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에서 다음 목적지로 정한 그라나다는 너무도 잘 알려진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곳이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으며, 마지막까지 이슬람 세력권이었던 이 도시가 1492년 아라곤 왕국에 의해 무어인이 세운 그라나다 왕국이 점령되면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레콩키스타가 완성되었다.


참고로 Alhambra 궁전을 보통 '알함브라'라고 쓰고 읽지만 스페인어는 'h'가 묵음이므로 알람브라라고 읽고 쓰는게 표기법에 맞다고 한다.(위키백과 참조) 여행을 다니면서 보니 우리가 알아왔던 지명이나 이름들이 영어식 표기를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 실제 현지에서 사용되는 것과 많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선수 James Rodriguez가 2014년 월드컵에서 유명세를 탓을 때 처음에는 스포츠 기사에서 제임스 로드리게스라고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후에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콜롬비아 출신이기 때문에 하메스 로드리게스라고 고쳐지게 되었다.


현지어를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정확하게 현지 표현을 따르기는 쉽지 않다. 블로그를 쓰면서도 어떻게 쓰는게 정확한지 모르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알게된 이상에는 현지 표기법에 맞게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외국인이 '쎄울'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서울'이라고 고쳐줘야 하지 않을까?



톨레도에서 버스를 타고 네다섯시간쯤 달려 그라나다에 도착했다.(가격이 기차에 비해 훨씬 저렴하고 버스 시설도 나쁘지 않기 때문에 스페인을 여행할 때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스페인에서 남쪽으로 꽤 내려왔고,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과 가까워 꽤 고지대에 있음에도  기온이 35도를 훌쩍 넘고 있었다. 그래도 40도를 넘는 곳에 있다오니 훨씬 덜 덥게 느껴졌다.


알람브라 궁전에 가기에는 늦은 시간이라 일단 오늘은 그라나다 시내 구경을 나섰다.











그라나다 대성당은 내부가 온통 흰 대리석과 휘황찬란한 금색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조명마저 은은한 노란색을 띄고 있어서 더 호화롭게 보였다.






그라나다 대성당과 바로 옆에 있는 그라나다 왕실 예배당을 보고 나오니 벌써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주변에서 수페르 메르카도(Super Mercado)를 찾았다. 스페인에서 한달 가까이 다니다보니 스페인어를 배우려고 전혀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생활에 필수적인 단어들이 자연적으로 익혀졌다. 물건을 사거나 돈을 지불할 때 필요한 우노(하나), 도스(둘), 트레스(셋)부터 시작해서 와인, 맥주,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등 제법 여러 단어를 알게 되었고 수퍼마켓을 뜻하는 '수페르 메르카도'도 어느새 자연적으로 입에 붙게 되었다. 외국에서 살면서 적응한다는건 그 곳의 문화와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라는 의미가 와닿았다.

심심했던 마드리드를 떠나 옮긴 곳은 버스로 한시간쯤 떨어진 톨레도였다. 지금은 구시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작은 도시일뿐이지만 5세기경 서고트 왕국의 수도였으며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한 후에도, 그 뒤로도16세기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천년동안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도시였다.


톨레도에 예약한 숙소는 시설에 비해 무척 저렴한 곳이었으나 여행의 중심이 되는 구시가와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다.(시설도 좋고 거리도 가까웠다면 당연히 비쌌겠지) 가장 더운 시간에 톨레도 버스터미널에 내리니 어깨에 맨 배낭무게에 더해 뜨거운 공기가 더욱 숨을 턱 막히게 했다. 생각보다 멀었던 숙소를 간신히 찾아 짐을 내려놓고 늦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이글거리는 햇살 아래로 나왔다.


당시 톨레도의 한낮 기온은 40도를 넘었는데 햇볕아래 조금만 걸어도 일사병에 걸릴듯 체온이 상승했다. 희안한 것은 그렇게 더워도 땀은 잘 나지 않았는데 저녁에 옷을 벗어보면 하얀 얼룩만 남아있었다. 높은 기온과 건조한 공기가 땀조차도 흘러내릴 틈이 없이 금새 말려버리는 것이었다.


레스토랑을 찾아 온 동네를 헤매고 다녔으나 거리에는 레스토랑은 커녕 물어볼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극심한 더위를 피해 다들 숨어버린 것이다. 공복에 땡볕에서 레스토랑을 찾아서 헤매다보니 이제 쓰러질지경이었다.


겨우 레스토랑으로 보이는 곳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어두운 실내에 바텐더가 서 있었고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실망스러움이 온몸에 퍼지고 기운이 쫙 빠지는걸 느끼면서도 혹시나 싶어 식사할 수 있냐고 묻자 바텐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식당 안쪽 문을 가리켰다.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안된다는 것인지 의미도 모른채 혹시나 싶어 안쪽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이게 왠일인가, 레스토랑 안쪽에 있는 방에 손님들이 꽉 차 있었다. 어차피 이 더운 날씨에 레스토랑에 오는 손님이 적으니 넓은 홀이 아니라 별실만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님은 전부 동네 사람들로 보였다. 어색함에 쭈뼛거리자 나이가 지긋한 웨이터가 친절히 테이블로 안내해주었다.


'메뉴 델 디아'를 주문하면서 차가운 화이트 와인과 차가운 토마토 스프(살모레호인지 가스파초인지...), 메인으로 생선요리를 선택했다. 이 레스토랑의 음식은 모두 훌륭했지만 그 중에서 최고는 차가운 토마토 스프였다. 삶은 달걀과 하몽을 띄운 이 차가운 스프는 고소하면서도 새콤달콤한게 정말 최고였다. 그 뒤로 여러 도시에서 비슷한 스프를 시켰지만 시큼하기만 한게 이 곳처럼 맛있는 스프를 맛볼 수 없었다.


열에 들뜬 체온을 식혀준 차가운 화이트 와인


스페인에서 맛본 최고의 음식, 살모레호... 였던가...


톨레도에서 먹었던 차가운 토마토 스프가 살모레호인지 가스파초인지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열심히 뒤진 결과, 삶은 달걀과 하몽이 올려져 있었던 것으로 봐서 살모레호에 가까운 것 같다. 두 음식이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조리되는데 이름이 다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음식이 지방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것처럼 스페인도 그런 것은 아닐까...


메인으로 시킨 생선구이와 샐러드


나이든 웨이터는 능숙한 솜씨로 와인 마개를 따서 따라주고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동네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레스토랑에 행색이 허름한 동양인 여행자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찾아왔으니 어쩌면 불쌍해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음식은 훌륭했고 가격은 10유로 내외로 생각보다 저렴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자 더 이상 밖에서 헤매고 싶지 않았다.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지만 에어콘을 세게 틀어놓고 뒹굴거리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톨레도 관광은 이튿날 아침부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벌써 공기가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숙소 근처에서 구시가로 들어가는 버스에 올랐다.


구시가로 통하는 성문





톨레도의 시청사, 박물관들을 보며 돌아다녔다. 톨레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는 '엘 그레코'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이라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리스 태생으로 톨레도에서 활동한 화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를 나타내는 이름이 되어버렸다. 이 사람의 그림이 톨레도의 성당과 박물관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본 엘 그레코의 작품보다 훨씬 많고 다양했다. 광각렌즈로 아래에서 위로 찍은 듯한 특이한 구도와 어둡고 강렬한 색채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당시의 화풍이나 구도와 무척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현대에 그려진 회화처럼 보였다.





점심으로 구도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메뉴 델 디아'를 먹었지만 어제 갔던 레스토랑에 비해서 가격은 두배 가까이 비쌌고 맛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역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곳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톨레도도 아시시나 로도스처럼 중세시대의 도시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다만, 로도스보다는 조금 작고, 고즈넉했던 아시시보다는 더 번잡했다. 한여름을 피했다면 훨씬 느긋하게 돌아볼 여유가 있었을텐데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금새 체력이 바닥나버렸다.

톨레도도 여느 중세도시처럼 외적의 침입이 어렵도록 한쪽을 제외하고는 강과 절벽으로 둘러져 있었다. 반대편 언덕에서 보는 톨레도 시내의 모습이 멋있다고 했는데 이 더위에 도저히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포기했다.



오후로 접어들자 더 이상 돌아다니다가는 며칠 앓아야 할 것 같아서 숙소로 돌아왔다. 짧은 톨레도 여행은 여기서 끝내고 내일은 그라나다로 떠나기로 했다.


시원한 에어콘 버스를 타고 다니는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면 스페인 내륙지역을 한여름에 여행하는 것은 상당한 체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인 것 같다. 톨레도는 볼 것도 많았고 인상적인 중세의 고도였지만 더위로 충분히 보고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더워서 그랬는지 찍은 사진도 몇 장 없어서 더욱 아쉽다.

스페인에서 가장 큰 두 도시인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를 잇는 교통수단은 여러가지가 있을텐데 숙박비도 절약할겸 밤기차를 타기로 했다. 하지만 저렴한 밤기차는 밤새 많은 역에 정차했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잠도 깊게 들지 못했다. 버스를 타거나 비싸더라도 고속열차를 타는게 더 나았을 것 같다.


마드리드에 예약한 숙소는 중국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지역에 있었다. 오전에는 밤새 쌓인 피로를 풀고 오후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인 프라도 미술관에 갔다. 미술관 근처에 있는 던킨 도너츠에서 도너츠와 아이스커피로 끼니를 때우는데 거기서 근무하던 여자 점원이 마드리드에는 소매치기가 많으니 뒤에 맨 백팩을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일러주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데 간다한 영어 단어와 몸짓, 표정을 섞어가며 알려주는게 고맙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내가 본 스페인 사람들은 몇몇 유럽국가 중에서 가장 친절했다. 예의상 베푸는 친절이 아니라 이 사람들 성격자체가 낙천적이고 친절한 편이었고, 동서양 인종에 대한 낯가림도 심하지 않았다. 소매치기나 도둑이 많기로 유명한 스페인이지만 한달동안 여행하면서 한번도 좋지 않은 일을 당하지 않았던 것은 매사 주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차림새가 워낙 없어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주위에 잘 차려입은 여행자들이 많은데 굳이 초라한 행색의 여행자를 털 필요는 없을테니 말이다.


세계적인 미술관인 프라도 미술관에는 잘 알려진 유명 미술작품들이 무척 많다. 학창시절 미술책에서 봤던 벨라스케스의 '하녀들', 고야의 '옷을 입은 마야'와 '옷을 벗은 마야'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도 무척 많아서 이곳은 미술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 코스다. 하지만 나에게 이 미술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을 고르라면 독특한 구도와 색채를 지닌 '엘 그레코'의 작품이었다. 아쉽게도 프라도 미술관은 사진 촬영을 허가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남긴 사진이 없다.


이튿날은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워낙 미술에 조예가 없는데다 더우기 현대미술작품을 주로 전시한 곳이라 크게 기대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남은 기억이 없다. 벽면 가득 들어찬 게르니카를 보면서도 '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어째서 이 작품이 그토록 뛰어나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몇 년전 파리를 여행할 때 퐁피두 센터에서 느낀 감상과 비슷했다.


그 뒤로는 스페인의 구시가를 별 생각없이 여기저기 걸어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가장 오래된 츄러스 집이라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츄러스라고는 놀이공원에서 파는 설탕 바른 밀가루 튀김이라는 것밖에 몰랐는데 여기서는 달콤한 초콜렛 시럽에 츄러스를 찍어 먹는 것이었다. 배가 고파서인지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시청사가 있는 마요르 광장을 지나고 발길 닫는대로 다니다보니 유리로 된 인상적인 시장 건물이 나왔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스페인의 먹거리들을 파는 곳이었는데 주로 하몽, 치즈, 해산물, 와인등을 팔고 있었다. 그 중에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뿔뽀(pulpo)라고 부르는 문어였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문어나 오징어같은 연체동물을 잘 먹지 않는데 스페인은 문어를 데쳐서 올리브에 고추가루(?) 같은 것을 뿌려서 먹는게 매우 유명하다.


관광객을 대상으로하는 시장이니 가격이 저렴하진 않겠지만 맛을 보지않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날씨도 가장 더운 시간이라 뿔뽀 한접시와 글라스 와인을 시켜놓고 시간을 보냈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문어와 차가운 화이트 와인이 꽤나 좋은 궁합이었다. 올리브 오일을 뿌려 느끼할 것 같지만 레몬즙과 고추가루 같은게 뿌려져 있어서 느끼하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서 문어숙회를 시키면 얇게 썬 문어가 넓게 펼쳐져서 나오는데 몇 만원은 가볍게 부른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10유로 정도에 이 정도 양이라면 그리 비싼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은 여행자들이 가볍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요리가 많은 편이다. 서유럽치고는 물가도 저렴한 편이라 상대적으로 부담없이 여러가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게다가 고기류뿐만 아니라 문어, 새우, 굴 등등의 해산물 요리들도 많아서 좋았다.


비싼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맛볼 수 있는 요리들로는 잘 알려진 쌀요리 빠에야, 빵에다 여러가지 다양한 것들을 올려서 먹는 타파스, 멜론과 함께 먹는 하몽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해산물 요리들이 있고 음료도 와인, 맥주뿐만 아니라 와인에 여러가지 과일들을 섞은 상그리아, 사과담은 술인 세리주 등등이 있다.


마드리드는 도시 크기에 비해 그다지 구경거리가 많지 않은 편이어서 미술관을 제외하고는 딱히 유명한 명소나 유적도 없었다. 하지만 금방 떠날 수도 없는게 예약해 놓은 숙소에서 이틀은 더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 근교에 가볼만한 곳을 검색하니 풍차로 유명한 두 마을, 캄포 데 크라프타나와 콘수에그라가 나왔다.


두 마을 모두 스페인의 유명한 작가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의 배경이라고 선전하고 있었는데 사실 세르반테스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스페인 어디를 가더라도 곳곳에 풍차가 있었을테니 딱히 어디가 진짜라고 할 수는 없을 듯했다.


마드리드에서 두번째날, 캄포 데 크라프타나에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캄포 데 크라프타나 기차역에 내려서 다시 택시로 갈아타고 풍차가 있는 언덕에 올랐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듯, 깔끔하게 정돈된 풍차가 여러 개 있긴 했지만 실제 돌고 있지는 않았다. 언덕 꼭대기에는 풍차에 대한 조그만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어서 약간의 입장료를 내고 관람했다.






한낮이 되니 밖은 온통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언덕 위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기는 커녕 피부에 남은 물기를 마저 말려버리려는 듯이 뜨거웠다. 몇 달전 이집트에서 느낀 열기가 다시 생각날 정도로 뜨거웠다. 불과 지난주에 스페인 북부를 걸을 때만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마드리드가 이베리아 반도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보니 훨씬 더운 것 같았다.


이런 날씨에 무리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것 같아서 더위를 피해 언덕에 있는 조그만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차가운 맥주 한잔과 타파스를 시켜놓고 아랫쪽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경치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한두시간을 그렇게 보내다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언덕을 걸어내려왔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간이라 모두 시에스타 중인지 길에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뜨거운 태양아래, 적막한 마을을 걷고 있으려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듯,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드리드로 가는 기차가 오려면 아직도 몇 시간이나 더 있어야 했다. 마을 광장에서 가져간 과일을 먹고 시간을 보내도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시간도 느리게 흘렀다. 광장은 쥐죽은 듯 조용해고 가게 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더위에 지쳐 인내력이 바닥날 때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광장에 있는 펍의 문을 열어봤더니 사람들 몇몇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가게 문을 닫은게 아니라 지독한 더위를 피해 차양을 내리고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펍은 동네 사람들이 주로 오는 곳인듯, 동양 여행자가 들어오자 뜻밖이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고맙게도 안에는 에어콘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었다. 이 시원함을 맛본 이상, 주인이 나가라고 밀어내도 절대 순순히는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기차가 올 때까지 맥주를 마시고 축구 중계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천국과도 같은 펍이었다.



작열하던 태양도 많이 기울고 드디어 기차가 올 시간이 되었다. 한 여름에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왜 여행자들이 스페인의 태양을 이야기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날의 태양은 그 전의 것들을 뛰어넘는 경험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티브이를 보니 뉴스에서 오늘 기온이 41도였다고 방송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도 아닌 유럽에서, 서울보다 위도가 높은 마드리드에서 41도의 여름이라니... 스페인 사람들의 열정적이면서도 낙천적인 성격이 이해가 되었다.

레온에서 우여곡절 끝에 강제 휴식하고 바르셀로나에 돌아와서 민박집에 맡겨둔 짐을 찾았다. 간혹 생각날 때마다 2주동안이나 무료로 배낭을 맡아주시고 머무는 동안 친절하게 대해주신 민박집 가족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튿날은 떠나기 전에 보려고 남겨둔 바르셀로나의 백미, 구엘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으로 나섰다.


바르셀로나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구엘공원의 첫인상은 놀이공원에서 볼 수 있는 동화의 나라 같다는 것이었다.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어른들도 같이 즐길 수 있는 동화의 나라다. 알록달록한 타일들로 만들어진 예쁘면서도 독특한 모양의 집들,  기괴하고 약간은 그로테스트한 건물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원래 이 공원은 건축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이 가우디가 설계한 집들을 스페인의 부유층에 분양하려는 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오랜 건축기간으로 완성되지 못한 것을 바르셀로나 시의회의에서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사들였다고 한다. 이 위대한 건축물들이 비싼 돈을 지불해야하거나 혹은 그러더라도 볼 수 없는 특정인들의 소유물로 전락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이 건물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헨델과 그레텔'의 과자와 빵으로 지어진 집을 떠올릴 것이다.

어른들에게도 수십년전 어린시절 읽었던 동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곳이 진짜 동화의 나라다.


맑게 울리는 악기소리에 이끌려 가보니 중년의 남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처음보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실로폰처럼 보이지만 목판이나 금속판을 치는게 아니라 손에 든 채로 금속줄을 튕겨 소리를 내고 있었다. 처음보는 모양의 채를 손에 가볍게 쥐고 줄을 튕기는데 소리가 무척 맑고 듣기 좋았다. 얼마 안되던 청중이 어느새 많아지고 한 곡이 끝나면 제법 큰 박수소리가 나왔다. 연주자도 기분이 좋은지 신중하던 얼굴에 약간은 미소가 생겼다. 아직 많이 남은 여정 때문에 음반을 살 수는 없었지만 좋은 연주에 감사하며 관람료를 보탰다.









자연석을 가공하지 않고 만든 아케이드와 기둥들이 파충류의 척추와 피부를 연상시켰다. 기묘하면서 독특했다.


구엘 공원은 무료로 개방하는데 단 한 곳, 가우디가 살았던 곳이며 지금은 그의 기념관으로 사용되는 건물 입장료만 지불해야 한다. 이 기념관에는 가우디가 직접 디자인해서 사용했던 가구나 장식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100년 전에 디자인된 것들임에도 현대의 가구들보다 훨씬 개성있고 멋있었다.


오로지 건축만을 생각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가우디는 자신의 겉모습도 꾸미지 않았기 때문에 전차에 치여서 죽었을 때는 그 초라한 행색 때문에 사람들이 그 유명한 건축가 가우디인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구엘공원 입구에 있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로 만든 집처럼 생긴 두 건물은 원래 경비실과 관리실의 용도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멋진 경비실과 관리실이 될 뻔했다.





구엘공원은 넓어서 걸어다니며 보고 감탄하는만도 시간이 꽤 필요했다. 공원을 나와 사그라다 파밀라아 성당으로 가기 전에 작은 레스토랑에서 다시 빠에야를 시켰다. 역시나 이전에 먹은 빠에야가 잘못 만든 것은 아니었나보다. 이번에도 짜고 쌀알은 약간 설익었다. 빠에야를 만들때 따로 쌀을 익히지 않고 생쌀을 넣어서 끓이기 때문에 우리가 밥으로 먹는 것보다 조금 딱딱하다. 그리고 간이 무척 강해서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는 대부분 많이 짜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는 국이나 찌개같은 국물음식 때문에 섭취하는 소금의 양은 많은지언정 짜게 먹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외국 음식들은 우리나라 음식에 비해서 훨씬 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에 입장했다. 너무도 유명한 겉모습에 그것만 보고 돌아가지 않은게 정말 다행이라는 것을 성당 안에 있는 내내 생각했다.


성당안에 있으면 거대한 숲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둥은 거대한 나무를 연상시켰고, 천정의 무늬들은 빽빽하게 들어찬 나뭇잎들을 생각나게 했다. 게다가 스테인드 글라스로 비쳐드는 햇빛은 빽빽한 수풀을 뚫고 햇살이 비치는 듯했다. 성당 내부는 그로테스크한 겉모습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나와 바르셀로나 해변으로 향했다. 누군가 소매치기를 당했는지 남자 한 명이 부리나케 뛰어가고 곧이어 남자 둘이 그를 쫓아 사라졌다. 유럽의 대도시에서는 늘상 조심해야 하는게 소매치기니 사람들도 한번씩 쳐다볼뿐 놀래는 기색도 없었다.


해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주로 젊은 사람들이 해변에서 축구나 배구를 하거나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활기차고 쾌활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날씨가 무척 좋았음에도 바닷물도 썩 아름답거나 깨끗하진 않았다. 유명한 바르셀로나의 해변은 해변 자체보다는 주변의 레스토랑과 술집들, 젊은 친구들이 놀기 좋은 환경으로 유명해진 것 같았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 가장 소득수준이 높고 잘사는 도시라고 한다. 그에 걸맞게 다른 대도시에 비해 깨끗한 편이고 볼거리도 무척 많았다. 한번쯤 꼭 가볼만한 도시이고 누가 보더라도 후회하지 않을만큼 매력적인 도시였다. 하지만, 나에겐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는 아니었다. 다시 갈만큼 매력적이었냐고 묻는다면 그 정도는... 이라고 이야기할 것 같다. 만약, 다시 간다면 이번에 가지 못했던 바르셀로나의 축구경기장 '캄누' 때문이 아닐까?

열흘간의 순례길을 마치고 바로 바르셀로나로 돌아갈까 하다가 여기까지 온 김에 원래 걸어서 도착하려 했던 레온까지 가보기로 했다. 전날까지 걷다가 작은 마을에서 중단했던터라 숙소에서 교통편을 물어 버스를 타고 팔렌시아까지 가서 기차로 갈아타고 레온에 도착했다.


열흘동안 부르고스, 로그로뇨같은 큰 도시를 지나긴 했지만 단지 스쳐지나거나 잠만 자고 떠났기 때문에 큰 도시 레온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 열흘동안 길 위에서는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인사하고 도와주고 지냈던터라 같이 여행하던 일행과 헤어져 갑자기 혼자 남게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갑자기 기분이 울쩍하고 쓸쓸해졌다.


느지막한 오후에 도착한 레온에서 비교적 저렴한 호텔을 찾아 들어갔다. 어차피 내일 레온 시내를 구경하고 떠날 것이니 있는 이틀 동안은 편안하게 쉬다가자는 생각이었다.


이튿날 아침일찍 레온 시내구경을 시작했다. 처음 간 곳은 건축가 가우디의 초기 건축물인 '까사 데 보티네스'였다. 지금은 은행으로 쓰이는 작은 성 혹은 저택처럼 생긴 이 건물은 우리가 흔히 봐왔던 가우디의 특성이 크게 드러나 있진 않았다.




다음으로는 스페인 성당중에서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답기로 '3대 성당'에 든다는 레온 대성당이었다. 스페인의 성당은 지금까지 거쳐 온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 독일의 성당과는 내외관이 모두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다. 건축지식이 없어서 정확히 무엇이다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광장에 있는 커피숍에서 '까페 콘 레체'와 '메디아 루나'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했다.


성당 내부가 십자가 모양인 것은 다른 나라의 성당과 비슷하지만 스페인의 성당은 내부에 무척 화려하게 장식된 조그만 성당이 하나 더 있다. 그리고, 성당 내부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곳 뒤로 통로가 나 있는 것도 달랐다.



레온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과연 아름답고 멋졌다. 성당의 윗부분이 모두 스테인드 글라스로 되어 있었고 마침 스테인드 글라스로 비쳐드는 아침햇살로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다만, 어두운 성당내부와 밝게 비치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제대로 찍기에는 내 사진기술도, 구형 똑딱이 카메라도 모두 심하게 부족했다.






성당 내부 아케이드에는 성인들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었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도시마다 수호성인으로 삼고있는 성인들이 있고, 그 도시와 관련된 수많은 성인들이 있다. 카톨릭이나 유럽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성인들을 다 알 수 없을텐데 그마저도 없는 나에게 그저 '성인'일뿐이다.


중세시대 도시들은 저마다 도시의 수호성인을 모시기 위해 안달이나 있었고, 특히 유명한 성인을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하기 위해 성인의 성물이나 신체의 일부를 사들였다고 한다. 베네치아가 성인 '마르코'를 수호성인으로 하게 된 이야기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성인 '야곱'을 수호성인으로 하게 된 이야기는 전설처럼 되어버렸다.



성당을 둘러보고 나와서 뒤로 돌아가니 장보러 나온듯한 할머니가 나무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걸터앉기에는 쉽지 않았을 난간에서 다리를 흔들며 쉬는 모습이 마치 소녀의 행동 같았다. 할머니가 간직한 천진함이 보는 사람을 즐겁게 했다.




스페인의 태양은 날이 갈 수록 점점 더 뜨거워졌다. 가장 더운 한낮에는 '시에스타'라는 낮잠을 자는 풍습이 있을 정도인 스페인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라 점심시간 이후에는 길에도 다니는 사람들이 부쩍 줄어들었다. 나도 시에스타에 동참하여 낮잠을 자고 해가 기울무렵 내일 떠날 바르셀로나행 기차표를 사기 위해 역으로 나갔다. 그런데, 표가 매진되었다고 했다. 더욱 당황하게 만든 것은 그 다음날도 표가 없다고 했다. 


이베리아 반도의 북부를 가로지르는 먼 길이긴 하지만 레온과 바르셀로나라는 큰 도시 사이에 다니는 기차가 몇 대 안되는데다 표가 매진된 상황이 적지않게 당황스러웠다. 머뭇거리다가는 그 뒤의 표도 매진될지 모른다는 조급함에 부랴부랴 표를 샀다. 그리고는 강제로 쉬게 된 이틀동안 뭘 해야할지 고민스러워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기차가 없다면 버스를 알아보고 그래도 안된다면 다른 도시를 거쳐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은 어렵다. 가끔 괜찮은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난 그때, 그리고 지금도 여행자로서 어설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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