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여행자들에게는 성수기는 피하고 싶은 시기다. 성수기에는 숙소 가격이 많이 오를 뿐만 아니라 괜찮은 숙소를 잡기도 힘들다. 단기 여행이라면 미리 예약해 두겠지만 장기 여행에서는 수시로 일정이 바뀔 가능성이 높아서 전날 예약하거나 당일 숙소를 구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6월로 접어들며 점점 구하기 어려워지던 숙소가 7월이 되면서부터는 하루나 이틀 전에 원하는 숙소를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프라하에서 뮌헨 숙소를 알아보니 괜찮은 숙소는 현지 게스트하우스뿐만 아니라 한인민박까지 대부분 예약이 완료된 상태였다. 뮌헨이 이렇게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인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곳에 메일을 보내고, 연락을 한 뒤에 겨우 한인민박 도미토리 침대를 구할 수 있었다. 프라하에서 출발한 열차가 뮌헨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이른 시간이어서 빨리 짐을 풀고 뮌헨 시내를 둘러 볼 계획이었다. 도착한 숙소는 한적하고 널찍한 마당에 예쁜 집들이 있는, 조금은 부촌으로 보이는 주택가에 있었다. 처음엔 깔끔한 외관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맞아주신 여주인은 독일인과 결혼한 분으로 우아한 서재로 안내해 차를 한잔 주셨다. 잠시 여행자를 위해 정보를 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한데 이야기가 끝없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독일 사람들의 장점, 특히 바이에른 주의 높은 생활 수준, 거기에 산다는 자부심, 이 민박집에서 묵은 유명한 국내 기업 임원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랑, 자랑, 자랑... 알고보니 여기는 배낭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민박이 아니라 한국 기업의 출장자들이나 임원들이 대상이었고 배낭 여행자들은 반지하 방에 민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끝없는 자랑을 듣다보니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이 분이 숙소를 운영하는 이유는 단지 무료하기 때문이 아닌가싶었다. 그리고 본인의 이야기 상대로 나를 잡아두고 있는게 짜증이 났다. 한두시간이나 반복되는 이야기를 듣다가 겨우 말을 끊고 일어나니 숙소를 여기로 정한게 조금씩 후회되기 시작했다.
부리나케 숙소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구시가로 나왔다. 뮌헨 구시가의 중심인 칼스광장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길거리에 빽빽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쯤 되는 곳이었다. 프라우엔 교회와 신 시청사를 스치듯 지나치고 축구클럽 '바이에른 뮌헨'의 기념품점에 잠시 눈길이 머문 후, 찾아간 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집이자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의 중심이 되는 '호프 브로이하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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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프지 않아서 슈바인 학센은 나중에 먹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돼지고기와 감자가 같이 나오는 맨 위의 기본 메뉴를 시켰다.(메뉴를 보고 어떤 음식인지 잘 모를 땐 맨 위에 있는 것을 시킨다. 그게 이 집의 대표 메뉴일거라는 생각으로). 맥주는 흑맥주, 일반 맥주, 밀맥주가 있는데 500cc와 1리터짜리가 있다. 1리터짜리를 시켜보니 우리나라 호프집에서 나오던 1리터 잔보다 훨씬 컸다. 맥주도 맛있고 음식도 맛있지만 체코에서 먹은 것들에 비해 그다지 나아보이는게 없음에도 가격은 훨씬 비쌌다. 독일은 세계 경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강대국이며, 체코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이 안되는 개발도상국이니 양국가간 물가차이가 무척이나 크다는게 실감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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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브로이하우스 안에는 공연이 끊이질 않는다. 전통복장으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데 무척 흥겹고 볼거리도 제공하지만 조용히 맥주맛을 음미할 분위기는 아니다.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에게 독일의 맥주와 문화를 소개하는 그런 곳인 것 같다. 내가 독일 사람이라면 여기에 맥주 마시러 올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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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브로이하우스를 나오니 날은 저물었는데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분명히 들어갈 때는 무척 맑았는데 언제 이렇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지... 지하철을 타려고 칼스광장으로 가다보니 맥주에 얼큰히 취해서인지 신이 난 젊은 여행자들은 비를 맞으며 뛰어다니다 분수대에 뛰어들고 난리가 났다. 우스우면서도 그들의 에너지가 보기 좋았다. 저렇게 세상 두려울게 없었으면서도 한편으론 모든게 두려웠던 나의 20대가 생각났다.
숙소는 정말 좋았던 겉모습과 다르게 길게 머물기 적합하지 않았다. 비가 와서인지 반지하 도미토리룸은 눅눅했고, 추웠다. 이튿날 아침식사는 식판에 조금씩 반찬과 국을 담아 배식을 했는데 식사의 맛과 질을 떠나서 양이 무척 작았고 마음 편히 더 달라고 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끊임없는 아주머니의 음식자랑이 이어지지만 정작 마음 편히 식사를 할 수 없고 양은 성인 남성의 배를 채우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이렇게 부실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뮌헨 관광에 나섰다. 뮌헨 관광지에 대한 정보를 봐도 이제 유럽에 석달째 머무르고 있는 여행자에게는 성당이니 박물관이니 하는 것들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뮌헨이 유럽의 다른 도시에 비해서는 역사가 오래되거나 유럽 문화의 중심이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다른 도시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오랫만에 공원에서 산책이나 하면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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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정원을 찾아가며 우연히 보게 된 뮌헨의 개선
문
개선문 위의 동상은 바이에른을 상징하는 바바리아 여인과 사자상이라고 한다.
뮌헨에 있는 영국정원은 크기가 뉴욕의 센트럴 파크보다 큰 유명한 도심공원이라고 한다. 초입부터 무성하게 펼쳐진 나무가 마치 숲에 들어온 듯하다. 이 곳의 시냇물은 모두 희끄무레했는데 물에 석회질이 많이 섞여서 그런 것 같았다. 독일의 맥주가 유명한 것도 물이 좋지 않아서라니 왠지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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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만 봐도 이 정원이 상당히 넓다는걸 알 수 있다.
듣던대로 정원은 넓었다. 정원이라하면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진 곳일거라는 생각이었는데 인공적인 아름다움보다 숲과 잔디, 호수와 시내가 어우러진 모습을 하고 있어서 좋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짜여진 틀안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움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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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흐렸지만 짙은 녹색의 나무와 잔디를 보니 눈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잔디밭에는 수십 마리의 새들이 내려앉아있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적어서 왠만큼 다가가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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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집에서 남은 빵이나 과자를 가지고 와서 뿌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니 새들이 사람을 겁내지 않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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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지만 평탄한 길이라 힘들지 않다. 시간내에 목적지에 도착할 필요가 없으니 다리에 힘을 빼고 천천히 걸어도 된다. 서울에도 이런 커다란 공원이 있으면 좋겠지만 사람이 많이 살고 땅값이 비싼 서울에서는 아무래도 무리일거다. 어떤 사람들은 공원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공원의 가치보다는 경제적인 가치에 더 무게를 두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많은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업들도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휴식을 제공하고 휴식으로 쌓인 근로자의 에너지를 기업의 생산성을 올리는데 어떻게 사용할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제는 과거처럼 무조건 시간을 들여 일하는 방법으로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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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는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천천히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모차를 자전거에 달고 타거나 밀면서 뛰는 사람들도 쉽게 보였다. 아이들이 어려서 운동할 시간이 없다거나 여행할 수 없다는 건 이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이 있어도 이들은 자신의 시간을 대부분 희생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하다.
한참 걷다보니 배가 고픈데 넓은 공원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공원에는 몇 군데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곳이 있다. 독일에 왔으니 소시지를 먹어봐야겠지, 소시지만 먹으면 짜다는 핑계로 맥주도 한잔 시켰다. 세 가지의 다른 종류의 소시지를 줬는데 이 지방에서는 흰 소시지가 유명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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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의 맥주도 호프 브로이하우스에서 온 맥주인가보다. 뿌연 밀맥주가 시원하면서 향기롭다.
잔도 큼직해서 마음에 든다. 밀맥주의 뿌연 색 때문에 전혀 흰 색이 아닌데 화이튼 비어라고 하나보다.
백조에게 직접 손으로 먹이를 주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백조는 긴 목을 뻗어 거칠게 아주머니의 손에서 먹이를 낚아채갔다. 백조는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거칠고 탐욕스러웠다. 근처에 다른 새들이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으러 오면 모조리 쫓아내버리고 같은 백조끼리도 먹이를 두고 싸우기도 했다. 겉으로 보이는 우아함과 내면의 아름다움은 이렇게나 다른 것인가보다. 뭔들 안그런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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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미는 부리가 가끔은 손을 무는 듯 싶을 정도로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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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먹이주는걸 발견하고 부리나케 올라오는 다른 백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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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먹이를 받아먹고 있던 백조의 힘이 약한 것인지 등등하던 기세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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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서는 비타민이 무척 싸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구시가에 있는 유명한 약국에서 비타민을 많이 사간다고 했다. 장기 여행이라 들고다닐 수 없지만 가끔 물에 타서 먹을 발포 비타민이라도 하나 사볼까 했더니 유명하다는 곳은 가는 날이 장날이라 문을 닫은 것 같았다.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서 발포 비타민을 하나 샀다. 우리나라에서 사본적이 없어서 얼마나 싼지는 모르겠지만 싸긴 싼 것 같았다.
숙소가 맘에 들지 않아서인지 뮌헨에서 시간을 보낼만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날 뉘른베르크로 옮기기로 했다. 뉘른베르크는 맘만 먹는다면 뮌헨에서 당일치기로 충분한 거리이고 그 다음 목적지인 퓌센은 뉘른베르크와 정반대 방향이었지만 숙소를 옮기고 싶었다. 그만큼 뮌헨에서의 숙소는 나에겐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곳이었다.
뮌헨에서의 마지막 날이니 그 유명한 호프 브로이하우스의 슈바인 학센을 맛봐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또 거기에 갔다. 이 곳의 슈바인 학센도 물론 맛있었지만 나에겐 프라하의 그 레스토랑의 그것이 더 나았단 생각이다. 가격은 물론이거니와 껍질 속 돼지고기가 더 부드러웠다. 아니면 처음 경험한 것에 대한 환상 때문거나...
나에게 뮌헨은 맥주와 공원이 훌륭했던 곳이다. 다른 좋은 숙소도 많을테고 좀 더 시간을 두고 보면 매력적인 곳도 많았을텐데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 숙소 때문에 짧게 머물다 떠났다. (나에게 좋지 않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안좋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단지 나와는 맞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인가의 좋고 싫음이 나뉘게 되는 기준은 참 단순한 것 같다.