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피렌체에 머무르던 당시 한낮의 기온은 35도를 넘었다. 여름이면 항상 그랬는지 당시 기온이 특별히 더 높았는지 모르겠지만... 게다가 앞서 말한 숙소는 너무 덥고 시끄러워 낮동안의 피로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원래 여행 패턴은 해가 지면 숙소에 돌아와 쉬면서 여행 정보를 찾아보거나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일로 저녁시간을 보냈었는데 여기서는 도무지 숙소로 돌아가기 싫어 밤 늦은 시간까지 맥도널드(그나마 가장 시원한)에서 시간을 보냈다. 거기서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 비싸더라도 쉴만한 숙소를 찾았고, 이튿날 이탈리아인이 하는 민박집으로 옮겼다.
숙소를 옮기며 오전 반나절을 보내고 나서 점심식사할 곳을 찾던 중에 일본 라멘집을 발견했다. 원래 라멘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탈리아 피자와 파스타에 물리기도 했기 때문에 주저없이 들어갔다.
정통 일본 라멘집은 아니고 이탈리아 음식과 같이 파는 레스토랑인데다 훌륭하진 않지만 미소라멘을 한그릇 먹고나니 한결 기운이 났다.
생각보다 많은 현지인들이 일본 라멘을 먹고 있었다.
공염불 같은 한식의 세계화만을 떠들 것이 아니라 현지에 녹아들어야 진정한 세계화가 될 것이다. 외국에 있는 대부분의 한국식당들은 한국 음식이 그리운 여행자들이나 한국 기업의 주재원,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지 현지인들이 찾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멕시코와 볼리비아 등에 있었던 몇몇 한국 식당을 제외하고는 가격도 현지인들이 먹기에는 다른 음식들보다 지나치게 비쌌다.
한식의 세계화는 현지 사람들이 먹고 다시 찾을 때 가능한 것이지 정부가 정책적으로 돈을 쓴다거나 외국에서 광고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헐리우드 스타들이 비빔밥을 먹는다고 비빔밥이 세계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유명 영화배우가 우리가 모르는 외국 음식을 좋아한다고 그 음식이 대중화되었다고 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우리보다 긴 이민 역사를 가졌기 때문이겠지만 중국이나 일본 음식은 남미의 조그만 도시에서도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우피치 미술관에 가기 전에 중세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약초로 약을 만들다가 화장품이 되었다는 수백년된 피렌체의 유명한 화장품 매장을 구경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매장에 있는 많은 손님들의 절반은 한국 사람이었다. 한국 사람을 판매 담당 직원으로 따로 두고 있었으며 카탈로그에도 한국어가 자랑스럽게 쓰여져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적어도 두 개 이상의 두툼한 종이가방을 들고 있었다. 가격은 아무리 저렴한 것도 3,40유로(당시 환율로는 4.5만원~6만원)를 넘었다. 물론 국내에서 판매하는 화장품보다 품질이 뛰어나니 구매하는 것이겠지만 유럽인들에게도 비싼 화장품 매장에서 절반 정도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우피치 미술관도 당연히 예약을 해야 했고,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었다. (어떤 블로그에서 보니 2014년부터 사진 촬영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피치 미술관의 예술품들은 과연 세계적인 미술관답게 뛰어난 작품들이 정말 많았다. 직접 본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은 사진보다 더욱 아름다웠고,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나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작품들도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예술품들이 예전과 같은 감동을 주질 못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지금은 피렌체 시청사로 사용되는 베키오 궁전으로 향했다.
수제 제작된 듯한 자동차. 기본적으로 클래식한 뼈대에 현대적인 감각을 멋지게 입혔다. 나를 비롯해 지나던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차주인은 뿌듯한 듯이 그 앞에서 지인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오모 성당 옆 골목에 있는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 GROM. 베네치아에도 가게가 있을만큼 유명한 곳이지만 내 입맛에는 어제 맛본 아이스크림에 미치지 못했다.
피렌체에서 꼭 가봐야 할 장소중 하나인 미켈란젤로 언덕도 가지 않고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가장 기대했던 피렌체인데 시기가 좋지 않았는지 무덤덤하게 3박 4일을 보냈다. 살다보면 겪게되는 슬럼프가 여행 중에는 이때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터키에서부터 시작되어 2달을 꼬박 채운 유적과 예술품을 보는 여행이 지겨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여행경로를 바꾸기로 했다. 원래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왼쪽으로 꺾어 프랑스 남부를 통해 스페인으로 가려고 했는데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데다 여름에는 사람들로 북적일 프랑스 남부 해안으로 가는게 끔찍하게 생각되었다. 지중해의 좋은 바다는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실컷 봤으니 프랑스의 지중해가 그 이상이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나 비싼 비용을 지불할 필요도 없을터였다. 여름 휴가철에 유럽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나마 나을 곳으로 가야겠다 싶었다. 바다는 실컷 봤으니 이제 산을 볼 수 있으면 좋을 곳으로...
이탈리아 북부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지나 독일 남부에서 스위스로... 대충 경로만 정했을 뿐, 정확한 일정도 없고, 교통편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넉달로 접어든 여행 경험으로 가보면 방법이 생기기 마련이라는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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