퓌센에 도착한 날, 체크인을 하며 주인장에서 퓌센에서 할만한 것이 뭐가 있을지 물었었다. 주인은 자전거나 차로 호수를 보러 가라고 가는 길까지 대충 알려주었다. 남는 것은 시간과 체력이고 부족한 것은 주머니속의 돈이니 당연히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이튿날 퓌센 기차역 바로 옆에 있는 자전거숍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허접한 기억력이지만 생각보다 대여료가 비싸지 않아서 24시간에 10유로였던 것 같다. 늦게 와서 숍의 문이 잠겨 있으면 옆에 있는 작은 빈터에 세워 놓으라고 하면서 자전거 자물쇠도 주지 않았다. 자물쇠를 주지 않냐고 물어보니 그게 왜 필요한가 하는 표정으로 없다고 했다. 여기는 자전거쯤은 열쇠를 채우지 않고 밖에 세워놔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동네였던 것이다. (그래도 자전거를 세워놓고 화장실에 가거나 한눈을 팔아야 할 때 신경 쓰이는건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퓌센 기차역 옆에 있는 작은 공원


어제 주인장이 알려준 방향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근처에 호수가 여러 개인데다 표지판을 보고 대충 호수쪽으로 달렸기 때문에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자전거를 타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가는 길에 찍은 사진조차 없다.


사실 호숫물이 사진에서 보던 알프스의 푸른 물빛은 아니었지만 호수에는 작은 쓰레기조차 떠있지 않아서 이들이 얼마나 신경써서 관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호수 주위에는 차도 없고,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무척 한가로웠다.


호숫가에 오리배를 빌려주는 곳이 있었다. 뮌헨의 영국정원에서 오리배를 탈까하다가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관뒀었는데 이곳은 거기보다 훨씬 넓고 좋은 경치에 가격은 절반 정도라 선뜻 오리배를 빌렸다. 오리배를 저어 호수 한가운데로 나가니 주위가 조용하고 가끔 물새 소리만 들렸다. 하늘에 구름도 적당해서 햇살도 따갑지 않았다. '좋구나'하는 소리를 절로 내뱉으며 배를 한가운데 멈추고 드러누웠다.









반납할 시간이 되어 오리배를 돌려주고 나오니 백조 부부가 새끼를 거느리고 물가로 나왔다. 성격 험악한 백조지만 새끼들을 살뜰히 챙겨 다니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퓌센 시내로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을 계속 가서 호수를 빙 둘러 가기로 했다. 돌아가다 호숫가 풀밭에 앉아 사들고 온 샌드위치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다시 호수를 보며 망중한을 즐겼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만큼 한적했다. 너무 한적해서 조금은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퓌센 시내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저녁을 먹으러 광장으로 나오니 무슨 일인지 전통 복장을 하고 춤을 추고 있었다. 큰 규모는 아닌 것으로 봐서 축제는 아닌 듯한데 특정 요일에 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전통 춤 공연이 아닐까 싶었다.


수십명이 남녀 혼성으로 혹은 남녀 각각 여러차례 춤을 선보였다. 춤추는 사람들은 열살이나 지났을까 싶은 작은 소녀에서부터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있었는데 다들 공연을 한다기보다 즐거워서 추는 것 같았다. 한 공연이 끝나고 다음 춤을 출 차례가 되면 서둘러 짝을 찾는데 짝을 찾지 못하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퓌센에 오는 사람들은 뮌헨에서 당일치기로 와서 노이슈반슈타인 성만을 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퓌센하면 노이슈반슈타인 성보다는 자전거 하이킹과 호수에서 한가로이 보낸 시간이 떠오른다. 일상의 번잡함을 피해 떠나 온 여행자라면 하루쯤 이런 시간을 가져보는게 좋을 것 같다.


다음 목적지인 퓌센으로 가게 된 이유는 오래 전 인터넷에서 본 한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세계 유명한 성들의 사진 중에서도 유독 동화같이 아름다운 모습의 성이 눈길을 끌었고, 이 성이 바로 퓌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예쁘지만 감흥은 없었다. 예쁜 것만으로 마음이 끌리기에는 비교적 많은 나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뉘른베르크에서 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의 작은 도시 퓌센에 내렸다. 너른 평지에 위치한 뉘른베르크나 뮌헨과 달리 퓌센은 알프스 산맥의 북쪽에 위치해 있어서 산과 호수가 많은 아름다운 곳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퓌센 시내에서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산 밑에 내려주는데 여기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거나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차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숲안에서는 숲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성의 전체적인 모습은 성의 반대편 계곡에 놓여진 다리 위에서 가장 잘 볼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우선 이 다리를 찾는다.



성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계곡. 

알프스 산맥의 끝자락에 있어서인지 계곡이 깊고 산림이 울창하다.


다리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기다렸다 자리를 차지하고 사진을 찍었다. 마치 놀이동산의 성인듯 예쁘장하게 생겼지만(실제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된 성이라고 한다) 사진으로 볼 때에 비해서 뭔가 아쉬움이 느껴졌다.


몇 달간 유럽을 여행을 하며 봤던 성들은 (로도스 성에서부터 퓌센에 오기 직전 봤던 뉘른베르크의 성까지) 모두 외적을 막기 위해 두텁고 높은 성벽을 가진, 실용적인 성들이었는데 외적인 아름다움이 강조된 성을 보니 조금은 이질감이 들기도 했다.



아랫쪽으로는 근교의 또다른 유명한 성, 노란색의 호헨슈방가우 성이 보인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보이는 다리에서 계곡을 돌아내려오면 성의 정문에 도착한다. 성의 목적이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보다 왕가의 휴양지로 쓰였음직하게 아기자기 예쁘게 생겼다.






막상 성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아래로 펼쳐진 들판과 넓은 호수였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걸어내려오는 길에는 관광객들을 잔뜩 태운 마차가 수시로 지나다녔다. 독일의 말은 경주마처럼 날렵하지 않고 큼직하고 두툼한게 힘이 무척 좋게 생겼지만 십여명을 태운 마차를 끌고 올라가다보니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입에는 진득한 거품을 물고 있었고 숨을 거칠게 내뿜으면서 힘을 주느라 거칠게 튀어나온 다리 근육에는 잔뜩 핏줄이 서 있었다. 어련히 알아서 하고 있겠지만 마차의 정원을 조금 줄여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원래는 호헨슈방가우 성도 들를 생각이었지만 그다지 끌리는 바가 없어 생략하기로 했다.


기대에 비해 실망스러운 곳이야 한두군데가 아니었지만 이 곳은 조금 묘하게 실망스러웠다. 마치 포토샵으로 꾸며진 연예인의 사진을 보고 반했던 팬이 실물을 보고나서 '분명히 예쁘긴한데 반할만큼은 아니었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겉보기에 무척이나 아름다운 사람을 실제 만나고 나서 내면의 매력을 찾지 못했다고 해야하나... 분명히 아름다운 경치에 지어진 예쁜 성이었지만 그 외 별다른 매력은 없었다.


퓌센에서 묵었던 숙소에는 주방이 없었기 때문에 저녁 먹을 곳을 찾아 헤매야했다. 더구나 체코에서부터 슈바인 학센 같은 고기 위주의 식사를 주로 했던터라 국물이 있는 요리를 먹고 싶었는데 서양요리에는 국물이 있는 요리가 거의 없는게 문제였다. 골목골목을 뒤지다보니 중국인이 하는 태국 음식점이 있었다. 사실 전통 태국요리라고 할 수는 없는 중국식과 태국식이 묘하게 섞인 요리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무척이나 반가웠다.


여행을 하면서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땐 대안으로 찾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중국 음식점을 찾는 것이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살다보니 어디서든 중국 음식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사람들은 무척이나 현지화 능력에 뛰어나서 적당한 가격에 괜찮은 음식으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한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중국 음식점을 만나면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에게는 무척이나 반갑다. 딱 한군데, 독일 다음으로 갔던 스위스에서만은 중국 음식조차도 엄청나게 비싼 물가를 비껴가지 못했다.

어째서 뉘른베르크에 가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뮌헨에서 다음 여행지인 퓌센으로 가는 방향도 아니었고 잘 알려진 여행지도 아닌 이곳에... 하지만 1박 2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기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떠났던 기억은 난다.


바이에른주의 철도는 무척 잘 되어 있는데 표를 파는 시스템이 꽤 독특했다. 표를 살때 1장을 사는 것보다 2장, 3장, 4장을 사면 점점 할인폭이 커졌다. 이쪽을 여행하는 배낭여행자들은 숙소에서 동행을 찾으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정부에서 가족과 여행을 자주 다니라고 만든 제도라는데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프랑스나 영국에서는 기차의 연착이 심해서 예전 여행할 때 꽤나 애를 먹었었는데 독일에서는 운이 좋아서인지 독일인들의 철저함 때문인지 한번도 그런적이 없었다.


뉘른베르크에 도착했을 때는 하늘이 잔뜩 흐려있었다. 이 곳은 중세시대에도 꽤 큰 도시였기 때문에 구도심을 커다란 성벽이 에워싸고 있는데다 하늘마저 흐리니 중세 분위기가 제대로 느껴졌다. 성벽 바로 바깥에 위치한 숙소에 짐을 풀고 뉘른베르크 여행을 시작했다.


뉘른베르크에서는 이곳이 어디인지, 어떤 이름의 성당인지 신경을 쓰지 않고 다녔다. 유럽을 몇 개월째 여행하다보니 그런 것들이 그다지 의미없게 느껴졌기 때문인지, 매일 비슷비슷한 여행패턴 때문에 지루해졌는지 알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위 사진의 성당도 블로그를 쓰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장크트로렌츠 성당이라고 했다.


구도심 한가운데를 강이 관통한다. 도시 곳곳에 도심 남북을 연결하는 다리가 있어 꽤나 운치있다.



이곳은 성모교회(같은 이름의 교회가 유럽에 수도 없이 많다)



성베드로 성당의 피에타부터 많은 피에타를 봤지만 가장 소박하면서도 사실적인 피에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너무 젋고 아름다운 마리아는 공감이 되지 않는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중요한 문화재인가보다. 사방을 철제 구조물로 둘러싸놓았다.


마침 주말을 맞아 뉘른베르크에서 가장 큰 광장에는 장이 서 있었다. 주로 과일이나 야채, 꽃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는데 동남아처럼 다양한 길거리 음식이 없는게 아쉽다.


장크트로렌츠 성당이었는지 성모교회였는지 아니면 다른 교회였는지 정확히 생각나진 않지만 교회안에서 사진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흥미가 생겨서 보다보니 뉘른베르크에서 행진하는 나치 친위대들의 사진, 사열을 받는 히틀러의 사진,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반쯤이 무너져내린 성당의 모습 등등을 찍은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나치당 시절 뉘른베르크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설명이 사진과 함께 붙어 있었다. 이건 일본을 여행하는 중에 일본 신사에서 과거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는 사진전을 보게 된 것과 비슷한 경우였다.(물론 일본정부는 그럴만큼의 양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흥미가 생겨서 후에 뉘른베르크의 과거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뉘른베르크는 나치의 본거지로 1933부터 38년까지 나치 전당대회가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그리고, 유태인 차별과 학살의 근거가 된 뉘른베르크 법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독일 전범들에 대한 군사재판도 이곳에서 열렸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네이버 시사상식사전에는 '뉘른베르크시는 비록 대학살이 자행된 곳이었지만 종전이후 전범재판이 열려 인종과 상관없이, 인권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준 곳이기도 하다. 그러한 사실때문에 도시로는 최초로 2001년 4월21일 유네스코의 인권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라고 적혀 있다.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진정으로 참회하는 것은, 어쩌면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 이웃에 있는 나라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마저도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고 가리기에 급급하다. 이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살면서 사소하지만 비슷한 일들을 종종 저지른다. 잘못된 일에 대해서 다른 것에서 원인을 찾거나 다른 사람의 핑계를 대는 경우도 많다. 


후배들은, 후손들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는 모습은 지금 우리가 부모세대에게 바라는 일이기도 하고, 우리가 자식세대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뉘른베르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유명하다더니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걸까 집들의 지붕이 모두 스위스풍으로 뾰족하다.



성벽을 올라 영주가 살았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성 자체는 그리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무척이나 두텁게 지었다. 뉘른베르크는 평평한 평야지대에 있지만 성은 그나마 가장 높은 곳에 지어져 있기 때문에 성벽에 올라서면 뉘른베르크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도착했을 때 흐렸던 하늘이 다행히 맑게 개었다 싶더니 어느새 다시 캄캄해져서는 굵은 빗방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비를 피하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을 골라 들어갔다. 유명하다는 소시지 안주를 시켜놓고 밀맥주를 홀짝였다. 




큰 기대도, 목적도 없이 오게 된 뉘른베르크에서 독일인들이 강한 이유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말이 있는데 (신채호 선생이든, 처칠 수상이든 누가했던 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도 과거 잘못한 역사마저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기 여행자들에게는 성수기는 피하고 싶은 시기다. 성수기에는 숙소 가격이 많이 오를 뿐만 아니라 괜찮은 숙소를 잡기도 힘들다. 단기 여행이라면 미리 예약해 두겠지만 장기 여행에서는 수시로 일정이 바뀔 가능성이 높아서 전날 예약하거나 당일 숙소를 구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6월로 접어들며 점점 구하기 어려워지던 숙소가 7월이 되면서부터는 하루나 이틀 전에 원하는 숙소를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프라하에서 뮌헨 숙소를 알아보니 괜찮은 숙소는 현지 게스트하우스뿐만 아니라 한인민박까지 대부분 예약이 완료된 상태였다. 뮌헨이 이렇게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인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곳에 메일을 보내고, 연락을 한 뒤에 겨우 한인민박 도미토리 침대를 구할 수 있었다. 프라하에서 출발한 열차가 뮌헨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이른 시간이어서 빨리 짐을 풀고 뮌헨 시내를 둘러 볼 계획이었다. 도착한 숙소는 한적하고 널찍한 마당에 예쁜 집들이 있는, 조금은 부촌으로 보이는 주택가에 있었다. 처음엔 깔끔한 외관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맞아주신 여주인은 독일인과 결혼한 분으로 우아한 서재로 안내해 차를 한잔 주셨다. 잠시 여행자를 위해 정보를 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한데 이야기가 끝없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독일 사람들의 장점, 특히 바이에른 주의 높은 생활 수준, 거기에 산다는 자부심, 이 민박집에서 묵은 유명한 국내 기업 임원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랑, 자랑, 자랑... 알고보니 여기는 배낭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민박이 아니라 한국 기업의 출장자들이나 임원들이 대상이었고 배낭 여행자들은 반지하 방에 민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끝없는 자랑을 듣다보니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이 분이 숙소를 운영하는 이유는 단지 무료하기 때문이 아닌가싶었다. 그리고 본인의 이야기 상대로 나를 잡아두고 있는게 짜증이 났다. 한두시간이나 반복되는 이야기를 듣다가 겨우 말을 끊고 일어나니 숙소를 여기로 정한게 조금씩 후회되기 시작했다.


부리나케 숙소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구시가로 나왔다. 뮌헨 구시가의 중심인 칼스광장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길거리에 빽빽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쯤 되는 곳이었다. 프라우엔 교회와 신 시청사를 스치듯 지나치고 축구클럽 '바이에른 뮌헨'의 기념품점에 잠시 눈길이 머문 후, 찾아간 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집이자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의 중심이 되는 '호프 브로이하우스'였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 슈바인 학센은 나중에 먹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돼지고기와 감자가 같이 나오는 맨 위의 기본 메뉴를 시켰다.(메뉴를 보고 어떤 음식인지 잘 모를 땐 맨 위에 있는 것을 시킨다. 그게 이 집의 대표 메뉴일거라는 생각으로). 맥주는 흑맥주, 일반 맥주, 밀맥주가 있는데 500cc와 1리터짜리가 있다. 1리터짜리를 시켜보니 우리나라 호프집에서 나오던 1리터 잔보다 훨씬 컸다. 맥주도 맛있고 음식도 맛있지만 체코에서 먹은 것들에 비해 그다지 나아보이는게 없음에도 가격은 훨씬 비쌌다. 독일은 세계 경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강대국이며, 체코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이 안되는 개발도상국이니 양국가간 물가차이가 무척이나 크다는게 실감 났다.


호프 브로이하우스 안에는 공연이 끊이질 않는다. 전통복장으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데 무척 흥겹고 볼거리도 제공하지만 조용히 맥주맛을 음미할 분위기는 아니다.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에게 독일의 맥주와 문화를 소개하는 그런 곳인 것 같다. 내가 독일 사람이라면 여기에 맥주 마시러 올 것 같지는 않다.


호프 브로이하우스를 나오니 날은 저물었는데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분명히 들어갈 때는 무척 맑았는데 언제 이렇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지... 지하철을 타려고 칼스광장으로 가다보니 맥주에 얼큰히 취해서인지 신이 난 젊은 여행자들은 비를 맞으며 뛰어다니다 분수대에 뛰어들고 난리가 났다. 우스우면서도 그들의 에너지가 보기 좋았다. 저렇게 세상 두려울게 없었으면서도 한편으론 모든게 두려웠던 나의 20대가 생각났다.


숙소는 정말 좋았던 겉모습과 다르게 길게 머물기 적합하지 않았다. 비가 와서인지 반지하 도미토리룸은 눅눅했고, 추웠다. 이튿날 아침식사는 식판에 조금씩 반찬과 국을 담아 배식을 했는데 식사의 맛과 질을 떠나서 양이 무척 작았고 마음 편히 더 달라고 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끊임없는 아주머니의 음식자랑이 이어지지만 정작 마음 편히 식사를 할 수 없고 양은 성인 남성의 배를 채우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이렇게 부실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뮌헨 관광에 나섰다. 뮌헨 관광지에 대한 정보를 봐도 이제 유럽에 석달째 머무르고 있는 여행자에게는 성당이니 박물관이니 하는 것들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뮌헨이 유럽의 다른 도시에 비해서는 역사가 오래되거나 유럽 문화의 중심이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다른 도시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오랫만에 공원에서 산책이나 하면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영국정원을 찾아가며 우연히 보게 된 뮌헨의 개선 문

개선문 위의 동상은 바이에른을 상징하는 바바리아 여인과 사자상이라고 한다.


뮌헨에 있는 영국정원은 크기가 뉴욕의 센트럴 파크보다 큰 유명한 도심공원이라고 한다. 초입부터 무성하게 펼쳐진 나무가 마치 숲에 들어온 듯하다. 이 곳의 시냇물은 모두 희끄무레했는데 물에 석회질이 많이 섞여서 그런 것 같았다. 독일의 맥주가 유명한 것도 물이 좋지 않아서라니 왠지 이해가 되었다.


지도만 봐도 이 정원이 상당히 넓다는걸 알 수 있다.


듣던대로 정원은 넓었다. 정원이라하면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진 곳일거라는 생각이었는데 인공적인 아름다움보다 숲과 잔디, 호수와 시내가 어우러진 모습을 하고 있어서 좋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짜여진 틀안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움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아지는 것 같다.



날씨는 흐렸지만 짙은 녹색의 나무와 잔디를 보니 눈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잔디밭에는 수십 마리의 새들이 내려앉아있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적어서 왠만큼 다가가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종종 집에서 남은 빵이나 과자를 가지고 와서 뿌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니 새들이 사람을 겁내지 않을 수 밖에.




넓지만 평탄한 길이라 힘들지 않다. 시간내에 목적지에 도착할 필요가 없으니 다리에 힘을 빼고 천천히 걸어도 된다. 서울에도 이런 커다란 공원이 있으면 좋겠지만 사람이 많이 살고 땅값이 비싼 서울에서는 아무래도 무리일거다. 어떤 사람들은 공원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공원의 가치보다는 경제적인 가치에 더 무게를 두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많은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업들도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휴식을 제공하고 휴식으로 쌓인 근로자의 에너지를 기업의 생산성을 올리는데 어떻게 사용할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제는 과거처럼 무조건 시간을 들여 일하는 방법으로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생각이다.

공원에서는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천천히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모차를 자전거에 달고 타거나 밀면서 뛰는 사람들도 쉽게 보였다. 아이들이 어려서 운동할 시간이 없다거나 여행할 수 없다는 건 이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이 있어도 이들은 자신의 시간을 대부분 희생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하다.


한참 걷다보니 배가 고픈데 넓은 공원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공원에는 몇 군데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곳이 있다. 독일에 왔으니 소시지를 먹어봐야겠지, 소시지만 먹으면 짜다는 핑계로 맥주도 한잔 시켰다. 세 가지의 다른 종류의 소시지를 줬는데 이 지방에서는 흰 소시지가 유명하다고 한다.




이 곳의 맥주도 호프 브로이하우스에서 온 맥주인가보다. 뿌연 밀맥주가 시원하면서 향기롭다.

잔도 큼직해서 마음에 든다. 밀맥주의 뿌연 색 때문에 전혀 흰 색이 아닌데 화이튼 비어라고 하나보다.


백조에게 직접 손으로 먹이를 주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백조는 긴 목을 뻗어 거칠게 아주머니의 손에서 먹이를 낚아채갔다. 백조는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거칠고 탐욕스러웠다. 근처에 다른 새들이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으러 오면 모조리 쫓아내버리고 같은 백조끼리도 먹이를 두고 싸우기도 했다. 겉으로 보이는 우아함과 내면의 아름다움은 이렇게나 다른 것인가보다. 뭔들 안그런 것이 있을까.


내미는 부리가 가끔은 손을 무는 듯 싶을 정도로 거칠다.


뒤늦게 먹이주는걸 발견하고 부리나케 올라오는 다른 백조


먼저 먹이를 받아먹고 있던 백조의 힘이 약한 것인지 등등하던 기세가 죽었다.





뮌헨에서는 비타민이 무척 싸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구시가에 있는 유명한 약국에서 비타민을 많이 사간다고 했다. 장기 여행이라 들고다닐 수 없지만 가끔 물에 타서 먹을 발포 비타민이라도 하나 사볼까 했더니 유명하다는 곳은 가는 날이 장날이라 문을 닫은 것 같았다.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서 발포 비타민을 하나 샀다. 우리나라에서 사본적이 없어서 얼마나 싼지는 모르겠지만 싸긴 싼 것 같았다.


숙소가 맘에 들지 않아서인지 뮌헨에서 시간을 보낼만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날 뉘른베르크로 옮기기로 했다. 뉘른베르크는 맘만 먹는다면 뮌헨에서 당일치기로 충분한 거리이고 그 다음 목적지인 퓌센은 뉘른베르크와 정반대 방향이었지만 숙소를 옮기고 싶었다. 그만큼 뮌헨에서의 숙소는 나에겐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곳이었다.


뮌헨에서의 마지막 날이니 그 유명한 호프 브로이하우스의 슈바인 학센을 맛봐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또 거기에 갔다. 이 곳의 슈바인 학센도 물론 맛있었지만 나에겐 프라하의 그 레스토랑의 그것이 더 나았단 생각이다. 가격은 물론이거니와 껍질 속 돼지고기가 더 부드러웠다. 아니면 처음 경험한 것에 대한 환상 때문거나...


나에게 뮌헨은 맥주와 공원이 훌륭했던 곳이다. 다른 좋은 숙소도 많을테고 좀 더 시간을 두고 보면 매력적인 곳도 많았을텐데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 숙소 때문에 짧게 머물다 떠났다. (나에게 좋지 않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안좋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단지 나와는 맞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인가의 좋고 싫음이 나뉘게 되는 기준은 참 단순한 것 같다.

프라하 성에 다녀온 다음 날은 몸살과 배탈이 겹쳐 하루종일 숙소에 누워있었다. 프라하의 저렴하면서도 좋은 음식과 맥주에 며칠간 빠져 살았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후 늦어서는 배가 아픈게 덜해졌고, 다시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흑맥주가 쌉쌀하면서 거친 맛 혹은 쌉쌀하면서 달콤한 맛이라면 밀맥주는 특유의 향이 너무 좋았다. 밀맥주는 보통 색이 뿌옇고 향긋한 냄새가 난다. 물론 이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이 향을 무척 좋아한다.


마침 이 날은 유로 2012 결승전이 있는 날이었다. 이 대회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가 공동개최했기 때문에(2002 한일 월드컵 이후 공동개최가 유난히 많아진 듯하다) 그쪽으로는 여행 경로를 잡을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숙소나 펍에서 주요 경기를 빠짐없이 볼 수 있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결승전이 있던 날도 경기를 볼 수 있는 펍을 찾았다. 가격이 조금 비싼듯했고 경기를 보여줄 프로젝트 스크린 앞자리는 모두 예약이 된 듯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경기 시간이 되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예약된 자리가 스페인과 이탈리아 사람들의 예약석이었다. 마치 요즘 인기있는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의 자리처럼 스페인과 이탈리아 사람들이 마주 앉아 응원하고 나는 맨 뒤에서 축구경기와 그들을 동시에 구경하는 꼴이 되었다.


경기는 예상대로 당시 최강이었던 스페인이 이겼다. 생각보다는 큰 점수 차이였지만 이탈리아 사람들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던듯 화기애애하게 축구를 즐기며 끝이 났다. 산토리니에서도 그렇고 프라하에서도 축구와 연관된 재밌는 기억이 자꾸 생기는 것 같아 나도 즐거웠다.


축구를 보고 나오니 비가 제법 많이 쏟아졌다. 동남아를 여행할 때는 건기였고, 지중해 지역에서도 보통 겨울철에 비가 많이 온다니 봄부터 초여름동안 여행한 나는 비를 맞을 일이 없었는데 여행 중 여기서 처음 제대로 맞아봤다. 아예 젖을 각오를 하고 아무렇지 않게 비를 맞고 걸어본게 언제였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비를 맞는다고 큰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감기 걸릴까봐, 산성비라 몸에 안좋으니까 피하면서 살아왔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걸으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여행중에 본 서양 사람들은 왠만한 비에는 우산을 펴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도 아이들에게 우산을 잘 씌우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 살면 면역체계가 약해져 약간의 세균에도 질병에 걸리기 쉽다는 연구결과도 종종 발표되는데 우리는 너무 조심스럽게 살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틀 뒤 독일 뮌헨으로 가는 기차를 이른 시간에 타야했기 때문에 다음날이 실질적으로 프라하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냥 떠나기가 아쉬워 마지막으로 '그 레스토랑'을 다시 찾아갔다. 이번에는 블루베리 고트(염소) 치즈 샐러드와 학센을 시켰는데 이 샐러드의 치즈가 기막히게 맛있었다. 사실 이 치즈가 원래 어떤 맛인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더 나은지 못한지 알 순 없다.


형식상 뿌려주는 치즈가 아니다. 커다란 덩어리가 듬성듬성 많이도 들어있다.


이러니 배탈이 안날 수가 있나.


여기가 그 레스토랑이다. 좁은 골목이라 처음엔 찾기가 참 힘들었다.


저녁을 먹고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코스로 야경을 보기 위해 프라하 성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예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언덕에서 해지는 걸 보려고 추위에 떨며 기다렸는데 밤 12시가 다 되어야 해가 졌었다. 당연히 그 정도는 아니지만 체코도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높기 때문에 해가 늦게 져서 달이 떠도 주위가 훤했다. 





거리의 악사들도 거의 다 돌아간 시간, 근처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사람들말고는 아무도 없다.

이런 시간, 이런 장소에서 느끼는 기분이 참 좋다.


5박 6일의 프라하 일정이 끝났다. 느긋하게 다니느라 빠뜨린 곳도 많지만 여행하다보면 그런 것이 점점 아쉽지 않게 된다. 그 곳에 다녀오는 시간에 내가 다른 곳에서 다른 것을 보며 느꼈던 감정 또한 소중한 기억이기 때문에 그때그때 충실하게 보내는 것이 가장 잘 보낸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에서 몇 만원이나 벌금을 내야했지만 프라하는 대부분 좋게 기억되고 있다. 체코의 다른 곳들도 분명 매력적인 곳들이 많을 것 같았지만 당시에 체코 여행 정보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계획대로 독일 남부로 가기로 했다.


참, 프라하에서는 아주 중요한 쇼핑을 했다. 프라하의 아디다스 매장에서 남색 민소매 티와 푸른색 축구바지를 샀다. 이 옷들은 더운 곳을 여행할 때 정말 요긴하게 쓰였다. 특히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거의 유니폼이나 다를바 없이 매일 입고 다녔다. 요즘도 어쩌다 옷장에서 이 옷들을 보게되면 그 때 생각들이 아득하게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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