬에다 갈대 줄기를 지시봉 삼아서 꽤 오랫동안 설명했다. 티티카카가 옛 잉카인들에게 어떤 곳이었는지(푸마를 닮았다고 설명을 했는데 역시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 섬이 갈대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등등을 열심히 알려주었으나 나중에는 조금 지루해져서 한눈을 팔았다.





가이드가 설명하는 동안 묵묵히 바느질에 집중하는 우로스 섬의 여인


갈대로 우로스 섬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갈대는 생각보다 굵고 길었는데 갈대로 엮은 블록을 물에 띄우고, 섬이 물길에 흘러가지 않도록 줄로 호수 밑바닥과 연결해 고정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섬 가장 아랫부분, 그러니까 옛날에 만들어 띄워진 부분은 썪어 없어지니 계속해서 위에다 갈대를 보충해 준다고 한다. 드디어 설명이 끝나고 섬 주위를 살펴보는 시간이 주어졌다.


갈대로 만든 집의 내부인데... 갈대로만은 아니고 잘 다듬어진 각목과 못이 쓰였다.


갈대를 연료로 섰던 우로스 섬의 화로


우로스 섬까지 전기를 끌어오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에서 태양열 전지판을 설치해 줬다고 한다.


우로스 섬에 있는 현지인 대부분이 가판을 펴고 여행자를 대상으로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가이드가 우로스 섬 주민들의 생활을 설명하며 사용했던 미니어처들


갑자기 다들 섬 한쪽으로 몰려가길래 따라가 봤더니 돈을 내고 갈대로 만든 배를 타보라는 것이었다. 투어를 예약할 때 추가되는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면 좋을텐데 대부분은 현지에서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참여하게 만드는게 맘에 들진 않는다. 같이 온 사람들이 모두 타는데 혼자 남아있기도 어색하고,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라서 기념으로 타보기로 했다. 이들에게는 여행자들이 기념품을 사거나 갈대 배를 타야 생활에 도움이 될테니...


여인들이 떠나는 배 옆에서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갈대로 만든 배를 두 개 연결해 중간에 널판지를 대어 크게 만든 것인데 특이하게도 노를 앞에서 저었다. 두 여인이 각각 배 앞에서 따로 노를 젓는데 커다란 배가 생각보다 잘 나아갔다. 갈대 배를 타는 것은 특이한 것은 없다. 그냥 '갈대 배를 타 본 것' 뿐이다.



갈대 배는 우로스 섬 중간에 있는, 다른 섬보다 크기가 좀 더 큰 섬에 닿았다. 거기는 기념품을 사거나 음료를 파는 매점 같은 것들이 있었다. 거기서 여행자들이 지갑을 열 시간을 조금 준 다음에 다시 배를 타고 푸노로 돌아왔다.






푸노 항에 돌아오니 점심때쯤 되었는데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놀랍도록 멋진 경치도, 척박하지만 자신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잉카의 후손들도 없었다.(우로스 섬에서 여행자들을 맞는 사람들은 우로스 섬에 살지 않는다. 푸노에서 출퇴근하는 직업인일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옛날 삶을 복원해 놓은 민속촌에 다녀 온 것일뿐인데 투어를 하기 전까지 실제 거기서 사는 줄 알았기 때문에 왠지 속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페루와 볼리비아는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물가차이가 꽤 나기 때문에 투어도 괜히 비싸게 느껴졌다.(2014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페루는 6000달러대, 볼리비아는 3000달러를 겨우 넘는 수준으로 양국의 소득차이는 두배가 넘는다.)


선착장에는 우리나라 바닷가 횟집처럼 생긴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었다.


시내로 돌아오니 어제 축제가 벌어지던 시끌벅적했던 아르마스 광장 주위가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했다. 지나가다 조금 비싸보이지만 꽤나 깔끔하게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스페인에서 자주 선택했던 오늘의 메뉴(메뉴 델 디아)가 있길래 바로 그것을 주문했다.



커다란 아보카도와 버섯, 야채, 토마토가 있는 샐러드


메인은 가장 무난한 치킨과 감자튀김


우리나라 옛날 다리미와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 벽에 걸려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푸노시내를 걷다보니 자그마한 광장에 사람들이 꽤나 몰려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거기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독특하게 생긴 커다란 빵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있고, 심사위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뭔가를 적고 있었다. 빵 품평회 내지는 경연대회가 열리는 것 같았다. 


대회로서는 별 특이할게 없지만 여기서 가장 특이한 것은 빵의 모양이었다. 커다란 빵의 상단부에 사람의 얼굴 모양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종교적인 행사나 기념일에 사용되는 빵인 모양인데 정확하게 어떤 용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독특한 모양의 빵과 한쪽에 보이는 그 유명한 남미의 잉카콜라


그 뒤로 이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으로 이날 남은 것은 저녁으로 먹었던 치킨과 감자칩, 샐러드로 된 음식밖에 없다. 여행을 하며 내가 느꼈던 페루 음식의 특징이라면 한국인의 입맛에 맞을만한 음식들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치킨은 후라이드부터 양념치킨까지 한국의 치킨맛과 아주 비슷했다. 한국의 다양한 치킨메뉴로 페루에서 장사하면 아주 잘 될 것 같았다.



이날로 티티카카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티티카카에 오는 여행자들은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만 가거나 페루 푸노만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티티카카 호숫가에 있는 도시들이긴 하지만 도시 분위도, 호수의 경치도, 투어의 포인트도 많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면 두 도시 모두 가보는게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태양의 섬 트레킹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데다가 도시 분위기도 크기가 작아서 어디서든 호수가 내려다보였던 코파카바나쪽이 훨씬 기억에 남는다.


다시 티티카카에 가게 된다면 코파카바나와 태양의 섬에서 지겨워질때까지 머물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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