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틀리스는 봉우리가 평평해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갈 수 있지만 마터호른은 훨씬 높은데다 봉우리가 뾰족하고 좁아서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없다. 대신 3000미터가 넘는 마터호른이 잘 보이는 곳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갈 수 있다. 아침 일찍 케이블카를 타러 가면서 보니 봉우리가 구름 위로 살짝 드러나 있었다. 더 이상은 구름이 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케이블카에 올랐다.
마터호른 전망대로 오르는 케이블카는 엊그제 트래킹을 했던 쪽과는 다른 방향이다. 처음부터 급경사로 오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나무가 자라지 않는 수목한계선을 넘고 있었다.
첫번째 케이블카 환승장에 내리니 지상에 있을 때보다 마터호른이 더 잘 보였다. 하지만 언제 다시 구름이 낄지 모르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볼 수 있는게 다행이다 싶었다.
옛날에 사용했던 대피소? 산장?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여기서는 아까보다 봉우리에 걸린 구름이 늘어나있었다. 며칠동안 머무르며 보다보니 마터호른이 주변 봉우리보다 훨씬 높아서 그런지 바람 반대편에서는 끊임없이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오늘 올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왔다. 안타깝게도 이 날은 케이블카의 고장으로 가장 높은 곳까지 갈 수 없었다. 원래는 아래 사진에서 오른쪽 중간 스키 슬로프처럼 생긴 곳으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구름이 살짝 끼긴 했지만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비가 오고 구름이 잔뜩 꼈었는데 이 정도도 어딘가 싶었다.
아무리 비싸더라도 끼니는 거를 수 없으니 점심을 먹어야 했다. 돈가스하고 거의 비슷한 음식을 시켰는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3,4만원은 줬을 듯 싶다. 비싸지만 맛도 없어서 마터호른을 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시내의 일반 음식점에서 이 가격에 이런 음식을 내줬으면 화가 났을 것 같았다.
식사를 하고 잠시 밖에 나오니 봉우리에 구름이 완전히 걷혀 있었다. 운좋게도 떠나기 몇 시간 전에 완전히 구름이 걷힌 마터호른을 볼 수 있었다. 마터호른에서는 계속해서 운이 안좋은 듯 좋고, 병주는 듯 싶다가 약 주는 일이 반복되는 것 같았다. 아쉽게도 여기서 보이는 마터호른은 방향이 맞지 않아서 흔히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다.
이제 째르마트를 떠나 융프라우로 갈 시간이 되었다. 마터호른은 워낙 깊은 산골짜기에 있어서 보기 위해서는 무조건 째르마트에서 숙박을 해야 하지만 융프라우는 주변에 큰 도시나 마을들이 여럿있어서 반드시 한 곳에 머무를 필요는 없었다. 융프라우를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경우에는 흔히 인터라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지만 좀 더 시간에 여유가 있는 여행자라면 그린델발트나 라우터브루넨에 머무르는게 좋다. 나는 고민 끝에 유명한 아이거 북벽이 잘 보인다는 그린델발에서 묵기로 했다.
스위스를 기차로 여행하다보면 곳곳에 아름다운 호수를 볼 수 있는데 이 날은 약한 비가 흩날리는 날씨라 청명한 호수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대신에 호수위에 뜬 선명한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그린델발트에 가까워지면서 슬슬 산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골짜기 사이에 걸린 무지개도 무척 예뻤다.
그린델발트는 해발 1000미터가 약간 넘는 곳이고 째르마트처럼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곳이 아니라서 훨씬 덜 춥게 느껴졌다. 날씨만 맑았다면 전형적인 스위스 풍경 사진과 가까울 듯했다.
아이거 산에서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다.
그린델발트에 예약한 숙소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걷다보니 거세지는 빗발을 뚫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채 스마트폰에 캡쳐해둔 지도를 보며 힘들게 올라갔다. 오르면서는 높은 곳에 있는 숙소를 예약한 것을 후회했지만 숙소의 거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주 멋들어졌다.
아침부터 마터호른 전망대를 둘러보고 그린델발트까지 온데다 비까지 맞으며 걸었더니 몸이 녹초가 되었다. 숙소에는 멋진 부엌이 있었지만 오스트리아 빈의 한인마트에서 비상용으로 산 라면을 끓어 먹고 곧장 침대로 들어갔다. 제발 내일은 날씨가 좋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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